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대산 정벌 (1)
천일 고등학교 근방.
골목길을 나오면 곧바로 학교 정문이 보이는 위치에서,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너희 그 소문 들었냐?”
“무슨 소문?”
“천일 고등학교 2학년 선배 중에 김현성이라고 있는데, 걔가 진짜 존나 빡세다는데? 천일의 신영민 알지? 근방에서 싸움 잘하기로 유명한 선배인데, 김현성이 1학년일 때 모두가 보는 앞에서 신영민을 개털어 버렸대.”
“헐? 신영민을? 걔 소년원 갔다고 하지 않았나.”
다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김현성이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신영민의 이름은 확실하게 알았다.
예전에 인근 고등학생들과 천일이 시비가 붙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 신영민이 혼자서 5명을 털어 버리면서 엄청난 명성을 떨쳤다. 그래서 항상 ‘대산 최고’가 누구냐는 질문에 신영민의 이름이 거론되었다. 가슴이 들끓는 대산의 고등학생들은 확실한 우열을 가려 보자면서 대대적으로 싸움판을 벌이려고 했었지만, 소문만 무성할 뿐 실제로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확실한 건.
신영민은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였다.
종합 격투기 경력에 그간 켜켜이 쌓아 왔던 싸움 전적은, 그의 이름을 치켜세우기에 충분했다.
쪼그려 앉아 담배를 문.
장혁진이라는 이름의 학생이 말했다.
“뷰웅신들. 그 소문을 다 믿냐? 소문으로는 그 김현성이라는 새끼가 2학년 전부를 털어 버리고 그대로 신영민까지 잡았다는데. 그게 가능할 리가 없잖아. 신영민이 퇴학당하고 소년원에 간 건 맞지만, 김현성이 신영민을 발라 버렸다는 소문은 잘못된 게 분명해. 너희 중에 신영민 직접 싸우는 거 본 사람 있냐?”
“……아니.”
“본 적 없는데.”
“그러니까 그딴 개소리나 내뱉지. 신영민, 진짜 개쩐다고. 걔 주먹질 한 번에 한 명씩 쓰러지는데, 내가 살면서 그 새끼보다 잘 싸우는 사람은 본 적이 없어. 괜히 종합 격투기 선수를 준비하는 게 아니라고.”
담배를 빨아들였다.
장혁진은 중학교 시절부터 상당히 놀았던 학생이었고, 신영민이라는 존재의 무서움을 잘 알았다.
김현성?
소문으로는 들었다.
그런데 하나하나 너무 말이 되지 않는 소문이라, 아무리 주변에서 떠들어 대도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간의 행보가 비상식적이지 않은가. 이해하기 힘들 정도의 영역이라면 보통 거짓일 확률이 높았다. 장혁진으로서는 김현성과 관련한 소문이 만들어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 새끼 분명히…….”
“불 꺼.”
바로 뒤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장혁진은 그제야 친구들의 시선이 자신의 뒤를 향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뭐?”
고개를 돌렸다.
쪼그려 앉아 위를 올려다보자, 생각보다 건장한 체격의 학생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살짝 쫄리는 감정이 들었다. 떡 벌어진 체격은 보통이 아닌 것 같았고, 입고 있는 교복으로 보아 천일의 학생이 분명했다. 순간적으로 머릿속이 복잡하게 뒤얽혔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담배를 던지며 한바탕하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였다.
“죄송합니다, 선배님.”
“야, 그만해.”
친구들이 황급히 말렸다.
장혁진이 당황해 뒤를 돌아보자, 친구가 옷을 잡아끌며 목소리를 낮추었다.
“그만해, 병신아. 명찰 보라고.”
그 말에.
뒤늦게 명찰을 확인했다.
순간, 장혁진의 표정도 빠르게 굳었다.
[김현성]
명찰에 선명하게 박힌 그 이름에, 장혁진은 자신도 모르게 시선을 내리깔고 말았다.
* * *
첫날은 별거 없었다.
간략하게 개학식을 진행하고, 김현성은 곧바로 2~3학년에서 논다는 학생들을 전부 불러들였다.
학교 옥상.
학생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냈다.
배성호는 무리를 이끌고 옥상으로 올라왔는데, 김현성을 발견하고는 당황한 표정을 보였다.
“저게 김현성이라고?”
“맞기는 한데…….”
다들 당황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기억하는 김현성은 그래도 외관상으로는 싸움을 그렇게 잘해 보이지 않았는데, 지금은 방학 전보다 훨씬 근육질로 변해 버렸다. 순간적으로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마른 근육일 때도 파괴적인 모습을 보였던 김현성이, 그동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상상이 되질 않았다.
확실한 건.
더 강해진 것은 분명했다.
