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惡의 등교-97화 (97/130)

19. 대산 정벌 (9)

정말 이례적인 상황이었다.

아무리 정해민이라고 해도 모두가 부름에 응할 이유가 없건만, 김현성이라는 공동의 적에 단 한 명도 빠짐없이 약속 장소에 모습을 드러냈다. 대산 바닥을 잘 아는 사람들이라면 놀랄 만한 라인업이었다. 통신고의 정해민뿐만 아니라, 근방에서 이름 좀 날린다는 고등학생들이 모두 모였다.

정해민이 말했다.

“너희도 돌아가는 상황을 잘 알 거야. 천일고의 김현성이, 피해자들을 앞세워 대산에 있는 고등학교들을 차례로 정리하고 있어. 우리도 언젠가는 그 대상이 되겠지. 아니라고는 하지 마. 나나 너희나, 이 자리에 있는 모두 친구들을 괴롭힌 경험이 한두 번이 아니잖아? 누군가가 우리에 대해 제보한다면, 김현성은 그간 해 왔던 것처럼 반드시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낼 거야.”

“그래서 우리를 불러 모은 이유가 뭔데?”

농업 고등학교의 유정현이었다.

정해민의 부름에 응한 것만으로도, 유정현을 포함한 모두는 본인들이 쓰레기라는 사실을 잘 알았다.

정해민이 유정현을 바라보았다.

“김현성, 정리하자.”

“……다 같이 공격하자는 의미야?”

“그래. 김현성은 지금 노골적으로 대산의 고등학교를 전부 장악하려고 하고 있어. 단순하게 피해자들의 복수로 끝낼 생각이라면, 각 학교를 통제하는 체계를 강요하지는 않았겠지. 지금의 김현성을 처리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경험해야 할 미래야. 우리는 천일 고등학교 소속도 아닌데, 바로 내 눈앞에 있는 병신을 때리기 전에 김현성의 경고를 한번 되새기게 될 거야. 이 얼마나 X 같은 일이야? 우리가 왜, 알지도 못하는 새끼의 경고에 손을 내려야 하냐고.”

다들 눈빛이 변했다.

동의하는 반응이었다.

정해민과 마찬가지로 각자의 학교에서 왕으로 군림하는 그들은, 지금의 체계가 유지되기를 바랐다.

“그런데 그냥 김현성을 습격해서 공격하면 재미가 없잖아? 우리는 김현성에게 확실히 보복할 뿐만 아니라, 이 SNS 페이지로 만들어지는 X 같은 분위기부터 없애 버릴 필요성이 있어. 피해자라고 떠들어 대는 새끼들에게는 SNS 페이지가 안전한 공간이 아니라는 경고를, 김현성에게도 피해자를 무조건 믿었다가는 문제가 커진다는 불안감을. 그래야 똑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겠지.”

“계획이 있는 거야?”

“있지.”

사람들은 정해민이 어떤 사람인지를 모른다.

단순히 신영민을 쓰러트릴 만큼의 강자일 뿐만 아니라, 애초에 머리가 나쁜 쪽으로 잘 돌아갔다.

골든 서클의 의뢰를 받았을 때.

피해 학생이 손목을 그었던 이유는 단순히 폭력 때문만은 아니었다.

정해민은 판을 읽고, 상대의 멘탈을 완전히 부숴 버릴 계략을 짤 줄 알았다.

정해민이 씰룩 웃었다.

“함정을 파는 거야. 김현성이 빠질 수밖에 없는, 그리고 그 결과가 모두에게 전시되는 치명적인 함정을.”

* * *

SNS 페이지.

대산에서 말해드립니다, 는 최근에 접속자가 급격하게 상승할 만큼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았다.

그 이유는 당연히 복수 대행이었다.

김현성이 피해자들의 복수를 대신 처리해 주면서, 각자의 사연을 지닌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물론 피해자들만 있는 건 아니었다. 사건을 해결하고 피해자들이 실제 후기 글을 올리면, 그 글을 구경하겠다고 몰려드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메일이 아닌 전체 공개 글로 사연이 올라왔다.

[간절한 마음으로 메일이 아닌 전체 공개 글을 올립니다. 저는 대산 농업 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임호준입니다. 처음 농업 고등학교에 진학했을 때, 이 학교에 질이 나쁜 학생들이 많다는 사실은 알았습니다. 그래도 큰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중학교 때부터 나름대로 싸움을 잘했던 저로서는 괴롭힘 따위는 전혀 걱정하지 않았는데, 같은 반의 유정현을 만나면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살면서 그런 개새끼는 처음이었습니다. 애들을 때리는 것으로도 모자라 장난감처럼 가지고 노는 모습에, 순간 발끈해서 그에게 덤벼들었습니다. 그리고, 지옥이 시작되었습니다.]

참담한 이야기였다.

유정현에게 일방적으로 패배한 그 날부터 임호준의 지옥이 시작되었다.

