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惡의 등교-64화 (64/130)

14. 전생과는 다른 오늘 (1)

대산의 한 백반집.

여느 때와 다름없이, 그곳은 밀려드는 점심 손님으로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다.

“이모, 여기 반찬이요.”

“주문할게요!”

“지금 3명 자리 있어요?”

대부분 근처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었다.

건설사와 계약해 점심 손님을 받다 보니, 손님이 나가면 빠르게 자리를 치워서 다음 손님이 먹을 공간을 확보해야 했다.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간이었다. 할머니 박영옥은 성치 않은 몸으로 반찬을 뜨고 행주로 테이블을 닦으며, 점심시간 내내 한순간도 쉬질 않았다.

그렇게 바쁜 시간이 지나갔다.

직원들이 한숨 돌리자, 백반집 주인이 박영옥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리 와서 좀 쉬어요.”

“이것만 하고. 먼저 쉬어.”

“할머니도 참. 쉬엄쉬엄하시라니까.”

테이블을 닦는 박영옥.

참 열심히 산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면접을 보았을 때, 주인은 박영옥을 좋게 보지 않았다.

나이를 먹으신 할머니가 고된 식당일을 버틸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일단 며칠만 써 봐 달라는 말에 미심쩍어하면서도 받아 주었다. 그게 벌써 십 년 전이었다. 한결같이 제 일처럼 열심히 하는 박영옥의 모습에, 그녀를 바라보는 주인의 시선은 따뜻할 수밖에 없었다.

박영옥이 일하는 이유.

노년의 취미가 아니다.

생계 문제도 아니었다.

노인 연금으로 충분히 생활할 수 있지만, 박영옥은 이렇게 열심히 살아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다.

‘우리 손주들 대학 보내려면 등록금을 미리 모아야지.’

두 손자.

김현성과 김현진의 미래를 생각했다.

특히 첫째는 전교에서 1등을 할 정도로 공부를 잘하는데, 할머니 밑에서 컸다고 대학을 포기한다면 죽어서도 한으로 남을 것 같았다. 그렇게 일한 지도 벌써 십 년이 넘었다. 처음에는 손주들 장난감이라도 사 주려고 시작했던 일인데, 지금은 행주를 손에서 놓을 수 없었다.

테이블을 거의 닦았을 때였다.

이제 허리 좀 펴려는데, 핸드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지잉, 지잉.

벌써 세 번째였다.

한참 손님이 밀려들 때는 전화를 무시했는데, 세 번이나 걸려 온 전화에 순간 무슨 일이 생겼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황급히 행주를 내려놓았다. 더러워진 속을 슥슥 닦고, 폴더폰을 열어 전화를 받았다.

그러자.

[박영옥 할머니. 이번에 청약에 당첨되셨죠?]

“청…… 뭐요?”

[청약이요, 청약!]

“저 그런 거 모릅니다.”

툭.

전화를 끊었다.

이상한 소리였다.

손주 문제인 줄 알고 심장이 떨렸던 할머니는, 이만 행주를 치우려고 했다.

그런데 다시 전화가 걸려 왔다.

똑같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방금 전화를 받았던 사람과 달랐다.

[노블레스 아파트 청약에 당첨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제게 파시죠. 플러스피 얹어 드리겠습니다.]

“쁘, 쁠라스?”

여전히 알아먹을 수 없는 말.

핸드폰 너머로 계속 들려오는 말에, 박영옥은 이번에도 표정을 일그러트리며 전화를 끊어 버렸다.

* * *

전국적인 부동산 호황.

점점 아파트 가격이 올라가는 그때, 명진건설은 안전 문제로 그야말로 떡상했다.

사람들이 말했다.

“명진건설의 아파트는 안전하지 않을까?”

“대산에서도 건물 잘 짓는 것으로 유명하다던데.”

“같은 가격이면 무조건 명진이지. 막말로 조금 더 비싸더라도, 평생 살 생각이면 명진이 괜찮지.”

인식의 차이는 가격으로 직결했다.

이번에 타설 사고가 발생했다지만, 명진건설이 기존에 건설한 아파트는 입주자들이 만족할 정도의 완성도를 보였다. 그로 인해 명진건설 딱지가 붙은 아파트의 가격이 상승했다. 평소에는 3억 내외 하던 것들이 4억을 넘겼고, 새롭게 건설하는 아파트에 대한 관심도도 높아졌다.

그중.

노블레스(noblesse) 아파트는 가장 핫한 물건이었다.

명진건설은 그동안 일반적인 아파트를 건축했는데, 이번에는 300세대짜리 작은 단지를 건설하면서 프리미엄 컨셉을 내세웠다. 명진건설의 기술을 축약시킨. 안전할 뿐만 아니라 입주자들의 편의를 최대한 신경 쓴 아파트에, 안전 문제 이전부터 대산의 부유층들은 암암리에 관심을 보였다.

