소설리스트

악惡의 등교-56화 (56/130)

12. 서울에서 온 전학생 (4)

최태준의 예상은 틀렸다.

박진우가 치료를 위해 보건실에 갔다고 생각했지만, 그는 수업을 빠지고 교무실로 향했다.

“……이렇게 된 상황이에요. 아무래도 전학생이 의도적으로 현성이를 노리는 것 같아요.”

1반의 담임.

김영철에게 사실을 말했다.

처음에는 반가운 마음에 최태준을 안내해 주었는데, 노골적으로 김현성에게 시비를 거는 바람에 한바탕 싸우게 되었다고. 박진우의 얼굴은 엉망이었다. 멍들고 붓고 처참한 몰골이었지만, 그로서는 본인의 치료보다는 일단 결백을 밝히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김영철이 표정을 와락 일그러트렸다.

전학생이 온다고는 들었는데, 설마 전학 첫날부터 이렇게 사고를 칠 줄은 몰랐다.

‘현성이 말대로네. 골든 서클 새끼들이 분명히 가만히 있지 않을 거라고 했는데, 이렇게 대놓고 움직일 줄이야. 대체 뭐 하는 새끼들이야? 교권(敎權)이 아무리 추락했다지만 학생을 전학시키면서까지 일을 처리하려고 하다니. 누가 머리인지는 몰라도 아주 쓰레기 새끼들이네.’

같은 쓰레기가.

같은 쓰레기를 욕했다.

천일이라는 작은 우물에서 활동하는 김영철이 보기에, 골든 서클의 스케일은 혀가 내둘러질 정도였다.

김영철이 말했다.

“현성이는 어때? 별말 없고?”

“예. 현성이는 괜찮은데, 사실 선생님……. 아니, 현성이에게 전학생을 어떻게 처리할지 물어봤거든요.”

말을 순화했다.

선생님에게 말해서 전학생을 처리해 버리자는 말을 하려다가, 아무리 쓰레기 같은 선생일지라도 대놓고 말하는 건 싫어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영철의 민낯을 드러내는 상대는 김현성과 고창범, 오대환과 같은 정말 밑바닥을 아는 사람들뿐이다. 일반 학생들에게는 그래도 선생님으로 불리길 바라기에, 박진우는 자신이 들었던 대답 그대로를 말했다.

“그런데 현성이가 이렇게 말했어요. 알아서 다들 재량껏 할 거라고.”

“재량껏?”

“예.”

모호한 단어였다.

재량껏.

부추기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나서지 말라는 것도 아니다.

충의를 확인하는 군주의 시험처럼, 그 단어를 곱씹을수록 김영철은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잘되었다.

지금으로부터 몇 달 전.

징계위원회가 소집될 때만 하더라도 인생이 꼬인다고 생각했지만, 정민호 부모님에서 명진건설로 갈아탄 이후 좋은 일이 많았다. 정말 스케일이 달랐다. 고창범이 주는 선물을 받을 때면, 김현성 하나를 챙기는 지금과 같은 상황들이 나쁘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로.

재량껏 움직일 생각이었다.

이 관계를 돈독하게 만들기 위해, 본인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전학생, 걔 지금 어디 있어?”

김영철이 몸을 일으켰다.

* * *

꽈악.

“아 씹.”

귀를 붙잡았다.

최태준이 신경질적으로 반응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김영철은 그를 잡아끌어 교무실로 향했다.

그렇게 교무실에 도착했다.

김영철은 최태준의 귀를 놓아주더니.

짜악-!

곧바로 뺨을 날렸다.

최태준의 눈썹이 홱 올라갔다.

분노가 치밀었다.

다짜고짜 귀를 잡아 끌어간 것도 열이 받는데, 아무런 말도 없이 뺨을 때리다니.

“씨발. 왜 따귀를 때리고 지랄이야!”

“씨발? 씨이발? 선생님한테 말버릇이 조금 거칠다?”

“선생님이야말로 지금 무슨 짓이에요? 요새 학생들에게 그렇게 함부로 손찌검하다가는 교직 생활 오래 못 해요. 제가 그렇게 만들어 드려요?”

김영철이 피식, 웃었다.

오대환에게 들었다.

서울 교육감이라는 배경에 대해서.

상대가 만만치 않은 존재임을 알았지만, 그렇다고 그냥 물러날 김영철이 아니었다.

“너 지금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체감이 되지 않는 모양인데, 넌 전학 첫날에 동급생을 병원에 실려 갈 만큼 때렸어. 지금 진우가 병원에 실려 간 건 알아? 피를 철철 흘리면서 정신을 잃는데, 난 진우가 죽는 줄 알았어.”

“그게 무슨.”

이상한 소리였다.

박진우는 분명히 병원에 실려 갈 정도로 다치지 않았고, 피를 철철이라고 표현할 만큼 흘리지도 않았다.

