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惡의 등교-79화 (79/130)

17. 김현성을 찾는 사람들 (3)

자리를 옮겼다.

커피를 시킨 뒤에, 이미소가 먼저 입을 열었다.

“스카이맘 카페라고 알려나 모르겠네. 대치동에 사는 학부모들끼리 학업 정보를 공유하는 카페인데, 이번에 우리 현성 학생의 이야기가 나왔거든요. 그런데 그게 정말 사실이에요? 학원이나 과외를 전혀 받지 않고, 지난 중간고사부터 시작해서 이번 모의고사까지 만점을 맞은 게?”

“인터뷰 내용을 본 거라면 사실이에요.”

“어머머, 진짜인가 보네. 어쩜 이렇게 똑똑할 수가 있지? 아, 잠시만요.”

때마침 진동벨이 울렸다.

이미소가 일어나 커피를 가져오고는, 커피에는 입도 대지 않고 말을 이었다.

“사실 대치동에서 공부시키는 내가 대산까지 내려올 이유는 없어요. 우리 애를 가르치는 선생들이야 스펙이나 실적이나 모두 증명된 사람인데, 우리 애가 영 진도를 따라잡지 못하더라고요. 선행 학습이 어렵다나 뭐라나. 그러다 현성 학생의 기사를 확인하고 관심이 생겼어요. 학교 수업에 충실하다는 의미는 선행 학습이 아니라 현재에 집중해서 그만한 성적을 거둔다는 건데, 현성 학생 나름대로 성적을 높이는 비결이 있을 거 아니에요. 그래서 단도직입적으로 제안 하나 할게요.”

맘카페.

그곳 회원들은 공부와 관련한 모든 기사를 확인했다.

김현성의 일은 주로 지방 언론사에서 보도되었지만, 이미소의 레이더에 곧바로 포착되었다.

“우리 애를 비롯한 맘카페 회원 애들의 과외를 봐줄 수 있을까요? 일주일에 한 번, 한 달에 네 번. 인당 이백만 원씩 챙겨 드릴게요. 뭐, 당장 극적인 성적 향상을 바란다는 의미는 아니에요. 학교 수업만으로 어떻게 그런 성적을 만들어 낼 수 있었는지 ‘그 정신 상태’라도 알려 주기를 바라요. 수업은 당연히 대산에서 진행하셔도 좋아요. 우리 쪽에서 모든 조건을 맞출 테니, 현성 학생은 잘만 가르쳐 주시면 돼요.”

싱긋, 웃었다.

40대 초반이라고는 하나, 젊었을 적에 남자 꽤 울렸을 외모였다.

이미소의 제안.

받아들일 이유가 전혀 없었다.

미라클의 주범석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성적만으로 거금을 주겠다고 한 것에 비해, 이미소의 제안은 일일이 학생들을 신경 써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그리고 김현성에게 학원비 이백만 원은 특별한 의미가 없었다. 고창범이 건네준 통장에서 언제든 인출할 수 있는 금액이었고, 돈이 모자라면 고창범이 곧바로 채워 줄 것이다.

그런데도.

“며칠만 생각할 시간을 주실래요?”

김현성은 의외의 대답을 내놓았다.

* * *

그날 저녁.

김현성은 스카이맘 카페에 접속했다.

그곳에서는 대치동을 중심으로 여러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요새 어느 학원이 잘 가르쳐요?

-아무래도 스타 스터디이지 않을까요. 그곳 강사들이 워낙 화려하고, 실제로 실적도 좋잖아요.

-거기 요새 내부 사정 좋지 않다던데. 스타 강사 몇몇이 이적한다는 소문이 파다한 데다, 최근에 ‘더 엠’에서 치고 올라오는 느낌이잖아요. 괜히 스타 스터디에서 헛돈 날리지 마세요.

대부분은 정보 공유가 주류였다.

어떤 학원이 좋다더라, 어떤 강사가 잘 가르친다더라.

그런 이야기를 나누며 하루에도 수백 개의 글이 올라왔는데, 김현성이 집중한 부분은 단순한 정보 공유가 아니었다. 바로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나누는 게시판. 문제는 정회원이 아니라면 접속할 수 없다는 것이었는데, 다행히도 온갖 더러운 일이 이루어지는 사교육계는 해결할 방법이 존재했다.

아이디를 구매했다.

비밀스럽게 아이디를 판매하는 게시글을 확인해서, 무려 천만 원을 주고 계정을 전달받았다.

이전 주인은 절대 게시물을 등록하지 말고, 눈으로 보는 용도로만 사용하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그렇게 비밀 게시판에 들어가자.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

[비밀 게시판]

-XX학교에 누구 아세요? 걔가 요즘 성적이 너무 좋던데. 혹시 걔가 어떤 학원에 다니는지, 어떤 방식으로 공부하는지 아시는 분은 공유해 주세요.

