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惡의 등교-94화 (94/130)

19. 대산 정벌 (6)

선을 넘었다.

동생의 팔이 꺾이며 고통스럽게 울려 퍼지는 비명에, 안홍렬은 더는 인내심을 유지할 수 없었다.

“이 개새끼가.”

“죽여!”

지금부터는 이판사판이었다.

김현성이고 뭐고.

더는 참을 수 없었다.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서 최대한 평화적으로 나가려던 것이지, 그렇다고 천일고를 상대로 패배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안홍렬은 2년 전의 핏덩이가 아니다. 그동안 수많은 싸움을 치르며 제일고 정상의 자리를 차지했기에, 머릿수부터 딸리는 천일고를 발라 버릴 자신이 있었다.

그가 내뱉은 욕이 신호였다.

제일고 학생들이 일제히 달려들자, 김현성 뒤에 서 있던 천일고 학생들도 똑같이 달려들었다.

명령은 없었다.

김현성은 느긋했다.

여전히 안홍진의 팔을 꺾는 모습에, 그를 공격하려던 제일고 학생의 얼굴이 뒤로 튕겨 나갔다.

빠악-!

배성호였다.

배성호가 가장 선두에서 달려들던 제일고 학생을 한 방에 보내 버리더니, 뒤따라 달려드는 적들에게도 연달아 주먹을 휘둘렀다.

빠악!

빠악, 빠악!

큼지막한 주먹이 작렬할 때마다 섬뜩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괴물 고릴라라는 명성답게, 고등학생의 피지컬을 넘어선 그의 파괴력은 일반적이지 않았다. 순식간에 3명을 보내 버렸다. 바닥에 쓰러진 제일고 학생들은 신음을 흘리며 일어나지 못했지만, 배성호로서는 겨우 이 정도의 성과에 만족하지 못했다.

‘보너스는 무조건 내 거야.’

김현성이 말했다.

한 학교를 무너트릴 때마다 오백.

그리고 가장 큰 공을 세운 인물에게는 백을 주겠다고.

선배로서 자존심을 버리고 김현성을 따른 순간부터, 배성호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는 돈이었다.

“씨발.”

훅.

주먹을 흘려보냈다.

덩치와는 다르게 날렵한 동작으로 공간을 파고들더니, 배성호의 주먹이 다시 한번 얼굴에 작렬했다.

빠악-!

피가 튀었다.

희열이 짜르르 올라왔다.

신영민에 이어 김현성.

두 괴물의 등장으로 배성호는 전혀 빛을 보지 못했지만, 그는 절대 호락호락한 존재가 아니었다. 그런데 도드라지는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은 배성호만이 아니었다. 배성호가 선두에서 제일고를 휩쓸어 버리는 동안, 그와 비슷하게 적들을 쓰러트리는 존재가 있었다.

툭.

얼굴에 잽이 닿았다.

거리가 파악되는 순간, 뒤이어 작렬하는 스트레이트에 제일고 학생의 얼굴이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빠악-!

김시우였다.

김시우는 차분하게 눈앞에 보이는 적을 처리하더니, 수적 우위는 개의치 않고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자 제일고에서 한 100kg 정도 되는 녀석이 달려들었다. 박진우와의 싸움을 연상하게 만드는 강력한 태클이었지만, 그가 몸을 붙잡으려는 순간 얼굴에 니킥이 작렬했다.

콰직!

지난 몇 달.

김시우는 지옥 같은 훈련을 감당했다.

일대일, 난전, 태클 등등.

수많은 상황을 대비한 그에게 있어, 박진우와 같은 방식으로 당하는 일은 없었다.

‘앞으로 일상적으로 감당해야 할 일이야. 내가 조금이라도 나약한 모습을 보인다면, 현성이는 절대 나를 끼워 주지 않겠지.’

절대.

그럴 일은 없었다.

김현성을 홀로 두고 싶지 않았다.

