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惡의 등교-58화 (58/130)

12. 서울에서 온 전학생 (6)

예상치도 못한 상황이었다.

그날 이후로 1반 근처로는 가지도 못했는데, 갑자기 나타난 김현성의 모습에 순간 충동적인 생각이 들었다.

‘지금 죽여 버릴까?’

김현성 혼자라면.

가볍게 요리할 자신이 있었다.

머릿속에서 악마가 속삭였지만, 최태준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눌렀다.

‘지금은 아니야. 이렇게 공개된 공간에서 괜히 김현성을 건드렸다가, 목적은 이루지 못하고 징계의 빌미만 내어 줄 수도 있어. 의뢰의 성공 조건은 김현성의 몰락이야. 충분히 무르익을 때까지 상황을 기다렸다가, 아무도 김현성을 도와주지 못할 정도로 완벽하게 짓밟아야만 해.’

놀란 기색을 감추었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밥을 다시 먹으려는데, 김현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왜, 천일에서의 생활이 마음처럼 되지 않아? 듣기로는 우리 교육감이 아주 개지랄을 했다던데.”

우뚝.

행동을 멈추었다.

김현성은 의도를 가지고 온 것이 분명했다.

최태준이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사납게 바라보았다.

툭.

“야. 네가 뭐라도 되는 줄 아나 본데, 나는 네가 무서워서 가만히 있는 게 아니야. 이딴 촌구석에서 사람들 거느리니까 정말 왕이라도 된 것 같지?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학교가 아니라 나랑 밖에서 이렇게 일대일로 대면하는 상황이 찾아온다면, 그때는 인내심이 버티지 못할 것 같거든.”

“재밌네.”

“재미? 그래, 언제까지 그따위로 말하나 보자.”

시선을 피했다.

더는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도.

김현성은 자리를 떠나지 않고 이어서 말했다.

“진심으로 궁금해서 묻는 말인데, 네가 말한 대로 내가 천일의 왕이라면 넌 대체 뭘 믿고 여기에서 버티고 있는 거야?”

“……무슨.”

순간.

불길한 기분이 들었다.

방금 발언에 내포되어 있는 의미를 파악하자마자, 강력한 충격이 머리를 내리찍었다.

콰앙!

테이블에 머리가 처박혔다.

최태준의 머리, 왼팔, 오른팔, 그리고 등.

그를 짓누르는 손길은 하나가 아니었다.

지난 싸움에서 처참하게 발렸던 배성호와 2학년 패거리가, 얼굴에 밴드를 덕지덕지 붙인 채로 최태준의 신체를 억눌렀다. 최태준으로서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바둥거리면서 어떻게든 억압하는 손길을 풀어 보려고 했지만, 뒤를 잡힌 이상 혼자만의 힘으로 다수를 감당할 수는 없었다.

그 모습에.

김현성이 고개를 틀며 시선을 마주쳤다.

“그러니까, 대체 왜 겁도 없이 그러고 있냐고.”

* * *

최태준은 곧바로 소각장으로 끌려갔다.

도중에 소리도 지르고 발악도 해 보았지만, 다수를 제압했던 그의 무력은 이번에는 소용이 없었다.

뒤를 잡혔다.

처음부터 신체를 억압받는 상황에 제대로 힘을 발휘할 수 없었고, 배성호와 2학년 패거리뿐만 아니라 이번에는 1학년과 3학년의 실세들도 나섰다. 사방에서 수십 개의 손길이 최태준을 억압했다. 그중에는 체격이 건장한 박진우와 같은 애들도 있다 보니, 최태준으로서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빡.

“큭.”

누군가가 다리를 걷어찼다.

최태준은 강력한 충격에 무릎을 꿇으면서도, 맹렬하게 타오르는 눈빛으로 눈앞의 상대를 올려보았다.

“비겁한 새끼.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는데.”

김현성이었다.

자신을 내려다보는 시선에, 최태준이 발작을 일으켰다.

“씨발, 정정당당하게 한번 붙자. 너도 쪽팔릴 거 아냐? 이렇게 애들을 동원한다고 해서 네가 진짜 강한 것 같아? 너 같은 새끼들은 절대 인정받지 못해. 넌 나약해서 이 새끼들 뒤에 숨은 거라고.”

“인정해.”

“뭐?”

“네 말 다 인정한다고.”

쪼그려 앉았다.

눈높이가 맞춰진 상황에, 김현성이 흔들리는 눈동자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날 말이야. 네가 싸우는 걸 직접 봤는데 정말 강하더라고. 그래서 그냥 인정했어. 신영민도 간신히 이긴 내가, 골든 서클의 B등급을 지금 당장은 이기지 못한다고. 그게 현실이긴 하잖아.”

“…….”

말문이 막혔다.

본인의 패배를 순순히 인정하니, 최태준은 오히려 불길한 기분이 들었다.

본래 과신하는 상대가 쉬운 법이다.

