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惡의 등교-59화 (59/130)

12. 서울에서 온 전학생 (7)

며칠 전.

김현성은 고민에 빠졌다.

김영철에게 끌려간 이후 최태준은 꼬리를 말았지만, 그렇다고 그를 그냥 방관할 수만은 없었다.

‘어떻게 할까.’

지금 당장 처리할지.

아니면, 다른 방법을 생각할지.

단순하게 생각한다면 위험 요소를 제거해야 하나, 모순적이게도 의도가 노골적인 존재라는 사실이 그를 고민에 빠트렸다. 골든 서클은 대놓고 자객을 보냈다. 갑작스럽게 전학을 온 최태준과 그를 감싸 주는 서울 교육감이라는 배경, 그리고 맥락 없이 시비를 걸었던 그날의 행동까지.

자신을 무시하는 행보였다.

이번 의뢰의 심각성을 알았다면, 이렇게 노골적으로 자객의 정체를 드러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골든 서클은 실패가 용납되지 않는 집단이야. 골든 라인이라고 불리는 권력자들과의 관계는 단 한 번도 실패하지 않았던 지난날의 신뢰로부터 비롯돼. 신영민이 실패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최태준을 보낸 것처럼, 만약 이번에도 실패한다면 최태준 이상의 인물을 보내오겠지. 그때부터는 이 상황을 낙관하고 방심하던 골든 서클이, 진심으로 나를 처리하려고 할 것이 분명해.’

B등급의 강자.

강력했다.

박진우를 때려눕히는 모습을 눈앞에서 확인했을 때, 김현성은 본능적으로 지금의 자신은 최태준을 상대로 승리를 확신할 수 없음을 알았다. 승산이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신영민을 쓰러트리면서 그동안 발전했음을 증명했지만, 문제는 어떻게 쓰러트린다고 한들 그게 끝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B등급이 실패하면 A등급을.

A등급이 실패하면 S등급을.

골든 서클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이른 시기에 A등급의 강자를 만난다면, 그때는 승산이 아예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계획은 완벽하지 않아. 대비할 수 없는 변수는 날 위험에 빠트리겠지.’

고창범의 일.

그리고 여러 인간관계.

새로운 삶을 경험하며, 김현성은 자신이 생각했던 계획은 결국 ‘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절절히 체감하고 있었다. 상황이 실시간으로 변했다.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심혈을 기울이고 있지만, 식물인간으로서 살아가며 경험하지 못했던 영역에서 분명히 변수가 발생할 것이다.

A등급의 강자들.

그들도 마찬가지다.

골든 서클에도 등급이 있다는 정보는 알고 있었지만, 그들이 얼마나 강한지는 경험해 보지 못했다.

‘나는 지금보다 영악하게 생각하고 움직일 필요가 있어. 통제되지 않는 상황에 날 내놓는 것이 아니라, 더욱 단단한 철옹성을 쌓아 절대 무너지지 않도록. 그리고 마지막 계획을 완벽하게 현실로 이행할 수 있도록.’

심장이 차갑게 식었다.

본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내가 왜 이 자리에 있는지.

잠깐의 행복에 취해, 예전처럼 좋은 사람이라는 말을 들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머릿속이 맑아졌다.

신영민을 상대할 때는 그를 무너트려 왕좌를 차지해야 할 이유가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정정당당할 필요도, 그럴 이유도 없었다.

고개를 돌렸다.

“날씨 좋네.”

처음 과거로 돌아왔던 그날처럼, 눈 부신 햇살이 자신을 비추고 있었다.

* * *

최태준의 외침.

배성호가 걸음을 멈추었다.

그가 짜증이 난 얼굴로 뒤를 돌아보자, 최태준을 마주 보고 있는 김현성의 뒷모습이 보였다.

“어떻게 할 거야? 칼을 가져와, 말아?”

그는 이미 결단을 내렸다.

1억.

확실한 대가에 인생을 바쳤다.

탐욕으로 번들거리는 눈빛은 모든 각오를 끝냈기에, 갑작스럽게 초를 치는 최태준의 변화가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음을 먹기까지가 어려운 법이다. 김현성의 명령만 떨어진다면, 배성호는 당장에 칼을 가져올 생각이었다.

김현성은 돌아보지도 않고 말했다.

“네 결단에 대한 보상은 따로 할게. 지금은 그냥 와.”

“……알겠어.”

“하아.”

최태준의 눈이 풀렸다.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났다는 생각에, 저릿저릿했던 손에 피가 통하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아직 상황은 끝나지 않았다.

김현성이 말했다.

