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惡의 등교-74화 (74/130)

16. 김판호 (2)

며칠이 지났다.

그동안 김판호 국회의원 사무실에서는 고성이 오갔다.

“그래서 방법이 없다는 거야?!”

“아무래도 장호일 의원 쪽에서 제대로 준비한 것 같습니다. 비리로 의심되는 정황이나 관련 학부모들과의 관계가 명확하고, 저희가 후원을 받은 내역 등이 존재해서 이대로 엮이면 피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후원은 다른 이유 때문이라고 둘러대면 되잖아.”

“그건 맞습니다만, 상황이 조금 복잡합니다. 장호일 의원이 너무 집요하게 달려드는 바람에, 어물쩍 넘어가는 방향으로는 힘듭니다. 조금 더 확실한 방법이 필요합니다.”

“썅!”

쾅-!

책상을 걷어찼다.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씩씩거리면서, 김판호가 창밖을 바라보았다.

이미 기자들이 몰려든 상태였다.

김판호의 일거수일투족을 확인해, 조금이라도 꼬투리를 잡으려고 다들 눈에 불을 켜고 있었다.

“그런 걸 하라고 너희 월급을 챙겨 주는 건데 대체 뭐 하자는 거야? 상황이 명확하다, 피할 수 없다, 확실한 방법이 필요하다. 이딴 얘기나 들으려고 너희를 부른 것 같아? 방법을 말하라고, 방법을!”

“……죄송합니다.”

“장호일 장남 건은?”

“지금 확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체 어디에서 나온 이야기입니까? 저희가 알아본 바로는 장호일의 장남은 학창 시절에 단 한 번도 문제를 일으키지 않은 모범생입니다. 보통 돈으로 발라서 유학길을 떠나는 것과는 다르게, 순수하게 성적으로 외국 명문대에 합격했고요. 평소 어울리는 친구들도 매우 건전해서…… 아무리 생각해도 마약과는 큰 연관이 없을 것 같습니다.”

“나도 알아. 그래도 혹시 모른다 이거지.”

입술을 깨물었다.

김현성의 이야기.

처음 들을 때는 그럴듯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진실을 확인하자 생각보다 더 허무맹랑한 이야기였다.

모범생이 필로폰이라니.

말이 되지 않았다.

벼랑 끝에 몰리니 멍청이가 된 것만 같아, 자괴감이 밀려들었다.

걸음을 돌렸다.

“방법을 찾을 때까지 머리를 맞대 보자고.”

아직 끝나지 않았다.

겨우 이 정도로 무너질 만큼 김판호는 나약하지 않았다.

국회의원이 되기까지 수많은 위기가 있었지만, 그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지금의 김판호가 될 수 있었다.

장호일?

양민구?

모조리 씹어 먹을 것이다.

그리고 반드시 원대한 꿈을 이룰 것이다.

그때였다.

소리를 줄여 둔 TV에서 이런 자막이 떠올랐다.

[유학생들 대규모 마약 적발!]

그 순간.

김판호는 귀신에 홀린 듯한 표정을 보였다.

* * *

며칠 뒤.

김판호는 김현성을 불러들였다.

사무실에는 둘만 존재했고, 김현성에게 차를 내주며 맞은편에 앉았다.

“네 말대로야. 장호일의 장남이 정말 필로폰을 상습적으로 사용했더라고. 대체 그 사실을 어떻게 알아낸 거지? 대외적으로 장호일의 장남은 모범생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와 친분이 없는 네가. 그것도 지방에서 고등학교에 다니는 17살의 고등학생인 네가 어떻게 알아냈냔 말이야.”

공격적인 어투였다.

그는 김현성에 대해 알아보았다.

17살 고등학생이고, 할머니 밑에서 자랐으며, 명진건설의 후원을 받고 여러 사고를 쳤다는 사실을.

의문이 증폭되었다.

일반 고등학생 같지가 않았다.

특히 학교에서 왕처럼 군림한다는 사실에, 김현성에 대한 경계심이 더욱 심해졌다.

‘이 녀석은 무작정 질러 본 게 아니야. 진짜 진실을 알고 내게 거래를 제안했어.’

어제저녁.

장호일 의원 문제는 완벽하게 해결되었다.

알고 보니 유학생 A로 보도되었던 이유는, 최초로 정보를 얻었던 언론사에서 장호일의 장남인 줄 모르고 그냥 보도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로 인해 장호일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전생에서 김판호는 언론에 퍼트려 놓은 정보원들을 통해 진실을 알아냈지만, 이번 생은 김현성을 통해서 들었다.

고로.

미끼를 물 수밖에 없었다.

김현성을 일반 고등학생으로 취급하기에는, 김판호가 골치 아파하던 문제를 보란 듯이 해결해 주었다.

