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미래를 위한 발판 (3)
찰나의 순간이었다.
파고드는 정두철의 움직임을 그대로 흘려보내더니, 김현성의 주먹이 정두철의 복부를 파고들었다.
빠악!
“!!!”
엄청난 충격이었다.
순간적으로 숨을 흡 들이킬 만큼, 김현성의 파괴력은 예전과는 비교가 불가한 수준이었다. 확실히 10킬로그램 증량의 효과가 있었다. 고강도 스트랭스 훈련과 벌크업을 진행하면서, 김현성은 폭발적인 파괴력을 얻었다. 그건 한때 UFC 챔피언이었던 정두철을 당황시킬 정도였다.
타탓.
스텝을 밟았다.
김현성을 견제하는 잽을 뻗으며, 정두철은 잠깐 숨을 고를 시간을 확보하려고 했다.
그런데.
훅.
빠악-!
김현성이 곧바로 거리를 좁혔다.
복부에 강한 타격이 들어가면, 상대로서는 호흡이 무너진다는 사실을 알았다.
게다가 정두철은 현역에서 은퇴하면서 체력적으로 많이 부족한 상태였기에, 김현성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정두철의 가드 위로 주먹이 작렬했다. 툭툭 두드리는 주먹에 정두철은 계속해서 뒤로 밀려났고, 아직 호흡이 정돈되지 않아서 김현성의 공격을 완벽하게 막아 내지 못했다.
툭.
잽에 반응했다.
가드로 막아 내며 정두철이 반격하자.
퍽-!
로우킥이 작렬했다.
얼굴을 뒤로 빼며 하단을 노리는 공격에, 정두철은 속으로 감탄사를 내뱉었다.
영리했다.
복부를 가격하는 단 한 번의 이득을 이용해, 김현성은 정두철이 호흡을 고를 적절한 시간을 허락하지 않았다. 거리를 계속해서 좁히며 체력을 소모하게 했고, 잽과 훅, 그리고 로우킥을 섞어서 대미지를 누적시켰다. 이래서 김현성이 프로 무대에서도 먹힌다고 확신하는 것이다. 김현성은 본인이 17살의 팔팔한 체력과 벌크업으로 증량한 파괴력이 무기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렇다고 노련한 정두철을 상대로 정면으로 부딪치는 것이 아닌, 적절한 소모전으로 체력을 깎았다.
상대의 강점과 약점.
자신의 강점과 약점.
적절하게 판단했다.
김현성은 3초 이상 호흡할 시간을 주지 않고, 끊임없는 공방을 유도했다.
‘지금이 기회야.’
흐름이 넘어간다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아무리 은퇴했다고 한들 정두철은 노련한 베테랑이고, 김현성은 상대를 절대 과소평가하지 않았다.
은퇴한 시간.
노쇠한 몸.
정두철에게는 논외다.
그동안 충분히 경험했고, 김현성은 어떤 싸움에서든 눈앞의 조건을 활용해 확실한 승리를 거두고자 했다. 서울에는 어떤 강자가 존재할지 모른다. 그때마다 너무 강해서, 머릿수를 감당하기 힘들어서. 그딴 이유로 변명한다면, 옥상 밑으로 떨어졌던 결말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싫었다.
이를 악물었다.
1라운드에 끝내 버리겠다는 듯이, 김현성은 자신의 존재를 불태웠다.
그 순간.
슥.
김현성은 보았다.
잘게 움찔거리는 정두철의 어깨를.
그동안 정두철을 유심히 살펴보았고, 라이트를 크게 휘두를 때 특정 패턴을 보인다는 사실을 알았다. 원래부터 있던 습관은 아니다. 나이를 먹어서 생긴 것이겠지만, 김현성의 눈에는 그 미세한 움직임이 파악되었다.
그 말인즉.
훅-
공격을 피했다.
간발의 차이로 피해 내더니.
콰직!
정두철의 얼굴에 주먹을 박아 넣었다.
* * *
피가 튀었다.
제대로 먹혔다는 기분이 들었다.
설마 정두철이 이대로 쓰러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정두철이 씨익 웃음을 보였다.
“제법이네.”
“흡.”
그대로 밀고 들어왔다.
얼굴을 얻어맞고도 전혀 밀려나지 않더니, 김현성을 강하게 몰아붙였다.
빠악!
퍼억, 퍽! 퍽!
김현성의 얼굴에 피가 튀었다.
그로서는 알지 못했다.
