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惡의 등교-69화 (69/130)

15. 악의(惡意) (3)

평소의 김현성과는 달랐다.

피눈물을 흘리는 듯한 충혈된 눈빛에 처참하게 일그러진 얼굴, 그리고 악에 받친 목소리까지.

오혜지는 바들바들 떨었다.

살려면 뭐든 말해야만 했다.

“……나, 난 절대 아니야. 왜 날 의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난 아니야!”

철컥, 철컥.

문고리를 흔들었다.

뒤로 감춘 손을 간절하게 움직였지만, 단단하게 잠긴 문은 조금도 반응하지 않았다.

“혀, 현성아. 이성적으로 생각해. 내가 널 괴롭히라고 사주할 이유도 없고, 너랑 그동안 좋은 관계를 유지해 왔잖아. 그 ‘정보’라는 걸 들은 사람이 범인이라면 선아가 범인이 맞아. 네가 선아의 성적을 추월하고 나서 선아가 투덜거리는 걸 분명히 들었거든. 그러니까, 제발 나한테 이러지 마. 나 무섭단 말이야.”

“내가 재밌는 사실을 알려 줄까?”

김현성의 얼굴이 더욱 일그러졌다.

우는지, 웃는지 알 수 없는 그 얼굴은, 들끓는 악의를 가감 없이 표출했다.

“최선아의 부모님은 퇴직을 결정했어. 현직에서 내려왔다고 고위 공무원의 권력이 아예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분들이 퇴직 후에 택한 삶이 ‘학교 폭력 방지 위원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거야. 그렇다면 상식적으로 그런 사람들이 골든 서클에 의뢰를 넣고 누군가를 나락으로 빠트리는 게 말이 되는 일일까? 현직의 권력을 포기하면서까지?”

“그건 모르는 일이지!”

“그래, 모르는 일이야. 나도 완벽하게 확신할 수는 없어서, 최선아를 여기로 불러들였던 거고. 그런데.”

조금 전.

오혜지는 실수를 저질렀다.

김현성이 교묘하게 판 함정에, 그녀는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빠져 버리고 말았다.

“네가 방금 한 말. 나는 사주하지 않았다는 말. 설명해 봐. 난 처음부터 ‘사주’와 관련한 그 어떠한 말도 하지 않았는데, 너는 뭘 근거로 본인이 사주하지 않았다고 해명한 거지?”

“그, 그건!”

말문이 턱 막혔다.

정말 교묘했다.

브로커.

최선아의 가정사.

각기 다른 세 개의 이야기.

골든 서클의 존재를 모른다면 서로 연결되지 않는 퍼즐들이었다.

브로커는 무엇이고, 최선아의 가정사는 왜 이야기하며, 어째서 세 명에게 각기 다른 이야기를 전달했을까. 그런데 오혜지는 정확히 ‘사주하지 않았다’는 말을 언급했다. 누군가가 브로커를 통해 의뢰했고, 최선아의 가정사가 범인과는 부합하지 않으며, 세 개의 이야기를 들었으나 자신이 아니라 ‘최선아’가 무조건 범인이라며 주장하는 모든 상황은 하나의 진실을 의미했다.

그녀가.

무언가를 안다는 진실을.

곧바로 사주를 언급하고 최선아를 매도할 만큼, 절대 이번 사건과 무관하지 않다는 참혹한 진실을.

더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오혜지의 표정이 돌변했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얼굴이었던 그녀가, 표독스러운 눈빛을 보이며 소리쳤다.

“이게 다 너 때문이야! 네가 그렇게 날 매몰차게 대하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거 아냐!”

천일의 인기녀.

그녀가, 드디어 가면을 벗었다.

* * *

때는 학기 초였다.

오혜지는 처음 1반에 배정되었을 때, 순간 시선을 사로잡는 남학생을 발견했다.

‘올, 좀 괜찮은데?’

훈훈한 외모.

키도 적당했다.

자신이 폭 안기면 좋을 사이즈에, 김현성과 동창인 애들 말로는 성격도 좋고 공부도 잘하고 체육도 잘하는 그야말로 만능 엄친아라고 했다. 그래도 처음에는 호감 정도였다. 괜찮다고 생각해서 곧바로 대시할 생각은 없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김현성을 훔쳐보는 횟수가 잦아졌다.

마음에 들었다.

문제는 그런 사람이 그녀만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이미 여러 여학생이 고백했다가 거절당하다 보니, 그녀로서는 좋지 않은 결과에 대한 망설임이 있었다.

‘어쩌지.’

힐끗.

자꾸만 김현성이 눈에 밟혔다.

그때도 오혜지는 인기녀로 불렸다.

아담한 키에 예쁘장한 외모, 그리고 살가운 태도로 남자들이 끊이지 않고 꼬이는 스타일이었다. 그런 자신이 고백을 거절당한다? 정말 상상도 하기 싫은 결과였다. 그래서 무작정 들이대는 것보다는, 김현성을 툭툭 건드려서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아내고자 했다.