배성호와 같은 무리를 형성했지만, 대가로 형성된 관계 속에서 자신과 같은 진심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확신도 있었다. 훈련을 거듭할수록, 선수로서 활동했던 육체 능력이 살아날수록, 제일고 학생들을 차례로 쓰러트릴수록. 김시우는 자신이 강하다는 확신이 생겨났다.

난전이었다.

두 학교가 뒤얽혀 치열한 싸움을 벌였다.

그 광경에, 안홍렬은 상당히 당황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 * *

약 15 대 30.

두 배나 되는 머릿수다.

안홍렬은 당연히 제일고의 우위를 생각했는데, 분위기가 예상과는 달랐다.

‘뭐야? 천일이 이렇게 강했다고?’

배성호와 김시우.

둘의 존재감이 부풀었다.

일당백이라도 되는 것처럼 제일고 학생들을 차례로 박살 냈고, 안홍렬은 둘을 상대로 선뜻 승리한다고 장담할 수 없었다.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천일고 일반 학생들의 기세도 심상치 않았다. 마치 목숨이라도 건 것처럼, 득달같이 달려드는 기세에 팔뚝에 소름이 돋아났다.

그로서는 진실을 몰랐다.

돈이 걸린 싸움.

마음가짐 자체가 달랐다.

천일고의 학생들은 단순한 충성심이 아니라, 이 싸움이 끝나고 받을 ‘보너스’에 광기를 보였다.

15명밖에 나오지 않은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우르르 몰려들면 확실한 승리를 쟁취할 수 있겠지만, 겨우 제일고를 상대로는 그렇게까지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숫자는 적으면 적을수록 나누는 돈도 많아진다. 15명은 천일고에서 나름대로 선별한 인원이었고, 김현성도 충분한 전력이라고 판단해서 15명만을 대동했다.

더는.

지켜볼 수만은 없었다.

안홍렬도 앞으로 나섰다.

천일고 학생이 안홍렬을 발견하자, 보너스를 탈 기회라고 생각했는지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휙.

빠악-!

단 한 방.

천일고 학생이 나가떨어졌다.

바닥에 쓰러진 그가 이를 악물며 일어나려고 하자, 안홍렬의 발차기가 그대로 얼굴에 작렬했다.

빡!

섬뜩한 소리였다.

지금의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쭙잖은 손속으로는 불가능하다.

안홍렬의 표정이 악귀처럼 변했다.

그가 앞으로 걸어가며 차례로 천일고 학생을 상대했고, 선전하던 학생들은 어김없이 안홍렬의 주먹 몇 방에 피를 흩뿌렸다. 안홍렬의 명성은 괜히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중학교 때부터 명성을 떨쳤던 그는, 고등학교 3학년으로 올라오는 과정 동안 점점 스스로를 완성시켰다.

“씨발 새끼들이 어디서 깝치고 지랄이야.”

빠악-!

이 싸움.

제일고가 승리할 것이다.

배성호든 누구든.

자신이 모조리 쓸어버릴 것이다.

그렇게 앞으로 치고 나가는 그때, 안홍렬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한 존재를 발견했다.

김현성이었다.

의식을 잃어버린 안홍진을 바닥에 덩그러니 내버려 둔 채, 그가 드디어 이 혼란한 싸움에 개입했다.

‘저 새끼만 처리하면 끝이야.’

팟.

타다닥.

땅을 박찼다.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막아서는 천일고 학생들을 쓰러트리며, 그대로 김현성까지 처리하려고 했다.

그런데.

툭.

얼굴에 주먹이 닿았다.

분명히 가벼운 잽이었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마치 망치에라도 얻어맞은 것처럼 안홍렬의 얼굴이 뒤로 튕겨 나갔다.

터엉-

‘……?!’

그로서는 알지 못했다.

벌크업.

김현성은 지옥 같은 시간을 감당해 냈다.

