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惡의 등교-71화 (71/130)

15. 악의(惡意) (5)

오춘삼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통화가 연결되지 않는 상황에, 그의 분노는 눈덩이가 불어나듯 급격하게 커져 버렸다.

“너, 너! 이 상황 어떻게 수습할 거야? 우리 애 얼굴이 이 모양 이 꼴이 되었는데, 이걸 대체 어떻게 감당할 거냐고!”

[…….]

“씨발, 대답 안 해? 골든 서클에서 처음에 뭐라고 했어? 비밀은 완벽히 보장될 뿐만 아니라 절대 실패할 일도 없다면서. 단 한 번도 실패하지 않은 ‘역사’를 믿어 달라고 분명히 말하지 않았나? 너, 이번 일을 다른 사람들에게 말해도 괜찮겠어? 골든 라인 멤버들에게 골든 서클의 밑바닥을 보이면 감당할 수 있겠냐고.”

[꼴리는 대로 해.]

“뭐?”

[너 꼴리는 대로 하라고.]

순간.

오춘삼이 당황해서 핸드폰 화면을 확인했다.

수신인은 정찬수가 분명했다.

그렇다면 골든 서클의 브로커가 이렇게 반응해서는 안 되었다.

“너…….”

[오춘삼 씨. 정말 미안한데 우리 전부 끝났어.]

“똑바로 말해, 이 새끼야!”

[당신 말처럼 골든 서클은 단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었어. 그런데 그 선례를 남겨 버린 내가 골든 서클에서 어떤 처벌을 받겠어? X 되겠지. 씨발, 아주 X 되겠지. 그래서 살아남으려고 방금 김현성에게 우리가 거래했다는 ‘자료’를 전부 넘겨 버렸어. 아아, 당연히 그쪽 입장에서는 이런 자료가 존재하지 않다고 생각했겠지만, 세상일이 그렇게 말랑말랑할 리가 없잖아? 혹시 몰라서 확보해 두었던 건데, 내가 살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이 없었어.]

“이런 미친. 우리 둘 다 죽자는 소리야 뭐야!”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자료라니.

이건 자폭 행위였다.

도대체 이해가 되질 않았다.

의뢰한 자신뿐만 아니라 브로커인 정찬수, 나아가 골든 서클 전체에 문제가 생길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정찬수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을 벌였단 말인가. 순간적으로 사고 회로가 정지되는 기분에, 오춘삼은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바락바락 표출했다.

“그래, 같이 죽자 이거지? 오냐, 같이 죽어 주마. 널 고발하고, 골든 서클에 대해서도 폭로해서 우리 모두 죽…….”

[이 씨발련아!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돼? 내가 같이 자폭할 생각으로 그 자료를 넘긴 것 같아? 어휴, 병신 같은 새끼. 너 때문에 나도 망했어. 네가 목표물이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말해 주었으면, 애초에 이런 일도 없었다고. 알아? 너 때문이야 이 개새끼야. 그러니까 지금부터 벌어지는 모든 일은 알아서 감당해.]

툭.

통화가 일방적으로 끊겼다.

오춘삼이 분노해서 다시 전화를 걸려는 순간.

띵동.

고개가 홱 돌아갔다.

누군가가 방문했다는 일상적인 그 소리가, 왠지 모르게 섬뜩하게 다가왔다.

* * *

당황스러웠다.

분노를 표출해야 마땅한 상황에, 눈앞에 나타난 익숙한 얼굴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을 선사했다.

저벅저벅.

김현성이었다.

그가 안으로 들어왔다.

오혜지가 화들짝 놀라며 오춘삼 뒤에 숨었고, 김현성은 익숙한 듯 소파에 앉아 오춘삼을 올려다보았다.

“앉아.”

“너……!”

“상황은 대충 파악했을 텐데, 지랄하지 말고 앉으라고.”

머리가 복잡했다.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아내는 오춘삼의 눈치만 보았고, 뒤에서 옷을 꼭 붙잡은 딸의 손길에서는 공포가 느껴졌다.

마음 같아서는 골프채를 들고 와 머리를 후려 버리고 싶었다.

금지옥엽의 딸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린 만큼, 김현성에게 그 이상의 대가를 받아 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묘한 압박감이었다.

앞선 정찬수와의 통화에, 오춘삼이 굳은 얼굴로 물었다.

“여길 온 이유가 뭐야?”

“이유?”

씰룩, 웃었다.

볼 만했다.

어른 둘과 고등학생 한 명.

혼란과 절망으로 물든 이 표정들을 보기 위해서, 김현성은 지금껏 살아남아야만 했다.

김현성이 말했다.

