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惡의 등교-72화 (72/130)

15. 악의(惡意) (6)

회귀 직후.

김현성은 앞으로의 계획을 그려 나가며, 가장 중요한 포인트를 생각했다.

‘앞으로 2년 뒤. 난 골든 서클의 본거지인 강남으로 가야 해. 그곳에서 그들의 의도를 방해한다면 골든 서클을 무너트릴 수 있겠지만, 그게 진정한 복수를 의미하지는 않아. 골든 서클의 배후. 그리고 그와 관련한 사람들. 그들이 골든 서클의 몰락과 같이 무너지지는 않겠지.’

정체불명의 배후.

골든 라인의 멤버들.

그들은 이미 상당한 부와 권력을 갖추었다.

김현성이 진실을 폭로한다고 한들, 그들 전부를 같이 묻어 버리는 건 절대 쉽지 않은 문제였다.

전부 미스터리였다.

그들이 누구인지도, 얼마나 대단한지도.

김현성은 몰랐다.

병실에 누워 수도 없이 계획을 되새겼을 뿐, 진정한 복수를 위해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알아내야만 했다. 김현성은 그 계획에 조금의 허점도 없기를 바랐다. 누군가가 골든 서클로 혜택을 보았다면, 단 한 명도 쥐구멍으로 도망치지 못하고 모두가 포획망에 잡혀 허우적거리길 바랐다.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항상 망상으로는 명확할 수 없었던 계획이나, 김현성에게는 어렴풋한 방향성이 존재했다.

‘골든 서클의 관련자들을 완벽하게 파멸시키기 위해서는 확실한 정보가 필요해. 내부에 직접적으로 연관된 사람들만 알 수 있는 종류의 정보. 문제는 그런 정보를 얻을 방법이 존재하지 않아. 골든 서클은 폐쇄적인 집단이기에 접근이 쉽지 않을뿐더러, 신분이 완전히 검증되지 않았다면 애초에 중요한 정보에 접근할 수조차 없겠지. 그렇다면 내게 방법은 하나뿐이야.’

거대한 틀.

그 안에 구멍이 있었다.

완벽하게 맞추어지지 않은 퍼즐 때문에, 김현성은 변화하는 상황에 따라 계획을 계속 수정해 나갔다.

박민철 패거리.

신영민.

최태준.

차례로 쓰러트리며 고민을 거듭했다.

그러다 최태준을 포섭했을 때, 김현성의 머릿속에 드디어 구멍을 메울 완벽한 퍼즐이 떠올랐다.

‘정찬수. 서울의 브로커로서 신분이 완벽하게 증명된 인물. 만약 그를 트로이의 목마로 사용할 수만 있다면, 나는 골든 서클의 중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어.’

최태준은 애초에 발판이었다.

최태준으로 시작해서 정찬수까지.

그를 통해.

‘나는 가장 중요한 퍼즐을 확보한다.’

김현성은 계획을 완성시키고자 했다.

* * *

정찬수는 불안해 보였다.

보장되지 않는 미래에 흔들리는 눈동자를 바라보며, 김현성이 차분한 목소리로 정리해 둔 생각을 말했다.

“네가 내게 정보를 건네주었을 때. 나는 확신을 얻었어. 최초의 브로커였던 강태구가 너로 교체되었던 것처럼, 너 또한 언젠가 교체될지 모르는 소모품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너는 아직 대체 불가의 평판을 확보하지 못한 거겠지. 그리고 너도 속으로는 알고 있었잖아. 오춘삼이 거래했다는 증거를 건네준 순간부터, 그 상대인 너와 골든 서클 전부가 무사할 수 없다는 것을.”

“……설마 폭로하겠다는 건가.”

“아니. 그냥 네가 얼마나 간절한지를 강조하고 싶었어. 파멸인 것을 알면서도 자료를 건네주었다는 것은, 어차피 골든 서클이 널 지켜 주지 않는다는 걸 스스로도 알고 있다는 의미겠지.”

그 말에.

정찬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정찬수는 멍청해서 자료를 건네준 게 아니다.

이 자료가 본인의 목줄을 틀어쥘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것 외에는 살아남을 방법이 없었다.

만에 하나.

김현성에 베팅을 걸었다.

김현성이 오춘삼의 입을 틀어막으면, 어떻게든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 서로 솔직해지자고. 네가 골든 서클의 더러운 일을 처리하면서까지 그 집단에 진심인 이유가 뭐야? 돈 때문이겠지. 일반인들은 벌어들일 수 없는 막대한 돈을 벌어, 골든 라인이라고 불리는 천상계에 발을 들이고 싶은 거겠지. 그래서 네게 제안을 하나 하려고 해. 네가 트로이의 목마가 되는 대가로. 골든 서클을 통해 얻고자 하는 바를 ‘나를’ 통해 얻는 건 어때?”