“태준아. 내가 하는 말들은 흘려듣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네가 뭘 생각하든, 나는 생각보다 더 뒤가 없는 사람이야. 만약 누군가가 나를 방해한다면, 나는 내 인생을 걸고 그 사람의 인생을 짓밟아 버릴 거야. 성동구 왕십리 부연 아파트. 부모님에 여동생 한 명. 맞지?”

“……그, 그걸 어떻게?”

“내가 다시 한번 물을게. 감당할 자신이 있으면 말을 바꿔도 좋아. 넌 끝까지 골든 서클로 남을 거야, 아니면 내 개가 될 거야?”

숨이 턱 막혔다.

주소와 가족.

의도가 명백했다.

김현성은 약속을 어길 경우, 최태준의 삶을 갈기갈기 찢어발기겠다고 경고했다.

단순한 위협으로는 들리지 않았다.

배성호에게 1억을 주며 ‘칼’을 쓰라고 명령하는 악마인데,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정말 벌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이 옳았다. 그때부터 몸이 미친 듯이 떨렸다. 사실 김현성의 말에 동조했던 것은, 진심으로 그러려는 생각이 아니라 어떻게든 이 상황만 벗어나기 위한 거짓말이었다.

일단 안전만 확보되면.

골든 서클에 연락하려 했다.

지금의 상황을, 김현성이 어떤 존재인지를.

확실하게 고발해서 김현성을 무너트리면, 본인의 안위는 확보된다고 생각했다.

‘내가 생각보다 더 위험한 일에 발을 들였구나.’

진창에 발이 푹 빠졌다.

안일했다.

골든 서클에 처음 입단할 때 나름대로 큰 꿈을 꾸었지만, 사람의 인생이 걸린 의뢰는 언제든 파국으로 끝날 수 있는 문제였다. 최악에는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 일. 머릿속이 복잡하게 뒤얽혔다. 그동안 학교 폭력을 주도하고 의뢰를 수행했던 과정들이, 소름이 돋을 정도로 섬뜩하게 다가왔다.

피해자 중 누군가가.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가.

악의로 칼을 찌른다면, 자신은 길바닥에서 피를 흘리며 죽을지도 모르는 그런 삶을 살고 있었다.

개인의 강함?

의미가 없었다.

최태준의 존재감이 줄어들었다.

배성호 패거리를 상대할 때는 거대했던 그 존재감이, 김현성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고개를 떨구었다.

도저히 올려다볼 수 없었다.

겁을 먹어 잔뜩 떠는 목소리로, 최태준이 힘겹게 말했다.

“……네 개가 될 거야.”

“옳지.”

김현성이 활짝 웃었다.

머리를 툭툭 쓰다듬는 손길에, 최태준은 아무런 반항조차 할 수 없었다.

* * *

상황이 종료되었다.

최태준을 보내고 배성호와 일부 패거리만 남았다.

일단 김현성의 명령이니 받아들였지만, 배성호는 다소 걱정스럽다는 얼굴로 물었다.

“이렇게 보내도 괜찮겠어? 만약 이번 일을 그대로 고자질한다면, 오히려 우리가 위험해질 수도 있어.”

“그럼 어쩔 수 없지.”

진심이었다.

만약 최태준이 약속을 어긴다면.

그건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었다.

최태준을 처리하든 처리하지 않든, 어차피 골든 서클을 상대하는 이상 단계적으로 들이닥치는 위험은 감수해야만 했다. 의뢰는 이미 접수되었다. 골든 서클로서는 반드시 의뢰에 성공해야만 하기에, 이것은 한쪽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핸들을 틀지 않는 이상 끝나지 않는 치킨게임(Chicken game)이었다.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약속은 지켜야지. 나와의 약속을 가볍게 여기면 어떻게 되는지를.”

섬뜩한 말이었다.

아무리 공부를 소홀히 했다지만, 최태준에게 확실하게 보복하겠다는 의미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김현성이 말했다.

“배성호. 지금부터 네가 할 일이 있어.”

“말만 해.”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끼리만 입을 맞춰서, 천일 고등학교 전체에 소문을 퍼트려. 어떤 사건으로 인해 나와 불화가 생겼다고. 그게 관계를 배신할 정도의 불화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예전처럼 나를 위해 맹목적으로 움직일 수는 없을 것 같다고. 그리고 내 명령이 있을 때까지는 절대 최태준 때처럼 움직이지 마. 누가 날 건드려도, 시비를 걸어도. 넌 가만히 있어.”

“……무슨 생각이야?”

이해가 되지 않았다.

최태준이라는 자객이 버젓이 존재하는데도.

김현성은 스스로를 위험에 노출시켰다.

김현성이 웃었다.

