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惡의 등교-88화 (88/130)

18. 미래를 위한 발판 (5)

꾹.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나봉필의 모습을 바라보며, 공인중개사가 싱글벙글 웃음을 보였다.

“정말 잘 생각하셨어요. 그 근방은 평당 50에 내놓아도 팔리는 데 시간이 제법 걸리는데, 고창범 상무님께서 특별히 미래 가치까지 반영해 주셨잖아요. 역시 명진건설 같은 기업의 후계자는 배포가 다르다니까.”

“그래요?”

이건 정말 윈윈이었다.

공인중개사는 가격을 높게 받아 낸 대가로 중계수수료를 0.9%나 받아서 좋았고, 나봉필은 예상한 것보다 2배에 팔아서 좋았다. 사실 겉으로 보기에는 고창범이 호구 잡힌 모양새였다. 공인중개사가 일부러 그런 뉘앙스로 말해도, 고창범은 말없이 무게를 잡으면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의도적이었다.

공인중개사에게 따로 돈을 찔러 넣어 주면서, 나봉필에게 무조건 이득이 되는 분위기를 조성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래야 나중에 뒤탈이 없어. 땅값이 가파르게 오른다고 한들, 땅 주인은 배가 아플 뿐 본인의 어리석음을 탓하겠지. 잘만 구슬리면 70만 원 선에서도 구입할 수 있겠지만 뭐. 이 정도는 일종의 보상이지.’

웃음을 삼켰다.

히죽히죽 입꼬리를 내리지 못하는 나봉필에게,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냥 궁금해서 묻는 말인데, 뒤에 있는 땅의 주인은 따로 아십니까?”

“아, 그 땅요?”

묘한 질문이었다.

의심할 법도 하지만, 이미 행복 회로가 돌아가는 나봉필의 머릿속에 의심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전에 땅을 처분하려고 부모님이 알아본 적이 있었는데, 그 주인이 지금 외국에 산다고 하더라고요. 시세보다 높게 쳐주면 그쪽 땅도 좋은 일이라고 말했는데 딱히 관심이 없다나 뭐라나. 사실 이해는 돼요. 상무님 정도 되는 사람이니까 1000평을 떡하니 구입하지, 일반 서민들이 이걸 어떻게 십수 억을 주고 사요. 뭘 하기도 애매한 땅인데. 만약 그때 그쪽 주인이랑 얘기가 잘 풀렸다면, 이렇게 상무님에게 팔 일은 없었을 겁니다.”

그로서는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때는 수년 전이고, 나봉필이 아닌 그의 부모님이 팔려고 했을 때였다.

만약 그때 땅을 팔아 버렸다면, 나봉필의 수중에 10억이 들어가는 지금과 같은 상황은 없었을 것이다.

그로서는 알지 못했다.

본인의 무지가.

부동산을 모른다는 사실이.

훗날 어떻게 돌아올지를.

‘현성이의 예상대로네.’

고창범은 진실도 모르고 행복해하는 나봉필을, 말없이 웃으며 바라볼 뿐이었다.

* * *

참 재밌는 스토리였다.

경매 땅을 매입한 건설 법인.

그들은 그야말로 초대박이 났다.

빌라가 모두 올라갔을 때는 부처의 이전이나 공업 단지 조성이 한창 진행되는 상태였다. 당연히 도로도 뻥뻥 뚫렸기에, 이곳저곳 이동이 편리한 이곳에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이치였다. 매우 저렴한 땅 가격, 그에 비해 높은 건물 가격. 건설사로서는 땅값과 건축비로 엄청난 이득을 볼 수밖에 없었다.

그 비하인드 스토리 또한.

TV에서 다룬 적이 있었다.

정확히는 인터넷 플랫폼이었는데, 해당 관계자가 썰을 푸는 방식으로 그때의 일을 말했다.

정보화 시대의 효과였다.

누구나 인터넷을 활용할 수 있게 되면서, 일반적으로 알 수 없는 사실들까지 대중들에게 흘러 들어갔다.

“몇몇 사람들은 낙찰가가 과했다고 말하지만 그건 정말 멋모르는 발언입니다. 저희가 그때 아무 생각 없이 2000%에 들어갔겠습니까? 앞의 땅이 막혀서 2만 평의 땅이 맹지라고는 하나, 출구 전략이 저희밖에 없었던 건 아닙니다. 만약 마음만 먹는다면 다른 방향으로도 충분히 출구 전략을 만들어 낼 수 있었지만, 저희는 ‘그 땅’이 경매에 나왔다는 소문을 확인하자마자 곧바로 맹지의 주인에게 연락을 취했습니다. 그리고 그게 제대로 적중했습니다. 정말 이상적이게도, 그 주인은 해외에 살면서 국내의 상황을 잘 모를 뿐만 아니라 때마침 현금이 급한 상황이었거든요.”

운이 좋았다.

