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대산 정벌 (3)
대산 제일 고등학교.
일명 제일고.
그곳의 교무실에서, 정적을 무너트리는 고성이 울려 퍼졌다.
“성대현. 너, 진짜 애들 돈 훔쳤어?”
“…….”
“야, 이 새끼야. 계속 입 다물고 있으면 상황이 해결된다고 생각해? 네가 애들 가방 뒤적거리는 걸 본 사람이 한둘이 아니야. 대답해. 대답 안 해?!”
2학년 3반의 담임.
중년의 남성인 그가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점심시간에 절도 사건을 전해 들은 이후, 그는 범인으로 예상되는 성대현을 불러들였다.
이미 목격자들로 인해 사실이 확인된 상황이지만, 성대현은 아무리 추궁해도 끝까지 입을 다물었다.
“그래,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지금 당장 부모님에게 전화해서…….”
“죄, 죄송해요, 선생님! 다시는 그러지 않을게요.”
“다시는? 그럼 했다는 말이네?”
“……죄송해요.”
“하아.”
담임이 이마를 부여잡았다.
짜증이 치밀었다.
성대현이 아니길 빌었는데, 그가 사실을 인정하자 배신당한 기분이 들었다.
“너 진짜 왜 그러는 거야? 1학년 선생님들이 네가 정말 착한 애라고 말해서 웬만해서는 믿고 싶지 않았는데,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 큰돈을 훔친 거야? 50만 원이야, 무려 50만 원! 그 돈을 훔치고도 들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 일단 돈부터 내놔.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면 널 어떻게 처벌할지는 그 이후에 생각할 테니까.”
“…….”
“왜 또 말이 없어. 대답 안 해?”
“……돈을 잃어버렸어요.”
“뭐?”
방금 대답.
담임의 인내심을 무너트렸다.
성대현의 평판이 어떻든 말든, 이 상황에서 그의 말을 믿을 사람은 없었다.
“그러니까 50만 원을 훔쳐 놓고 지금까지 발뺌하다가, 막상 절도 사실을 들키니까 50만 원을 잃어버렸다? 너 그거 믿으라고 하는 말이지? 넌 진짜 안 되겠다.”
콱.
귀를 잡았다.
고통스러워하는 성대현을 교무실 구석으로 데려가더니, 그를 내팽개치며 바로 옆에 있는 몽둥이를 하나 집어 들었다. 학생들 사이에서 엑스칼리버라고 불리는, 낡고 길쭉한 몽둥이에 성대현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렸다.
담임이 말했다.
“엎드려뻗쳐. 넌 좀 맞아야겠다.”
* * *
외진 골목길.
남녀가 뒤섞인 한 무리의 학생들이, 성대현을 세워 놓고 낄낄거리며 웃어 댔다.
“야, 그러게 왜 도둑질을 하고 그래. 부모님께 못 배웠어? 그런 건 나쁜 짓이라고? 내가 가방에서 정확히 돈을 꺼내는 네 모습을 보지 못했으면, 다른 애들이 누명을 쓸 뻔했잖아. 다음부터는 그냥 구걸을 해, 구걸을. 돈이 없으니까 제발 적선 좀 해 달라고, 큭큭큭.”
“너 같은 애들 때문에 제일고가 양아치 학교라고 불리는 거야. 친구 돈이나 훔치는 좀도둑 같은 새끼.”
머리를 툭툭 밀었다.
한껏 조롱하던 그들이 시선을 마주치는 순간, 그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빵- 터져 버렸다.
“크하하핳.”
“개웃기네, 진짜.”
그들이 웃는 이유.
성대현은 너무나도 잘 알았다.
바로 그들이 범인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들의 우두머리격인 안홍진은, 50만 원으로 추정되는 지폐 다발을 눈앞에서 대놓고 흔들었다.
“그런데 엉덩이 많이 아프냐? 담임 눈 돌아서 졸라 때렸다며. 바지 벗어 봐. 엉덩이 좀 보자.”
순간.
바닥에 고정된 성대현의 두 눈이 붉게 충혈되었다.
하지도 않은 절도를 자백하게 만들더니, 이제는 여자애들이 보는 앞에서 바지를 벗으라고 말했다. 흥미롭다는 눈빛으로 쳐다보는 여자애들의 시선. 진심으로 수치스러웠다. 만약 그에게 용기라는 것이 존재했다면, 안홍진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을 것이다. 아니, 여기서 도망이라도 쳤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지난 1년.
정확히는 4년.
