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惡의 등교-92화 (92/130)

19. 대산 정벌 (4)

그날 이후로 성대현은 꿈을 꾸었다.

미지의 존재가 나타나 복수를 해 주는 꿈.

처참하게 짓밟히는 안홍진의 모습을 바라보며, 성대현은 눈물이 날 만큼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꿈에서 일어나고 나면.

빠악!

“개새끼가, 돌았나.”

강렬한 고통이 육체를 파고들었다.

복부를 얻어맞은 성대현이 무릎을 꿇더니, 토를 하듯 진득한 침을 흘려 댔다.

“……끄어억.”

“내가 분명히 말했지. 돈 구해 오라고. 씨발, 너 때문에 이번 주말 약속 파투 나면 다 책임질 거야?”

현실은 시궁창이었다.

머리채를 잡혀 골목길로 끌려온 성대현은, 악에 받친 안홍진의 목소리에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안홍진과 그 뒤로 패거리의 모습이 보였다. 극심한 고통에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지만,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는다면 더한 고통이 찾아온다는 사실을 알았다.

“호, 홍진아. 미안한데, 진짜 그만한 돈은 없……악!”

콱.

안홍진이 멱살을 틀어쥐었다.

그러고는.

“그럼 죽어, 개새끼야.”

퍼억!

퍼억, 퍼억, 퍼억!

얼굴에 주먹을 날려 댔다.

한 대 한 대 얻어맞을 때마다 얼굴이 점점 엉망으로 변했고, 몸에서 힘이 풀려 측 늘어져 버렸다. 차라리 이대로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을 용기는 없으니, 안홍진 패거리에게 살해당한다면 이들이 그만한 죗값을 치르지 않겠는가. 그렇게 정신줄을 놓아 갈 그때, 안홍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애새끼가 돈이 없으면 그 애미라도 족쳐야지.”

벌떡.

안홍진이 일어났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딘가로 걸음을 옮기려는 안홍진의 모습에, 성대현은 본능적으로 말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황급히 바짓가랑이를 붙잡았다.

그것 말고는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꽈악.

“아, 안 돼. 홍진아, 제발. 우리 엄마는 건드리지 마. 이건 아니잖아. 나 하나로 끝내면 되잖아!”

“되긴 뭐가 돼? 네가 돈을 구해 왔으면 될 일을 네가 망친 거야.”

“개새끼야! 제발 그만하라고!”

“뭐?”

안홍진의 표정이 변했다.

마치 악마와도 같이, 얼굴 가득 비릿한 웃음을 보였다.

“지금 개새끼라고 했어?”

“아, 아니. 실수했어. 진짜 실수야. 내가 잠깐 미쳤나 봐.”

“실수라고 하자. 그런데 실수했으면 대가를 치러야지? 실수를 그냥 넘어갈 만큼 세상이 만만하진 않잖아?”

평소와는 달랐다.

살의 어린 그 눈빛에, 성대현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정말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금까지는 죽어도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죽는다는 생각에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아직도 이유는 알 수 없다.

왜 이런 일을 경험해야 하는지.

자신이 대체 무엇을 잘못했는지.

중학교 애들을 분식집으로 데려간 건 순수한 호의였고, 안홍진에게도 떡볶이를 먹으라면서 환한 웃음을 보였다. 이 악마 같은 존재는. 호의를 왜 이렇게 악랄하게 이용하는 걸까. 와르르 무너지는 성대현의 세상 속에서, 안홍진은 바짓가랑이를 붙잡은 손길을 뿌리치더니 다시 폭력을 이어 나가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

타타탁.

빠악-!

“크악!”

어디선가 달려온 누군가가, 그대로 안홍진을 걷어차 버렸다.

* * *

당황스러운 상황이었다.

옆에서 낄껄거리며 상황을 지켜보던 패거리가, 갑작스러운 방해꾼의 등장에 담배를 바닥에 던졌다.

“홍진아!”

“시발, 너 뭐야!”

“개새끼가 뒈질라고.”

안홍진이 바닥에 나가떨어졌다.

그는 고통에 신음하며 좀처럼 일어나질 못했고, 친구들은 당장에라도 방해꾼을 찢어발길 기세로 앞을 막아섰다. 그래도 섣불리 달려들지는 않았다. 안홍진이 나가떨어진 모양새도 그렇고, 다수를 마주하는데도 전혀 움츠러들지 않는 모습은 무언가 있는 것 같았다.

패거리 중 한 놈이 소리쳤다.