맹지의 주인은 해외에서 사업하는 인물이었는데, 맹지는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았을 뿐 그 존재를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2만 평이라고는 하나 애초에 맹지였고 대산 일대는 그리 땅값이 비싼 지역도 아니었다. 그래서 잊고 지내던 땅이, 때마침 현금이 필요할 때 팔겠다는 입질이 들어왔다.

그때는.

호재가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을 때였다.

건설사는 대담하게 맹지를 먼저 매입한 뒤에, 경매에 나온 땅을 2000%에 받는 패기를 보였다.

“그 맹지는 경매에 나온 땅과 합쳐져야 가장 이상적인 모양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희로서는 돈이 더 들어가는 다른 방향성을 찾는 것보다는, 경매 땅에 확실하게 베팅하는 게 더 이득이라고 판단했죠. 경매 땅에 100억이 들었다고 한들. 맹지를 평당 50에 사면 남는 장사이지 않습니까? 만약 경매가 미끄러진다고 한들 그만한 호재면 무조건 이득인 데다, 다른 방향으로도 출구 전략을 확보해 둔 상태였습니다. 결국, 2만 평의 땅이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으니까요.”

그가 진실을 밝힌 이유는 부동산 학원을 창업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썰을 풀어 준 덕분에, 간병인들이 그에 대해 떠들어 댄 덕분에.

경매의 시작부터 그것이 화려한 꽃을 피우는 마무리까지, 김현성은 모든 정보를 알 수 있었다.

고로 이건 매우 간단한 계산이었다.

생각해 보라.

미래에 경매 땅은 평당 3~400선, 그리고 맹지는 아무리 맹지라고 한들 헐값에 사지는 못했을 것이다. 왜냐고? 그만한 가치를 지닌 순간부터 맹지로 어떻게든 활용하려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맹지를 구매할 수만 있다면, 맹지는 그때부터 맹지라고 불리지 않는다.

도로에 붙은 땅과 결합된.

거대하고 매력적인 토지.

그때부터는 맹지의 가격을 최소 200에서 논할 수 있을 것이다.

건설사는 40억짜리 땅을 100억에 사며 60억의 손해를 보았지만, 맹지로 얼마의 이득을 보았을까?

2만 평의 맹지를 평당 50에 구매하면 100억이다.

그리고 그 맹지가 평당 200의 가격에 책정된다면, 맹지의 문제를 해결한 것만으로 무려 400억의 가치를 확보할 수 있다. 60억의 손해가 300억의 이득으로. 그뿐만일까? 땅의 가치만 그렇다는 의미지, 개발이 완료되고 그곳에 빌라 단지가 올라간다면, 또다시 건설의 프리미엄이 붙는다.

이건.

정말 단호하게.

성공할 수밖에 없는 계획이었다.

* * *

김현성이 말했다.

“지금 저평가되었을 때 맹지의 주인과 접촉해서 땅을 매입하세요. 도로에 붙은 땅에 크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것을 보면, 그 주인은 맹지로 뭘 하겠다는 의도가 없을 거예요. 현재 저희가 매입한 땅의 시세가 평당 50 정도라면, 맹지는 반값 아래에서 충분히 낚아챌 수 있어요.”

“알겠어.”

“분명히 명진건설 내부에서는 반발이 있을 거예요. 그런 곳에 왜 빌라 단지를 만드느냐, 대규모 주거 단지 공사 건으로도 정신이 없는데 그런 인력 낭비할 이유가 있느냐. 그런 의문들에 적극적으로 해명할 필요 없어요. 아니, 오히려 고창석이 더욱 날뛰게 내버려 두세요. 그들의 비난이 극에 달했을 때, 그것을 전부 뒤엎어 버릴 호재가 터지면 어떻게 될까요?”

“비난한 사람들이 곤란하게 되겠지.”

“예. 지금의 고창범 씨에게는 ‘건설사 회장’으로서의 능력을 보여 줄 기회가 필요해요. 5천 세대 대규모 공사 건은 사실 시에서 지원받는 상황이라, 정석대로만 일을 처리한다면 절대 실패할 수 없는 계획이에요. 하지만 이 빌라 단지는?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히 고창범 씨의 업적으로 남을 테고, 이득의 폭이 비상식적으로 높으면 높을수록 고창범 씨를 향한 의문의 눈빛들은 단번에 사라지겠죠. 최근 타설 사고로 인한 평판과 실질적인 업무 능력을 보여 준 사람을, 그 누가 부정할 수 있겠어요? 그때부터는 고창석의 이름을, 후계 경쟁 구도에서 지워 버릴 수 있어요.”

“너, 진짜 난놈이구나.”

벌써 몇 번째 감탄인지 모른다.

정보를 파악해서 좋은 땅을 먼저 선점하는 건 간단한 문제다.

그런데 김현성의 계획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땅의 가치를 극대화하는 방향성과 그 무기를 활용해서 후계자 경쟁에 종지부를 찍는 계획까지.

대단했다.