일련의 상황.
복부를 노린 공격이 날카로워서, 그 파괴력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 가상해서.
정두철은 일부러 김현성의 공격을 받아 주었다.
호흡을 무너트리는 패턴에 감탄하면서, 정두철은 일부러 ‘어깨가 잘게 움찔거리는 패턴’을 보여 주었다. 그건 예전부터 준비했던 함정이었다. 정두철은 본인에게 그 어떠한 패턴도 존재하지 않지만, 김현성의 대응 능력이 좋다는 사실에 함정을 파 두었다. 본인이 확신하고 내뻗은 일격이 먹히지 않았을 때, 예상과는 다른 절망감이 느껴질 때를 미리 학습시키고자 했다.
물론.
김현성의 발전은 인정했다.
김현성에 대한 평가를 정정했다.
이렇게 몰아붙인 것만으로도, 김현성은 당장 프로 레벨에서 랭커에 도전할 만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내게는 아니야.’
UFC 레벨.
세계적이라는 의미다.
한때 세계에서 가장 강했던 남자가 아무리 은퇴했다고 한들, 겨우 17살 고등학생에게 당할 리는 만무했다.
빠악!
근육이 폭발했다.
지금부터는 전력이었다.
정두철의 공격 한 번 한 번에 김현성의 몸이 크게 요동쳤고, 가드를 뚫고 들어오는 주먹에 얼굴이 피로 물들었다. 그런데도 쓰러지지는 않았다. 처음 스파링을 했을 때는 다운을 반복하면서 끝까지 버텨 보려고 했다면, 지금은 위태롭게 흔들리면서도 다운 자체는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결과가 달라지지는 않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일방적인 건 같았다.
김현성이 타이밍을 읽고 반격하는 순간, 정두철의 주먹이 복부를 파고들었다.
빠악!
“……!”
눈을 부릅떴다.
이를 악물며, 신음 하나 흘리지 않았다.
대단했다.
김현성은 정말 난 놈이었다.
그래서 더더욱 이대로 끝낼 수가 없었다.
김현성이 스스로를 맹신하고 겁 없이 세상을 살아가는 순간, 더 강한 존재라든지 혹은 약자의 함정에 빠져 문제가 생길 것이다. 그에게 세상이 넓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다. 지난 한 달간의 성과에 스스로 만족감을 보이는 김현성을 향해, 정두철은 감히 도달할 수 없는 세계를 보였다.
훅.
김현성의 주먹을 피했다.
퍼억!
정두철의 반격에 얼굴이 뒤로 넘어갔다.
코가 무너지고 피를 뿜어냈지만, 김현성은 끝까지 정두철을 노려보며 움직임을 놓치려 하지 않았다.
그러자.
확.
공간을 파고들었다.
김현성과 정두철이 맞물리는 듯한 그 모양새에 이어.
빠악-!
푸확!
아래에서 치솟은 주먹이, 그대로 김현성의 얼굴에 작렬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사방으로 흩날리는 붉은 핏물과 함께, 김현성이 실이 끊긴 인형처럼 무너지고 말았다.
* * *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어렴풋이 천장의 불빛이 보였다.
정신이 들었다는 자각이 드는 순간, 전신에서 고통이 밀려들었다.
“끄으…….”
“괜찮냐?”
김시우였다.
김현성의 곁을 지키던 그가, 질린다는 표정을 보였다.
“진짜 엄청 살벌하더라. 괜히 UFC 챔피언을 했던 사람이 아니야. 네 공격을 전부 다 받아 주면서도 압도적으로 밀어붙이는데, 전성기 때는 얼마나 대단했을지 상상조차 되질 않아.”
“……일부러 받아 줬다고?”
“당연하지. 마지막에 압도한 걸 보면 알잖아.”
“그런가.”
졌다.
패배했던 순간을 되새기던 김현성이,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큭, 큭큭.”
“왜 웃는 거야? 미쳤어?”
“그냥, 스스로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넌 그 자리에 없었지만, 처음 관장님이랑 한판 붙었을 때 정말 엉망으로 당했거든. 다운을 몇 번이나 했더라. 그냥 관장님이 주먹을 어떻게 뻗는지 확인할 겨를도 없이, 고통에 신음하다 보니깐 1라운드가 지나가 버렸어. 그런데 지금은 다르잖아. 그때와 결과가 똑같을지라도, 관장님이 날 쓰러트리기 위해 진지한 모습을 보였어.”
그때와 지금.