현실을 직시하는 상대가 적일 때는, 그 상대는 강자를 쓰러트리기 위해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그래서 한 가지 묘수를 떠올렸어. 내가 상대만큼 강하지 않다면, 상대를 내 위치로 끌어내리면 그만이야. 적당히 강하지 그랬냐. 비벼 볼 수 있는 수준이면 그래도 한번 상대해 보려고 노력이라도 했을 텐데, 지금은 굳이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 않거든. 그러니 밸런스 좀 맞추자.”

슥.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 이해가 되질 않았다.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해 눈동자가 크게 흔들리는 그때, 김현성의 신호를 받은 배성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밟아.”

빠악-!

얼굴에 주먹이 작렬했다.

뒤에서 휘두른 주먹에 미처 반응할 수 없었고, 최태준은 그대로 얻어맞아 땅바닥에 나가떨어졌다. 정신을 차리고 다급하게 일어나려고 했다. 어떻게든 혼자서 이 문제를 해결해 보고 싶었지만, 그가 중심을 잡기도 전에 사방에서 날아드는 발길질에 균형을 잃어버렸다.

퍽퍽퍽!

“죽어!”

“씨발련아, 천일이 만만해?”

“어디서 나대고 지랄이야.”

일방적인 폭력이었다.

고개를 들면 머리가 날아갔고, 팔을 올리면 팔을 밟아 버렸다.

이대로 있다가는 큰일이 나겠다는 생각에, 최태준은 몸을 웅크리면서 충격을 최대한 줄이려고 했다. 그제야 후회가 밀려들었다. 천일이 정말 김현성의 세상이라면. 학생들은 물론이고 선생마저 그의 사람이라면, 전학이라는 간단한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해서는 안 되었다.

안일했다.

정찬수든, 최태준이든.

서울에서 살았던 그들에게, 지방은 특별한 전략이 필요 없는 만만한 세상이었다.

퍽!

퍽, 퍽, 퍽!

몸이 들썩였다.

얼마나 맞았을까.

세상이 빙글빙글 돌 만큼 현기증이 밀려드는 그때, 갑작스럽게 누군가가 오른팔을 잡아끌었다.

콱.

팔을 잡은 모양새가 이상했다.

구타도 멈추었다.

최태준이 파르르 떨리는 눈빛으로 팔을 확인하자, 악의로 번들거리는 김현성과 시선이 마주쳤다.

김현성이 씰룩, 웃었다.

“아무리 B등급이어도 팔 하나 없으면 내가 할 만하지 않겠어?”

“아, 안 돼…….”

눈을 부릅떴다.

황급히 말리려고 했지만, 김현성은 그대로 최태준의 팔을 반대로 꺾어 버렸다.

빠드득.

“크아아아아아악!”

* * *

“아악, 아악!”

팔을 놓아주었다.

최태준은 바닥을 뒹굴며 팔을 부여잡았다.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미친 새끼였다.

신영민의 팔을 부러트렸다고는 들었는데, 서울 교육감의 배경을 듣고도 이렇게 과감하게 나올 줄은 몰랐다.

콱.

머리가 딸려 올라갔다.

배성호가 우악스럽게 최태준을 무릎 꿇리자, 김현성이 말했다.

“지금부터 네게 두 가지 선택지를 줄게.”

“끄윽, 끄으으.”

신음을 흘렸다.

제정신이 아니었다.

최태준의 상태가 어떻든, 김현성은 말을 계속 이어 나갔다.

“첫 번째는 앞으로도 계속 골든 서클의 의뢰를 진행하는 것. 나를 향한 적의를 고수한다면, 나는 내게 위협이 되는 요소를 제거하기 위해서라도 지금 당장 반대편 팔도 부러트릴 거야. 너는 학교에서 일어나는 폭력에 저항할 수 없는 상태로, 그동안 경험해 보지 못한 지옥 속에서 살게 되겠지.”

눈을 치켜떴다.

이를 악다물었다.

고통이 밀려와도, 최태준의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김현성에 대한 반감이 미친 듯이 부풀었다.

“두 번째는 나를 위해서 일하는 것. 마치 의뢰를 완수한 것처럼 거짓으로 보고하고, 의뢰인의 정체를 알아낼 때까지 이중 첩자의 역할을 하는 거지. 사실 이번에 고민이 정말 많았거든. 널 처리해서 골든 서클에 경고의 메시지를 보낼까, 아니면 그냥 내버려 둘까. 그런데 B등급인 너도 그렇게 강한 것을 보면 처리하지 않는 게 이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네가 천일에 존재함으로써 나는 충분한 시간을 확보하고, 너를 통해서 의뢰인 그 개새끼의 정체를 알아내기도 하고.”

“……좃까, 씨발 새끼야.”

배신?

최태준으로서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골든 서클은 어중이떠중이들이 만든 가벼운 집단이 아니다.

