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惡의 등교-73화 (73/130)

16. 김판호 (1)

김판호.

번영(繁榮)당의 국회의원인 그는 최근에 고민이 있었다.

정치적으로 아무런 연관도 없는 한 국회의원이, 이번에 김판호와 관련한 의혹을 제시한 것이다.

“김판호 국회의원이 한국대 대학교수로 재직하던 당시, 권력자 자식들의 학점을 관리해 주었다는 의혹이 있습니다. 이게 말이 되는 일입니까? 학생들을 공정하게 평가해야 하는 대학교수가 본인의 잇속을 위해 권력을 남용했고, 지금은 국민을 위해 일하는 국회의원이 되었습니다. 저는 이 의혹을 명명백백하게 밝혀 김판호 국회의원의 자질을 확인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공적인 자리에서 나온 발언이었다.

그 발언은 곧바로 매스컴을 탔다.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었고, 그들은 김판호가 이번 사건을 제대로 해명하기를 바랐다.

“……의원님. 어떻게 할까요?”

“어떡하긴 뭘 어떻게 해! 해명할 방법을 찾아야지.”

김판호의 사무실.

조심스러운 비서의 물음에, 김판호는 표정을 일그러트리며 관자놀이를 꾹꾹 문질렀다.

이번 의혹.

사실이었다.

한국대 교수 출신이었던 그는 권력자들의 자식을 돌봐 주는 대가로 인맥을 형성했고, 그 라인을 타고 올라가다 보니 국회의원이 되었다. 벌써 십 년도 지난 일이었다. 슬슬 그런 일이 있었는지도 가물가물해지는 상황에, 갑작스럽게 상대 정당 국회의원이 김판호의 비리 사실을 까발렸다.

‘분명 번영당 내부에서 날 견제하는 사람들이 청탁한 것이 분명해. 그렇지 않고서야 정치적으로 중요한 시기도 아니고, 나와 아무런 원한 관계가 없는 장호일 의원이 갑작스럽게 저격할 이유가 없겠지. 소스는 양민구로부터. 목적은 당내에서 내 세력을 약화시키려는 의도겠지.’

10년.

김판호라는 국회의원이 성장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이제는 나름 거물급 정치인으로 평가받으면서, 김판호는 번영당으로 이적한 이후 자신의 세력을 빠르게 형성하고 있었다. 먼 미래를 위한 준비였다. 계획대로 일이 순조롭게 진행된다고 생각했는데, 번영당의 간판인 양민구 의원이 이 사실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공격해 왔다.

일종의 경고였다.

김판호를 무너트리고, 그에 가담하는 세력들에겐 흠을 조심하라는 경고.

잘 넘겨야만 했다.

이번 고비에서 조금이라도 삐끗한다면, 김판호는 자리를 잡기도 전에 와르르 무너질 수도 있었다.

‘의혹 자체는 별거 아니야. 문제는 깔끔하게 해명하지 못한다면 흠이 잡힐 테고, 양민구는 이 사실을 바탕으로 나를 압박하려 들겠지. 여우 같은 새끼. 본인 자식을 한국대에 보냈으면 똑같이 내게 청탁했을 거면서, 이렇게 더럽게 나오다니.’

똑, 똑.

손가락으로 손잡이를 두드렸다.

머리를 굴렸다.

딱 한 번이다.

이번만 고비를 넘긴다면, 지지 세력을 형성해서 이 정도로는 자신을 공격하지 못할 것이다.

그때였다.

자리로 돌아갔던 비서가 다시 다가오더니, 무언가를 건네며 말했다.

“의원님. 방금 누가 사무실에 이런 쪽지를 두고 갔습니다.”

“쪽지?”

의아한 눈빛을 보였다.

쪽지라니.

평소라면 확인하지 않았겠지만, 김판호는 무의식적으로 비서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 * *

쪽지의 내용은 이랬다.

[이번 김판호 의원님의 의혹을 해결할 방법이 있습니다. 연락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황당한 내용이었다.

함정일 수도 있지만, 김판호 의원은 왠지 무언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누군가가 이걸 통해 자신을 묻으려 한다면, 이런 황당한 방법을 사용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불렀다.

그런데.

“……꼬마야. 네가 이 쪽지를 보냈니?”

“예.”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끽해야 고등학생?

쪽지의 주인을 확인한 김판호는 애써 웃음을 보였다.

“내가 널 불러들인 이유는 이런 장난은 절대 하면 안 돼서란다. 무슨 생각으로 이런 일을 벌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실도 아닌 일로 이렇게 장난치다간 정말 혼쭐이 날지도 몰라.”

발을 뺐다.

