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전생과는 다른 오늘 (2)
김현성은 곧바로 학원을 찾아갔다.
학원 원장은 차를 한 잔 내오더니, 조심스러운 얼굴로 이야기를 꺼냈다.
“사실 전화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 많았어요. 현진이가 갑작스럽게 나오지 않을 때만 하더라도 그만두고 싶어서 그런다고 생각했어요. 학원에서야 흔히 있는 일인데, 현진이를 담당하는 선생님이 그러더라고요. 아무래도 이상하다고. 학업에 정말 열성적인 학생이었는데, 이렇게 갑작스럽게 말도 없이 그만두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혹시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 전화를 해 보라고요.”
학원은 학교가 아니다.
그렇기에 학생의 마음에 따라 언제든 그만둘 수 있지만, 학원의 선생님들은 진심으로 김현진을 걱정했다.
열성적인 학생이었다.
보통 학기 도중에는 학생을 잘 받지 않는데, 워낙 배우겠다는 열망이 강해서 특별히 받아 주었다. 실제로 수업을 곧잘 따라왔다. 수업이 끝날 때마다 졸래졸래 쫓아와서 이것저것 묻는 모습이 너무 기특해서, 담당 선생님은 본인의 번호를 내주며 궁금한 게 있다면 언제든 물어보라고까지 말했다.
그런 학생이.
갑작스럽게 학원에 나오지 않았다.
보통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학원에 흥미를 잃었거나, 아니면 나오지 못할 무슨 사정이 있거나.
학원으로서는 후자라는 생각에, 보호자로 기록되어 있던 김현성에게 전화를 걸었다.
“보호자분께서 모르고 있던 사실이라면 한번 확인해 주세요. 현진이가 흥미를 잃어서 집에 말을 하지 못했다면 차라리 다행이지만, 다른 이유라면 문제가 될 가능성이 있거든요.”
흔한 일이다.
나쁜 길로 빠졌다든지.
학원비를 빼돌려 노는 데 쓴다든지.
굳이 그런 이유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그렇게 김현성은 학원을 나왔다.
머리가 아팠다.
하나뿐인 동생을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동생의 이런 갑작스러운 일탈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대체 무슨 이유인 거지?’
학원은 현진이의 선택이었다.
매번 종합 학원에 들어가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기에, 김현성은 고창범의 지원을 받으면서 현진이의 학원을 끊어 주었다. 그때 방방 뛰던 모습이 아직도 선했다. 너무 좋아하는 현진이를 바라보면서, 김현성은 자신이 절대 실패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다시 한번 되새겼다.
“형처럼 꼭 공부로 성공할 거야. 보란 듯이 성공해서, 우리 가족이 하고 싶은 거 다 시켜 줄 거야.”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동생이 했던 말이다.
그렇게까지 말했는데, 아무런 이유 없이 학원을 빼먹을 리가 없었다.
‘일단 현진이를 만나야겠어.’
핸드폰을 꺼냈다.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탈칵.
“배성호. 지금 당장 사람 좀 찾아 줘.”
이럴 때는, 한가한 양아치들만큼 좋은 방법은 없었다.
* * *
그 시각.
김현진은 독서실에 있었다.
침묵이 내려앉은 공간에서, 말 한마디 없이 문제 풀이에 집중했다.
사각사각.
학교가 끝나는 시간은 5시.
그때부터 8시가 되는 지금까지 도서관에 있었다.
시에서 만든 국립 도서관인데, 이곳이 정말 좋은 이유는 학년별로 풀 수 있는 문제집을 다양하게 갖추어서다. 물론 누군가가 정답을 기록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래도 공짜로 문제를 풀 수 있다는 것은 상당한 혜택이었고, 실눈을 떠서 정답을 가린 뒤에 문제만 골라서 풀었다.
반복되는 일과였다.
보통 학원이 9시 정도에는 끝나기에, 아직 1시간이 남았다는 생각에 김현진이 굳었던 몸을 풀었다.
“끄으.”
몸이 비명을 질렀다.
너무 오랫동안 집중한 탓이었다.
김현진은 잠시 바람을 쐴 겸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난간에 팔을 걸치고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는데, 주변에서 도서관답지 않게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렸다.
“가위바위보 해서 지는 사람이 도서관에 들어가서 타잔 소리를 내는 거다. 걸리고 나서 안 된다느니 싫다느니 이딴 개소리하는 거 없어.”
“콜.”
“너나 딴소리하지 마.”
“그럼 가위바위보!”
“악!”
“씨발!”
난리였다.