특별히 드러내지 않아도, 교복 밖으로 뿜어지는 포스는 이전을 훨씬 뛰어넘었다.
모두 모였다.
천일에서 싸움 좀 한다는 애들이 한자리에 모이자, 김현성이 입을 열었다.
“내가 너희를 부른 이유는 앞으로의 계획을 말하기 위해서야. 예전에 대산의 고등학생들끼리 서로 서열을 겨루려는 자리를 만들려다가, 논의 끝에 무산되었다는 말을 들었어. 자세히 알아보니 자기들끼리 일종의 거래를 했더라고. 괜히 붙어서 서로의 위신을 깎아내릴 바에, 서로의 영역에서 잘해 먹고 잘살자는 의미의 거래. 그렇게 신영민은 천일에서 왕으로 군림했고, 정기적으로 애들한테 수금도 받고 폭력도 행사하면서 자신의 권력을 누렸지.”
유명한 얘기였다.
천일의 신영민.
각 학교에는 그와 같은 존재들이 있다.
대산의 모든 학교가 그렇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신영민과 같이 한 학교를 점령한 ‘머리’들은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생각해 보라. 한 학교의 짱이라는 의미는, 미성년자 시절에 누릴 수 있는 최고의 권력이다. 그런데 괜히 판을 크게 벌일 이유가 없었다.
무엇보다.
승산을 장담할 수 없다는 게 중요했다.
신영민도 엄청난 강자지만, 다른 학교의 머리들도 대체로 그 자리에 오를 만한 힘을 보유했다.
그래서 서로를 존중했다.
신영민과 같이 인정할 만한 머리가 있는 학교는 굳이 건드리지 않았지만, 그렇지 않은 학교의 학생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괴롭혔다. 어차피 뒤탈이 없었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신영민이 학교를 떠나면서부터, 퇴학이든 졸업이든 신영민이 사라진 천일은 별 볼 일 없다는 소문이 돌았다.
“너희도 알다시피 난 신영민 같은 양아치 새끼들을 혐오해. 그래서 천일 내부를 청소했고, 최소한 천일에서는 부당한 폭력이 일어나지 않도록 체계를 갖추었지. 나는, 지금부터 그 범위를 확대할 생각이야.”
“설마…….”
“그래.”
배성호와 눈이 마주쳤다.
당황으로 얼룩진 그에게, 선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앞으로 6개월 안에, 대산의 모든 학교를 정리할 생각이야. 지금의 천일과 똑같은 상태가 되도록.”
* * *
이건 선전포고였다.
아무런 명분 없이, 대산의 고등학교들을 전부 건드려서 정벌해 버리겠다는 무모하고 위험한 계획.
배성호가 말했다.
“……현성아. 난 무조건 널 지지하지만 이건 절대 쉽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야. 신영민이 천일에서 압도적인 강자로 분류되고도 왜 다른 학교들을 건드리지 않은 줄 알아? 거기에도 신영민과 비슷한, 어쩌면 더 강할지도 모르는 머리들이 존재해서 그래. 그래서 각자의 ‘왕국’을 만들어 놓고 서로의 영역을 건드리지 않은 건데, 만약 네가 주도적으로 나서서 걔들을 건드리면 상황이 심각해져. 학교 대 학교의 싸움을 떠나, 먼저 시비를 건 우리를 다 같이 공격할지도 모른다고.”
“걔들이 우리를 다 같이 공격하면.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건데?”
“그야 천일 교복 입고 대산 시내를 못 돌아다니겠지. 그나마 애들이 다른 학교 애들에게 삥을 뜯기지 않는 이유는 신영민이 존재해서야. 물론 네가 신영민보다 더 강하다는 사실을 증명했지만, 단순히 강함만으로 판단할 문제가 아니야. 신영민은 강하면서도 다른 학교와 적당히 선을 지키는 방법을 알았어. 그러니까, 다른 학교도 굳이 신영민의 천일을 건드리지 않았던 거고.”
참.
재밌는 이야기였다.
겨우 고등학생들이, 겨우 미성년자들이 명분이며 세력이며 이런 걸 따진다는 것이.
김현성은 대산의 구도를 조사했고, 그러다 알게 된 사실이 있었다.
지금의 문화.
그러니까 서로의 세력을 구분하는 일은 옛날부터 있었고, 정말 8~90년대에는 서클(circle)이라는 집단을 만들어 조직폭력배와 연계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의 이 현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혈기왕성한 애들이 조직폭력배 놀이를 하는 게 아니라, 골든 서클의 존재를 아는 학생들이 암암리에 그러한 체계를 형성했다.
일종의 아류였다.
서로 세력을 형성하고, 적당한 선을 지켜 주고.
그래야 서로 도움이 필요할 때 주고받을 수가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골든 서클의 정체가 앞으로 수년 뒤에나 밝혀진 것도 정말 대단한 일이었다.
