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대산 정벌 (2)
우당탕!
땅바닥을 굴렀다.
책상과 한데 뒤엉켜 나가떨어진 장혁진이, 고통에 이를 악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왜 씨발 나한테 지랄이야?”
이판사판이었다.
김현성이고 뭐고.
맞았는데 참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득달같이 달려들며 주먹을 휘두르자, 김현성이 가볍게 피하더니 장혁진의 뺨을 날려 버렸다.
빠악-!
섬뜩한 소리였다.
손바닥으로 뺨을 때리는 게 아니라, 뭔가 부서지는 듯한 강렬한 소리와 함께 장혁진은 다리에서 힘이 풀리고 말았다. 그제야 알았다. 김현성의 소문은 절대 거짓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따귀만으로도 이 정도의 파괴력을 보이는 상황에, 장혁진은 주저앉은 채로 일어나질 못했다.
그때.
“애들아, 우리…….”
김현성 너머로.
김영철의 모습이 보였다.
여전히 1반의 담임을 맡은 그가 무의식적으로 교실에 들어왔다가, 눈앞의 상황을 발견했다.
그러고는.
“아차차, 할 일이 있었지.”
자연스럽게 백스텝을 밟았다.
뺨이 떨어져 나갈 것 같은 고통도, 김영철의 물 흐르는 듯한 퇴장도.
장혁진으로서는 낯선 경험이었다.
그가 멍한 눈빛으로 올려다보자, 김현성이 차갑게 말했다.
“네가 왜 맞는지 알아?”
“……모, 모르겠어요.”
“지난 보름간 천일 고등학교에 입학한 신입생들에 관해서 조사했어. 중학교 때 어떤 학창 시절을 보냈는지, 천일에 입학하고 애들을 괴롭히지는 않았는지. 그중 네가 제일 쓰레기더라. 중학교 때부터 애들을 때리고 다녀서 전학시킨 애만 둘에, 천일에서도 똑같은 짓거리를 반복한다는 얘기를 들었어.”
슥.
고개를 숙였다.
시선을 마주쳤다.
“야. 넌 뭔데 애들을 괴롭히냐?”
“……예?”
“천일에서는 학교 폭력이 허락되지 않아. 뭐, 단순한 감정싸움까지는 내가 관여하지 않지만, 너처럼 아무런 이유 없이 폭력을 행사하는 새끼들은 절대 가만히 두지 않는다고. 그래서 널 찾아온 거야. 혹시라도 그동안 살아왔던 것처럼 쓰레기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녀석들이 있다면, 지금의 널 보고 본보기로 삼으라고.”
순간.
불길함이 들었다.
그 생각이 채 끝나기도 전에, 김현성이 장혁진의 머리칼을 움켜쥐었다.
콱.
“아악!”
머리를 찍어 눌렀다.
그러고는.
짜악!
짜악, 짜악!
뺨을 날렸다.
얼굴이 터지고, 피를 토해 내는 그 모습에.
선배들은 익숙한 얼굴로, 신입생들은 경악한 눈빛으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 * *
소문이 순식간에 퍼졌다.
1학년 학생들이 모일 때면 모두 장혁진 사건에 대해 떠들었다.
“와, 대박.”
“진짜 애들을 괴롭힌다고 그렇게까지 때렸다고? 소문이 사실이었나 보네. 전에 아는 선배한테 들은 얘기인데, 김현성이 천일을 먹고 나서 학교 폭력을 완전히 금지했다고 들었거든. 김현성이 양아치 새끼들한테는 진짜 악마 같은 존재라서, 단 한 명도 그 규율을 어기지 않는다던데. 그게 사실일 줄은 몰랐네.”
“난 눈앞에서 그 광경을 봤거든? 완전 살벌하더라. 장혁진이 달려들다가 뺨을 한 대 얻어맞는데, 진짜 뭐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니까.”
일반 학생들에게는 희소식이었다.
학기 초기 특유의 서열 싸움에, 싸움을 싫어하는 학생들은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장혁진이라는 선례가 나오자마자 학교 폭력이 싹 사라졌고, 덕분에 그날부터 편하게 학교에 다닐 수 있었다. 원래 학교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은 선생님이 아니다. 법에 얽매여 섣부르게 움직이지 못하는 그들보다, 당장에라도 소각장에서 몽둥이를 들 수 있는 선배가 더 무서운 법이었다.
고로.
김현성의 존재감이 양아치들을 짓눌렀다.
그리고 천일에 다니면서, 김현성에 관한 소문의 진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게 전부 사실이라고요?”
“야. 내가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잖아. 그날, 김현성이 2학년 패거리랑 소각장으로 가더니, 혼자서 걔들 전부 때려눕히고 신영민을 불러들였어. 그때가 천일의 판도가 바뀐 날이야. 김현성의 주먹 한 방에 신영민이 피를 흩뿌리면서 넘어가는데, 와. 진짜 보고도 믿기지 않더라. 정 의심되면 2학년 위로 아무나 잡고 물어봐. 그때의 그 사건은 천일 전체가 지켜봤었으니까.”
