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惡의 등교-98화 (98/130)

19. 대산 정벌 (10)

하루 전.

안홍렬은 김현성과 만났다.

밖으로 나오라는 전화 한 통에, 거절은 생각조차 못 하고 한달음에 달려왔다.

“……현성아. 무슨 일이야?”

잔뜩 움츠러든 목소리였다.

불과 며칠 전만 하더라도 제일고를 호령하던 안홍렬이었지만, 김현성을 마주하는 지금 과거의 영광 따위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다. 정해민에게 얻어터져 퉁퉁 부은 얼굴이 안쓰러움을 더하는 것만 같았다.

안홍렬의 반응.

그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정해민의 계획에 끝까지 동조하지 않은 이유도, 안홍렬이 친구들에게서 ‘그 일’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김현성이 말했다.

“박민철 패거리. 알지?”

“……알지.”

“그럼 내가 그 새끼들을 어떻게 처리했는지도 알고 있겠지. 난 말이야. 박민철 같은, 본인밖에 모르는 쓰레기들을 혐오해. 그 누구도 그 새끼들에게 남을 때려도 좋다는 권한을 허락한 적이 없는데, 마음대로 애들을 괴롭히고 벼랑 밑으로 밀어 버리거든. 네가 알고 있는 소문은 전부 사실이야. 박민철은 나 때문에 인생이 망했고, 신영민이랑 엮어 소년원에 보낸 것도 나야.”

그 말에.

소름이 돋았다.

천일고에서 흘러나온 소문.

김현성이 박민철 패거리, 신영민을 소년원에 보냈다는 내용에, 안홍렬은 반신반의하면서도 끝까지 정해민의 계획에 동조하지는 않았다. 불안했다. 자신이 직접 확인한 김현성은 절대 정상이 아니었고, 혹시라도 소문이 사실이라면 자신에게도 똑같은 불행이 닥칠 것만 같았다.

이건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불행에 불행을 더한 걸까.

얼어붙은 얼굴로 아무 소리도 하지 못하는 안홍렬의 모습에, 김현성이 말을 이어 나갔다.

“나는 내가 혐오하는 새끼들에게 반드시 대가를 받아 내. 넌 어떻게 해 줄까? 박민철 패거리 못지않게 애들을 괴롭히고 다닌 너를, 제일고 학생들을 벼랑 끝까지 밀어 넣은 너를 어떻게 해야 할까?”

“미, 미안해! 정말 잘못했어!”

탁.

무릎을 꿇었다.

살고 싶었다.

김현성의 말이 정말 현실이 될 것만 같아, 그의 머리로는 이 방법밖에 해결책이 떠오르지 않았다.

김현성은 그 모습을 싸늘하게 바라보았다.

용서?

그딴 건 생각지도 않았다.

박민철 패거리와 마찬가지로 안홍렬의 인생은 점점 나락으로 빠지겠지만, 지금 당장은 앞으로의 계획에 이용할 가치가 있었다. 정해민은 SNS 페이지를 이용해 함정을 팠다. 그들에게 압도적인 절망감을 안겨 주기 위해서는, 그들이 예상할 수 없는 특별한 장치가 필요했다.

김현성이 말했다.

“앞으로 학교를 정상적으로 다니고 싶으면 내가 하는 말을 잘 들어. 당장 내일부터 제일고에서 동원할 수 있는 애들을 모두 대기시켜. 내가 문자를 보내면 곧바로 튀어나올 수 있도록. 그리고 내가 명령하면, 눈앞에 거슬리는 상대들을 죽일 각오로 몸을 바쳐서 싸워. 할 수 있겠어?”

고개를 번쩍 들었다.

안홍렬이 간절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할 수 있어. 무조건 할게!”

제일고.

그들이 손아귀에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일은, 제일고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 * *

정해민의 표정이 싸늘하게 변했다.

천일 고등학교뿐만 아니라 다른 학교도 가세했다는 사실에, 그는 분노가 들끓는 목소리로 말했다.

“야, 안홍렬. 미쳤냐?”

그중.

안홍렬을 먼저 찍었다.

며칠 전에 얻어맞은 흔적이 역력한 그에게, 이 상황의 심각함을 말하고자 했다.

“김현성에게 털린 것도 모자라서 쪽팔리게 천일고 편을 들어? 너 지금 돌아가는 판도를 잘 모르나 본데, 김현성은 지금 대산의 고등학교들을 전부 먹으려고 하고 있어. 만약에 저 새끼 손아귀에 대산이 떨어지면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아? 앞으로 우리는 통제를 받게 되는 거야. 병신 같은 새끼들이 눈앞에서 나대도, 같잖은 통제에 따르기 위해 더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고. 알아?”

“알아.”

“알고도 그런다고?”

“그래, 이 븅신아.”

안홍렬이 웃었다.