남녀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떠들었고, 가위바위보의 승패에 한 남학생이 머리를 감싸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한동안 실랑이가 벌어졌다. 남학생은 절대 할 수 없다면서 타협안을 제시했지만, 결국에 씨알도 먹히지 않는 상황에 어두운 얼굴로 터덜터덜 도서관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윽고.
“아아아~ 아아아~!”
“저 병신.”
“진짜 했어, 큭큭큭.”
도서관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남학생이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밖으로 뛰쳐나오자, 친구들은 저리 가라면서 일행이 아닌 척 선을 그었다. 그런 일련의 상황을 김현진은 가만히 지켜보았다. 사람들은 도서관에서 저렇게 행동하는 애들을 철없고 민폐라고 생각했지만, 김현진은 그 너머에 있는 다른 세상을 보았다.
“……부럽네.”
저렇게 놀 수 있다는 것.
여유가 있다는 의미였다.
공부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될 만큼의 여유가 있든, 아니면 현실 감각이 없는 철없는 정신 수준을 갖추었든. 무엇이든 부러웠다. 김현진은 절대 저 친구들처럼 살 수 없었다. 우연히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 버리면서부터, 다시는 예전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저들과 자신은 달랐다.
김현진이 뺨을 툭툭 쳤다.
‘반드시 성공해야 해. 정신 차리자.’
중학교 3학년.
중요한 시기다.
지금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의 시간이, 자신의 인생을 좌지우지할 것이다.
1분 1초도 허투루 쓸 수 없었다.
걸음을 돌렸다.
다시 도서관으로 돌아가려는데, 김현진이 석상처럼 그 자리에서 굳어 버렸다.
“……형.”
“여기서 뭐 해?”
김현성.
하나뿐인 형이 눈앞에 나타났다.
* * *
자리를 옮겼다.
한적한 공간에, 김현성이 차분하게 물었다.
“학원을 그만두었다고 들었어. 어떤 상황인지 설명해 줄래?”
다그치지 않았다.
선택권을 주었다.
김현진이 스스로 이 상황을 설명해 주기를 바랐다.
침묵이 흘렀다.
고개를 숙인 채로 아무 말도 하지 않던 김현진은,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고서야 입을 열었다.
“형, 기억나? 내가 좋아하는 팀이 결승전에 올라가니까 결승전 직관 표 구해 주었던 거.”
“기억나지.”
“나 그때 진짜 좋았거든? 결승전에 갈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해서, 내 인생 최고로 행복한 날이었어. 그런데 그때부터 뭔가 이상하더라고. 그 비싼 티켓을 구해 준 것도 그렇고, 내가 학원에 다니고 싶다고 하니까 다니게 해 준 것도 그렇고. 우리 집 사정을 내가 모르는 게 아니잖아. 그래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부터 형 얼굴이 정상적인 적이 없었어.”
고개를 들었다.
눈시울이 붉어졌다.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 버렸다.
잠자리에 든 김현성의 손을 문득 보았는데, 덕지덕지 붙은 굳은살이 눈에 밟혔다.
“얼굴은 엉망이고 손은 굳은살로 덮여 있고. 무슨 일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멍청이도 아니고 형이 돈을 벌겠다고 힘든 일을 한다는 건 알 수밖에 없었어. 그런데 내가 무슨 염치로 학원에 다녀? 한 달에만 30만 원이 넘는 종합 학원인데 그걸 내가 어떻게 다니냐고. 그래서 그만두었던 거야. 그리고 나 혼자 공부해서 이번 기말고사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면, 학원비로 받았던 돈 그대로 돌려주고 혼자서도 할 수 있다고 말하려고 했어.”
“너…….”
말문이 막혔다.
김현진의 예상은 틀렸다.
얼굴에 난 상처, 덕지덕지 붙은 굳은살.
절대 일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다.
복수를 위해 매일 체육관에서 생활하다 보니, 평범하게 학교를 다닐 때와는 다르게 몸에 상처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것을 김현진은 다르게 받아들였다. 형이 고생한다고 생각하자 현실을 직시하게 되었다.
“형도 잘 알잖아. 내가 형만큼 똑똑하지는 않다는 거. 만약에 누군가가 희생해서 한 명이 공부에 전념해야 한다면, 그건 내가 아니라 형이어야 해. 형은 이번에 전교에서 1등도 했고, 학교에서 장학금도 받고. 이렇게 된 김에 차라리 내가 학교 그만두고 일을 다닐게. 형이 나한테 해 준 것처럼, 나도 형에게 해 줄 수 있어.”
16살.
아직 어린 나이였다.