“지금부터 네게 두 가지 선택지를 줄게. 첫 번째는 내게 복수하는 거야. 아마 너는 명진건설이라는 배경을 무너트리기 위해서 고창석에게 붙는 방법을 택하겠지. 오혜지의 사건을 고발할 거고, 골든 서클에 이 사실 알려 후속 조치를 요구하겠지. 상황이 그렇게 진행된다면, 나는 정찬수로부터 얻은 자료를 세상에 폭로할 거야. 악의로 얼룩진 거래의 진실을. 골든 서클에서는 분명 사건을 수습하려고 하겠지만, 최소한 정찬수와 너는 버려질 것이 분명해. 노골적인 진실을 완전히 덮는 것은 불가능하거든.”

끼익.

소파에 몸을 기댔다.

다리를 꼬며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너는 교도소로, 오혜지는 소년원으로. 그게 너희에게 예정된 미래야. 참 재밌는 건 너는 오혜지의 부탁을 들어주었을 뿐인데도 수년을 살다 오겠지만, 오혜지는 너보다 일찍 세상 밖으로 나올 거란 거야. 그때, 오혜지에게 무슨 일이 벌어질까? 아버지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 과연 나로부터 오혜지가 안전할까?”

“그게 무슨……!”

“고창범에게 미리 부탁할 생각이야. 혹시라도 내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오혜지만큼은 반드시 복수해 달라고. 홀로 남은 오혜지의 다리를 부러트리고, 칼로 눈을 도려내고. 살아도 산 게 아닌 상태로 만들어 달라고.”

말문이 막혔다.

감당할 수 없는 악의였다.

활화산처럼 표출하던 분노가,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급격하게 식었다.

김현성이 다리를 풀었다.

얼굴을 앞으로 내밀며, 노골적인 악의를 드러냈다.

“너무 그런 표정 짓지 마. 아직 너희에게도 살아남을 방법은 있어.”

서서히.

상대를 억죄었다.

첫 번째든 두 번째든.

무엇을 선택하든 상관없었다.

다만, 되도록 상대가 더 절망적인 표정을 짓기를 바랐다.

“만약 아비인 네 손으로 직접. 오혜지의 아킬레스건을 끊어 저 악마가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게 한다면.”

슥.

칼을 꺼냈다.

보란 듯이 땅바닥에 툭 떨어트렸다.

“여기에서 끝내 줄게.”

* * *

김현성이 떠났다.

딸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린 악마가 직접 찾아왔는데, 오춘삼은 등을 보이며 떠나는 김현성에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내가 소리쳤다.

“여보, 지금 당장 경찰에 신…… 여보?”

아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오춘삼의 상태가 이상했다.

땅바닥에 널브러진 칼에 시선이 고정되었다.

불길한 상상이 스멀스멀 피어오르자, 아내는 황급히 달려와서 오춘삼의 손을 잡았다.

“이상한 생각 하지 말아요. 우리 딸이잖아. 대체 뭘 하려고 그래!”

“김현성의 말이 맞아.”

“안 돼, 안 된다고!”

슥.

시선을 마주쳤다.

오춘삼의 눈빛에 묘한 광기가 일렁였다.

“여보. 우리는 이 상황을 현실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어. 만약 김현성이 이번 일을 폭로한다면, 나는 무조건 감옥행이야. 대단한 판사와 검사를 백으로 두어도 그 사실은 달라지지 않아. 알잖아. 우리가 한 일이 가볍지 않다는 거. 김현성을 나락으로 빠트리려고 별의별 걸 다 요구했는데 그 죗값이 가벼울 리가 없어. 만약 혜지가 아비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아? 끝이야. 지금 저 꼴이 된 것처럼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김현성의 협박.

덜컥, 겁이 들었다.

단순한 협박이 아니다.

자신이 첫 번째를 택하는 순간 정말 현실이 되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우리 애가. 그런 공포 속에서 대체 어떻게 살겠어? 상대는 명진건설이야. 우리가 고창석에게 붙어서 그에게 힘을 실어 준다고 해도, 우리 혜지에게 벌어질 일은 막아 낼 방법이 없어.”

“하지만 이건 아니잖아요.”

“알아. 나도 알아.”

어느 부모가.

딸을 직접 해한단 말인가.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김현성의 악의를 마주한 순간부터,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좋지 않은 상상이 반복되었다.

그건 악의였다.

정말 진심으로 오혜지의 몰락을 바라는 눈빛.

김현성을 죽이지 않는다면 정말 끝나지 않는 문제라는 사실에, 오춘삼의 멘탈은 이미 무너져 버린 상태였다. 상대를 죽일 수 있을까? 그건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오혜지는 평생 불안에 떨면서 살아야 했다. 김현성이 존재하는 한, 그가 대단한 권력을 지녔든 말든 귀가하는 길에 계속 뒤를 확인하게 될 것이다. 혼자 있는 시간이 무서워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어쓸 것이다.

마음이 허락하지 않았다.