70kg이었던 몸무게를 80kg까지 늘렸고, 지방을 조금씩 깎아 내며 근육량을 늘려나갔다. 지금의 김현성은 몇 달 전의 김현성과는 완전히 달랐다. 똑같은 주먹질이라도 분출하는 파괴력이 달랐고, 그것은 ‘겨우 잽’일 뿐이라도 안홍렬에게 차원이 다른 파괴력을 선사했다.

비틀.

균형을 잃었다.

안홍렬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 파악된 거리를 파고들며 주먹이 작렬했다.

빠악-!

그것이.

안홍렬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 * *

세상이 빙글 돌았다.

머리가 몽롱했고,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콱.

머리채를 잡아끌었다.

시야가 위로 딸려오자, 뒤늦게 주변 상황이 보였다.

“끄으…….”

“끄윽.”

제일고.

그들이 모두 쓰러져 있었다.

천일고에게 완전히 정리당한 상태였고, 김현성은 안홍렬의 머리를 붙잡은 채로 귀에 핸드폰을 가져다 댔다.

[말은 똑바로 해야지. 네 동생이 먼저 내 친구를 건드렸고, 그래서 내가 대가를 받아 낸 것 같은데. 아니야?]

그건 녹취였다.

김현성이 떡밥을 던지자, 안홍렬은 안홍진이 성대현을 건드린 것을 인정하는 듯한 발언을 내뱉었다. 누가 먼저 건드렸든 말든 네가 건드린 사람은 내 동생이라는 발언. 그리고 욕설과 동시에 협박성 발언은, 길지 않은 통화였지만 성대현과 안홍진의 관계를 엿보기에는 충분했다.

김현성이 말했다.

“너도 알다시피 징계위원회는 피해자의 증언만으로도 이루어질 수 있어. 거기에 이런 증거 자료까지 더해진다면, 너희의 징계는 불가피하겠지.”

“……뭐, 뭐 하자는 거야?”

말을 더듬거렸다.

이미 압도당했다.

창백하게 질린 얼굴에, 김현성이 웃었다.

“간단해. 오늘 있었던 일은 제일고 학생들이 서로 싸우다가 벌어진 일이야. 누가 얼마나 다쳤든 그건 우리와는 전혀 무관하고, 만약 이에 대해서 발설한다면 너희는 그만한 대가를 치르게 될 거야. 물론 앞으로 대현이는 물론이고 제일의 그 누구를 괴롭혀도 결과는 똑같아. 너희는 징계위원회를 통해 퇴학 처리를 당할 거고, 제일고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 길거리에서 나를 마주하게 되겠지.”

탁.

얼굴을 틀어쥐었다.

놀라서 아등바등하는 안홍렬의 볼을 강하게 누르며, 억지로 그의 입을 벌리게 했다.

“대답.”

“으어, 으어어.”

말할 수 없었다.

입을 벌리는 바람에, 말이 정상적으로 나오지 않았다.

“아직 살 만한가 보네. 대답이 없는 걸 보면.”

탁.

이빨 하나를 붙잡았다.

오늘의 일.

확실한 선례를 남길 것이다.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자신을 상대하면 어떤 결과를 감당해야 하는지.

안홍렬과 같은 쓰레기 새끼들에게, 앞으로의 나날이 얼마나 고통스러울지를 보여 줄 것이다.

꽈악.

“끄, 끄윽. 끄아아아악!”

이빨을 강하게 당겼다.

그 강력한 힘에, 쌩으로 이빨이 뽑혀 나가는 고통에.

안홍렬이 비명을 질렀다.

그가 고통에 발악하며, 제대로 발음되지도 않는 혀를 열심히 놀려 댔다.

“아, 아겠어. 네, 네 마대로 조심하…… 아아아아악!”

꽈득.

이빨을 뽑았다.

입을 부여잡고 얼굴을 처박는 안홍렬의 모습에, 김현성은 광기로 얼룩진 눈빛으로 이빨을 툭 던졌다.

“대답이 늦었잖아.”

* * *

세상이 변했다.

다음 날, 학교에 나간 성대현이 느낀 감정이었다.