어떻게 17살, 아니 이제 18살이 된 고등학생의 머리에서 이런 계획이 나오는지 알 수 없었다.

동시에.

걱정도 들었다.

고창범이 말했다.

“현성아. 미리 말하는데, 우리 관계에 어떤 불합리함이나 불만족스러운 부분이 존재한다면 언제든지 말해 줘. 난 네가 내 적으로 돌아서는 게 진심으로 무섭거든. 네가 무엇을 바라든 나는 그것을 최대한 맞출 테니, 이득을 위한 거래 관계를 바란다면 날 항상 최우선으로 생각해 줘.”

처음과는 완전히 달랐다.

그때는 고창범이 선택했다.

김현성을 받아들이고, 그에 충분한 대가를 지불하는.

고창범이 무조건 베푸는 입장이었다.

지금은 그렇게 생각할 수 없었다.

아직도 김현성에게 배경적으로나 금전적으로 지원하는 것은 맞지만, 김현성은 이제 상황에 따라 본인이 선택할 수 있다. 고창범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고창석으로. 김판호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른 정치인으로. 이미 충분히 갖춘 것으로 언제든지 상황을 바꿀 힘을 얻었다.

고창범은 단순하나.

눈치는 있었다.

흐름을 읽을 줄 알았다.

고창범의 진심에, 김현성이 담담하게 반응했다.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제가 하려는 일들을 지원해 준다면, 전 끝까지 고창범 씨와 함께할 생각이니까요.”

* * *

상황이 얼추 마무리되었다.

아직은 시간이 필요한 문제였다.

호재는 중순에나 적용될 거고, 맹지를 매입하는 등의 시간이 필요했다.

집으로 돌아온 김현성은, 오랜만에 계획의 틀을 기록해 두었던 노트를 꺼내고 지난날을 되돌아보았다.

개인의 무력, 배경, 세력.

세 가지 포인트였다.

‘첫 번째, 개인의 무력.’

그것은 현재 진행형이었다.

정두철 관장을 통해 죽을 듯이 훈련했고, 시간이 갈수록 점점 강해진다는 확신도 생겨났다.

물론.

강함에 완벽한 준비는 없다.

자신이 아무리 강하다고 한들 상대가 무기를 사용하거나, 혹은 머릿수로 밀어붙인다면 변수가 생길 수밖에 없다. 그래도 이상적인 방향이라고는 생각했다. 처음의 자신은 신영민을 넘을 수 없는 벽으로 보았지만, 지금의 자신은 신영민을 아무렇지도 않게 쓰러트릴 자신이 있었다.

배우니 현실이 달리 보였고, 신영민은 선수로서 그리 대단한 존재가 아니었다.

지금처럼만 하면 된다.

악착같이 훈련한다면, 본격적인 계획을 시작할 1년 뒤에는 완전히 다른 존재로 거듭날 것이다.

‘두 번째, 배경.’

배경의 퍼즐 중.

중요한 건 두 가지였다.

고창범의 돈과 김판석의 권력.

다행히도 문제없이 확보한 상태였다.

고창범은 대산에서의 기반을 마련할 것이고, 김판석은 서울에서의 계획을 튼튼하게 받쳐 줄 것이다.

마지막.

‘세 번째, 세력.’

세력이 필요했다.

이건 조금 복잡한 문제였다.

김현성이 앞으로 진행할 계획에는, 혼자만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있다.

그래서 정찬수를 끌어들였다.

그를 자신의 세력으로 만들어 골든 서클 내부에 침투시켰고, 훗날 골든 서클을 무너트릴 때 주요한 역할을 해낼 것이다. 그것 말고도 ‘학교 폭력’에 대항할 실질적인 세력도 필요했다. 최태준이 전학을 왔을 때 배성호 패거리가 그것을 막아 낸 것처럼, 김현성도 세력을 형성해야 했다.

밑그림은 배성호였다.

그가 1억의 명령을 받아들였을 때부터, 얼추 그를 중점으로 밑그림은 그렸다.

자신의 말 한마디에.

서울로 올라올 대산의 군대를.

하지만 겨우 배성호만으로는 매력적인 그림이 완성되질 않았다.

‘이건 앞으로 2학년을 다니는 동안 완성해야 할 문제야.’

“후우.”

숨을 골랐다.

아직도 부족한 부분이 많았다.

골든 서클이라는 거대한 골리앗을 쓰러트리기 위해서는, 조금의 미흡함도 허락할 수 없었다.

감정을 가라앉혔다.

차분해야 했다.

그래야, 정말 확실하게.

단번에 골든 서클의 목숨을 끊어 버릴 수 있을 테니.

조용하게 반복되는 숨소리와 함께, 김현성의 정신은 심연(深淵)의 어둠 속으로 빨려들었다.

* * *

눈이 내리고.

눈이 녹았다.

봄이 찾아오고, 꽃이 피었다.

시간은 정말 빛처럼 빠르게 지나갔다.

어느덧 3월.

개학의 시기가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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