“나는 확실한 해명을 원해. 너에 대한 조금의 의구심도 남지 않도록. 장남의 필리핀 투약 사실은 아버지인 장호일 의원 본인도 모르던 일인데, 대체 네가 어떻게 알아낼 수 있었던 거지? 그리고 그걸 통해 내게 무엇을 얻으려는 거고. 아, 참고로 난 이번 일을 그냥 묻어 둘 생각은 없어. 당연히 국회의원으로서 제 본분을 다하기 위해, 이 자리가 끝나고 그 사실을 고발해야겠지.”

여전히 방어적이었다.

김현성의 정보를 통해 장호일과 협상을 끝냈지만, 그는 함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밑밥을 깔아 두었다. 만약 김현성이 태세를 전환한다면 바로 발을 뺄 것이다. 장호일과의 거래 자체는 언급하지도 않았으니 문제가 되지 않을 거고, 진실을 묻으려는 행동은 마지막 말로 여지를 남겼다.

능구렁이였다.

정치판을 굴러다니며, 김판호는 늘 도망갈 길을 마련해 두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김현성이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빤히 쳐다보는 시선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며, 차의 여운을 충분히 즐긴 뒤에 찻잔을 내려놓았다.

탁.

“걱정하시는 부분들을 설명해 드릴게요. 정보의 출처는 명진건설이에요. 의원님도 조사하셨겠지만 저는 고창범의 지원을 받고 있고, 그를 통해서 마약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어요. 고창범의 인맥에 그렇게 질 나쁜 부류들이 많거든요. 그리고 지금 저는 그 어떠한 녹취도 하고 있지 않아요. 의심된다면 직접 확인하셔도 좋아요.”

“흐음, 그렇다면…….”

굳이 마다하지 않았다.

김판호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미리 준비해 두었던 기계로 김현성의 전신을 꼼꼼히 확인했다.

그 결과 의심되는 정황은 없었다.

그렇다고 의심을 완전히 거두지는 않았다.

그래도 최소한.

함정은 아니었다.

정말 거래를 위해 접근했다는 생각에, 한결 편안해진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그래서, 내게 뭘 제안하려는 거지?”

넘어왔다.

미끼를 물었다.

흥미를 보이는 김판호의 눈빛에, 김현성이 곧바로 말했다.

“본론을 말씀드리기 전에 묻고 싶은 것이 있어요. 김판호 의원님. 혹시 대선을 목표로 하고 계신가요?”

* * *

대선.

예민한 문제였다.

김판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대선에 도전한다는 사실 자체가 수많은 적을 만들어 내는 일이기에, 그는 섣불리 대답하지 않았다.

김현성이 말했다.

“확신은 아니에요. 굳이 번영당으로 이적하고 새로이 세력을 형성하는 이유가, 훗날 큰 도전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는 행위라고 생각했을 뿐이에요. 당장 다음 대선은 아니겠죠. 그러나 그다음부터는 분명히 야망을 드러내실 거라고 생각해요. 문제는 다음이든 다다음이든, 과연 ‘김판호 국회의원’이라는 사람에게 당선 확률이 존재하는가예요.”

전생.

김판호는 대선 경쟁에서 패배했다.

장호일을 협박했던 정황이 매우 치명적이었지만, 그렇다고 그게 가장 큰 패배 요인은 아니었다.

병실에 오순도순 모인 간병인들.

그들은 하나같이 김판호의 문제를 거론했다.

“저는 그 부분에 대해 부정적이에요. 의원님에게는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들일 ‘스토리’가 존재하지 않아요. 밑바닥에서 국회의원 자리까지 올라오신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살아온 것도 아니고. 엘리트 집안에서 태어나 엘리트 코스를 밟다가 대학교수 자리에 오른, 그야말로 대한민국에서는 상위 0.01%의 삶을 살았어요. 한국대학교 재직 당시에 권력자들의 자식을 돌봐 주었던 이유도 처음부터 특혜를 부여하려는 목적보다는, 의원님이 살아온 삶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거예요. 특별한 인연이 없어도 있는 사람들끼리 끌어 주고 밀어주고. 그래서 불가능해요. 대통령이라는 큰 꿈을 위해 국회의원이 되었고, 번영당으로 이적하면서까지 판을 만들어 보려고 하셨지만, 당내 경쟁에서 승리할지라도 결국에 투표에서 패배할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내 꿈을 접으라는 의미인가?”

진실을 인정했다.

녹취의 가능성이 사라지니, 김판호는 굳이 본모습을 숨기지 않았다.