불길한 예감이 스쳐 지나갔다.

박진우가 김현성을 감싸고 돌았던 것처럼, 자신을 궁지로 몰아넣기 위해 의도적으로 응급실에 실려 갔다면? 상황이 최태준에게 매우 불리하게 돌아갔다. 박진우를 때렸다는 증인과 박진우 몸에 남은 상처,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할 선생의 존재는 위협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리고 조금 전에 어? 5반에서 아주 개지랄을 했던데? 네가 때려눕힌 애들 전부 2학년 선배들이고, 네가 험악한 분위기를 주도했다는 1학년 애들의 증언도 있어. 그런데도 뭐? 왜 따귀를 때리고 지랄이냐고?”

콱.

귀를 잡았다.

최태준의 귀를 끌어 올리며, 또다시 뺨을 날렸다.

짜악!

“이 씨발 새끼야. 어디 너희 잘난 아빠 친구한테 가서 말해 봐. 전학 첫날부터 사고란 사고는 다 치고 다녔는데,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선생님을 협박한 네가 어떤 처우를 받아야 하는지를.”

최태준이 눈을 부릅떴다.

한 대라도 칠 기세였다.

김영철이 말하는 것을 보면 서울 교육감이라는 배경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도 모두가 지켜보는 교무실 한복판에서, 뒤가 없는 사람처럼 자신을 몰아붙이는 태도가 도저히 이해가 되질 않았다.

“왜? 나중에 문제 삼아서 날 X 되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아?”

짜악-!

뺨을 날렸다.

지지 않겠다는 듯이 고개를 바로 돌리면, 어김없이 김영철의 손바닥이 날아왔다.

“내가 너 같은 애들을 많이 상대해 봤는데.”

짜악-!

“넌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왜냐고? 밖에 나가서 뭐라고 말할 건데?”

짜악-!

“선생님이 내 뺨을 때렸어요? 그러니까 선생님을 처벌해 주세요? 야 이 빡대가리야. 이 교무실 안에서 네가 맞았다는 사실을 증언해 줄 사람은 존재하지 않아. 뭐, 네 얼굴에 난 상처?”

씰룩, 웃었다.

짜악-!

“이건 박진우가 때린 상처고.”

짜악-!

“이건 배성호가 때린 상처야.”

짜악-!

“이건 2학년 중 누군가가 때린 상처겠지. 이렇게 전학 첫날부터 싸움박질을 하고 다녔는데, 내가 낸 상처라고 어떻게 증명할 건데?”

김영철의 눈빛.

광기가 번들거렸다.

타락한 인간의 밑바닥에, 최태준도 더는 뭐라 말할 수 없었다.

뺨이 아팠다.

얼얼하게 밀려오는 충격보다, 김영철의 눈빛이 더 심장을 억죄었다.

김영철이 귀를 잡아끌었다.

바로 코앞에서 시선을 마주치며, 머릿속에 새겨 넣으라는 듯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니까, 내가 널 때렸다는 증거가 있냐고.”

* * *

그 시각.

정찬수는 서울로 도착해 다른 일을 처리하고 있었다.

최태준을 데려다준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았기에, 무슨 일이 생겼으리라고는 아예 생각지도 못했다.

그런데 갑자기 최태준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진짜 천일 새끼들 다 미쳤다니까요? 선생이고, 학생이고 전부. 약이라도 빤 것처럼 지랄하는데, 저 혼자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조금 전에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요? 교무실 한복판에서 개처럼 맞았어요. 주변에 선생님들이 눈을 부릅뜨고 있는데도, 김영철 그 쓰레기 같은 새끼가 신고할 거면 신고해 보라고 조롱하면서 제 뺨을 때렸다고요!]

악에 받친 목소리였다.

보통 학생들 간의 싸움은 당사자 선에서 끝나는데, 천일 전체가 김현성의 편을 들었다. 단순하게 김현성이 옳다고 목소리를 높여 주는 것이 아니라, 대신 싸우겠다며 다들 주먹을 들었다.

이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

박진우와 2학년 패거리들을 쓰러트리는 동안 최태준은 크게 다치지 않았는데, 김영철에게 뺨을 얻어맞다가 얼굴이 엉망이 되었다. 입술이 찢기고 터지고. 난생처음 경험해 보는 일이었다. 특히 골든 서클이라는 배경을 등에 업고도 이런 황당한 일을 경험하게 될 줄은 몰랐다.

정찬수가 말했다.

“잠깐 침착하고 상황을 정리해서 말해 줘 봐.”

[아니, 그러니까…….]

처음부터 끝까지.

상황을 상세히 설명했다.

최태준의 이야기가 모두 끝나자, 정찬수는 하던 일도 멈추고 심각한 표정을 보였다.

“네 말처럼 심각하긴 하네.”

지방 의뢰에서 간혹 발생하는 일이었다.

