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惡의 등교-95화 (95/130)

19. 대산 정벌 (7)

학교 폭력을 대신 응징해 주겠다는 글.

다 식은 떡밥이었다.

이미 한참 뒤로 밀린 글에, 사람들은 그 이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SNS 페이지에 새로운 글이 올라왔다.

[저는 제일고 2학년에 재학 중인 학생입니다. 지금으로부터 며칠 전, 저는 이 페이지를 통해 학교 폭력을 대신 응징해 주겠다는 글을 확인했습니다. 처음에는 믿지 않았습니다. 겨우 SNS 페이지를 통해서 이런 일을 한다는 게 말이 되지 않았고, 타인을 위해 나서는 선의 따위를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때의 제게는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시작되었던 괴롭힘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고, 그날은 여자애들이 보는 앞에서 바지까지 벗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연락했습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제가 겪은 고통을 메일로 보냈습니다.]

장문의 글이었다.

본인의 이름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진실을 판단할 수 있을 만큼의 정보는 흘렸다.

[……그렇게 저를 괴롭히던 애들은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정말 황당하게도 제일고에서 만연하던 학교 폭력이 단번에 사라졌습니다. 누군가는 제 경험이 허무맹랑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일고 상황을 아는 사람들은, 어느 순간 제일고의 분위기가 바뀌었다는 걸 알 수 있을 겁니다. 이 자리를 빌려 말씀드리고 싶은 부분이 있습니다. 저를 대신해 복수한 사람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피해자들은 이 지옥 같은 현실에서 벗어나든, 벗어나지 못하든. 그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이미 인생이 시궁창에 빠져 버린 것이라고. 적어도 타인의 인생을 나락으로 빠트린 개새끼들에게 똑같은 지옥을 보여 주고 싶다면, 한 통의 메일이면 충분합니다. 그때는, 당신의 상상이 현실이 될 겁니다.]

그 글.

난리가 났다.

순식간에 조회 수가 폭발했다.

후기성 글이라는 사실에 관심이 집중된 것도 있지만, 거기에 더불어 제일고 학생들이 댓글로 진실임을 증명했다.

-이거 진짜임. 얼마 전만 하더라도 안XX 패거리가 애들을 엄청 괴롭히고 다녔는데, 갑자기 어디서 얻어터지고 오더니 아무도 괴롭히질 않음. 소문으로는 다른 학교 애들에게 개털렸다고 들었는데 그게 이 페이지랑 관련된 거였나?

-제보자 누구인지 알겠네. 성XX 아님? 얘가 글을 쓴 거면, 이 페이지도 진짜일 확률 매우 높음.

-와, 진짜 개대박이네. 이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을 줄이야.

이름은 의도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혹시라도 사건이 크게 번질 경우 발뺌을 하기 위해서도 있지만, 김현성은 추측과 진실을 확정하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생각했다. 제일고의 학생들은, 대산의 학생들은. 주변을 통해 성대현이 제보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겠지만, 적어도 인터넷상에서 실명을 전시할 필요는 없었다.

관심은 들불처럼 번져 나갔다.

단 한 번의 사례.

단 한 번의 성공.

관심을 보이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그러한 관심은 수많은 제보 메일로 직결되었다.

* * *

으슥한 골목길.

담배를 물고 있는 한 무리의 학생들이, 핸드폰 앞에 옹기종기 모여 떠들었다.

“이거 진짜 사실이려나?”

“아마도 진짜일걸. 내가 제일고 친구에게 물어봤는데, 안홍진이라고 제일고 쓰레기가 어느 순간부터 애들을 괴롭히지 않고 있대. SNS 페이지 글이 마냥 허무맹랑하지는 않다는 의미지. 문제는 제일고를 털어 버린 애들이 ‘천일고’ 애들인데, 얘네가 대체 왜 그런 일을 벌였냐는 거지.”

“이유가 뭔지는 몰라도 할 일 없는 병신들이기는 하네.”

일련의 상황.

그들로서는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단순한 방관자로서 지켜보기에는, 그들의 마음에 일말의 불안감이 존재했다.

“설마 우리도 문제가 되는 건 아니겠지?”