-스타 스터디의 메인 강사인 ‘오수정’이 비밀과외를 진행하고 있다네요. 학원 측에서는 아무런 대가성이 없는 본인의 사촌을 관리해 주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스타 스터디 정도에 소속된 강사라면 그만한 책임감이 있어야 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요? 내일 12시에 근처 카페에서 모이시죠. 저희가 정식으로 항의한다면, 스타 스터디로서도 절대 오수정의 만행을 지켜보지는 못할 거예요.

-대산에 있는 친척에게 들은 소문인데, 이번에 전국 모의고사에서 만점을 맞은 ‘김현성’이라는 학생이 원래 그렇게 성적이 좋은 학생이 아니었대요. 그런데 뭘 깨우친 모양인지 갑작스럽게 중간고사에서 전교 1등을 하고, 이어서 곧바로 모의고사에서도 대박을 쳤다던데. 혹시 이거 어떻게 생각하세요? 아무리 대산이라고 해도 이번 모의고사 난이도가 있는데 얻을 게 있지 않을까요?

김현성이 주목한 것은 자신과 관련한 글이 아니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치고 올라오는 학생의 정보를 공유하고, 누군가를 앞서게 만드는 강사의 선택을 막아 내려는 움직임.

그게 바로 핵심이었다.

소위 헬리콥터 맘(helicopter mom)이라고 불리는 부류였다.

자식들의 학업 성취를 위해서 하나부터 열까지 세세하게 관리하며, 학교는 물론이고 학원 행정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사람들. 스카이맘의 본질이 드러나는 게시판이었다. 과거 글까지 쭉 확인하자, 그녀들은 집단으로 움직이며 실제로 유의미한 성과를 얻어 낸 사실이 보였다.

그렇기에 정회원의 아이디가 무려 천만 원에 달했다.

비밀 게시판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신원 파악과 소득 증빙 등 복잡한 과정이 필요하기에, 대치동 학부모라면 천만 원을 지불하면서까지 아이디를 구매하려고 했다. 그리고 조사한 바에 의하면 스카이맘 카페는 대치동에서도 입김이 상당한 집단이었다. 이곳 말고도 자잘하게 여러 카페가 존재했지만, 이곳이 가장 거대한 세력을 형성했기에 대부분 스카이맘 카페로 몰려드는 것 같았다.

흥미로웠다.

전생.

골든 게이트 사건이 발발했을 때, 가장 크게 문제를 제기한 사람들이 누구였을까?

일반 사람들?

정치인들?

아니다.

바로 이 헬리콥터 맘들이었다.

골든 서클에 소속되지 않으면서 학업에 진심인 학부모들이, 정말 난리를 치면서 골든 서클을 맹렬하게 비난했었다. 골든 서클 때문에 자식들의 성적이 뒤로 밀려났다면서. 그들은 골든 서클로 인한 피해를 신경 쓰기보다는, 어떻게든 자식을 위한 콩고물을 얻으려고 발악을 했었다.

미라클과는 달랐다.

미라클의 더러운 면모는 그다지 필요하지 않았지만, 헬리콥터 맘들은 활용할 가치가 분명히 존재했다.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

탈칵.

“김현성이에요. 내일 만나시죠.”

* * *

같은 장소였다.

이번에는 이미소뿐만 아니라, 맘카페 회원으로 추정되는 다른 어머니들도 대동했다.

사실 그녀들은 김현성에게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

17살 고등학생이 가르치는 것에는 한계가 있지만, 그들이 우르르 대산으로 내려온 이유는 대치동의 교육 시스템으로도 자식들의 성적이 비약적으로 향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엄마가 헬리콥터 맘이라고 해도 자식이 따라 줘야 시너지가 나는 법이다. 엄마가 시키는 일에 늘 심드렁한 자식의 태도에, 그녀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런저런 시도를 해 보는 중이었다.

김현성이 말했다.

“제안을 받아들일게요. 단, 조건이 있어요.”

“뭔데요?”

“말만 해요.”

“제가 기억하는 부유한 집안 자식들은 멋대로 행동하는 경우가 있어요. 일주일에 한 번, 시간 약속을 무조건 지킬 뿐만 아니라 처벌의 권한도 주세요. 같은 나이라고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인다면 저도 과외생들을 강제할 무기가 하나는 있어야죠. 이 부분에 대해 확실하게 동의하신다면, 제가 자식분들의 성적을 무조건 향상시켜 드릴 수 있어요.”

처벌.

예민한 문제였다.

그런데 그것보다, 학부모들이 관심을 보인 포인트는 ‘무조건’이라는 단어였다.

근거 없는 자신감이 아니었다.

김현성은 전생에 악착같이 공부했다.

그렇다고 모든 학교에서 출제되는 문제를 아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해당 연도에 유행하는 출제 트랜드 정도는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어떤 범위의 문제가 나올지, 특히 대치동에서는 무엇을 공부해야 했는지. 김현성은 미래를 알고 있었다. 만약 그 범위를 특정해서 제대로 가르친다면, 머리가 정상적인 학생이 이번보다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은 당연했다.