어제 있었던 사건으로 인해, 더는 성대현을 괴롭히는 친구들이 없었다.

오히려.

“미, 미안.”

“지나갈게.”

시선을 마주칠 때면.

먼저 시선을 피했다.

분명히 며칠 전만 하더라도 성대현에게 욕설을 내뱉으며 때리던 애들이었는데, 복도를 지나가다가 어깨를 부딪쳤는데도 사과가 먼저 나왔다. 허탈한 기분이 들 정도였다. 지난 4년 동안 정말 악마처럼 보였던 존재들이, 나약한 표정을 드러내며 자신과 최대한 멀어지려고 했다.

제일고에 소문이 퍼졌다.

안홍렬 패거리가 완전히 박살이 났고, 애들을 괴롭히면 김현성이 가만히 있지 않는다는 소문이.

성대현은 혼자 동떨어졌다.

늘 괴롭힘을 당하던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다가오는 친구들이 생길 리 만무했다.

그런데도.

“……학교가 이렇게 평온한 곳이었구나.”

웃음이 나왔다.

눈시울이 붉어졌다.

학교는 그에게 있어 지옥이었다.

학생으로서의 본분이자, 한시라도 존재하기 싫은 공간.

그곳에 더는 불안한 마음으로 존재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붉어지는 눈시울을 감출 수 없었다.

문득.

김현성과의 대화가 떠올랐다.

“그래서 말인데, 나랑 거래 하나 할래?”

그날, 김현성은 두 가지 선택지를 말했다.

“네가 원한다면 안홍진 패거리가 더는 너를 건드리지 못하게 만들어 줄게. 그게 너로서는 가장 안전한 선택일 거야. 그동안 당했던 것만큼 확실하게 복수한다면, 네 속은 편안해지겠지만 악연은 끊어 낼 수 없겠지. 내가 아무리 도와준다고 한들 너는 제일고의 학생이고, 내가 매번 모든 위험을 막아 내 준다고는 장담할 수 없어.”

현실적인 조언이었다.

도와주는 게 반드시 피해자를 위한 방법이 아닐지도 모른다.

단순히 단발성 도움으로 끝나 버린다면, 그 이후의 미래는 온전히 피해자가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그런데 난, 네가 허락만 한다면 쓰레기 같은 새끼들의 뿌리를 완전히 뽑아내 버리고 싶어. 위험을 감당할 최소한의 각오와 네 존재를 드러내는 것. 두 가지만 받아들인다면, 안홍진을 포함해 제일고 전체가. 더는 학교 폭력을 행하지 못하도록 처참하게 짓밟아 줄게. 분명히 말해 줄 수 있는 사실은 네가 어떤 선택을 하든, 이미 시궁창에 빠져 버린 네 과거는 변하지 않는다는 거야.”

그때의 그 눈빛.

강렬하게 들끓는 목소리.

잊을 수 없었다.

죽음까지 생각했던 성대현은, 매료되듯 후자를 택하겠다고 말했다.

김현성의 말은 현실이 되었다.

안홍렬 패거리는 처참하게 털렸고, 이빨이 뽑혀 나가는 과정을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지켜보았다. 감히 김현성에게 대항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 겨우 고등학생들로서는 기껏해야 치고받는 수준의 각오만 되어 있을 뿐, 정말 사람을 죽일 것 같은 악의를 다시는 상대하기 싫었다.

수업이 끝났다.

왁자지껄 떠드는 친구들 속에서, 성대현은 홀로 핸드폰을 켰다.

약속을 지킬 차례였다.

김현성은 위험을 감당할 최소한의 각오와 ‘자신의 정체, 자신의 이야기’를 드러내 달라고 말했다.

모두가 알도록.

모두가 믿도록.

SNS 페이지를 켰다.

‘쓰레기 새끼들이 다 죽어 버렸으면 좋겠어.’

지금부터는 익명에서 벗어나, 이 실제 사례를 사람들에게 알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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