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미래를 위한 발판 (4)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경매에 관한 첫 기억은 박민철 패거리의 실질적인 배경인 정민호로부터였다.
고등학교 3학년 때.
그때는 괴롭힘이 일상이었다.
담배를 피우러 가는 박민철 패거리에게 끌려가서는, 그들이 담배를 피우는 동안 딱딱한 바닥에 머리를 박고 뒷짐을 졌다.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겨우 3분도 지나지 않아서 머리에서 땀방울이 뚝뚝 떨어졌지만, 박민철 패거리는 김현성에게 신경도 쓰지 않고 자기들끼리 수다를 떨었다.
정민호가 말했다.
“야, 너희 경매라고 아냐?”
“경매? 뭐 낙찰받고 그런 건가.”
“에휴, 븅신들. 세상 물정에 그렇게 어두워서야 어디 밥 벌어먹고 살겠어?”
“지랄.”
박민철이 옆에서 낄낄 웃었다.
그들은 평소에도 이런 헛소리를 자주 나누었다.
“사실 우리 엄마가 경매에 엄청 관심이 많거든? 그런데 이번에 진짜 괜찮은 땅이 경매로 나와서 그걸 낙찰받으려고 했대. 그게 한 5억짜리라고 했나. 원래 경매라는 게 낙찰에 실패할 때마다 가격이 뚝뚝 떨어지는데, 우리 엄마는 야수의 심장으로 20억을 써서 바로 받으려고 했나 봐. 너희 같으면 어떻게 됐을 것 같냐?”
“무조건 낙찰받았겠지. 5억짜리를 20억에 사겠다는데, 낙찰에 실패할 리가 없잖아.”
“그렇지? 그게 상식이잖아. 그런데 그 5억짜리 땅이, 무려 100억에 낙찰되었다는 거야.”
“엥?”
다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았다.
5억도 분명히 큰돈인데, 그걸 무려 20배나 웃돈을 주고 사는 사람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강창석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뭐 사기 그런 거 아냐?”
“사기일 수가 없다니까. 애초에 경매는 나라에서 운영하는 법원에서 이루어지는데 어떻게 사기를 치겠어. 그래서 엄마가 하는 말을 들었는데, 그게 정말 과감한 선택이기는 해도 이해가 아예 되지 않는 건 아니래. 사실 자기는 그렇게 쓸 만큼 간이 크지 않아서 아쉬울 뿐이지, 낙찰받은 사람은 100억에 받아 가서 그 이상의 큰돈을 벌 거라던데?”
“그사세는 그사세네. 너희 부모님이 부동산 부자인 건 알겠는데, 뭔 소리를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어.”
“그렇지?”
정민호가 씨익, 웃었다.
경매 이야기를 굳이 떠벌린 이유는 단순히 신기해서가 아니다.
친구들의 반응.
눈이 동그래져서 100억에 감탄하는 모습이 재밌었다.
상대적 우월감이라고 해야 할까.
고등학교라는 공간에서는 배경을 내려놓고 친구로 지내지만, 정민호는 졸업 이후의 삶이 얼마나 다를지를 너무나도 잘 알았다. 박민철? 강창석? 조용택? 공부에는 관심도 없는 녀석들이기에 인생의 밑바닥을 전전하겠지만, 자신은 부모님 덕에 분명히 성공한 삶을 살 것이다.
고등학교 시절의 방황은.
가진 자의 유희일 뿐이다.
정민호는 담배를 빨아들이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나도 모르겠다. 우리 부모님이 뭔 생각을 하는지를.”
* * *
2000%의 낙찰.
당시 엄청난 화제였다.
김현성은 머리를 박은 채로 부들부들 떨면서 그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렇다고 크게 관심을 보이지는 않았다. 그때의 김현성은 세상일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괴롭힘을 버텨 내는 것만으로도 심력을 크게 소모했고, 당장 눈앞으로 다가온 수능을 준비하기 위해 모든 신경을 쏟아부었다.