대단한 자신감이었다.

김현성이 내뱉는 확고한 어투에, 학부모들은 오히려 완전히 매료되었다.

자신감이란 중요했다.

자신감이 없는 교사보다, 싸가지가 없어도 성적 향상을 장담하는 강사가 대치동에서 잘나갔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혹시라도 만약에 제게 맡겼을 때보다 성적이 떨어진다면, 그동안 받은 돈은 전액 환불해 드릴게요. 그리고 제가 가르쳤다는 사실은 비밀로 부탁드릴게요. 딱, 이곳에 계신 분들만 맡아 드리고 싶거든요.”

완벽했다.

더는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특히 비밀로 해 달라는 제안은, 성과를 독점하고 싶어 하는 그녀들의 성향상 두 팔 벌려 반길 일이었다.

학부모들의 눈빛이 변했다.

김현성을 우러러보는 눈빛으로 동시다발적으로 말했다.

“할게요.”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예상대로였다.

원래 이 세계가 그랬다.

생각해 보면, 애초에 골든 서클의 시초는 ‘헬리콥터 맘’들의 치맛바람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김현성에게는 너무 익숙한 상대였다.

* * *

그로부터 며칠 뒤.

대산에 한 무리의 학생들이 나타났다.

남학생 셋에 여학생 두 명이었는데, 그들은 고급 승용차에서 내리고는 눈치를 보다가 골목길로 걸음을 옮겼다.

“하, 씨발.”

“이게 대체 뭐냐. 뭔데 대산까지 내려와야 해.”

그들의 정체.

바로 스카이맘 카페의 자식들이었다.

과외까지는 좋았다.

엄마 등쌀에 밀려 이곳저곳을 다녔던 이들이기에, 누군가에게 과외를 받는다는 사실에 이렇게까지 반응하지는 않았다. 문제는 대산까지 내려왔다는 것이다. 그것도 같은 동급생인 17살의 과외를 받기 위해서.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는 그들에게, 그건 심기를 매우 자극하는 문제였다.

그중.

이미소의 아들인 강민우가 담배를 물었다.

엄마는 그녀가 담배를 피우는지 전혀 알지 못했지만, 담배는 학업 스트레스의 유일한 해방구였다.

“하아-.”

골목길이 순식간에 담배 연기로 가득 차올랐다.

다섯 명은 익숙하게 서로 담배를 나누어 피웠고, 폐부 깊숙이 차오르는 연기에 강민우가 말했다.

“그런데 좀 짜증 나기는 하네. 아무리 모의고사 만점이라지만, 김현성이라는 그 병신 새끼는 강남도 아니고 이딴 지방에서 공부한 근본도 없는 녀석이잖아. 엄마 말을 들어 보니 부모도 없는 새끼라던데. 우리가 꼭 그딴 새끼한테 가르침을 받을 필요가 있냐? 아니, 막말로 대치동에서 날고 긴다고 하는 강사들도 될까 말까 한 일을, 지방 촌놈이 가능할 리가 있겠냐고.”

“내 말이. 그래서 엄마한테 개지랄했는데, 엄마도 같이 지랄해서 방법이 없었어.”

“씨발.”

불만이 차올랐다.

사실 그들은 성적에 그리 관심이 없었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성적에 열을 올리는 부모님을 만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강남 평균을 따라간다고 악착같이 공부할 뿐이었다. 만약 그들이 똑똑한 머리에 공부에 강한 집념을 지니고 있다면. 어떻게든 지금보다 좋은 성적을 만들어 냈을 것이다. 그냥 주어진 상황에 최소한의 노력만 하다 보니, 헬리콥터 맘인 그들의 어머니는 절대 만족하는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무조건 인서울.

그것도 되도록 의대 쪽.

목표가 높았다.

늘 기대를 충족시켜 주지 못하다 보니, 그들은 오히려 점점 더 엇나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강민우가 말했다.

“그냥 쨀래?”

“어? 째자고?”

“그건 좀 그런데. 엄마가 이번에는 무조건 잘 따르라고 했단 말이야.”

한 여학생이 걱정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여기 오기 전에 신신당부했기 때문이었는데, 강민우가 대수롭지 않게 반응했다.

“아니, 김현성 걔가 대단하면 뭐 얼마나 대단하다고. 우리가 대충 또래에게 과외받기 싫어한다고 하면 알아서 다른 선생님으로 바꿔 주겠지. 그리고 전국 1등이면 샌님일 거 아냐. 수업 좀 짼다고 별일 있겠어?”

“그런가.”

“에라, 모르겠다. 난 동의.”

“그냥 놀자. 잘 가르친다고 해도, 앞으로 계속 대산까지 내려와서 수업을 받는 건 좀 오바잖아”

의견이 통일되었다.

그렇다면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오케이. 오늘은 그냥 째자.”

담배꽁초를 버리고는 골목길을 나섰다.

바로 앞이 약속 장소였지만, 그들은 잔뜩 상기한 얼굴로 번화가가 있는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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