“굳이? 안홍진 사건이야 제보자로 추정되는 애랑 천일고가 연관이 있어서 벌어진 일인 것 같은데, 아무런 접점도 없는 우리를 찾아오진 않겠지. 만약 우리에게 괴롭힘을 당한 ‘누군가’가 우리를 제보했다고 해도 내가 그냥 당하고만 있겠냐?”

“하긴.”

“그래, 씨발. 내 앞에서 개소리 지껄이면 그냥 죽빵각인 거야. 큭큭큭.”

그때까지만 해도.

제일고 사건은 해프닝에 불과했다.

연속성이 있는 것이 아닌, 단발성으로 끝날 이벤트.

담배를 전부 피우고 골목길을 빠져나오려는데, 거대한 그림자가 앞을 막아섰다.

“뭐야?”

“비켜.”

짜증이 일었다.

대놓고 길을 막는 모양새였다.

그런데 짜증 섞인 반응에도, 앞을 막아선 사람은 싸늘한 목소리로 물었다.

“네가 모용호야?”

“나 알아?”

“알지. 제보자가 보낸 메일에 의하면, 모용호 네가 매일같이 괴롭혔다고 했어. 아무런 이유 없는 폭력에 피멍이 사라질 날이 없었고, 네가 절도를 강요하는 바람에 경찰서를 들락거린 것도 수차례. 교차 검증을 통해 확인한 결과 제보가 ‘진실’임이 확인되었어. 네 생각은 어때. 맞아?”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방금 SNS 페이지에서 보았던 글이 번뜩 떠오르며, 모용호는 자신이 제보되었음을 확신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친구와 시선을 슥 마주치더니, 동시다발적으로 달려들었다.

“그래서 뭐 어쩔 건데.”

“씨발 새끼가 어디서 지랄이야.”

타타탓.

악의가 넘실거렸다.

잔혹한 진실 앞에.

가해자들은 현실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것이 아닌, 폭력이라는 간단한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익숙했다.

얼굴을 가리고 있던 후드를 벗더니, 김현성이 모용호 일행을 그대로 맞닥트렸다.

확.

콰직!

“크악!”

골목길 안.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그곳에서, 그때부터 고통스러운 비명이 울려 퍼졌다.

* * *

갑작스러운 습격.

그건 한 군데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안홍렬과 같이 패거리를 형성한 경우면 모르겠지만, 개개인으로 다니는 잔챙이들은 각개격파로 부서트렸다.

빠악!

“악!”

얼굴이 홱 돌아갔다.

배성호의 강력한 주먹에 맥없이 나가떨어졌고, 배성호는 그에 그치지 않고 바로 옆에 있던 녀석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흡.”

단번에 딸려 왔다.

반항할 방법이 없었다.

빠악!

퍽, 퍽, 퍽!

얼굴을 내리쳤다.

계속되는 주먹질에 얼굴이 처참하게 변했고, 몸은 축 늘어져서 완전히 힘을 잃어버렸다. 그런데도 배성호의 강력한 근력은 상대를 놓아주지 않았다. 완전히 피떡으로 만들어 버리고서야 쓰레기를 던지듯이 툭 던져 버렸고, 주변을 둘러보자 남학생 세 명이 시체처럼 널브러져 있었다.

핸드폰을 꺼냈다.

그러고는 담담한 얼굴로 문자 한 통을 보냈다.

[이기철, 해결]

다른 장소.

그곳도 똑같았다.

김현성처럼, 배성호처럼, 느닷없이 습격한 김시우가 혼자서 네 명의 학생을 상대했다.

“개새끼가.”

훅.

상대의 반격이 매서웠다.

빠르게 치고 들어오며 사방에서 주먹을 뻗었지만, 김시우는 일련의 상황이 전혀 위협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이번 게릴라 작전. 김현성은 목표물들을 빠르게 처리하기 위해서 천일고 학생들을 무리 지어 보냈지만, 배성호와 김시우 같은 경우에는 홀로 움직이게 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혼자서도 충분할 테니까.

웬만한 목표물이 아니고서야, 둘의 힘이라면 충분히 해결하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빠악!

얼굴에 하이킥이 작렬했다.

상대가 실이 끊긴 인형처럼 쓰러지자, 김시우는 인파이트로 파고들며 다른 애들의 얼굴도 날려 버렸다.

퍽!

빠악, 빡!

순식간이었다.

김현성과 지옥 같은 훈련을 경험한 그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파괴력을 보였다.

모두 처리했다.