경매의 진실은 정말 우연히 접했다.
김현성은 공부와 아르바이트를 병행했는데, 잠시 쉬는 시간에 사장이 ‘너튜브’라는 동영상 플랫폼을 통해 해당 이슈를 시청하고 있었다. 정민호에게 간략하게라도 들었기 때문이었을까. 김현성으로서는 자연스럽게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참 다들 갑갑하시다. 경매를 잘 모르는, 이 부동산을 잘 모르는 사람들로서는 2000%의 낙찰가가 비상식적일 수도 있어요. 그런데 진실을 알면 절대 아닙니다. 일단 보세요. 해당 토지는 자연 녹지 지역이고, 정확히 1000평에 시세가 평당 3~400만 원 정도 하는 땅이에요. 벌써부터 이상하지 않아요? 경매 사이트에는 이 땅이 5억에 나와 있는데, 현재 시세로만 따져도 3-40억은 받을 수 있는 땅이라는 의미잖아요. 왜일까요? 그건 바로 경매 시스템 자체에 있어요.]
소리는 제법 컸다.
덕분에 김현성은 먼발치에서도 내용을 전부 들을 수 있었다.
[경매 시스템은 경매를 집행할 당시 감정평가사가 현재의 시세로 낙찰가를 선정합니다. 분명히 그때는 평당 50만 원 하던 땅이, 본격적으로 경매가 시작되는 동안 무려 6배 이상의 상승 폭을 보였다는 의미에요. 역시! 눈치 빠른 분들은 무슨 의미인지 바로 아시네. 이 땅 주변으로 땅값을 끌어 올린 엄청난 개발 호재가 있었어요. 원래 이 땅은 도시와 거리가 조금 떨어져서 크게 매력적이지 않은 땅이었는데, 작년 중순이었나. 개발 호재가 연속으로 빵빵 터졌어요. 정부가 근방에 있는 세종시에 주요 부처들을 옮긴다는 것이 첫 번째 뉴스고, 세종과 대산 중간 부근에 대규모 공업 단지가 들어간다는 것이 두 번째 뉴스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땅의 일부가 도로로 수용된 이후에 그 도로가 ‘고속도로’로 연결된다는 게 세 번째 뉴스였죠. 그걸 모두 풀이하자면 세종으로의 인구 유입, 공업 단지로의 인구 유입, 그곳과 도로들이 편리하게 연결되어 있는 ‘땅’이 경매로 나왔으니 2000%라는 정말 미친 듯한 낙찰가가 탄생해 버린 겁니다.]
사장이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너튜버의 충분한 설명에도, 그는 이해가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말이 안 되는 낙찰가인데. 잘 받아야 40억짜리 땅을, 어떤 미친놈이 100억에 받아 가?”
때마침.
너튜버도 같은 주제를 말했다.
[예, 맞습니다. 채팅에서 수많은 시청자분이 지적하는 부분처럼, 아무리 그런 개발 호재가 존재할지라도 이 땅이 100억에 낙찰된 건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죠. 미리 말씀드리자면 이 땅을 매입한 사람은 ‘건설 법인’입니다. 그들이 왜 이걸 낙찰받았을까요? 당연히 건물을 짓기 위해서겠죠. 자연 녹지면 그다지 선택지가 많지 않지만, 사실 이면에는 부동산 문외한들은 알지 못하는 비밀이 있습니다.]
그 정보.
사실 부동산 바닥에서는 특별할 게 없었다.
대부분 진실을 알았지만, 100억의 낙찰가를 대출 없이 지급할 만큼의 현금과 용기가 있느냐가 성패를 갈랐다.
마지막.
단 하나의 진실이 100억의 가치를 완성했다.
[그 비밀은 바로…….]
* * *
고창범이 물었다.
“그게 정말 사실이라고?”
“예.”
조금은 놀란 눈치였다.