“우리 학교는 아닌 것 같은데. 누군데, 씨발 남의 학교 일에 개입하고 지랄이야.”

“나?”

방해꾼이 피식, 웃었다.

“대현이 친구인데?”

“친구?”

“이 새끼한테 너 같은 친구가 있었다고?”

믿기지 않았다.

중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성대현을 끊임없이 괴롭혀 왔다.

이렇게 대담하게 들이받을 친구가 있었다면, 분명히 이전에 문제가 생겼을 것이다.

대화는 거기까지였다.

상대가 정말 성대현의 친구라면, 안홍진 패거리는 이대로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그래, 그렇다고 치고. 넌 뒈졌어.”

“개새끼가!”

타다다닥.

안홍진 패거리가 달려들었다.

여자애들은 따로 없었고, 안홍진을 제외하고 총 다섯 명.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오는 악의를 마주 보며 방해꾼, 아니 김현성은 차분한 눈빛을 보였다.

슥.

공격을 피했다.

그리고.

빠악-!

얼굴에 주먹이 작렬했다.

단 일격에 선두에서 달려들던 패거리가 무너져 내렸고, 뒤에서 달려들던 다른 패거리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그들이 조잡하게 뻗는 주먹질은 전혀 통하지 않았다. 김현성은 공격을 하나하나 가볍게 흘려보내더니, 정확히 서로가 맞물리는 순간 주먹질 한 번으로 상대를 침몰시켰다.

휙.

빠악-!

“커억.”

이빨 몇 개가 날아갔다.

다섯 명이 전부 쓰러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정신을 차린 안홍진이 같이 싸우려다가, 눈앞의 광경을 확인하고는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다.

“……이게 무슨.”

멍청이가 아니고서야 본능적으로 알았다.

눈앞의 저 존재.

절대 이길 수 없는 상대라는 사실을.

일어나지도, 그렇다고 주저앉은 상태도 아닌 애매한 그 모습에, 김현성은 그를 향해 달려들더니 그대로 니킥을 작렬시켰다.

콰직.

피가 튀었다.

얼굴이 뭉개지며 뒤로 넘어갔다.

털썩!

정확히 1분.

안홍진 패거리를 정리하는 데 걸린 시간이었다.

김현성은 옷에 묻은 피를 탁탁 털어 내며, 멍한 얼굴로 바라보는 성대현에게 말했다.

“괜찮아?”

* * *

어안이 벙벙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존재가 나타나 안홍진 패거리를 쓸어버렸다.

김현성과 같이 골목길을 벗어난 성대현은, 한산한 놀이터에 도착하고서야 진실을 들을 수 있었다.

“네가 메일 보냈잖아.”

“메일? 설마?”

소름이 돋았다.

며칠 전에 보냈던 메일은 그냥 희망 사항일 뿐이었다.

진심으로 진실이라고 믿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때의 상황이 너무 답답하고 힘들어서 뭐라도 해야만 했다. 사실 메일을 보내고 정말 후회했었다. 혹시라도 자신이 특정되어 불이익이라도 당할까 봐, 메일을 취소하는 방법 같은 것들을 열심히 검색했다. 그런데 이미 보내 버린 상황에 어찌할 방법이 없었고, 며칠 동안 답장도 없어서 그냥 찐따의 장난이라고 생각했다.

그 일이.

이렇게 돌아올 줄은 몰랐다.

김현성이 말했다.

“네 메일을 정독하고 무슨 생각이 든 줄 알아? 세상 참 X 같다고 생각했어. 너나 안홍진이나 똑같은 학생에 불과한데, 한쪽이 힘이 더 세다는 이유로 네가 왜 그런 고통을 감당해야 해? 몇몇 사람들은 우리가 받은 고통을 ‘철없는 어린 시절의 장난’으로 치부하지만, 이건 절대 간단한 문제가 아니야.”

“……우리?”

“그래, 우리.”

의외였다.

안홍진 패거리를 때려눕힌 모습.

그리고 훤칠한 외모만 보더라도, 김현성은 어디에서 괴롭힘을 당할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 우리라니.

김현성은 성대현에게서 전생의 자신을 투영했다.

오혜지의 순수한 악의로 인해, 김현성은 끝없는 나락 밑으로 떨어져야만 했다.