대산의 한 중학교에 진학했던 성대현은, 안홍진을 처음 만난 날부터 지금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괴롭힘에 시달렸다. 학교에서 가만히 있다가 얻어맞는 것은 일상이었고, 매점 심부름이나 숙제 심부름도 전부 성대현의 몫이었다. 정말 지옥 같은 나날이었다. 어떻게든 살아 보겠다고 꾸역꾸역 버텨 낸 성대현은, 중학교 졸업장을 받는 날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의 해방감이 들었다.
드디어 끝났다.
안홍진에게서 벗어나 새로운 고등학교에 진학한다면, 이제는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입학 첫날.
정확히 같은 학교에, 그것도 같은 반에.
안홍진이 자신을 발견하고는 반갑게 웃는 그 모습을, 성대현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었다.
“오, 성대현. 여기서 만나네?”
현실은 시궁창이었다.
희망은 개뿔, 고등학교에서도 괴롭힘은 계속되었다.
성대현을 모르던 친구들도 ‘안홍진’을 통해 성대현이 약자라는 사실을 확인했고, 새로운 인간관계를 쌓기도 전에 제일 밑바닥으로 추락했다. 모두가 성대현을 만만하게 보았다. 성대현이 절도범이 아니라는 사실을 모두가 아는데도, 그를 위해 나서 주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이를 악물었다.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리고 고개를 들었을 때.
“……바지는 좀 봐주면 안 될까? 진짜 잘할게.”
성대현은 애써 웃어 보였다.
입가가 파르르 떨리고 눈은 붉게 충혈되었지만, 절대 안홍진의 심기를 건드리는 행동은 할 수 없었다.
안홍진의 표정이 굳었다.
“새끼. 살 만하나 보네? 명령도 거절할 줄 알고.”
콱.
턱을 붙잡았다.
뭐라고 변명하기도 전에, 성대현의 얼굴을 찍어 누르고는 뺨을 날려댔다.
“내가 말했지.”
짜악!
“내 명령은 절대적이라고.”
짜악!
“대현이 요즘 살 만한 것 같은데, 다시 옛날 기억나게 해 줘? 중학교 때, 비 오는 날에 옷 다 벗고 나한테 무릎 꿇고 빌지 않았었나? 내가 다시 개지랄하게 전에.”
짜악-!
“제대로 해, 대현아.”
슥.
한발 물러났다.
지켜보겠다는 그 눈빛에, 성대현은 퉁퉁 부은 뺨을 부여잡고는 울음을 삼켰다.
안홍진은 우는 걸 싫어했다.
울면 더 때린다는 사실을 알았다.
“……알겠어.”
그때부터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았다.
세상이 정지된 것만 같았고, 차가운 바람이 다리를 스쳤다.
한껏 비웃는 남자들의 반응과 꺄악 비명을 질러 대는 여자들의 웃음소리에, 생각이라는 게 완전히 멈춰 버렸다.
* * *
끼익.
집으로 돌아왔다.
1층은 분식집이고, 내부 계단을 통해 2층에 거주하는 형태였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성대현의 모습에, 떡볶이를 만들던 엄마가 떡볶이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말했다.
“아들. 밥은? 밥 챙겨 줄까?”
“됐어.”
“됐긴 뭐가 됐어. 사내자식이 말이야. 시도 때도 없이 팍팍 먹어야 살도 찌고, 키도 크고 그러는 거지. 이리 와서 빨리 앉……. ”
“아, 됐다고! 엄마는 진짜 왜 분식일 따위나 해서 날 힘들게 하냐고!”
빽 소리를 질렀다.
엄마가 뭐라 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성대현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2층에 있는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콰앙-!
방문을 닫았다.
엄마가 방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문을 잠가 버리자, 아니나 다를까 따라 올라온 엄마가 문고리를 돌리는 소리가 들렸다.
탕탕.
“대현아, 그게 대체 무슨 말버릇이야.”
탕탕.
“학교에서 무슨 일 있었어? 엄마랑 얘기 좀 해. 대현아, 대현아!”
귀를 닫았다.
참담한 기분이었다.
스스로도 알았다.
엄마에게 이렇게 말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어렸을 적에 아빠는 바람이 나서 집을 떠나 버렸고, 엄마는 분식집을 운영하면서 홀로 자신을 키웠다. 정말 좋은 사람이었다. 아빠가 없다고 해서 부족함을 느끼지 않도록, 성대현이 원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해 주었다. 그 증거로 성대현의 방에는 최신식 컴퓨터가 보란 듯이 갖추어져 있었다.
눈물이 났다.
원망하고 싶지 않지만, 오늘처럼 절망스러운 날에는 괜히 불똥이 다른 곳으로 튀었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난 절대 엄마가 분식집을 한다고 말하지 않았을 거야.’
중학교 1학년 때.