김시우는 바닥에 널브러진 목표물 몸 위에 주저앉았다.

털썩.

“끄으.”

목표물이 신음하든 말든.

신경 쓰지 않았다.

핸드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냈다.

[양준혁, 해결]

핸드폰을 다시 챙겨 넣었다.

아픈 모양인지 계속 꿈틀거리는 양준혁의 움직임에, 김시우가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왜? 아파?”

“……끄으으.”

짜증이 치밀었다.

김시우가 일어나 다시 멱살을 잡아끌었다.

“의뢰 메일을 확인하니까 아주 가관이더라. 때리고, 돈을 뺏고, 그것도 모자라서 팔뚝에 담배빵을 남기고. 때릴 땐 좋았지? 그런데 그거 알아? 너 같은 새끼들은 이제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을 거야.”

김현성의 악의.

그것에 전염되었다.

심연을 들여다볼수록, 김현성을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김시우의 눈빛이 사납게 변했다.

“왜냐고? 내가,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만들 거거든.”

빠악!

빠악, 빠악, 빠악!

때렸다.

때리고, 또 때렸다.

상대를 완전히 피떡으로 만들어 버리고서야, 김시우는 모자를 푹 눌러쓰고는 골목길을 빠져나갔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대산은 생각보다 넓었고.

처리해야 할 쓰레기들은 많았다.

* * *

대산 정보통신 고등학교.

일명 통신고.

그곳에도 소문이 하나 흘러 들어갔다.

“해민아. 천일의 김현성이라는 새끼가 이번 일을 주도한다는데 어떻게 할 거야? 돌아가는 분위기를 보니, 우리에게도 화살이 돌아올 게 분명하다고. 우리가 그동안 괴롭힌 애들이 한둘이 아니잖아.”

친구의 말에.

정해민이 피식 웃었다.

“그렇긴 하지.”

김현성의 행보.

진실이 드러날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 성대현이 후기를 올릴 때만 하더라도 추측성 소문이 떠돌았지만, 김현성을 필두로 목표물들을 차례로 박살 내면서 진실이 표면 위로 드러났다. SNS 페이지에 학교 폭력을 응징하겠다는 글을 올린 사람은 김현성이고, 그가 안홍렬을 시작으로 진짜 움직이고 있다는 진실.

거북한 행보였다.

정해민과 같은 가해자들에게는 지금의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김현성이 신영민을 쓰러트렸다는 거. 진짜야?”

“확인해 봤는데 진짜기는 해. 그날, 천일의 전교생들이 지켜봐서 거짓말일 수가 없어.”

“난놈이기는 하네. 1학년 때 신영민을 쓰러트리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대산 전체를 들쑤시다니.”

신영민.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정해민은 아마추어 시합에서 신영민을 만났고, 판정승으로 그를 쓰러트리기는 했으나 신영민이 만만치 않은 존재라는 사실을 알았다. 물론 딱 그 정도였다. 그렇다고 신영민이 본인보다 강하다는 것은 아니기에, 김현성이 들쑤시고 다니는 상황을 위협적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거슬리는 새끼를 가만히 둘 이유는 없겠지.”

김현성이 왜 이런 일을 벌이는지는 알 수 없었다.

확실한 건, 김현성이 제보를 받아 움직인다면 언젠가는 통신고까지 도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당연한 예상이었다.

통신고.

대산의 꼴통들이 모두 모인 이 학교에는, 다른 학교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의 학교 폭력이 만연하게 이루어졌다. 단순하게 돈을 뺏고 때리는 정도가 아니라, 치료할 수 없는 수준의 가학적인 폭력 행위와 절도, 범죄 등. 정해민은 피해자들을 벼랑 끝까지 몰아넣었다. 이유는 특별하지 않았다. 그저 심심해서, 뭔가가 필요해서. 그에게 학교 폭력은 일종의 유희였고, 자신이 가진 이 강력한 권력을 누군가에게 빼앗기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랬기에.

그에게 골든 서클의 의뢰가 들어오기도 했었다.

목표물이 손목을 긋고 자퇴하면서 성공적으로 마무리했기에, 통신고는 여전히 정해민의 손아귀에 있었다.

“안홍렬에게 전화해 봐.”

“왜?”

정해민이 씨익, 웃었다.

“지금 아주 재밌는 생각이 떠올랐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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