서울과는 다르게 골든 서클의 입김이 미치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천일 고등학교는 그중에서도 이례적일 정도로 심했다. 강태구가 기록한 바에 따르면 ‘대산 카르텔’이 존재했다. 이미 교장을 회유하려다 실패한 전적이 있기에, 일부러 서울 교육감의 이름을 들이밀지 않았던가.

‘만약 지방 의뢰에 정말 실패하기라도 한다면, 내 입지는 완전히 무너지고 말겠지. 이건 누구 한 명이 해결할 때까지 줄줄이 나락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문제야. 내가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받아들인 이상, 실패는 용납할 수 없어.’

머리가 아팠다.

강태구의 상황이 이해되었다.

최태준을 보냈는데도 이 꼴이 난 것을 보면, 용병을 관리하는 브로커로서는 해결할 방법이 없었을 터.

하지만.

정찬수는 달랐다.

서울 소속의 정식 브로커.

휘하에 사람들을 거느리고 있는 존재.

정찬수에게는 충분한 권력이 있었고,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도 알았다.

정찬수가 말했다.

“일단 자중하고 있어. 내가 교육감을 한번 만나 볼 테니까.”

* * *

1시간 뒤.

서울의 한정식집에서 한 사내를 만났다.

서울특별시의 교육감.

문창호의 술잔에 술을 따르며, 정찬수가 공손한 목소리로 말했다.

“죄송합니다만, 한번 힘을 써 주셔야겠습니다. 교육감님의 명함을 빌렸는데도 천일의 교장이나 그 선생들이 전혀 알아먹는 눈치가 아닙니다. 조금 더 윗선을 압박해 주시면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어허, 그 사람들 정말. 눈치가 없는 사람들일세.”

문창호가 능글맞은 웃음을 보였다.

보통은 곤란해할 부탁이었다.

술 한잔에 덥석 받아들일 이유가 없건만, 문창호는 개의치 않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 한번 연락하리다.”

“감사합니다.”

정찬수로서는 이 상황이 당연했다.

골든 서클.

겨우 학교 폭력을 주도하는 이 집단이 어떻게 엄청난 세력을 형성할 수 있었을까.

학연, 지연, 혈연이라는 말이 있듯, 골든 서클은 일종의 ‘인연’을 형성해 주는 집단이 되었다.

골든 서클 소속의 자식을 둔 부모가 서로 교류하고, 그렇게 끌어 주고 밀어주는 관계를 오랫동안 형성하다 보니 그들은 스스로를 골든 라인(Golden line)이라고 불렀다. 금줄을 움켜쥔 사람들. 단순히 의뢰인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골든 서클에 의뢰할 만큼의 존재들은 공생하는 관계로 남았다.

문창호도 그랬다.

교육감이나 달고서 자식을 위해 골든 서클에 가입했던 그는, 최근에 골든 라인의 덕을 크게 보았다.

경기도 일대의 재개발.

그것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전에 무려 수천 평의 땅을 사들였다.

명목이야 은퇴하고 지낼 땅을 샀다고 말했지만, 사실 그건 골든 라인에 소속되어 있는 현 경기도 도지사가 정보를 흘려 준 덕분이었다. 원래라면 투기나 자연 파괴의 문제로 무산될 일이었는데, 경기도 도지사가 강력하게 추진하면서 문창호는 무려 10배에 달하는 잭팟을 터트렸다.

그러니 실실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정찬수는 그 중간다리를 맡아 주었던 인물이기에, 그를 위해 기꺼이 전화 한 통 걸어 줄 수 있었다.

문창호가 술을 단숨에 들이켰다.

이미 몇 잔을 마셔 달아오른 얼굴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탈칵.

“오랜만입니다, 교육감님.”

[아니, 어쩐 일이십니까?]

핸드폰 너머.

대산의 교육감, 조동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둘은 익히 아는 사이였다.

천일의 윗선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대산 카르텔을 무너트릴 수 있는 대산의 인물을 공략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다름이 아니라, 대산에 있는 천일 고등학교에 관해 좋지 않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곳의 선생들이 기업과 결탁하여 일반 학생을 편파적으로 돌본다는 내용인데……. 혹시 그 문제 좀 처리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저는 괜히 이런 미꾸라지들로 인해, 대한민국의 교권이 떨어질까 걱정입니다.”

참 살기 좋은 세상이었다.

전화 한 통.

겨우 몇 분의 시간이면 문제가 금방 해결되었다.

아무것도 없는 사람들은 아등바등 발악하며 살아가지만, 골든 라인 소속들의 세상은 완전히 달랐다.

천외(天外).

정찬수가 웃음을 삼켰다.

천일이라는 배경이 떨어지고 나면, 김현성은 스스로를 지킬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런데.

[죄송합니다만, 왜 서울 교육감님께서 대산의 일을 참견하시는 겁니까?]

핸드폰 너머로, 생각보다 싸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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