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惡의 등교-83화 (83/130)

17. 김현성을 찾는 사람들 (7)

강남에서도 기말고사가 한창이었다.

교실 안.

강민우가 멍한 표정을 보였다.

기말고사 시험을 끝마친 그는, 평소와는 다른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지?’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그리고 고등학교 1학년의 마지막 시험.

그동안 수많은 시험을 경험하면서, 강민우는 학년이 높아질수록 자신의 머리가 생각보다 똑똑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다. 참 가혹한 현실이었다. 아버지는 그야말로 천재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인데, 하나뿐인 아들이 아버지의 발끝도 따라가지 못한다니.

그래서 공부에 흥미를 잃었다.

어머니가 아무리 지원해 주어도, 또래 친구들보다 뒤처져 있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생각보다 쉬웠다.

문제를 술술 풀다 보니, 강민우는 시험 시간이 절반밖에 흐르지 않았는데도 마지막 문제에 도달했다.

‘내가 똑똑해진 건가?’

아니다.

스스로도 알았다.

할리우드의 한 영화처럼 똑똑해지는 약을 먹은 게 아닌 이상, 중간고사를 그럭저럭 보았던 그때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은 다른 게 없었다. 그렇다면 정답은 하나밖에 없었다. 사실은 문제를 풀면서, 기말고사가 진행되는 내내. 강민우는 단 하나의 사실이 머릿속을 복잡하게 했다.

‘과외에서 말해 준 문제 유형과 정확히 일치해. 내가 집중적으로 공부한 영역이라, 나로서는 쉬울 수밖에 없었던 거야.’

소름이 돋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단 말인가.

김현성은 과외를 진행하면서, 기말고사에서 나올 법한 문제 유형들을 정확히 특정해 주었다. 그때, 친구들끼리 우스갯소리로 일타강사 흉내를 낸다면서 비웃었었다. 그리고 장난처럼 치부했던 일이 현실이 되었다. 김현성이 말한 유형의 문제들이 전부 출제된 것은 아니지만, 실제 시험과 상당 부분 겹치면서 강민우로서는 이전 시험보다 문제를 쉽게 풀 수밖에 없었다.

그때였다.

시험이 끝나 돌려받은 핸드폰에서, 불이 붙듯 알림음이 울려 댔다.

[너희 다 시험 어떻게 됐어? 나 대박 났어!]

[김현성, 이 새끼 대체 정체가 뭐야? 김현성이 예상되는 문제 유형이라고 특정할 때만 하더라도 뭐 하는 새끼인가 싶었는데, 진짜 그 유형들에서 대부분 문제가 나왔다고! 얘 진짜 뭐 있는 거 아냐?]

[김현성은 신이야. 우리에게 강림한 공부의 신!]

단톡방이 난리가 났다.

이로써 확실해졌다.

기말고사를 통해 느낀 감정은 자신만의 일이 아니고, 모두가 똑같이 경험한 그야말로 기적이라고.

그 말인즉.

‘김현성이 옳았어.’

단 보름 만에, 김현성은 기적을 일으켰다.

* * *

그야말로 경사였다.

시험 성적을 확인한 이미소는, 정말 세상을 다 가진 듯한 행복한 얼굴로 강민우를 와락 끌어안았다.

“우리 예쁜 아들! 정말 고생했어!”

“아, 엄마! 숨 막혀!”

“왜에. 좀 안자!”

강민우가 버둥거렸다.

17살 고등학생 남자의 힘이라면 엄마를 충분히 뿌리칠 수 있지만, 강민우는 낯부끄러워하면서도 엄마를 적극적으로 밀어내지는 않았다. 정말 오랜만에 경험하는 반응이었다. 이미소는 숨이 막힐 듯 강민우를 끌어안으면서, 연신 얼굴에 뽀뽀 세례를 퍼부었다.

쪽, 쪽.

“아들. 오늘 뭐 하고 싶어? 혹시 가지고 싶은 거 있어? 말만 해, 이 엄마가 다 들어줄 테니까.”

“……그냥 외식이나 하자.”

“그럴까? 그럼 아빠 퇴근하는 대로 우리 아들이 먹고 싶은 대로 가자!”

그렇게 한바탕 난리가 나서야, 강민우는 엄마의 품에 벗어나 방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탁.

문을 닫았다.

고요함이 내려앉은 방 안에는, 그동안 공부했던 흔적들이 보였다.

묘한 기분이었다.

항상 성적을 확인할 때면 강민우는 죄인이 되었다.

초등학생 때는 그래도 기대감을 충족시켜 주었던 것 같은데, 문제가 어려워질수록 강민우는 강남의 우등생들에 비해 뒤처지는 모습을 보였다. 물론 공부를 아예 못한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충분히 잘하는 수준이었지만, 이미소가 기대하는 ‘상위’의 영역에는 해당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달랐다.

평균 점수가 무려 10점이나 상승했다.

점점 깎여 나가던 자존감이, 엄마의 웃는 얼굴 한 번에 회복되는 기분이 들었다.