신영민이 용병으로 활동했듯, 대산에도 그러한 케이스가 분명히 존재했다.
그런 사람들이 골든 서클의 존재를 알고, 이렇듯 세력을 형성하는데도 단 한 번도 골든 서클의 존재가 표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다. 정확히는 드러난다고 한들 아무런 사건화가 되지 않았다. 눈이 멀고 귀를 막았다. 권력이라는 건, 대놓고 존재하는 무언가를 없는 것처럼 만들었다.
그간의 체계.
뒤바꿀 것이다.
대산에서 골든 서클의 그림자를 완전히 걷어 내고, 자신의 왕국이 아닌 제국을 건설할 것이다.
김현성이 말했다.
“나는 대산의 쓰레기들을 반드시 뿌리째 뽑아내 버릴 거야. 물론, 너희에게 무조건 날 따르라고 요구할 생각은 없어. 너희로서는 아무런 이득도 없는 ‘내 목적’에 동조할 분명한 명분이 필요하겠지. 단순히 내가 무섭다고 따른다면 그건 진심이 담기지 않을 테니까. 학교 하나마다 오백. 너희에게 오백을 줄게. 그건 알아서 나누어 가지고, 각 학교를 무너트리는 데 큰 공을 세운 사람에게는 백을 따로 챙겨 줄게.”
백 단위의 돈.
다들 눈빛이 변했다.
파블로프의 개처럼, 그들은 모종의 거래에 익숙해져 가고 있었다.
김현성이 웃었다.
“어때? 할 만하지 않아?”
* * *
개학 날 특별한 대화가 오고 간 것과는 달리.
별다를 게 없는 시간이 지나갔다.
방학의 자유로움에서 벗어나 수업에 적응했고, 새로운 친구들과 사귀다 보니 벌써 보름이 흘렀다.
천일의 1학년 1반.
김현성이 떠나 버린 그 교실에서, 한 학생이 친구를 툭툭 건드렸다.
“야.”
빡!
머리를 후려쳤다.
엎드려 자던 친구가 뒤통수를 부여잡으면서 고개를 들자, 장혁진이라는 이름의 학생이 씨익 웃었다.
“졸리냐? 왜? 어제 야동이라도 봤냐?”
“왜 때…….”
빠악-!
쾅!
얼굴이 책상에 박혔다.
고통에 신음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장혁진이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씨발 새끼가 어제부터 눈빛이 존나 재수 없다니까. 야. X 같으면 한번 붙든가. 좀 치냐? 자신 있냐?”
더는 반항할 수 없었다.
방금 얻어맞은 친구는 싸움과는 거리가 먼 일반 학생에 불과하다면, 장혁진은 중학교 때부터 근방에서 제법 유명했다. 그로서는 고등학교에 진학한 지금. 자신의 서열을 확고히 만들고자 먹잇감을 찾았다. 방금 머리를 때린 친구 말고도, 그에게 잘못 찍혀서 맞은 친구가 여럿 되었다.
학기 초기.
익숙한 현상이었다.
서로 누가 강한지, 누가 괴롭힘을 당해도 잘 버티는지, 누가 괴롭힘을 당연하게 해도 되는지.
그런 서열이 정리되는 시간이었다.
장혁진은 지난 며칠 동안 자신의 폭언에 반항하는 친구들을 실제로 때려눕혔고, 점점 본인의 서열이 완성되어 가고 있었다. 1학년의 포식자. 지금 그를 바라보는 시선이 그랬다. 대놓고 친구에게 시비를 걸고 머리를 때렸는데도, 1반의 학생들은 눈치를 살필 뿐 어떠한 말도 하지 않았다.
‘병신들’
웃음이 나왔다.
대산은 좁았다.
역시나 고만고만한 수준이라, 장혁진은 어렵지 않게 1학년은 먹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였다.
드르륵.
탁.
문이 열렸다.
순간 고개를 돌린 장혁진은, 의외의 인물을 발견하고는 표정이 굳었다.
김현성이었다.
그를 필두로 배성호 무리가 나타났는데, 김현성의 시선이 반 내부를 훑더니 갑자기 장혁진이 있는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우뚝.
“네가 장혁진이야?”
눈치를 살폈다.
아직도 김현성의 업적은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 뒤에.
‘괴물 고릴라 배성호.’
유명한 선배였다.
신영민만큼은 아니더라도, 배성호가 얼마나 싸움을 잘하는지를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었다.
분위기가 이상했다.
그래서 순순히 대답하려는데.
“맞네.”
김현성이 말을 툭 내뱉었다.
그와 동시에.
빠악-!
“악!”
콰당!
김현성이 그대로, 장혁진의 복부를 걷어차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