어리광도 부리고 떼도 쓰고, 남들처럼 좋은 옷을 사 달라며 화를 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나이였다. 그것이 그 나이의 특권이다. 어리기에 할 수 있는 말들, 철이 없기에 할 수 있는 행동들. 김현성은 김현진이 그런 특권을 충분히 누리길 바랐지만, 일상적인 특권조차도 여유가 없다면 불가능한 것이었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걸 긍정의 의미로 받아들였던 걸까.
김현진이 애써 웃음을 보였다.
“내 걱정은 하지 마. 나 진짜 괜찮아. 형은 성공할 사람인데, 나 때문에 무리할 필요 절대 없어.”
그 모습에.
김현성은 과거의 기억이 떠올랐다.
* * *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이 났다.
밤잠을 설칠 때면, 김현성은 악몽처럼 꾸는 장면이 있었다.
“형. 나 더는 버티기가 힘들어. 형을 괴롭히던 애들이 나까지 괴롭히고 있고, 할머니는 형의 병원비를 내겠다고 식당일을 다니시다가 허리를 다쳤어. 진짜 나보고 어떻게 하라는 거야? 이런 꼴이 될 거면 차라리 죽어 버리지. 그냥 속 편하게 죽었으면 우리가 이렇게 힘들진 않았을 거 아냐.”
손가락 하나 까딱거리지 못하는 자신을 향해.
김현진은 원망을 퍼부었다.
충분히 그럴 만한 상황이었다.
원래도 가난한 집안인데, 김현성의 병원비를 감당하느라고 가세(家勢)가 더 급격하게 기울었다. 게다가 김현진은 김현성의 동생이라는 이유만으로 괴롭힘을 당했다. 그 어린 나이에 감당할 수 없는 현실이 얼마나 버거웠으면, 움직이지도 못하는 형에게 악담을 퍼부었다.
아무리 그래도.
동생이 밉지는 않았다.
그렇게 모든 감정을 쏟아 내고 나면, 김현진은 손을 꼭 붙잡은 채 펑펑 울며 이렇게 말했다.
“제발 일어나. 나 계속 이렇게 살아도 좋으니까, 일어나기라도 하라고.”
머리가 핑핑 돌았다.
혀를 깨물고 싶었다.
차라리 스스로 목숨을 끊어, 동생에게 짐이라도 되지 않기를 바랐다.
동생은 띄엄띄엄 찾아왔다.
얼굴에 점점 어둠이 늘었고, 김현진은 형을 차분하게 바라보며 이런 말도 했었다.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하더라. 형이 무려 3년 동안 괴롭힘을 당했다고. 난 단 몇 개월도 버티기 힘들어서 죽고 싶은데, 대체 어떻게 형은 그 오랜 시간을 버틸 수 있었을까? 그렇게 힘든데도 내게 어떻게 내색 하나 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나, 진심으로 성공하고 싶어졌어. 반드시 성공해서 형을 괴롭히던 녀석들에게 싹 다 복수하고, 혹시라도 형이 일어나면 우리 가족이 다시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하고 싶어. 그러니까, 앞으로는 자주 찾아오지 못할 거야. 나 반드시 성공해서 꼭 멋진 모습으로 찾아올게.”
발길을 끊었다.
아주 가끔 찾아오기는 했지만, 특별한 말 없이 가만히 바라보다가 발길을 돌렸다.
그로부터 몇 년.
김현진의 발길이 더 뜸해졌다.
나중에야 상황을 전해 들었는데, 그 이야기에 김현성은 정신이 붕괴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김현진은 경찰 시험을 준비했다.
머리가 형처럼 똑똑하지 못해서 검사가 될 엄두는 내지 못했고, 경찰에라도 들어가서 나중에 형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쓰레기들에게 복수하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번번이 시험에 떨어지고 말았다. 단순히 노력이 부족해서라고 말하기에는 복잡한 문제였다. 할머니와 김현성의 병원비를 감당해야 했고, 그 와중에 틈틈이 한 공부로는 시험의 문턱을 넘을 수 없었다.
결국.
가족이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
어떻게든 가족을 위해 성공하려 했지만, 김현진은 가족과 같이 낭떠러지 밑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그래서 찾아오질 못했다.
원망 때문이 아니다.
면목이 없어서.
성공해서 돌아오겠다고 했는데, 성공하질 못해서 형을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이제는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누군가가 해 주었던 말이다.
악의에 빠져들었다.
과거를 후회하고 되새기며, 김현성은 망상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지금.
새로운 기회를 얻었다.
김현진의 말에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
전생과는 다른 오늘을 맞이한 지금, 김현성은 하나뿐인 동생이 참담한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기를 바랐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따라와. 나랑 어디 좀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