정말 대단한 권력이 뒤얽혀 있기에, 내부에 배신자가 생긴다면 선례를 남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상상 이상의 보복을 가했다. 절대 그런 상황을 용납할 수 없었다. 차라리 의뢰에 실패하면 실패했지, 지금 살아 보겠다고 첩자의 역할을 받아들였다간 앞으로 지옥이 펼쳐질 것이다.

김현성이 웃었다.

“남은 팔을 부러트려도?”

“그냥 부러트려.”

“정말 괜찮겠어?”

“그만 물어, 이 씨발 새끼야. 어차피 네 마음대로 할 거잖아.”

타협의 여지가 없었다.

최태준의 의지는 강력했다.

오른팔에서 밀려드는 고통에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도, 절대 김현성의 제안을 받아들일 생각은 없었다.

김현성은 그 모습을 한참 바라보았다.

그러다.

“배성호.”

“어, 현성아.”

고개를 돌렸다.

배성호를 바라보며, 김현성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 혹시 이 자리에서 얘 찌르고 1억 받아 갈 생각 있냐? 네가 힘들면, 다른 사람 그 누구라도.”

* * *

방금 발언.

상식을 벗어났다.

김현성의 개를 자처하던 사람들도, 이번 발언만큼은 섣불리 동조할 수 없었다.

김현성이 말했다.

“확실히 말하는데 전학생을 죽이라는 게 아니야. 후유증이 생길 만큼 깊숙이 칼을 찔러 넣으면, 바로 구급차를 불러서 목숨에는 지장이 없게 할게. 겨우 한 3초? 3초 만에 1억을 버는 일인 거야.”

“미, 미친 새끼가.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최태준이 눈을 부릅떴다.

당황해서 바락바락 소리를 질러 대는 데도, 김현성은 배성호와 그 너머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잘 생각해 봐. 너희가 이대로 학교를 졸업하고 1억을 모으려면 얼마의 시간이 필요할 거 같아? 엘리트들이 아니고서야 요새 평균 연봉이 2~3천쯤 된다는데, 한 달에 빠듯하게 백만 원을 모아도 8년 이상은 걸리는 일이야. 20살부터 돈을 모은다면 28살에나 모을 수 있는 돈. 나는 지금 그런 돈을 주겠다는 거야.”

천일.

그리고 배성호와 그 패거리들.

그들은 크나큰 착각을 하고 있었다.

김현성과 본인들의 관계가 이상적이라고.

학교 폭력에 관련되지 않은 일반 학생들은 변화된 환경이 무조건 좋겠지만, 배성호와 같이 근본부터 글러 먹은 애들의 경우에는 달랐다. 김현성은 그들의 미래를 신경 쓰지 않았다. 명확히 대가성 관계로 그들을 받아들였고, 주인을 모시는 개로서 쓰임을 다하기를 바랐다.

악의(惡意)가 번들거렸다.

김현성의 진짜 모습이었다.

학교 폭력을 없애는 정의의 사도가 아니라, 식물인간으로서 살아가며 악의를 쌓아 온 악마였다.

복수를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최태준은 그 사실을 몰랐기에, 지금 이런 꼴이 되어 버렸다.

“너희는 아직 고등학생이야. 살인도 아니고 이런 일로는 얼마 살지도 않을 거고, 전학생이 이번 일을 신고하면 우리가 다 같이 증언해 줄게. 절대 의도적으로 찌른 게 아니라고. 서로 장난치다가 이런 일이 발생했다고. 이 새끼가 뭐라고 떠들든, 이곳에서는 어차피 얘 말을 믿지 않아.”

말이 계속될수록.

배성호와 패거리의 눈빛이 변했다.

고등학생의 나이.

1억의 보상.

그리고 적은 형량.

점점 받아들이는 듯한 눈빛이었다.

최태준이 벌벌 떨었다.

골든 서클의 일원으로서 여러 나쁜 일을 저질렀지만, 이렇게 대놓고 선을 넘는 경우는 없었다.

학교이지 않은가.

최소한의 선이 존재하는 공간!

그때였다.

“할게.”

배성호였다.

눈이 표독스럽게 변했다.

“네 말처럼 내가 1억을 어떻게 벌겠어. 그리고 칼로 찌른다고 해도 얼마 살지도 않을 거고. 할게. 네가 내게 말했었지. 충성스러운 개처럼 본분을 다한다면, 그만한 보상은 반드시 해 주겠다고.”

배성호의 시선이 최태준을 향했다.

처음에는 최태준이 두려웠다.

이길 수 없는 상대라고 생각했지만, 칼이라는 수단을 받아들인 순간부터 그냥 한낱 인간으로 보였다.

“믿는다고는 하지 않을게. 거래니까, 거래는 이행할 거라고 생각할게.”

걸음을 옮겼다.

칼을 가져오기 위함이었다.

현실이 훅 밀려들었다.

최태준은 정말 칼을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배성호가 멀어지기 전에 발악하듯 소리쳤다.

“두, 두 번째를 택할게! 그러니까 그만해. 씨발, 제발 그만하라고!”

이건 도저히.

17살의 의지만으로는 버틸 수 없는 상황이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