“그뿐만인 줄 아냐. 김현성이 진짜 악랄한 게, 신영민을 완전히 짓밟아 버리겠다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신영민의 팔을 부러트렸어. 그런데 학교에서 어떻게 나온 줄 알아? 김현성의 폭력은 언급도 하지 않고 신영민의 퇴학, 땅땅! 그러니까 잘 생각해. 다른 학교는 모르겠는데 천일에서 학교 폭력이고 뭐고 지랄했다간, 장담하는데 그 1학년 새끼 일은 아무것도 아닐 거야.”
선배들의 말.
소문을 부풀렸다.
양아치들로서는 더는 친구들을 괴롭힐 수 없었다.
신영민과 같은 유명한 존재도 처참하게 발렸다는데, 누구에게 물어도 똑같이 대답하는 ‘그때의 사건’을 듣고도 대체 어떻게 반항하겠는가. 현실에 순응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 괴물 고릴라라고 불리는 배성호도 순순히 명령을 따르는 상황에, 이제 막 고등학교에 입학한 신입생들로서는 반항할 만큼 간이 크지 않았다.
그런데.
그 와중에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
선배들과 친한 양아치들이 이런 말을 했다.
“그런데 그거 알아? 김현성 선배가 곧 대산의 학교들을 전부 정리한다던데. 만약 그 일에 관심이 있다면 누구든 지원하래. 그리고 김현성이 많이 잔인하기는 해도 보상 같은 건 정말 확실하대. 만약 이번 일에 앞장서서 공을 세운다? 그럼 곧바로 통장에 몇백씩 빡빡 꽂히는 거지.”
대산 정벌.
대산에서 유례없는 그 일이, 조금씩 표면 위로 드러나고 있었다.
* * *
배성호가 말했다.
“대산에 있는 고등학교는 총 60개, 그중 여자 고등학교가 11개야. 만약 우리가 대놓고 대산 정벌이라는 목표를 드러낸다면 우리에게 반발할 학교는 열두 개 정도. 딱 그 열두 학교만 신영민과 같은 머리를 필두로 세력을 형성하고 있어. 뭐, 세력이라고 하기도 애매하지. 그냥 자기들끼리 뭉쳐서 애들을 괴롭히는 집단인데, 중학교 때부터 패싸움을 즐겨 하는 애들이 대부분이라 반발할 게 분명해.”
지난 며칠.
배성호에게 주변 판도를 조사하라고 명령했다.
서울 강남과는 다르게, 대산은 그래도 골든 서클의 영향력이 대단하지는 않았다.
서울은 이미 학교마다 세력을 형성하는 체계가 자리잡혔고, 서로 주기적으로 붙으며 서열을 정리하기도 했다. 배성호가 말한 열두 학교는 그에 비하면 조족지혈(鳥足之血)이었다. 서울의 세력처럼 골든 서클의 의뢰를 전문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아류 느낌으로 양아치들이 뭉친 정도. 그렇다 한들 대산을 정벌하는 일이 쉽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열두 학교에 대해서도 따로 조사해 봤는데 다들 만만치는 않아. 절반 정도는 그나마 어깨에 힘이 들어간 양아치 정도라면, 나머지 절반은 진짜야. 그중에 정보통신 고등학교의 머리는, 신영민이랑 아마추어 경기에서 붙은 적이 있었대. 신영민은 매번 판정패로 억울하게 졌다고 말하지만, 그쪽 얘기를 통해서 들어 보면 그쪽 짱이 압도적으로 이겼다는 말이 많아.”
“고생했어.”
“그런데,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야? 열두 학교를 전부 쓸어버리려면 절대 쉽지 않을 텐데.”
배성호와 별개로.
김현성도 주변을 알아보았다.
고창범을 통해 전문 인력을 동원했는데, 정보통신 고등학교의 머리는 신영민과 마찬가지로 골든 서클과 연관이 있는 것 같았다. 골든 서클의 용병. 의뢰를 완벽하게 수행해서 보상도 받은 모양이었고, 그를 중심으로 퍼지는 묘한 분위기에 대산도 ‘강남’처럼 조금씩 변해 가고 있었다.
머지않았다.
고등학교가 세력화되고, 대가를 받아서 의뢰를 수행하는.
교육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강남의 쓰레기 같은 현실이, 지방인 대산의 뿌리까지 닿는 것이.
배성호가 말을 덧붙였다.
“설마 그냥 시비를 걸 생각은 아니지? 그건 진짜 아니야. 되도록 명분을 내세워서 한바탕 붙어야, 그나마 다른 학교 애들이 연합하는 걸 막을 수 있어. 이건 천일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이 아니잖아. 섣부르게 움직였다간 우리가 오히려 당할 수도 있어.”