털썩.

의자에 앉았다.

멍하니 이 순간을 받아들이고 있는 그때, 문밖에서 이미소의 들뜬 목소리가 들렸다.

“아니, 다른 게 아니라. 우리 애가 이번에 기말고사 평균 점수가 무려 10점이나 올랐지 뭐야.”

“어머머, 정말이야? 이번 기말고사가 그렇게 어려웠다고? 우리 민우 예뻐서 어떻게 하지? 다른 애들은 대부분 점수가 떨어졌다는데, 1~2점도 아니고 평균 점수가 무려 10점이나 올랐잖아.”

“원래 민우가 똑똑했어. 그동안 운이 따르지 않았을 뿐이지. 걔가 누구 아들인데!”

아주 난리였다.

이미소는 한시도 전화기를 놓지 않겠다는 듯이, 전화가 끊기면 새로운 사람에게 전화를 거는 것을 반복했다. 사실 엄마가 왜 이렇게까지 성적을 갈구하는지를 강민우는 잘 알았다. 강민우의 아버지는 엘리트 코스를 밟은 그야말로 천재였고, 엄마도 똑똑하기는 했지만 아버지에 비해서는 스펙이 조금 부족했다. 그래서 강민우의 시험 성적이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마다, 주변에서는 혹시 엄마 피를 물려받아서 그런 것이 아니냐는 말이 돌았다.

“하, 씨-.”

왜일까.

정말 기뻐해야 할 상황에, 강민우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자신도 처음부터 이러고 싶었다.

자신을 사랑하는 엄마가 진심으로 기뻐하도록, 엄마가 원하는 기대감을 완벽히 충족해 주고 싶었다.

그런데 그럴 수 없었다.

아무리 발악해도.

아무리 노력해도.

벽이라는 게 존재했다.

강남에서는 노력하지 않는 사람이 없으니, 재능의 차이로 강민우는 항상 뒷전에 밀려나야 했다.

이번에는 달랐다.

시험 성적이 올랐다.

상위라고 할 만한 성적에, 강민우는 눈물이 났다.

얼굴을 감싸 쥐었다.

“……이건 너무 좋잖아.”

대체 얼마 만일까.

초등학교 이후로, 받은 기대감만큼 충분히 충족시켜 주는 게.

강민우는 한동안 얼굴을 감싸 쥔 손을 내려놓지 못했다.

* * *

다음 날.

이미소를 필두로 스카이맘 카페 회원들이 집결했다.

한 회원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다들 알다시피 대치동에서 애들 공부시키면서, 우리 애 성적 향상을 위해서 안 해 본 것이 없어요. 누가 잘 가르친다고 하면 새벽부터 대기표를 끊었고, 또 누가 잘 가르친다는 소문이 돌면 돈을 발라서라도 어떻게든 자리를 얻어 냈어요. 그때마다 성적이 오르긴 했어요. 아주 미약하게라도. 수천, 수억을 들여서 그렇게 성적을 상승시켜 왔는데, 이건 진짜 말이 되지 않는 결과예요.”

“……전 아직도 이게 현실인지 의심이 들어요. 어떻게 단 보름 만에 성적을 이렇게나 상승시킬 수가 있죠?”

다들 얼떨떨했다.

강민우를 비롯해 대부분 평균 점수가 5점 이상씩은 올랐다.

엄청난 성과였다.

그래도 평균 이상은 하는 학생들이었기 때문에, 겨우 1~2점 차이도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는 대단한 성장이었다. 그런데 5점 이상이라는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었다. 그것도 보름이라는 단기간에. 사교육계에서 뼈가 굵은 어머니들로서는, 이 상황이 진심으로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이미소가 말했다.

“이 결과에서 우리가 집중해야 할 포인트는, 김현성이 중간고사, 모의고사에 이어 기말고사에서도 만점을 맞았고, 우리에게 ‘단언’한 것처럼 애들의 성적을 한 명도 빠짐없이 모조리 상승시켰다는 거예요. 민우에게 그 비결을 물으니까 뭐라고 한 줄 알아요? 다른 학원들처럼 고되게 가르친 것이 아닌데도, 정확히 문제 유형을 특정하니까 성적이 오를 수밖에 없다고 했어요.”

“문제 유형을 특정하다니. 그런 일이 가능해요?”

“불가능하죠. 각 학교가 어떤 시험 문제를 출제할지 누구도 단언할 수 없지만, 김현성은 적어도 현재 출제 트랜드가 어떤지를 파악하는 능력이 있는 것 같아요. 그게 무슨 의미겠어요? 얘는 진짜예요. 대치동 바닥에서 좀 잘 가르친다는 선생들은 다들 연봉이 수억이 훌쩍 넘어가는데, 대산에서 혼자 공부하는 애가 그 선생들보다도 잘 가르친다는 의미라고요. 만약에. 이 사실이 다른 엄마들에게 알려지면 어떻게 될 것 같아요?”