쉬는 시간에 사탕을 건네면.

“나 주는 거야? 고마워.”

김현성이 방긋 웃음을 보였다.

그 자리에서 사탕을 까서 입에 넣는 모습에, 오혜지는 그 오물거리는 입이 너무 귀여워 보였다.

모르는 문제를 물어보면.

“이게 궁금한 거야? 이거는 어떻게 푸냐면…….”

김현성은 옆에 앉아 친절하게 문제를 해석해 주었다.

문제를 들여다본다고 팔뚝이 맞닿았을 때, 오혜지는 온몸에서 짜르르 전율이 일어나는 것만 같았다.

마지막.

결정적이었다.

친구들을 통해 김현성의 이상형을 물었는데, 김현성은 이렇게 대답했다.

“특별하게 생각해 본 적은 없는데 혜지 같은 스타일? 나는 살가운 사람이 좋더라. 내가 애들이랑 잘 어울려도 혜지만큼 살갑지는 않은데, 혜지는 왠지 사람 기분 좋게 만들어 주는 스타일이잖아.”

이건 시그널이었다.

확실했다.

김현성은 자신의 메시지도 곧잘 받아 주었기에, 오혜지는 학교가 끝나고 김현성을 따로 불렀다. 학교에서 고백하고 싶지는 않았다. 여전히 마음 한편에는 거절의 가능성이 존재하기에, 일단 김현성이 고백을 받아 준다면 그 이후에 친구들에게 교제 사실을 알리려 했다.

선물을 준비하고.

편지를 썼다.

약속 장소에 나온 김현성에게, 오혜지는 얼굴을 붉히며 마음을 표현했다.

“나랑 사귈래?”

그날.

그녀는 난생처음으로 배드엔딩을 경험했다.

* * *

세상에는 특별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오혜지는 본인을 그렇게 생각했다.

예쁘장하게 생긴 외모.

부유한 집.

모자란 게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항상 대우를 받았고, 무엇을 원하든 마음만 먹는다면 무조건 쟁취해 냈다. 사실 공부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남들에게 무시당하지 않을 만큼 준수한 성적을 유지했지만, 공부를 못한다고 해서 본인의 인생에 큰 문제가 생기지 않으리란 확신이 있었다.

탄탄대로의 인생이었다.

이대로라면 아무 탈 없이 잘살 그런 인생이었다.

그런데.

“네가 고백을 거절한 그날 얼마나 참담한 기분을 느낀 줄 알아? 집에 돌아가고 밤새 울었어. 정말 엉엉 울면서 내가 뭘 잘못했는지 돌아봤는데, 난 아무것도 잘못한 게 없었어. 네가 먼저 시그널을 보냈잖아. 사탕을 주면 예쁘게 웃고, 문제를 물어보면 친절하게 대답해 주고, 누가 이상형이냐고 물어보면 단순히 스타일을 말하는 게 아니라 ‘나’라고 콕 찍어서 말했잖아!”

단 한 번의 거절.

단 한 번의 실패.

처음이었다.

처음 겪는 절망에, 처음 겪는 실패에.

오혜지는 반감이 치밀었다.

다음 날 퉁퉁 부은 눈으로 학교에 갔을 때, 여전히 인기가 많은 김현성을 보며 화가 미친 듯이 났다.

“난 네가 날 농락했다고 생각했어. 그렇지 않고서야 꼬리를 치고 날 거절할 이유가 없잖아. 그래서 너에게도 나와 똑같은 절망을 맛보여 주고 싶었어. 너는 여전히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고, 성적도 나날이 상승하는데, 나만 이렇게 지내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싫었어.”

이유는 없었다.

악의였다.

반감은 악의가 되어 꽃을 피웠고, 오혜지의 투정을 들은 부모님은 색다른 수단을 생각해 냈다.

골든 서클.

주변 지인이 말해 준 비밀스러운 집단.

오혜지는 파멸적인 결말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확실한 건, 김현성을 절망에 빠트릴 분명한 방법이라는 것이었다.

“네가 너무 잘나가니까, 나와 같은 감정을 느끼게 하고 싶었을 뿐이야. 정말 그게 끝이야. 다른 이유는 없었고 앞으로는 그러지 않을게. 그러니까.”

왜일까.

그 모습이.

“한 번만 봐줘, 현성아.”

김현성의 눈에는 어린 악마처럼 보였다.

* * *

십 년.

적막하고 어두운 인생의 밑바닥에서, 김현성은 기억을 수도 없이 되새기며 늘 생각했던 것이 있다.

누가 의뢰했을까.

대체 왜 그랬을까.