김현성은 앞으로 주요 부처들이 세종으로 이전할 것이고, 공업 단지가 들어올 것이며, 땅 주변으로 도로가 발전하리라는 사실을 말했다. 지금만 하더라도 확정되지 않은 사실이었다. 이야기가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다 하더라도, 앞으로 최소 반년은 지나야 확실하게 공표될 일이었다.
미래의 정보였다.
만약 충분한 근거를 덧붙이지 않았다면, 고창범은 정보의 출처를 의심했을 것이다.
김현성이 말했다.
“지난번에 ‘정치 자금’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말했듯이, 저는 지금 김판호 의원과 연줄이 닿아 있어요. 김판호는 번영당의 거물이고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많은 일을 알고 있죠. 그분으로부터 얻은 정보에요.”
“그런 거라면…….”
감탄하는 기색을 보였다.
처음 김판호 의원을 끌어들였을 때, 고창범으로서는 김현성의 능력에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대체 한계를 가늠할 수 없었다.
일개 고등학생이 명진건설 후계자 싸움에 개입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한데, 김현성은 국회의원 중에서도 거물급으로 분류되는 김판호를 끌어들였다. 그때부터 김현성에 대한 믿음은 더욱 견고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을 지경이었다.
아슬아슬한 줄타기였다.
김판호에게는 고창범에게 정보를 얻었다고 말했고, 고창범에게는 반대로 김판호에게 얻었다고 말했다.
만약 대면하는 자리가 만들어진다면.
김현성은 상황을 해명해야 할 것이다.
‘그럴 일은 없어. 김판호는 본인과 기업인과의 관계가 표면 위로 드러나지 않길 바라니, 언제라도 꼬리를 잘라 버리기 위해서 나를 통해서만 의견을 나누겠지. 나는 이 관계에서 주고받는 정보를 통제할 수 있어.’
미래라는 의혹점을.
정보의 차단을 통해 해결했다.
그리고 지금의 이 매물을 기다려 왔던 이유는, 단순히 시세 차익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이 땅. 명진건설에서 ‘빌라 단지’를 만들어 보는 건 어때요?”
“그걸……?”
“예. 개발 호재들이 전부 현실이 된다면 이만한 땅은 존재하지 않아요. 세종시와 공업 단지를 편리하게 오갈 수 있으며, 도시와 다소 거리가 멀다지만 이 땅은 애초에 ‘대산시’에 포함되어 있어요. 그리고 도로가 재정비된다면 차로 10분 만에 대산의 주요 도시에 도달할 수 있고, 무엇보다 고속도로로 직결되는 도로는 서울로의 빠른 진입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의미해요. 그 말인즉, 사람을 끌어들일 수 있는 땅이라는 의미예요. 세종은 이미 땅값이 많이 오른 상태라서 부담스러운 사람이 많을 테고, 그렇다고 아직 생활권이 조성되지 않은 공업 단지는 대부분 선호하지 않겠죠. 그렇다면 이 땅은. 세종보다 가격이 저렴하면서 세종, 공업 단지, 대산의 번화가를 이용할 수 있는, 그러면서도 서울로의 진입도 빠른 그런 지리적인 이점을 가져갈 수 있어요.”
“나쁘지 않기는 한데, 1000평에 빌라 단지를 짓는다고 뭐 얼마나 이득을…… 아!”
순간.
고창범이 눈을 부릅떴다.
김현성에게 정보를 들은 이후, 고창범으로서도 이 땅을 나름대로 조사했다.
도로와 관련한 부분은 이미 계획이 잡혀 있었기 때문에, 정확히 개발 시기가 언제인지가 중요할 뿐이지 예측할 수 있는 일이기는 했다. 주요 부처의 이전과 공업 단지의 개발은 당연히 예상할 수 없는 범주. 앞선 세 가지를 떠나서, 고창범과 그의 사람들이 관심을 보인 부분이 있었다.
“설마.”