성대현은 친구들을 분식집으로 데려왔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그게 대단한 권력이었고, 분식을 팍팍 퍼 주는 엄마의 모습이 정말 자랑스러웠다. 그때는 인기도 많았다. 떡볶이를 하나라도 더 얻어먹으려는 친구들이 살갑게 대해 주었지만, 중학교에 진학하고 안홍진을 만났을 때부터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분식집 아들이라는 사실이.
빼앗을 게 많은 조건으로 변해 버렸다.
성대현은 매일 안홍진을 위한 간식을 챙겼고, 엄마가 없는 날에 아무렇지도 않게 집에 찾아와서는 주방을 전부 털어 버렸다. 볼일을 보고 돌아온 엄마가 집이 왜 이런 꼴이냐고 화를 내면. 진실을 말할 수 없는 성대현으로서는, 그 전에 전부 치우거나 엄마의 분노를 감당해야만 했다.
대체.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분명히 자신은 특별히 잘못한 게 없는데, 왜 이런 시궁창 같은 삶을 살아야 하는 걸까.
‘그냥 죽어 버릴까?’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그냥 죽는다는 상상을 하자마자, 식은땀이 이마에 맺혔다.
손목을 긋든, 옥상에서 떨어지든.
너무 아플 것 같았다.
‘내가 왜 죽어. 내가 잘못한 건 하나도 없는데. 죽을 바에, 차라리 칼로 안홍진을 찔러 버릴까?’
그것 또한.
용기가 없었다.
너무 착해서 싸움 한번 해 보지 않은 성대현인데, 어떻게 칼로 사람을 찌를 수 있겠는가.
죽을 만큼의, 남을 찌를 만큼의 용기와 독기가 존재했다면.
뭐라도 할 수 있었다면 지금까지 참고만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씨발, 진짜 X 같네.”
얼굴을 감싸 쥐었다.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에, 그로서는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그때였다.
띠링.
핸드폰 소리가 들렸다.
퉁퉁 부은 눈으로 핸드폰 화면을 확인하자 익숙한 메시지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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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일까.
성대현은 뭐에 홀린 듯이, 자신도 모르게 핸드폰에 손을 뻗었다.
* * *
황당한 이야기였다.
“……대신해서 복수를 해 준다고?”
댓글 반응처럼.
말이 되지 않았다.
어떤 미친 새끼가 학교 폭력을 대신 복수해 준단 말인가.
찐따의 망상이거나, 정말 어쩌면 일진 새끼들이 장난을 치는 것일지도 몰랐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진짜 사실일까?’
성대현은 좀처럼 시선을 떼지 못했다.
정말 만약에.
이게 사실이라면.
성대현으로서는 주저할 이유가 없는 일이었다.
4년이 넘도록 안홍진을 저주해 왔던 그는, 항상 잠자리에 들 때면 꿈속에서 안홍진을 피떡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런 일을 대신 해 주겠다는 의미다. 스스로 자살할 용기도, 대항할 용기도 없는 겁쟁이일지라도, 누군가가 복수를 대신 해 주는 희망 정도는 품을 수 있지 않은가.
평소라면 관심을 껐을 것이다.
일말의 희망보다는 혹시 모를 두려움 때문에, 절대 더 위험해질 수도 있는 일을 자처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미 그런 경험이 있었다.
안홍진의 괴롭힘이 너무 심해서, 그때 친했던 친구에게 힘들다고 하소연했었다. 차라리 선생님에게 말해서 해결하는 게 어떻겠냐고. 정말 친구니까 할 수 있었던 그 비밀스러운 이야기는, 안타깝게도 안홍진의 귀로 흘러 들어갔다. 나중에 들은 말인데, 성대현의 친구도 괴롭힘을 당하는 존재다 보니 안홍진에게 얻어맞다가 자기가 살려고 비밀을 털어놓았다고 했다.
참담한 경험이었다.
진심을 말했다는 이유로.
진심을 들켰다는 이유로.
개처럼 맞았다.
그때의 일이 트라우마처럼 살아났지만, 오늘은 그간의 고통보다 순간의 감정이 더 앞섰다.
절도범이 되고.
바지를 벗고.
불효자가 되었다.
이보다 최악은 없었다.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성대현은 장문의 메일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저는 대산제일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입니다. 때는 4년 전, 처음 안홍진이라는 애를 만났을 때부터…….]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고를 반복했다.
저녁부터 쓰기 시작한 메일은, A4용지로 30장이 넘어가는 분량을 채우고서야 마침내 마침표를 찍었다.
그리고 그 글을.
탈칵.
메일로 전송했다.
마우스에서 손을 떼자 파르르 떨리는 손이 보였다.
그게, 성대현이 쥐어짜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용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