“그건 차차 말해 줄게. 이번 계획을 실수 없이 완벽하게 진행한다면, 나는 이 자리에 있는 모두에게 충분한 보상을 할 거야. 그리고 배성호 너는 오늘 학교 끝나고 계좌를 확인해. 나를 위한 결단을 내렸으니, 실제로 일을 벌였든 벌이지 않았든 그 의지는 확실히 보상해 줄 테니까.”

“고마워.”

다들 눈빛이 변했다.

배성호는 좋은 본보기였다.

확실하게 노선을 틀어, 김현성에게 충분한 대가를 받아 내는 존재.

천일의 쓰레기들에게 롤모델이 되어 줄 것이다.

본인들의 충성심이 실질적인 이득으로 직결되기에, 그들은 철옹성의 일부로서 끝까지 제 역할을 다하려고 할 것이다. 그로 인해 인생이 나락으로 빠질지라도. 그로 인해 되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널지라도. 먼 미래를 보고 현명하게 행동할 사람들이었다면, 애초에 쓰레기처럼 살지도 않았을 것이다.

배성호를 뺀 나머지는 모두 보냈다.

배성호만 남자, 마지막으로 말했다.

“아무도 모르게 조재진을 불러와. 걔한테 시킬 게 있으니까.”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더욱 영악하게.

더욱 악랄하게.

김현성은 반드시 목표한 바를 이룰 것이다.

* * *

그 시각.

최태준은 정찬수에게 연락했다.

“……이렇게 됐어요.”

목소리의 떨림을 애써 숨겼다.

혹시나 정찬수가 진실을 알아볼까 걱정했지만, 전화기 너머로 기쁨에 물든 목소리가 들려왔다.

[역시! 우리 태준이를 믿고 있었다니까!]

선택의 갈림길.

최태준은 김현성을 택했다.

전화를 걸 때까지도 고민이 정말 많았지만, 칼을 가지러 가던 배성호의 뒷모습과 김현성의 살벌한 눈빛이 머릿속에서 잊혀지지 않았다. 그제야 알았다. 어중간한 마음가짐으로는 이 싸움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차라리 김현성의 꼭두각시로 전락하는 것이 살아남는 방법처럼 보였다.

그래서 거짓을 말했다.

김현성 패거리에게 끌려갔는데 역으로 그들을 때려눕히고, 배성호와 김현성 사이에 분란을 만들었다고. 그리고 주변 학교를 포섭할 예정이라 늦어도 12월에는 김현성을 무너트릴 판을 깔 수 있을 것 같다고. 모두 김현성의 명령이었다. 그가 짜 준 대본을 그대로 읊자, 정찬수로서는 기쁠 수밖에 없었다.

[혹시 중간에 진행비나 도움이 필요한 것이 있다면 언제든 말해. 그리고 태준아. 대산으로 내려가면서 네가 말했지. 반드시 성공해서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고 싶다고. 누구에게도 꿀리지 않는 권력을 손아귀에 쥐고 싶다고. 내가 그렇게 만들어 줄게. 이번 일만 잘 마무리하고 서울로 올라온다면, 넌 이 정찬수의 원픽이 될 거야.]

“……감사합니다.”

[그래, 고생하고. 변동 사항 있으면 연락해.]

“예.”

탈칵.

전화가 끊겼다.

최태준은 멍하니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골든 서클 브로커라고 적힌 이름에,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씨발.”

겨우 일주일이었다.

처음 천일 고등학교의 현수막을 확인했을 때, 자신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이번 일을 빠르게 마무리할 생각이었다. 김현성의 생각처럼 골든 서클은 이번 의뢰를 가볍게 여겼다. 강태구라는 명확한 실패 사례가 존재하는데도, 더 강력한 해결사를 보내면 문제가 해결될 줄 알았다.

그렇게 일주일 동안.

최태준은 무력하게 무너져 내렸다.

김현성과는 단 한 번도 싸워 보지 못한 채, 정신을 차리고 보니 궁지에 몰렸다.

‘그 녀석이 무서운 이유는 단순히 뒤가 없기 때문이 아니야. 골든 서클이 노골적인 의도를 드러내는데도 전혀 당황하지 않았어. 마치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이, 판 전체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정말 모든 것을 계산하는 느낌이었어. 이건 내가 개입해서는 안 될 판이야. 골든 서클의 실체를 알고도 물러나지 않는 녀석이라면, 나 같은 존재를 처리하는 건 아무것도 아니겠지.’

진득한 살의(殺意).

그건 진짜였다.

대체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일일까.

분명히 일주일 전만 하더라도 희망찬 미래가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되었단 말인가.

“하-.”

한숨을 내쉬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느새 먹구름이 밀려들었다.

그게 본인의 미래인 것만 같아, 최태준은 신경질적으로 핸드폰을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