타설 사고로 무너진 아파트와는 다른 곳이었다.

노블레스 아파트의 청약 결과가 발표되면서, 대산의 공인중개사들은 하루에도 수백 통의 전화를 받았다.

“혹시 노블레스 아파트 매물 있어요?”

“플러스피를 주고서라도 살게요.”

“사장님. 매물 나오면 꼭 좀 연락 부탁드립니다. 보상은 확실하게 할게요.”

전화를 거는 사람들.

그들은 전부 실거주자는 아니었다.

대산의 부유층들이 실제로 살기 위해 구매 의사를 밝히기도 했지만, 전국적으로 명진건설의 아파트가 돈이 된다는 생각에 투자적인 마인드로 접근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덕분에 대산의 공인중개사들은 정신없이 전화를 돌렸다. 청약에 당첨된 사람들의 리스트를 어떻게든 확보했고, 그들에게 일일이 전화하며 분양권을 사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전화하길 수백 통.

공인중개사가 신경질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툭.

“에라이.”

“또 실패야?”

“당연히 실패지. 요새 어떤 미친놈이 이런 매물을 팔겠어?”

짜증이 났다.

이럴 줄 알았다면 자신도 전부 끌어모아 청약을 넣었을 텐데.

대산만 아는 기업이, 설마 전국적으로 유명해질 줄 누가 알았겠는가.

동료 공인중개사가 말했다.

“뭐, 그럴 만도 하지. 명진건설 매물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부동산이 하루가 다르게 가격이 올라가는 상황인데, 프리미엄이 얼마나 더 붙을지 모르는 노블레스를 대체 누가 포기하겠어? 전국적으로 관심이 없을 때 청약에 당첨된 사람들만 노난 거지.”

허탈하게 웃었다.

역시 인생은 운이었다.

운이 없는 자신들은, 전화를 열심히 돌리는 것밖에 방법이 없었다.

* * *

박영옥이 말했다.

“현성아. 혹시 이거 사기 아니니? 만약 사기가 아니라면, 이 할미는 바로 팔았으면 좋겠는데.”

그날 저녁.

할머니는 김현성을 붙잡고 오늘 있었던 일을 떠들었다.

점심부터 전화가 계속 와서 신경이 쓰였는데, 통화 내용을 가만히 들어 보니 저번에 넣었던 청약이 당첨되었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하나같이 분양권을 사겠다고 말했다. 웬만해서는 남의 말을 듣지 않았겠지만, 분양권을 넘겨주는 조건으로 5천만 원의 플리스피를 주겠다는 말에 눈이 번쩍 뜨였다.

5천.

엄청난 돈이다.

지금 사는 빌라의 가격이 그 정도인데, 5천을 공짜로 주겠다는 말은 흘려들을 수가 없었다.

김현성이 말했다.

“할머니. 분양권은 팔면 안 돼요.”

“그 사람들 말로는 어차피 아파트는 비싸서 사지도 못한다고 하던데. 우리 형편에 어떻게 수억짜리 아파트를 살 수 있겠니. 할미 생각에는, 차라리 팔아서 학비에 보태는 게 좋지 않을까.”

이해는 되었다.

하지만.

진실을 아는 김현성의 생각은 달랐다.

‘순 사기꾼들이네. 5천으로 분양권을 후려치려고 하다니.’

노블레스 아파트.

분양가는 5억이다.

대산치고는 가격이 비싼 편이지만, 그만큼 고급 자재를 사용하고 커뮤니티 시설도 잘 갖추어서 5억의 값어치는 충분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만약 안전 문제가 없더라도 완판은 확정적이었을 텐데, 명진건설의 명성이 높아지면서 완공 후의 시세는 7억 이상이라는 말이 많았다.

뜬구름이 아니다.

기존의 아파트들도 1억씩 오른 상황에서, 노블레스는 더 뜨면 떴지 그보다 낮을 아파트가 아니었다.

그 말인즉.

분양만 받아도 2억의 시세 차익을 볼 수 있는 아파트인데, 공인중개사들은 할머니가 세상 물정을 모르는 노인이라는 사실에 5천으로 후려친 것이었다. 게다가 김현성이 아는 미래에 부동산 호황기는 몇 개월로 끝날 문제가 아니었다. 앞으로 최소 2년 이상은 갈 상승 흐름이었고, 나중에 위기가 찾아오나 예전처럼 2~3억에 좋은 아파트를 살 수 있는 시기는 돌아오지 않았다.

고로.

유일한 기회였다.

게다가 명진건설이 대기업 반열에 오른다면, 노블레스의 시세는 지금보다도 더 오를 것이다.