사실 상대가 고등학생이 아닌 성인이었어도, 처음부터 사실을 인정하고 이야기를 나눌 생각은 없었다. 절대 진실이 아니라고 발뺌하면서. 상대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을 계획이었다. 그런데 고등학생이 쪽지의 주인이랍시고 나오니, 김판호는 상당히 김이 빠진 듯한 표정을 보였다.

장난이라고 생각했다.

철없는 어린아이가 경찰서에 장난으로 전화하는 것처럼, 멋모르는 아이의 생각 없는 장난.

대충 상대하고 보내려고 했다.

김현성이 말하기 전까지는.

“황당할 수밖에 없다는 거 충분히 이해해요. 그러니 지금부터 아무 말씀도 하지 마세요. 저는 이 대화로 증거를 확보하려는 어떠한 의도도 없으니, 거래는 이 대화가 모두 끝나고 얘기하시죠.”

거래라는 단어.

거슬렸다.

하지만 김현성이 말한 것처럼, 김판호는 혹시 모를 녹취를 대비해 굳이 여지를 주지는 않았다.

“이번 의혹은 장호일 의원이 제기했어요. 의원님과 아무런 원한 관계가 없는 장호일 의원이, 그것도 정치적으로 얻을 이득도 없는 상황에서 굳이 이런 의혹을 터트린 데는 분명한 이유가 존재하겠죠. 저는 그것이 누군가의 청탁이라고 생각해요. 현재 의원님이 번영당에서 당내 세력을 빠르게 확장하고 있으니, 양민구 의원 같은 핵심 인물들이 그 상황을 고깝게 보았겠죠.”

“그 말, 매우 위험한 발언이란다.”

“알아요. 그런데 양민구 의원은 왜 ‘장호일 의원’을 저격수로 사용했을까. 이유는 간단해요. 당내 세력을 움직인다면 본인이 바로 특정될 테고, 같은 소속을 공격한다는 프레임은 본인에게 그리 좋지 않겠죠. 하지만 장호일 의원은 상대 국회의원이니 저격하는 모양새도 자연스러울 거고, 청탁을 받은 것치고는 특별한 약점도 존재하지 않아서 발언을 무를 가능성도 떨어지고요. 복잡한 상황이지만, 김판호 의원이라는 싹을 잘라 내기 위한 양민구 의원의 계략이라는 사실은 분명해요.”

눈썹이 꿈틀거렸다.

김현성의 말.

모두 옳았다.

정확하게 진실을 말했지만, 그렇다고 섣부르게 동조할 생각은 없었다.

“만약에 네 말이 사실이라면 말이다. 내게 찾아와서 말해 주겠다는 ‘그 해결 방안’은 대체 뭐지?”

도망칠 가능성을 열어 두었다.

만약이라는 전제.

김현성이 웃었다.

국회의원이라는 능구렁이를 상대하기 위해서, 지금의 이 상황을 수도 없이 되새겼다.

고로.

“제가, 장호일 의원의 약점을 알고 있어요.”

곧바로 상대가 원하는 미끼를 던졌다.

* * *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이 났다.

병실에 누워 있을 때, TV에서는 대선 후보들이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김판호 후보님. 수년 전에 있었던 ‘대학 비리’ 의혹을 기억하십니까? 그때 장호일 의원이 공개적으로 의혹을 제기했지만, 후보님은 명확한 해명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게 대체 무슨 망언입니까. 저는 분명히 하지 않았다고 말했고, 그 사건은 문제없이 마무리되었습니다.”

“예, 잘 마무리되긴 했습니다. 그런데 그건 명확한 해명을 통한 마무리가 아닌, 장호일 의원을 협박했던 것이 아닙니까! 그때 당시 장호일 의원의 자식이 해외에서 필로폰을 사용하다 적발되었는데, 후보님이 그 사실을 파악하고 장호일 의원을 협박해서 진실을 덮지 않았습니까! 그러고도 국민을 위한 대통령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여보세요! 어디서 유언비어를 퍼트립니까!”

“유언비어라니요!”

그때.

토론장은 한바탕 난리가 났다.

결과는 김판호의 패배였다.

실제로 장호일 의원의 자식은 해외에서 필로폰을 사용하다 적발되었고, 그 신분이 제대로 확인되지 않은 상태로 ‘유학생 A’라고 보도되었다. 그 사실을 김판호가 확인. 장호일 의원을 압박하면서 의혹을 마무리했고, 김판호 정치 인생에서 가장 중요했던 순간에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물론 협박했다는 사실을 명확히 증명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때 그 일로 민심을 잃은 김판호는, 대선 경쟁에서 패배하며 정치인으로서 내리막을 걸었다.

그가 어떤 인물인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런 것들은 중요하지 않았다.