딸의 그런 미래는 바라지 않았다.

그가 가진 권력.

그가 가진 재력.

대산에서는 그를 유지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가진 것이 많을수록, 그는 광적인 악의를 상대로는 잃는 것 또한 비례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내가 감옥에 간 사이에 그런 일이 벌어질 거라면, 차라리 우리가 혜지를 보호하는 게 낫겠지.”

손을 뻗었다.

칼을 잡으려 하자, 와이프가 소리를 지르며 막았다.

“안 돼! 안 돼!”

“아빠! 지금 무슨 짓이야!”

사방에서 비명이 들렸다.

우악스럽게 몸을 막아서는 와이프와 비명을 지르며 방으로 도망치는 딸.

다른 방법이 없었다.

꽉.

칼을 집어 든 오춘삼은, 와이프를 뿌리치며 딸이 도망친 방으로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 * *

오춘삼의 집을 나오고.

김현성은 곧바로 정찬수를 만났다.

정찬수는 복잡미묘한 표정으로 물었다.

“……만약 오춘삼이 딸의 아킬레스건을 끊어도. 넌 이대로 끝낼 생각이 아니지?”

“잘 아네.”

카페였다.

일부러 공개적인 장소에서 정찬수를 만났다.

사람들이 일상적인 생활을 보내는 것과는 다르게, 김현성은 섬뜩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그들에게 온전한 평화를 허락할 생각이라면 애초에 일을 복잡하게 처리하지도 않았겠지. 나는 그들을 서서히 벼랑 끝으로 몰아넣을 거야. 그들이 재산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저지른 불법들을 모조리 까발려, 재산이 한 푼도 남지 않게 만들어 버릴 거야. 그리고 그때. 골든 서클과의 거래 증거를 세상에 밝힌다면 그들에게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까?”

웃었다.

상상만 해도 즐거웠다.

“그때는 날 끌어들이지도 못할 거야. 오춘삼이 직접 딸의 아킬레스건을 끊었으니, 오늘 있었던 폭력 사건은 오춘삼의 가정 폭력으로 매도할 수 있겠지. 재밌지? 정말 재밌지 않아? 오혜지는 재산을 잃고 다리를 쓰지도 못하는 상태로 세상에 홀로 덩그러니 떨어지는 거야. 걔가 그럼 대체 뭘 할 수 있겠어? 살아도 산 게 아닐 거고, 삶 자체가 지옥의 불구덩이로 변해 버리겠지.”

이 순간.

이 상황.

김현성은 눈앞의 현실을 만끽했다.

복수.

항상 갈구해 왔던 일이다.

그는 진심으로 오혜지가 고통스럽기를 바랐다.

자신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십 년간 식물인간으로 살아온 것처럼, 그녀의 삶에도 그에 버금가는 공백이 존재하기를 바랐다. 방구석에 틀어박혀 나오지 못하는 삶. 나온다고 해도 식물인간이나 다를 바가 없는 삶. 애초에 살인은 생각하지도 않았다. 편안한 죽음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생각이었다면, 정찬수를 끌어들이는 등 복잡하게 일을 처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짜르르 전율이 올라왔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정찬수는 소름이 돋았다.

정말 악마와도 같았다.

아버지가 딸을 직접 해하게 만들고, 오혜지는 모든 것을 잃은 상태로 세상을 살게 만들다니.

게다가 오춘삼에게 칼자루를 직접 쥐게 해서, 책임까지 모두 떠안기는 계산은 소름이 돋을 수밖에 없었다.

확실했다.

김현성.

예사 인물이 아니었다.

겨우 17살 학생에게 골든 서클이 휘둘리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문제는 그에게 정보를 내준 순간부터, 최태준과 마찬가지로 코가 꿰여 버렸다는 사실이었다.

정찬수가 물었다.

“그래서, 앞으로 대체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 오춘삼을 그 정도로 들쑤신다면 결국엔 골든 서클에 이 사실이 알려질 수밖에 없어. 네가 원하는 대로 오춘삼의 인생은 무너트릴 수 있겠지만, 골든 서클이 너나 나를 가만히 두지는 않겠지. 그러니까 방법을 말해 봐. 앞으로의 네 계획을.”

지난 통화.

김현성은 오춘삼을 협박하는 것까지 말했다.

거기까지는 동의했으나, 설마 이 정도의 악의를 분출할 줄은 몰랐다.

계산이 틀어졌다.

오춘삼의 입을 잠깐 막아 둔다고 해도, 그게 정찬수의 안전을 영원히 보장해 주는 방법은 아니었다.

김현성이 정찬수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히죽, 웃음을 보였다.

“방법은 하나야.”

과거로 회귀했을 때부터.

김현성의 머릿속에는 하나의 거대한 그림이 그려졌다.

“네가 내 트로이의 목마(Trojan horse)가 되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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