“뼛속 깊이 각인된 고통은, 공포는 트라우마로 남겠지. 가해자 새끼들은 낄낄거리면서 죄의식 없이 잘 살아가겠지만, 우리는 앞으로 어떤 성취를 거두더라도 학창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는 순간 식은땀을 흘리는 그런 삶을 살게 될 거야. 그래서는 안 돼. 그런 일이, 현실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되어서는 안 된다고. 그런데 웃긴 건 피해자들에게는 해결책이 없다는 거야.”

사람들은 말한다.

왜 참고 있느냐고.

대항하라고.

참지 않고 대항하면 말한다.

참지 그랬냐고.

폭력을 폭력으로 대항하는 건 잘못되었다고.

“피해자로서는 참는 것도, 그렇다고 대항하는 것도 답이 되진 않아. 참으면 끝까지 괴롭힘이 이어질 거고, 대항해서 일이 잘 풀리면 다행이지만 오히려 더한 폭력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지. 아니면, 감당하지 못할 폭력에 ‘전과자’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고. 분명한 사실은 뭘 선택하든 피해자의 인생은 이미 시궁창에 빠졌다는 거야.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문제를 해결하려는 일련의 상황이, 거기에 소모되는 시간과 피해가 전부 일방적이라고. 넌 원하지 않았잖아. 네 인생에 그런 고통이 있기를 바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잖아. 누군가의 악의로 인해 넌 고통을 겪고 해결해만 하는 순간에 놓여 버린 거야. 내가 만든 SNS 페이지는 그런 X 같은 현실 때문에 탄생했어.”

성대현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멍하니 바라보는 그 눈빛을 마주 보며.

“그래서 말인데, 나랑 거래 하나 할래?”

김현성은 악의로 일렁이는 눈빛을 숨기지 않았다.

* * *

다음 날.

안홍진 패거리가 누군가를 대동하고 걸음을 옮겼다.

안홍진의 형.

안홍렬이었다.

사실 안홍진은 싸움을 그렇게 잘하지 않았는데, 중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학교 짱을 놓치지 않았던 안홍렬 덕분에 그 후광을 이용할 수 있었다. 안홍렬로서는 동생의 참담한 얼굴을 확인하고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안홍진의 안내에 따라, 그가 2학년 3반 교실로 찾아갔다.

드르륵.

탁.

“성대현이 누구야?”

“쟤야, 형.”

“쟤?”

제일 앞자리에.

성대현이 앉아 있었다.

보복을 생각해서 학교를 빠질 줄 알았는데, 대담하게도 평소와 똑같이 학교에 나왔다.

안홍렬이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러고는 일언반구 특별한 말도 없이, 다가가는 걸음을 그대로 살려서 성대현의 뺨을 날렸다.

빠악-!

콰당!

“크윽.”

바닥에 나가떨어졌다.

안홍렬이 사나운 얼굴로 말했다.

“일어나.”

“……왜 때리는 거야?”

“왜? 하, 참. 지금 이유를 몰라서 물어?”

안홍진을 끌어왔다.

그 얼굴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씨발, 내 동생 얼굴을 이렇게 만들어 놓고 그냥 넘어갈 줄 알았어? 네 친구 어느 학교 다니는 새끼야? 네 친구부터 죽여 버릴 거니까, 조금이라도 덜 맞고 싶으면 친구 신상 전부 말해.”

“……감당할 수 있겠어?”

“뭐?”

이상했다.

성대현은 생각보다 침착했다.

선배에게 반발하는 것도 그렇고,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옷을 탁탁 털었다.

슥.

핸드폰을 건넸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한 반응이었다.

“내 친구 번호야. 걔가 말했는데, 너희가 이렇게 우르르 몰려오면 직접 전화하라고 했거든. 전화 걸어 봐. 그럼 내 친구가 누구인지, 어느 학교에 다니는지, 뭐 하는 놈인지 알 수 있을 테니까.”

손이 파르르 떨렸다.

애써 침착하려 했지만, 성대현은 이 상황이 너무나도 두려웠다.

그리고 동시에.

비현실적이었다.

안홍진도 아니고 안홍렬을 상대로 이럴 수 있다는 사실에,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해 보라고.”

어제 오후.

김현성과의 거래가 체결되었다.

허무맹랑한 그 이야기에, 성대현은 순간적으로 현실의 굴레를 벗어나는 느낌을 받았다.

이건 꿈이었다.

모든 게 이루어지는 꿈.

꿈속에서만큼은 절대 물러나고 싶지 않았다.

떨림이 멈추었다.

현실과 꿈의 경계 속에서, 성대현이 핸드폰을 더 보란 듯이 내밀었다.

“해 봐, 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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