[……글을 작성하는 이 순간에도 펜을 내려놓고 목숨을 끊을까 수도 없이 고민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으니 겨우 1년밖에 남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또다시 유정현과 같은 반이 되었다는 사실에 숨이 막힙니다. 제발, 저를 도와주세요. 유정현을 처벌해 주세요. 관련 증거가 필요하다면 전부 제시할 거고, 무슨 일이든 전적으로 협조하겠습니다. 유정현을 처벌할 수만 있다면, 괴롭힘의 굴레를 끊어 낼 수만 있다면 저는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그 글.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공개적으로 글을 올린 것도 처음이지만, 임호준의 사연이 진짜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나 대산농고 다니는 학생인데 이거 진짜 맞음. 임호준 1학년 초기에 유정현에게 개털리고 나서 진짜 불쌍할 정도로 매일 괴롭힘을 당했음. 거짓 하나도 없이, 대산농고 다니는 애들한테 물어보면 진짜라는 사실을 알 수 있음.

-진짜 개새끼네. 무슨 사람이 자살을 생각할 정도로 괴롭히냐.

-그런데 실명 글은 위험한 거 아니냐. 만약 SNS 페이지 관리자가 이번 일을 빨리 처리해 주지 않으면, 임호준은 학교에 다닐 수가 없잖아. 유정현이 이걸 보고도 가만히 있겠냐고.

-호준이를 위해서라도 빨리 도움을 주세요.

-관리자님. 부탁드립니다!

난리가 났다.

임호준의 사연에 안타까워하면서도, 혹시라도 보복을 당할까 봐 걱정하는 분위기가 팽배해졌다.

그리고 당연히.

임호준의 이야기는 김현성에게도 흘러 들어갔다.

* * *

짜악-!

고개가 돌아갔다.

사람들이 없는 폐건물 안에서, 임호준은 빨갛게 부어오른 뺨을 부여잡았다.

“……정말 미안해.”

“미안? 지금 그딴 말로 상황을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야, 이 씨발 새끼야. 네가 공개적으로 글을 올리는 바람에 내가 어떤 취급을 받는 줄 알아? 모두가 날 보고 쓰레기라더라. 친구를 괴롭힌 쓰레기. 네가 날 그렇게 만들어 놓고.”

콱.

멱살을 틀어쥐었다.

공포로 얼룩진 임호준의 얼굴에, 유정현은 아랑곳하지 않고 주먹을 꽂아 넣었다.

“무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빠악!

빡, 빡, 빡!

참담한 폭력의 현장이었다.

쪼그려 앉아 낄낄거리는 친구들을 뒤로하고, 유정현은 그렇게 폭력을 이어 나갔다.

그때였다.

저벅저벅.

누군가가 걸어왔다.

후드를 푹 눌러쓴, 갑작스러운 불청객의 등장에 유정현을 비롯한 친구들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했다.

주먹질을 잠깐 멈추었다.

그러자, 불청객이 후드를 벗었다.

“임호준, 맞지?”

“……어?”

순간.

임호준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정말 나타났다.

글을 확인하고 복수를 대행해 주는, 천일 고등학교의 김현성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정말 나타났다.

보통은 반겨야 할 상황이었다.

성대현도 그렇고, 다른 피해자들도 그렇고.

김현성이 이렇게 모습을 드러냈을 때, 그들은 하늘에서 구원자라도 내려온 것처럼 반색하는 반응을 보였다. 실제로 김현성은 그들의 문제를 모두 해결해 주었다. 그들이 후기 글을 올렸을 때, 본인의 이름을 직접 밝히지 않았는데도 사람들은 글에서 ‘기쁨’이 느껴진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런 사례들과는 달리.

임호준은 유정현이 멱살을 놓아주자, 김현성의 눈은 쳐다보지도 못한 채 말했다.

“……미안해.”

“뭐가?”

“나로서는 정말 어쩔 수가 없었어. 유정현이랑 애들이, 계획을 따르지 않으면 내 동생을…….”

빠악!

뒤통수를 강하게 후려쳤다.

바닥에 쓰러지는 임호준의 모습에, 유정현이 나서며 씨익 웃었다.

“와, 이게 진짜 먹히네?”

그게 신호였다.

주변에서 사람들이 나타났다.

분명히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 폐건물이었는데,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불쑥 튀어나왔다.

각기 다른 교복을 입은 학생들.

그들 중에는.

“반갑다, 이 씨발 새끼야.”

통신고의 정해민도 존재했다.

* * *

막다른 길이었다.

앞뒤.

양옆.

찬 바람이 불던 폐건물 안에, 김현성을 제외하고는 학생들이 모두 들어찬 모양새가 되었다.

정해민이 말했다.

“너에 대한 소문은 들었어. 1학년 때 신영민을 들이받고 천일을 먹었을 뿐만 아니라, 천일에서 더는 학교 폭력이 일어나지 않도록 체계를 형성했다고. 애들 사이에서 천일을 학생들의 유토피아라고 부르던데. 거기까지는 인정. 네 학교를 어떻게 하든 그건 마음대로 해도 되는데, 그 이상으로 선을 넘지는 말았어야지.”