진심 어린 걱정이었다.
김현성이 하려는 일.
실패한다면 천일은 지옥을 경험할 것이다.
신영민이 사라지고 김현성으로 인해 모두에게 찍히면, 천일의 교복을 입었다는 이유로 대산 고등학생들에게 괴롭힘을 당할 게 분명했다. 배성호로서도 절대 바라지 않는 일이었다. 본인에게 불똥이 튄다는 사실을 떠나, 나름대로 소속감이 있는 그는 천일이 무사하기를 바랐다.
일련의 상황.
김현성이 가만히 하늘을 바라보았다.
옥상에 그와 배성호만이 존재했고, 푸르른 하늘에 묘한 안정감이 들었다.
‘벌써 반년이 넘었네.’
9월부터 지금까지.
많은 일을 벌였다.
이번 대산 정벌을 성공리에 마무리한다면, 김현성은 비로소 자신만의 제국을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김현성이 말했다.
“일단은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울 생각이야. 방법은 간단해. 대산에 그런 쓰레기들이 존재한다면, 빛과 그림자처럼 당연히 피해자도 존재하겠지. 그 피해자들이.”
웃었다.
앞으로 벌어질 일에, 상상만으로도 즐거웠다.
“우리의 명분이 되어 줄 거야.”
* * *
대산의 한 SNS 페이지.
‘대산에서 알려드립니다’라는 이름의 페이지에 한 글이 올라왔다.
[지금부터 대산의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학교 폭력에 관한 제보를 받습니다. 본인이 어느 학교고, 어떤 괴롭힘을 당했으며, 괴롭힘을 주도한 사람이 누구인지. 상황을 정확하게 정리해서 메일을 보내 주면 받은 것 이상으로 반드시 복수해 드립니다. 당연히 모든 과정은 익명으로 진행되나, 절대 제보한 내용 중에 거짓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만약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제보자도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게 될 겁니다.]
그 글이 올라왔을 때.
사람들은 진지하게 반응하지 않았다.
내용이며 진지한 문체가, 어그로를 끌려는 게 분명했다.
-젴ㅋㅋ봌ㅋㅋ를ㅋㅋ받ㅋㅋ습ㅋㅋ닠ㅋㅋ닼ㅋㅋ랰ㅋㅋ.
-ㄹㅇ 신박하다. 어떤 새끼인지는 모르겠지만, 자기가 뭐라고 제보를 받는다는 거야.
-이것이 바로 대산의 ‘배트맨’인 건가. 어둠의 다크 히어로.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사회의 악을 박멸하는 존재. 개지랄이네, 진짜. 이딴 장난 칠 생각에, 제발 본인 엄마부터 챙겨라. 엄마 속 다 타들어 가는 거 안 보이냐?
-여기 제보할 사람?
-장난으로 제보해 볼까. 진짜 해 주는지, 아닌지.
단 하루.
금방 다른 게시물에 밀려났지만, 그 하루만큼은 상당한 이슈가 되었다.
대부분 조롱이었다.
원래 SNS 페이지는 실없는 소리나 낚시성 글들이 자주 올라왔기에, 어떤 미친 새끼가 심심해서 글을 올렸다고 생각했다. 애초에 SNS 페이지 관리자도 일반인에 불과하다. 일반인이 익명이나, 혹은 본인의 동의하에 이름을 공개하고 대신 글을 올려 주는 장소. 신빙성 따위는 전혀 보장받을 수 없는 공간이다 보니, 누구도 이 글이 진지한 의도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이 글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내가 ‘궁예’ 해 줄까? 분명히 학교에서 개처럼 맞은 찐따 새끼가, 아픈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갔는데 괴롭힘을 당했던 순간이 생각난 거지. 침대에 이불을 덮고 누웠는데 막 몸을 움찔거리면서. 허공에 주먹질, 발길질 날리면서 이렇게 일진 새끼들을 쓰러트리면 나란 놈 개멋지겠지, 이렇게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가 핸드폰에 글을 쓰기 시작한 거지. 그러니까 이딴 똥글에 관심 가지지 마라. 괜히 익명이랍시고 제보했다가 본인이 특정돼서 공개되면? 오히려 X 되는 수가 있어. 그냥 찐따의 망상이면 그래도 웃고 넘어갈 수 있는 문제인데, 극악무도한 새끼가 함정을 판 거면 제보한 것만으로도 문제가 된다고.
-위 댓글 ㅇㅈ.
-신빙성 있네.
-일진 새끼들이 함정을 파 놓은 거면 진짜 소름이네.
그렇게.
해당 글은 점점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누군가의 장난이거나, 혹은 일진의 함정이라고 생각하자 글을 올린 의도는 힘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그로부터 며칠이 흘렀다.
이제는 글을 찾아볼 수 없었다.
새로운 글에 밀려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때까지도, 사람들은 SNS 페이지의 글이 절대 진짜라고는 믿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