정찬수가 피식, 웃었다.

진지하게 듣고 싶었지만, 김현성의 발언은 너무 허무맹랑했다.

정찬수가 말했다.

“겨우 명진건설을 믿고 그런 제안을 하는 건 아니지? 인정해. 나는 계급 사회 꼭대기에 올라가고 싶어서 골든 서클에 들어왔어. 그리고 골든 서클에는 그만한 힘이 있지. 내가 너에게 내 목줄을 내어 준 이유는 일종의 거래였을 뿐이야. 이 괴물 같은 집단이 실패의 대가를 받아 낼 것이 분명하니, 나로서는 선택지가 없었던 거지. 그런데 네게서 원하는 바를 얻어 가라고? 뭐? 아파트 몇 개? 명진건설이 해 줄 수 있는 정도로 만족할 거면 골든 서클에 들어오지도 않았어.”

수년이다.

골든 서클의 브로커로서 살아가며, 일반 사람들은 감히 경험할 수 없는 천외의 세상을 엿보았다.

부러웠다.

탐이 났다.

그도 그 세계에 발을 들이고 싶었다.

“아무리 벼랑 끝에 몰렸어도 사람을 병신으로 보지는 마. 어차피 죽는 선택지라고 해도, 골든 서클의 내부 비밀을 폭로하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야. 의뢰 실패? 자료를 밖으로 유출한 것? 그래, 이미 난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 버렸어. 하지만 그건 아니야. 난 이번 일의 대가로 골든 서클에서 쫓겨나고 인생이 망해 버리겠지만, 내부 스파이가 되는 건 정말 목숨이 위험할지도 모르는 일이야. 무엇보다도, 겨우 너와 명진건설을 믿고 그런 위험한 일을 받아들일 수는 없지.”

김현성?

인정했다.

그는 충분히 능력이 있는 인물이지만, 명진건설의 배경 정도로는 절대 이번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의뢰 실패와는 별개다.

오춘삼의 입을 막는 의도로 동조했던 거지, 그 이상은 원하지 않았다.

정찬수의 반응.

김현성은 예상했다.

처음부터 그렇게 나올 줄 알았다.

그리고 예상대로 나와야만, 정찬수라는 퍼즐을 확보하는 데 의미가 있었다.

김현성이 말했다.

“그렇다면 바꿔서 얘기하지. 앞으로 2년. 2년 동안 네가 천상(天上)의 멤버들을 전담하게 해 줄게. 그 정도 시간이면 네가 원하는 만큼 충분히 해 먹을 수 있잖아?”

순간.

“……뭐라고!?”

정찬수의 표정에 균열이 일었다.

방금의 제안 때문이 아니다.

천상.

그 존재는, 김현성과 같은 외부인이 알 수 없는 단어였다.

* * *

골든 라인.

그 내부에도 등급이 나누어져 있다.

정치인 중에서도 거물급, 재벌 중에서도 재계 서열 최상위급.

그들을 보통 ‘천상’이라고 표현했다.

정찬수와 같은 브로커들도 감히 그들과 접선할 수 없었고,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그들은 최상위 브로커들이 전담해서 맡았다. 그리고 당연히 담당하는 사람의 등급이 높은 만큼 돌아오는 보상도 달랐다. 천상을 도맡는 순간 인생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천상에서 흘러나오는 정보의 질은 일반적인 것과 비교 자체가 불가했다.

김현성의 말.

허무맹랑했다.

제안이 비현실적인 것을 떠나서, 김현성이 천상의 존재를 알고 있다는 사실에 정찬수는 놀랐다.

“어떻게 그걸……?”

“지금 중요한 건 내가 천상의 존재를 어떻게 알았느냐가 아닌, 내 제안이 정말 가능한지야.”

옳은 말이다.

만약.

정말 만약에.

김현성의 말이 진실이라면.

이건 충분히 받아들일 만한 거래였다.

천상의 존재들.

그들을 관리한다면 1년 안에 브로커로서 수십 년을 일해야 벌어들일 수 있는 부를 확보하는 건 문제도 아니다. 주가 조작, 코인, 투기 등등. 그 안에서 도는 정보들은 천문학적인 가치를 지닌다. 보통 일반 브로커들은 내부 정보를 활용할 수 없도록 어느 정도 제한을 두는데, 천상의 브로커들은 다르다.

그들 또한.

일원으로 받아들인다.

천상의 이야기를 듣고 명령을 따른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은 정말 달콤한 콩고물을 받아먹는다.

탐이 났다.

2년 후.