“아니요. 제가 접으라고 해서 접을 꿈이 아니잖아요. 양민구 의원이 이번에 저격을 결심한 이유도 ‘의원님의 야망’을 알았기 때문일 거예요. 양민구 의원 또한 대선을 희망하는 인물이기에, 언젠가는 충돌할 존재라는 사실을 알았겠죠.”

현시점.

김판호는 당내 세력이 부족했다.

이적하기 전에 양민구 의원의 반대 세력을 확보해 둔 상태였지만, 당장은 번영당의 간판인 양민구를 넘어설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도 해볼 만하다고는 생각했다. 양민구를 무너트릴 자신이 없었다면 애초에 탈당(脫黨)을 결심하지도 않았고, 충분히 몸값을 올린 뒤에 입당을 선언했다.

그러나.

김현성의 말은 다른 문제였다.

대선 후보에 오르든 말든 애초에 당선 확률이 희박하다는 말은, 그에게는 치명적일 수밖에 없었다.

본인도 알았다.

스토리가 부족하다는 것을.

아무리 국회의원으로서 일을 잘 처리했다고 해도, 김판호는 서민들에게 매력적인 인물이 아니었다.

엘리트.

대학교수 등등.

수식어가 너무 화려했다.

그렇기에, 김현성은 계획의 일부로 김판호가 매우 매력적이라고 판단했다.

김현성이 말했다.

“제가 킹메이커(kingmaker)가 되어 드릴게요. 의원님의 현실적인 문제들을 모두 해결하고, 의원님이 간절히 바라는 그 자리에 제가 올려 드릴 수 있어요.”

* * *

슥.

김판호가 다리를 꼬았다.

특유의 오만함이 보이는 표정이었다.

실패를 모르는 삶을 살았던 그에게, 일개 고등학생의 도움은 그리 달갑게 들리지 않았다.

“어떻게?”

말을 툭 내뱉었다.

본모습을 드러냈다.

서민들에게는 굽신거리는 정치인일지라도, 그는 명진건설 정도의 배경으로는 비빌 수 없는 거물이었다.

상대가 자신을 원한다면.

굳이 굽신거릴 이유가 없었다.

김판호의 오만한 눈빛에, 김현성이 차분하게 말했다.

“일단 정치 자금을 명진건설에서 해결해 드릴게요. 지방 기업에 불과하나 명진건설은 최근에 건설업에서 떠오르는 기업이고, 아시다시피 ‘건설업’은 장부를 조작하기에 정말 쉬운 업종이에요. 아무런 문제가 없는 돈으로 깨끗이 세탁해서 넣어 드릴게요.”

김판호가 피식, 웃었다.

같잖아서가 아니다.

사실 김판호 정도 되는 인물이면 명진건설 이상의 기업에서 돈을 받는 것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17살 고등학생이 세탁이니 뭐니를 운운하니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묘하게 이질적인 느낌이 들었다. 외형은 고등학생이 맞으나, 왠지 모르게 그 이상의 삶을 살아온 것 같았다.

“저는 이 관계가 서로 상부상조하기를 바라요. 제가 일방적으로 의원님을 원하는 것도 아니고, 의원님도 일방적으로 저를 원하는 것도 아닌. 서로 필요로 하는 관계. 단순히 금전적인 지원만으로는 제가 그리 매력적인 선택지가 되지 않겠죠. 하지만 저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라요. 의원님에게 부족한 ‘스토리’를 만들어 드릴 수 있어요.”

“스토리?”

“예. 대선을 위한 완벽한 스토리. 사람들이 의원님을 우러러보게 할 그런 스토리를요.”

이제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김현성.

재밌는 아이였다.

정말 내뱉은 말을 완벽하게 지킬 수만 있다면, 나이가 어리든 말든 파트너로서는 적격이었다. 장호일의 문제도 그가 해결하지 않았던가. 만약 그 문제로 본인의 가치를 증명하지 않았다면, 애초에 지금의 이 상황 자체가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호기심이 동했다.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의 끝이 뭔지 끝까지 들어 보고 싶었다.

“말해 봐. 그 스토리가 대체 뭐지?”

밑그림을 그리며.

김현성은 여러 후보를 떠올렸다.

김영철과 오대환으로 학교를 장악하고.

명진건설로 금전적인 문제와 배경을 확보하며.

훗날 강력한 권력에 대항하기 위해서, 김판호 국회의원 같은 인물들을 포섭하는 단계까지.

10년.

10년간 만들어 낸 계획이다.

남들은 사람다운 삶을 살아갈 때, 삶의 밑바닥에서 김현성은 단 하나의 계획을 끊임없이 보완해 나갔다.

환하게 웃었다.

현실의 역겨움이, 이보다 즐거울 수 없었다.

“골든 서클. 의원님이 그 집단을 무너트리는 정치인이 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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