“맞아요. 이 땅이 정말 특이한 이유는 1000평의 땅이, 도로로 일부가 수용된다고 하더라도 땅이 맞닿는 도로를 전부 집어삼키는 형태를 보이고 있어요. 그렇다면 뒤에 있는 땅들은 어떻게 될까요? 이 땅을 통하지 않으면 접근이 힘들뿐더러, 애초에 땅이 맞닿아 있지 않은 땅은 건축 행위가 불가능해요. 1000평 뒤로 넓게 펼쳐져 있는 약 2만 평의 땅이 맹지(盲地)라는 뜻이죠. 고창범 씨도 잘 아시잖아요. 도로가 붙은 땅이 50만 원인데, 맹지에 불과한 땅이 과연 얼마나 할까요?”
씰룩, 웃었다.
고창범도 무엇을 말하려는지를 알았다.
“호재가 발표되지도 않은 지금, 맹지는 파는 사람이 절대적인 을(乙)일 수밖에 없어요.”
* * *
땅 주인.
나봉필에게는 땅을 내놓아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다.
바로 빚 때문이었다.
사업을 하다가 대차게 말아먹으면서, 그는 가진 재산을 전부 경매로 토해 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다행히도 그에게는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재산이 있었다. 형제들에게는 비밀로 하고 부모님을 설득해서 받아 낸 것인데,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 위해서 재빠르게 부동산에 올렸다.
그런데.
겨우 며칠 만에 연락을 받았다.
여러 매물 중, 제일 팔리지 않으리라고 예상되던 땅을 누군가가 원한다는 연락이었다.
[사장님. 평당 50에 진행하고 싶다는데, 어떻게. 파실래요?]
“평당 50이요? 흐음.”
시세에 맞는 가격이기는 했다.
문제는 묘하게 거슬렸다.
땅이라는 건, 특히 이런 외진 땅은 빠르게 팔리지 않는다.
충분한 시간을 들여 판매해야 할 문제인데, 곧바로 입질이 왔다는 것은 이 땅에 자신이 모르는 비밀이 있는 것 같았다. 물론 자세한 속사정은 몰랐다. 나봉필은 부모님으로부터 재산을 물려받았을 뿐, 부동산에 대해 그리 잘 알지 못했다.
그래서 튕겼다.
당장 경매로 날아갈 판국인데도, 인간의 욕심은 사람을 영악하게 만들었다.
“50에는 좀 힘들 것 같은데…….”
[아니, 사장님이 50에 올리셨잖아요. 그런데 힘들다고요?]
“아아, 몰라요. 잘 말해서 가격을 더 높여 보든가 하세요.”
뚝.
통화를 끊었다.
그로부터 며칠.
초조한 시간을 보냈다.
혹시라도 구매 의사를 철회할까 봐, 나봉필은 하루에도 수십 번 다시 전화를 걸까 고민이 들었다.
그렇게 인내심이 모두 닳아 버렸을 즈음.
공인중개사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사장님. 솔직하게 말씀드릴게요. 구매자가 대산의 사업가이신데, 계획 도로도 잡혀 있고 해서 그쪽에 공장을 올리고 싶어 하세요. 하아. 진짜 이런 경우는 흔치 않아요. 미래 가치까지 반영해서 평당 100을 해 준다고 하니 당장 거래하시죠. 만약 이번 제안도 거절한다면, 더는 그분을 붙잡을 수 없어요. 아시잖아요. 주변에 땅 널린 거.]
“펴, 평당 100이요?”
[예, 빨리 결정하시죠. 오래는 못 기다립니다.]
눈이 휘둥그레졌다.
자신이 보유한 땅은 시세가 50이라고 해도, 구매자를 찾을 때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 땅이다. 그런 땅을 이렇게 빨리, 그것도 평당 100에 구매해 준다니. 무려 2배에 달하는 금액에 나봉필은 전화를 끊기도 전에 소리쳤다.
“파, 팔게요! 지금 당장 그분에게 계약금부터 보내 달라고 하세요!”
그로서는.
무조건 팔 수밖에 없는 너무나 매력적인 제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