달랐다.
김현성은 본능적으로 알았다.
그때는 어린애를 가지고 놀았던 수준이라면, 지금의 정두철은 나름대로 진지한 모습을 보였다.
정두철의 걱정은 착각이었다.
김현성은 스스로의 발전에 만족하면서도, 절대 자신을 과신하지 않았다.
앞으로 상대할 사람들이 강하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지하고, 스스로를 믿고 무모하게 일을 벌일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최태준을 쓰러트릴 자신은 있으면서도. 혹시 모를 패배의 가능성을 생각해서 그와 싸우지 않은 것과 같은 맥락이었다. 김현성이 일반적인 고등학생이었다면 정두철의 생각이 맞았겠지만, 김현성은 남들은 모르는 10년의 세월이 존재했다.
10대의 정신으로.
10년 이상을 살았다.
방심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기쁘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지금의 자신이 겨우 반년도 되지 않아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몸을 일으켰다.
얼굴은 엉망이었고, 눈이 제대로 떠지질 않았다.
아마 병원에 가야 할 것 같았다.
그런 참담한 얼굴로 김현성이 김시우를 바라보았다.
“고등학생 중에 관장님만큼 강한 사람이 있을까? 아마, 존재하지 않을 거야. 그런데도 난 관장님을 넘어서기 위해 최선을 다할 거야. 지금의 난 젊고, 아직 1년의 시간이 남아 있으니까.”
히죽, 웃었다.
김시우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그리고 내 계획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때는. 그때는, 그곳에 지옥이 펼쳐질 거야.”
진심으로 섬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그로부터 며칠 뒤.
김현성은 고창범의 연락을 받았다.
정말 오랜만에 만나는 건데, 고창범은 김현성을 만나자마자 매우 당황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너…… 뭔 일 있었냐?”
한 달 전.
김현성을 만났었다.
그때는 그래도 17살 특유의 앳된 얼굴이 보였는데, 지난 한 달 사이에 불쑥 성장해 버렸다. 70킬로 초반이 80킬로가 되었다는 것은 정말 비약적인 성장을 의미했다. 얼굴도 예전보다 남자답게 변했고, 딱 벌어진 어깨와 옷으로 가려도 드러나는 근육질은 정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확실했다.
김현성은 미친 새끼였다.
양아치들을 쓸어버리기 위해 스스로를 이 정도로 단련한 것이라면, 미쳐도 제대로 미친 게 분명했다.
“그냥 열심히 운동했어요.”
“그래 보이기는 하네. 이제는 씨벌, 무서워서 말도 함부로 못 하겠네.”
왠지.
김현성과 싸우면 질 것 같은 기분이었다.
고창범은 비참한 진실을 애써 외면하며, 김현성을 찾아온 이유를 말했다.
“네가 전에 말했었던 매물 드디어 나왔어. 시골에서 소소하게 벌어먹는 양반이라 처음에 친해지기까지 조금 시간이 걸렸는데, 그래도 양주 몇 잔 따라 주니까 신나서 이것저것 말하더라고. 한 달 전까지만 해도 그런 매물은 분명히 없다고 말했는데, 어제저녁에 매물이 나왔다는 연락을 받았어.”
무언가를 꺼냈다.
프린트한 종이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슥.
“이거야. 한번 확인해 봐.”
간단한 서류였다.
위치와 땅의 모양 등을 기록한 자료.
김현성이 서류를 확인하는 사이, 고창범이 말을 덧붙였다.
“아니, 그런데 대체 이 매물이 왜 필요한 거야?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시골이라 빌라를 올리기도 애매하고, 그렇다고 상가를 세운다고 한들 누가 들어오기나 하겠어? 1000평이라 그나마 생각할 수 있는 건 공장 정도겠지만 이보다 좋은 땅은 주변에 널렸잖아. 현성아. 네 말을 듣고 머리를 열심히 굴려 보았는데 이건 정말 답이 나오지 않아. 솔직히 말해서 말리고 싶을 정도라고.”
고창범의 말.
이해했다.
현재의 평가는 그러했다.
만약 김현성이 기억하는 그 사건이 아니라면, 굳이 이 땅을 눈여겨보지 않았을 것이다.
‘확실해.’
지번과 주변의 형태.
기억과 똑같았다.
그렇다면 이 땅은.
‘한때 경매 시장을 떠들썩하게 했던, 낙찰가 2000%의 주인공.’
이건 미래의 금싸라기가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