김판호가 양민구를 무너트리고 대선 후보로 오를 정도로 거물 정치인이며, 그의 위기를 해결할 방법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그렇게 김현성은 ‘김판호’의 존재를 계획에 넣었다.

그리고.

때를 기다렸다.

대학 비리라는 의혹이 제기될 때까지, 김판호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전전긍긍할 때까지.

알아서 해결하지는 못할 것이다.

대선 토론에서 밝혀진 사실로는 김판호는 ‘보도된 자료’를 보고 마약 사실을 확인했고, 아직 장호일 의원의 사건은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다. 그렇다면 그게 무슨 의미이겠는가. 김현성이 고등학생이고, 감히 국회의원과 대면할 수 없을 정도로 초라한 신분이라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김현성이 김판호를 필요로 하는 것처럼.

김현성은 김판호에게 필요한 존재였다.

* * *

김현성이 말했다.

“이번 사건은 완벽한 해명이 불가능해요. 대학 비리가 사실이고 아니고를 떠나서, 장호일 의원이 지목한 권력자들의 자식이 ‘비상식적인 성적’을 거두었으니 무슨 말을 하든 뒷말이 나올 수밖에 없죠. 이런 상황을 해결할 방법은 하나밖에 없어요. 메시지를 공격할 수 없다면 메신저(messenger)를 공격하라.”

일방적인 대화였다.

증거를 남기지 않으려는 김판호를 상대로, 김현성은 주도적으로 대화를 이어 나갔다.

“장호일 의원은 국회의원치고는 나름대로 깨끗하게 살아온 인물이에요. 그렇다고 그가 청렴결백하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증거를 남길 만한 비리는 저지르지 않았죠. 저희의 신뢰 관계를 위해 특별히 말씀드리는 건데 머지않아 ‘유학생들의 마약 사건’에 대해 대대적으로 보도될 예정이에요. 그리고 그중에는 신분이 밝혀지지 않은 한 유학생이 거론되겠죠.”

“그 말은…….”

“예. 그 유학생은 장호일의 장남이에요. 그의 입을 틀어막을 수 있는 유일한 무기이기도 하죠.”

김판호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방금 발언.

절대 무시할 수 없었다.

김현성의 말이 정말 사실이라면, 장호일 의원을 압박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가 생긴 것이나 다름없었다.

문제는 겨우 고등학생이 그 사실을 어떻게 안단 말인가.

김현성은 김판호의 표정을 읽었다.

“제가 어떻게 그 사실을 알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마약 사건은 곧 보도될 거고, 그 사실을 잘 이용한다면 이번 사건을 무마할 수 있어요. 물론 저격수가 무너진다고 해서 ‘대학 비리’를 저질렀다는 사실 자체가 사라지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잘 아시잖아요. 이 정치판에서 한번 무너진 의혹은 다시 살리기 힘들다는 사실을. 김판호 의원님은 이번 사례를 전면에 내세워서, 본인은 이미 한번 무고함을 증명했다고 호소한다면 정치 인생에 큰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 거예요.”

어느 정도는 사실이었다.

대학 비리는 김판호의 아킬레스건이었지만, 이미 한번 해결했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 문제가 된들.

그때는 이미 세력을 갖춘 뒤였다.

양민구가 지금을 저격 시점으로 잡은 이유는 세력이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이고, 이미 기반을 갖춘 상태로는 겨우 그 정도 저격으로는 무너질 리 없었다. 대선 경쟁에서의 패배와는 다른 문제였다. 대선 경쟁에서는 ‘마약으로 협박했다는 사실’이 저격당한 것이고, 대선에 총력을 다한 만큼 패배의 대가도 클 수밖에 없었다.

김판호가 황당하다는 듯이 웃었다.

“허허, 네가 드라마를 많이 본 모양이구나. 난 지금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모르겠어.”

한발 물러났다.

마약 얘기를 들은 순간부터 눈이 반짝반짝 빛나면서도, 내뱉는 말은 정치인 특유의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해했다.

아직은.

신뢰 관계가 형성되지 않았다.

김현성은 지금 굳이 밀고 나갈 생각이 없었다.

“아직은 제가 많이 의심스럽겠죠. 저는 이번 사건 말고도 의원님에게 도움을 드릴 만한 여러 계획을 생각하고 있어요. 그러니, 진지한 대화는 일단 대학 비리 사건을 해결한 후에 나누시죠.”

끼익.

자리에서 일어났다.

김판호를 내려다보며 마지막으로 말했다.

“스스로 확신이 생긴다면 똑같은 번호로 연락 주세요. 만약 일주일 안으로 연락이 없다면, 의원님이 절 신뢰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다른 방법을 찾을 생각이니까요.”

미련 없이 걸음을 돌렸다.

미끼는 던졌다.

미끼를 물지 말지는, 지금부터 김판호의 몫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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