순간.

다들 시선을 마주쳤다.

말하지 않아도 알았다.

“……다들 과외를 시키겠다고 몰려들겠죠.”

“그래요. 그러니까, 절대 그 누구에게도 이 사실을 알려서는 안 돼요. 김현성의 존재를 아는 건 이 자리에 있는 다섯 명, 정확히 우리뿐이에요. 만약에 누구라도 주변에 이 사실을 알린다면 그건 본인의 자식을 갉아먹는 일이라는 걸 설명하지 않아도 잘 알 거라고 생각해요.”

무언의 동의였다.

엄마들 모두.

그런 상황은 바라지 않았다.

김현성과 같은 과외 선생님은, 단순히 돈만 있다고 해서 독점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이건 그야말로 천운이었다.

하늘이 내려 준 운.

그렇다면, 지금부터는 이 운을 꽉 붙들고 절대 놓쳐서는 안 되었다.

“어제 김현성이랑 연락했어요. 대산에 직접 내려가서 찾아뵙겠다고. 그래서 하는 말인데…….”

능력이 검증되었다면.

지금부터는 대가를 치를 차례였다.

“다들 자식들을 위해 얼마나 쓸 수 있어요?”

* * *

그날 오후.

이미소는 대산에 내려왔다.

이전에도 만났었던 익숙한 카페에서, 이미소는 과할 정도로 공손한 태도를 보였다.

“선생님.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선생님의 훌륭한 가르침 덕분에, 민우나 다른 애들의 성적이 크게 오를 수 있었어요.”

학생에서 선생님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이미소는 김현성의 눈치를 살피며,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실 이렇게 찾아뵌 이유는 앞으로도 우리 애들을 계속 가르쳐 주셨으면 해서요. 기간은 애들이 졸업할 때까지 앞으로 2년 정도로 생각하는데, 그렇게 긴 기간을 기존 조건으로 봐 달라고 말하는 것은 염치없는 짓이겠죠. 과외 일정은 똑같이 일주일에 한 번이되, 한 달에 인당 1000만 원을 드릴게요. 그리고 이번 기말고사처럼 좋은 성적을 거둔다면 특별히 보상금도 드릴 거고요. 어떻게, 괜찮으실까요?”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인당 천.

일주일에 한 번 고생하는 대가로 한 달에 5천이라는 의미였다.

정말 엄청난 거금을 내놓는 모습에, 맘카페 엄마들이 강남 사모님이라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사실 조건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성의만 표현하면, 웬만해서는 받아들일 생각이었다.

김현성이 말했다.

“조건이 있어요.”

“말씀만 하세요. 뭐든 맞춰 드릴게요.”

“일주일에 한 번 과외 일정을 진행하되, 애들이 제가 가르친 내용을 충분히 학습할 수 있도록 다른 학원 일정은 최소화해 주세요. 선행 학습을 위한 기본적인 학원은 필요하다지만, 무리하게 공부하면 제가 가르친 내용을 완벽하게 학습하기가 힘들거든요.”

“그건…….”

망설임이 들었다.

학원을 줄여라.

쉽지 않은 문제였다.

그러다 다른 친구들에게 뒤처지기라도 한다면, 뒤늦게 따라가는 건 정말 어려웠다.

하지만.

‘보름 만에 평균 성적을 10점이나 올렸잖아. 믿어 보자.’

기말고사의 기적.

믿을 수밖에 없었다.

이미소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다른 건요?”

“이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저희의 관계를 비밀로 해 주세요. 김현성이라는 학생이 강민우를 비롯한 학생들을 따로 가르치고 있다더라. 그런 소문이 퍼지기 시작하면 저도 앞으로 계속 과외를 봐준다고 장담할 수 없어요.”

“당연하죠. 무조건, 무조건 비밀로 할게요!”

이미소가 반색했다.

비밀 유지.

그녀로서는 두 팔 벌려 반길 일이었다.

기말고사에서 성적을 내면서 혹시 다른 생각을 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먼저 비밀로 해 달라는 말에 이미소의 얼굴이 밝아졌다. 원하는 조건은 모두 얻어 냈다. 이미소는 앞으로 김현성이라는 훌륭한 선생님을 독점하고, 김현성으로서는 헬리콥터 맘들과의 연결 고리를 만들었다.

거래는 끝났다.

이만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이미소의 모습에, 김현성이 흘리듯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남편분이 어떤 일을 하신다고 하셨죠?”

“우리 그이요?”

이미소가 웃었다.

“서울중앙지검에 차장검사로 있어요.”

차장검사.

이름만으로 느껴지는 살아 있는 권력.

이건 정말 우연이었다.

김현성은 의도해서 접근한 것이 아니었지만, 차장검사라는 단어는 모든 의문을 해소해 주었다.

이미소가 자식 교육에 목을 매는 이유.

상당한 부와 권력을 보유하고도 골든 서클과 관련되지 않은 이유.

그것은 그녀의 배경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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