김현성.

그를 불러들이기 위해 함정을 팠다.

임호준으로 하여금 글을 올리게 했고, 그게 사실이라고 믿도록 ‘유정현’이라는 실제 가해자를 내세웠다.

유정현은 흔쾌히 승낙했다.

본인의 행보가 전시되는 것?

상관없었다.

어차피 이번 계획의 목적은 김현성을 짓밟는 것이다.

더는 SNS 페이지를 통해 아무것도 하지 못하도록, 모든 사람이 이 상황을 지켜보기를 바랐다.

“그렇게 여러 학교를 들쑤시고, 대산을 먹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면 우리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잖아. 그래서 너를 위한 이 자리를 마련했어. 네가 무슨 이유로 대산을 먹으려는지는 모르겠지만, 난 다른 병신들처럼 가만히 앉아서 당하는 스타일은 아니거든. 성격이 좀 급해.”

슥.

김현성이 주변을 훑었다.

숫자는 얼추 백여 명.

혼자서는 절대 감당할 수 없는 숫자였다.

김현성은 문득, 참담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임호준과 시선이 마주쳤다.

“내가 재밌는 얘기 하나 해 줄까?”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목소리.

주변을 완전히 둘러싸인 상황에도, 김현성은 담담하게 말을 이어 나갔다.

“대산에서 말해드립니다, 를 관리하는 SNS 페이지 주인. 그게 과연 누구일까? 사실 우리가 하는 일은 관리자의 지원을 받지 않고서는 매우 힘들거든. 관리자가 만약 피해자들이나 우리의 신상을 퍼트리면, 우리의 익명은 보장되지 않을 테니까. 그러니 당연하게도 나는 그 주인을 개인적으로 알아.”

그건 비밀이었다.

천일에서 자신에게 잘 보이려는 여러 사람 중, 누군가가 이 SNS 페이지에 관련한 얘기를 말했다.

그는 바로.

조재진이었다.

촉새라는 별명이 붙은 만큼 그는 옛날부터 활발하게 활동했는데, 그중 하나가 SNS 페이지를 개설해서 대산의 학생들이 서로 소식을 주고받는 것이었다. 덕분에 김현성은 활용할 소통의 창구를 얻을 수 있었다. 피해자들을 완벽하게 보호할 수 없다면, 애초에 이번 계획은 실행되지 않았을 것이다.

정해민을 비롯해 당황한 눈빛을 보였다.

대화가 이상하게 흘러갔다.

“난 그 주인 덕분에 익명 너머의 ‘진짜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어. 누가 어떤 메시지를 보내는지, 혹은 개수작을 부리지는 않는지. 임호준이 폭로 글을 올리고서 익명 글로 상황을 부추기는 글들이 올라왔어. 임호준을 도와주어야 한다, 이러다 그가 위험하다. 그런데 정말 웃긴 건 그 글의 주인들이 통신고나, 농고 같은 유정현과 다를 바 없는 새끼들이라는 거야. 참 재밌지 않아? 이 상황이.”

저벅저벅.

“어.”

“뭐야?”

“이런 씨발.”

정해민 패거리 너머.

새로운 사람들이 나타났다.

김시우와 배성호를 필두로 한 천일 고등학교.

그들만으로도 충분히 당황할 만한 상황인데, 정해민의 눈에 전혀 의외의 인물들이 보였다.

‘안홍렬? 이기철? 양준혁? 이게 대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야?’

머리가 복잡하게 얽혀들어 갔다.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안홍렬이나, 이기철이나, 양준혁이나.

저마다 학교에서 왕처럼 군림하던 존재들이었지만, 김현성에게 당한 이후로는 아무 소리도 하지 못하고 살았다. 그런 존재들이 왜. 그것도 마치 김현성의 편인 것처럼 이 자리에 나타난단 말인가.

김현성이 말했다.

“임호준.”

“……어?”

“네 글을 확인하고 가장 먼저 너를 조사했어. 임호준이라는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네 글처럼 전부 사실이더라고. 너는 친구를 도와주겠다는 마음에 유정현에게 덤벼들었다가, 그때의 그 선택을 지금까지도 후회하고 있어. 이해해. 네가 도와주겠다고 감쌌던 그 친구는, 유정현이 지켜보는 시선 아래 네 뺨을 때렸으니까. 걔를 대신해서 네가 유정현의 장난감이 되어야 했으니까. 그렇다고 이번 일에 가담한 네가 잘했다는 의미는 아니야. 넌 널 도와주려는 사람을 함정에 빠트렸어. 하지만…….”

임호준의 행동.

그건 상황을 악화시키는 악수(惡手)였다.

그러나 그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진 않았다.

임호준에 대한 안쓰러운 감정은 거두되, 이 상황을 냉정하게 판단했다.

김현성 또한 임호준과 같은 상황에 놓였지만, 자살하는 그날까지 친구를 팔아먹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내게 전혀 미안해할 필요 없어. 이건 함정인 걸 알고도 내가 발을 들인 거거든.”

똑같이 이용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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