‘이 아파트는 절대 빼앗길 수 없어. 병실에서 하루 종일 내가 들었던 내용은 대부분 부동산 가격이 비정상적이라는 푸념이었어. 간병인이나 뉴스나 모두 똑같은 말을 했지. 지금 우리 가족이 살아갈 보금자리를 마련하지 못한다면, 다시는 지금과 같은 기회가 찾아오지 않을 거야.’

평생 지하에서 살 생각은 없었다.

번듯한 보금자리.

평생의 꿈이었다.

고창범과 인연을 맺으면서 진심으로 바랐던 보상은, 할머니와 동생에게 보금자리를 선물해 주는 것이었다.

김현성이 말했다.

“할머니. 요새는 대출도 잘 되고, 금리도 낮아서 아파트를 사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돈은 걱정하지 마세요. 만약에 정말 우리가 이자를 감당하지 못할 상황이 온다면, 그때 돼서 아파트를 팔아도 늦지 않아요. 할머니도 잘 알잖아요. 저 부동산 박사인 거. 지금은 아무것도 아닌 분양권에 불과하지만, 이걸 등기로 받는 순간 사람들은 수억을 주고서라도 사려고 할 거예요.”

“아이고, 우리 손주. 언제 이리 컸을꼬.”

박영옥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손자가 참 듬직했지만, 최근 들어 불쑥 커 버린 모습에 가슴이 쓰라렸다.

어려운 집 아이들은 일찍 철이 든다고 했던가.

김현성이 딱 그런 것만 같아, 박영옥이 김현성을 폭 안으며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이쁘다, 이뻐. 이 할미는 우리 이쁜이들만 보고 사는 거 알지?”

순간.

과거의 기억이 떠올랐다.

손을 꼭 붙잡으며 울먹였던 할머니의 모습에, 김현성은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입술을 깨물었다.

울고 싶지 않았다.

모든 걸 끝내고, 그때 감정을 전부 털어 내고 싶었다.

김현성이 할머니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싱긋, 웃음을 보였다.

“이쁜 손자 오래 봐야 하니까 건강만 해.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게. 알았지?”

* * *

산책하러 나간다는 핑계로 집을 나왔다.

찬바람을 맞으며, 김현성은 멍하니 허름한 빌라를 바라보았다.

참.

가슴이 아팠다.

남들은 허름하다고 비웃을 공간이지만, 김현성에게는 정말 소중한 가족의 보금자리였다.

‘이번 삶의 목표는 복수만이 아니야.’

가족.

그들을 챙기고자 했다.

브레이크가 고장 난 트럭처럼 복수를 향해 달려 나가면서도, 가족과 관련된 일은 절대 소홀하지 않았다.

그래서 청약을 받았다.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장치였고, 고창범을 통해 즉석에서 사용할 수 있는 타인 명의의 통장도 받아 둔 상태였다. 그 안에는 수억이 있었다. 언제든 출금할 수 있도록 조치를 해 두었지만, 할머니와 동생이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이다 보니 돈의 존재는 아직 드러내지 않았다.

물론 언제까지 숨겨 둘 생각은 없었다.

나중에 분양을 받을 때가 찾아온다면, 은행에 대출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 돈으로 잔금을 치를 계획이었다. 그렇다면 빚 하나 없는 집을 보유할 수 있다. 그뿐만이 아니라 할머니 명의로 서울의 부동산을 갭투자로 매입해, 훗날 돈 걱정하지 않을 정도의 부를 갖출 계획이었다.

차곡차곡.

미래를 만들어 갔다.

앞으로 밝은 나날이 기다리고 있지만, 왠지 모르게 쓰라린 감정은 어찌할 수 없었다.

‘일 좀 나가지 마시라니까.’

할머니와 동생.

둘에게 매달 돈을 챙겨 주었다.

장학금으로 받은 돈이라면서 용돈을 주었는데, 할머니는 그 돈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매일 식당에 나갔다. 그런 사실을 확인할 때마다 의지를 다졌다. 자신은 절대 미끄러지지 않을 것이라고. 완벽하게 복수를 이루어 내고, 가족들에게 조금도 어려움이 없는 미래를 선물하고 말겠다고.

이 순간은.

악의로 이루어졌다.

악의는 단순히 나쁜 마음이 아니라, 스스로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면모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살 것이다.

남을 위해서가 아닌, 스스로를 위해서.

남을 위해서가 아닌, 우리 가족만을 위해서.

악의를 삼켰다.

완벽한 미래를 꿈꾸었다.

그런데 그때, 공교롭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여기 학원인데요. 현진이가 학원에 나오질 않는데, 혹시 무슨 일이 있는 건가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현진이의 문제.

이건 전생에 없었던, 예상하지 못한 변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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