골든 서클이 무너지고 자신의 배신 사실이 알려진다면, 분명히 자신은 그만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그렇다 한들.

나쁘지 않았다.

그만한 부를 갖춘다면 미련 없이 한국을 떠나면 그만이고, 혹시라도 김현성이 골든 서클을 무너트리기라도 한다면. 그건 정말 일거양득(一擧兩得)이었다. 오히려 정찬수가 바라는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였다.

마른침을 꿀꺽꿀꺽 삼켰다.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처음에는 오춘삼의 일을 논의하려 했는데, 전혀 다른 방향으로 상황이 변했다.

정찬수가 말했다.

“……하나만 묻지. 대체 어떻게 날 천상의 전담으로 만들겠다는 거지?”

중요한 포인트였다.

제안을 받아들이지 말지는, 일단 그게 현실 가능성이 있는지부터 확인해야 했다.

그리고 그건.

긍정의 의미기도 했다.

김현성이 웃었다.

“앞으로 한 달. 한 달만 이번 일에 대해서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어. 그리고 한 달이 지나고 나면.”

시선을 마주쳤다.

정찬수의 눈빛 속에 들끓는 욕망이 보였다.

“넌 네가 원하는 걸 얻을 수 있을 거야.”

* * *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김현성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식물인간으로 살아갈 때, 김현성이 머물던 병원은 시스템도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그런 곳이었다. 환자가 있는 병실에서는 떠들지 마라, TV 소리를 키우지 마라 등 그딴 이야기들은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애초에 돈도 되지 않는, 대부분 정부 보조금을 받아 입원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간병인들이나 병원 관계자들은 환자의 상태는 그리 신경 쓰지 않았다.

그렇게 매일.

김현성은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를 들었다.

“진짜 고민되네. 부동산 가격이 오를 것 같은데, 대출은 무섭고. 어떻게 하지?”

“그냥 받아 버려. 요새 시장 상황 몰라? 3억짜리 집이 6억 되는 거 순식간이야. 그러다 늦는다고.”

“그런가?”

간병인들의 목소리였다.

그들은 현실적인 문제들을 떠들었다.

그리고.

[톱스타 A씨의 불륜 상대가 재벌가 사모님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그로 인해…….]

[국회의원 김판호가 대선에 출마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습니다. 한국대 대학교수 출신인 김판호는, 당내 강력한 후보였던 양민구를 밀어내고…….]

TV에서 연일 떠들어대는 뉴스들.

김현성은 그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머릿속에 담았다.

처음부터 복수를 위해서는 아니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이 삶을 살아가는 유일한 낙이었다.

그렇게.

계획이 만들어져 갔다.

명진건설의 일을 기억하기에 그들을 배경으로 삼았고, 사람들이 부동산에 대해 푸념하는 소리에 명진건설 계획에 살을 붙였으며, 톱스타 A와 국회의원 같은 굵직한 사건이 생길 때마다 계획을 보완했다.

그때는.

그것밖에 할 게 없었다.

하루 24시간, 1,440분.

모든 시간을 망상에 투자했다.

만약 골든 서클과 관련한 뉴스를 듣지 못했다면, 김현성은 아무런 목적이 없는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충격적인 소식입니다. 학교 폭력을 주도했던 세력의 실체가 밝혀졌습니다. 그들은 골든 서클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으며, 권력자들에게 대가를 받고 그들의 자식들을 위한 의뢰를 수행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현재 검경(檢警)은 특별팀을 꾸려 관계자들을 철저하게 조사하는 가운데, 골든 서클 내부에 천상이라는 집단이 존재했던 것으로…….]

골든 서클.

골든 라인.

그리고 천상.

그들의 존재가 세상에 밝혀졌다.

정찬수는 어떻게 진실을 알았는지 궁금해했지만, 그건 사실 먼 미래에 벌어질 일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때.

골든 서클의 관계자들은 처벌을 받지 않았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골든 게이트(Golden Gate)라 명명된 사건이었지만, 몇몇 인물들만 끌려갔을 뿐 실제 천상에 소속된 사람들의 정체는 단 한 명도 밝혀지지 않았다. 정확히는 의심되는 인물들이 특정되었으나, 그들이 실제로 천상의 멤버라는 사실을 증명할 방법은 없었다.

참담한 미래였다.

그래서 더욱 철저하게 계획을 완성해 나갔다.

부디.

한 번의 기회가 있기를.

그들을 지옥 밑바닥으로 떨어트릴 수 있기를.

망상에 불과하나, 그 순간만큼은 정말 기뻤다.

* * *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김현성이 문 앞에 걸린 현판을 확인했다.

[김판호 국회의원 사무실]

지금부터는.

또 다른 계획을 실행할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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