특별히 모나게 행동하지도 않았는데, 어째서 타인의 인생을 이렇게까지 갈기갈기 찢어발기는 걸까. 설령 어떤 문제가 있었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정말 이 정도의 형벌을 받을 만한 잘못이었을까.

고민하고.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답은 나오지 않았다.

성적이든 뭐든 어떤 이유에서건, 의뢰인에게는 분명한 명분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큭, 큭큭.”

김현성이 얼굴을 감싸 쥐었다.

웃음이 입술을 비집고 새어 나왔다.

웃겼다.

황당하고, 어이가 없었다.

이건 정말 순수한 악의(惡意)였다.

어린아이가 아무런 생각 없이 곤충의 다리를 떼어 내 버리는 것처럼, 오혜지는 본인의 악의가 어떤 결과로 돌아올지 깊게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냥 마음에 들지 않아서 곤충을 손가락으로 꾹 찍어 눌렀을 뿐이다. 그녀가 가진 배경, 그녀가 가진 권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몰라서, 김현성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시련을 부여했다.

겨우 단 한 번의 거절.

그것 때문이었다.

그동안의 고민이 덧없어졌다.

김현성이 수도 없이 고민했던 시간은, 애초에 상식적이지 않기에 정답에 근접할 수조차 없었다.

감정이 차갑게 식었다.

얼굴이 표정을 잃었다.

분노도, 그렇다고 슬픔도 아니었다.

불쾌한 골짜기를 연상시키듯 감정을 잃어버린 얼굴로, 김현성은 지난날의 기억을 말했다.

“그날. 내가 널 거절했던 이유는 네가 싫었기 때문이 아니야. 그날도 네게 분명히 설명했지만, 나는 누군가를 만날 여유가 없었어. 네가 아무렇지도 않게 사는 간식들, 친구들에게 자랑하듯 보여 주는 최신 핸드폰. 내게는 허락되지 않는 삶이야. 난 네가 누리는 그 여유를 감당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서, 네가 마음에 드는데도 네 고백을 거절할 수밖에 없었어.”

“……그럼 말하지. 사실대로 말했으면 내가 이렇게까지 하진 않았을 거 아냐.”

“나도 남자야. 자존심이 있는데, 어떻게 호감이 있는 사람에게 내 밑바닥을 드러낼 수 있겠어?”

오혜지의 표정이 풀렸다.

진실을 알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위험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뭐든.

그녀는 좋다고 생각했다.

김현성에게 한 발자국 다가가는 순간, 조금 전과는 다른 묘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이미 늦었어.”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더는 다가갈 수 없었다.

“난 널 파멸시킬 거야. 네 집안을 무너트리고, 네게 이제껏 허락되었던 모든 행복을 강탈해 버릴 거야. 혹시라도 이번 문제가 잘 해결되리라는 헛된 생각은 하지 마. 신영민, 박민철, 조용택, 강창석. 걔들이 소년원에 들어간 이유는 네 의뢰를 받아들였기 때문이야. 정민호의 집안이 박살이 나고 야반도주하듯이 대산을 떠난 이유도 네 의뢰를 받아들였기 때문이야.”

오혜지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녀로서는 당황스러울 것이다.

아직.

이 시점의 김현성은 절망을 맛보지 않았다.

골든 서클의 계획을 역으로 무너트렸고, 고창범을 내세워 오히려 천일 고등학교의 왕으로 군림했다. 3년 내내 괴롭힘을 당하다 식물인간이 되고. 가족들이 자신으로 인해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지고. 지옥 같은 시간 속에서 무려 10년을 보냈던 일들은, 지금은 일어나지 않은 현실에 불과했다.

오혜지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이렇게까지 분노하는 이유를.

이렇게까지 악에 받친 이유를.

그녀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확실한 건.

그런 미래가 찾아왔을 때, 오혜지는 본인과 무관한 일인 것처럼 본인을 전혀 드러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콱.

“꺅!”

머리칼을 잡아끌었다.

바닥에 내팽개치자, 왜소한 체구가 땅바닥을 굴렀다.

콰당!

다시 머리칼을 잡았다.

잘 관리된 머릿결을 한 손에 움켜쥐자, 오혜지의 머리가 딸려 오며 공포에 물든 얼굴이 보였다.

김현성은 그동안 간절히 바라 왔다.

이 상황을.

이 순간을.

항상 뿌연 안개 속에 있었던 이미지가, 눈앞에 선명하게 살아나기를.

오혜지가 눈물을 글썽였다.

너무 무서워 소리도 지를 수 없었다.

“좋은 성형외과 찾아 놔.”

김현성이 웃었다.

“아, 이제는 얼굴에 돈을 쓸 여유가 없으려나.”

짜악-!

짜악, 짜악, 짜악!

수업이 시작되고.

수업이 끝날 때까지.

선생님과 학생들이 김현성과 오혜지를 찾으려 할 때까지.

단단히 닫힌 창고 문은 열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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