입술이 찢어지며 고통이 밀려들었지만, 그는 정해민이 전혀 두렵지 않았다.

“쪽팔리고 뭐고 간에, 난 네가 대산의 머리인 것처럼 구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아. 넌 언제부터 날 오라 가라 명령하고, 이렇게 애들을 불러 모으고 대장질을 했냐? 어차피 똑같은 거야. 누군가 대산을 차지하게 된다면, 그 자리는 당연히 가장 강한 사람의 것이겠지. 그리고 나는 정해민 네가, 김현성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거든.”

“너, 씨발. 이 상황 감당할 수 있겠냐?”

“감당은 지랄. 일단 김현성이나 이기고 말해.”

안홍렬.

이기철, 양준혁.

그리고 다른 학교의 머리들.

그들의 생각은 똑같았다.

정해민 패거리가 김현성을 둘러싸고 있는 이 상황에, 안홍렬이 모두의 생각을 대변했다.

“정 너를 증명하고 싶으면 이 자리에서 김현성과 일대일로 붙어. 네가 승리하면 그때는 인정해 줄 테니까.”

* * *

일대일.

탐탁지 않았다.

아무리 안홍렬과 같은 다른 학교를 불러들였다지만, 언뜻 훑어봐도 머릿수는 자신들이 더 많았다.

정해민은 선뜻 대답하지 않았다.

그 반응에.

김현성이 말했다.

“어떻게 할래? 일대일로 붙을래, 말래.”

어떤 선택지든 상관없었다.

김현성은 지금의 상황을 구상하며, 두 가지의 그림을 그렸다.

일대일에 응한다면.

모두가 보는 앞에서 정해민을 처참하게 응징할 것이다.

그를 쓰러트리고 사지를 부러트려, 다시는 대산 바닥에서 자신을 올려다보지 못할 확실한 결과를 남길 것이다. 안홍렬은 계획에 따라 움직였다. 정해민에게 선택을 강요해서, 일대일에 응하든가 아니면 감히 김현성과 일대일로 붙을 용기를 내지 못하는 겁쟁이로 만들려는 속셈이었다.

대답이 늦었다.

그러자.

김현성이 걸음을 옮겼다.

일대일에 응하지 않는다면, 그에게는 또 다른 그림이 있었다.

“그럼 천천히 생각해 봐.”

팟.

타다닥.

달려들었다.

의외의 전개였다.

천일고뿐만 아니라, 안홍렬을 비롯해 아무도 나서지 않는데 김현성 혼자서만 상대를 향해 달려들었다.

“뭐, 뭐야?”

“씨……크악!”

빠악-!

주먹이 작렬했다.

김현성이 적들로 득실거리는 공간으로 뛰어들더니, 가장 먼저 맞닥트린 상대의 얼굴을 날려 버렸다.

고민할 여유가 사라졌다.

정해민이 반응하기도 전에, 다른 학생들이 소리쳤다.

“그냥 공격해!”

“씨발 새끼가 우리가 존나 만만한가 보네.”

도화선에 불이 붙었다.

더는 대화가 아닌.

몸으로 결판을 낼 차례였다.

통신고 학생이 달려들며 주먹을 휘두르자, 김현성은 반 발자국 물러나며 상대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빡!

단 한 방.

코피가 터졌다.

통신고 학생의 얼굴이 젖혀지자, 주먹은 빠르게 회수되며 뒤이어 달려드는 학생들의 얼굴에도 작렬했다.

빡, 빡!

“개새끼가.”

사방에서 적이 득실거렸다.

순식간에 세 명을 무너트렸지만, 김현성이 앞선 인물들을 상대하는 동안 양옆에서도 김현성을 덮쳐 왔다.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히는 상황이었다. 김현성은 상체 움직임으로 공격을 피해 내더니, 바로 앞에 스쳐 지나가는 녀석의 머리칼을 휘어잡고는 얼굴을 그대로 후려 버렸다.

콰직!

코가 내려앉았다.

섬뜩한 소리와 동시에, 이번에는 김현성의 얼굴도 반대로 돌아갔다.

빡!

사람은 한 명.

상대할 사람은 수십이었다.

동시에 달려드는 인원에는 제한이 존재한다지만, 김현성이 신도 아니고 모두를 완벽하게 막아 낼 수는 없었다.

그런데도.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김시우와 배성호뿐만 아니라, 천일 전체가 복잡한 얼굴로 상황을 지켜보았다.

“내가 도움을 청할 때까지는 절대 나서지 마.”

김현성의 명령이었다.

이번 싸움.

김현성은 스스로를 증명하고자 했다.

이 많은 인원을 전부 쓰러트릴 수는 없겠지만, 앞으로의 계획을 위해 검증의 단계가 반드시 필요했다.

‘강남은 대산과 차원이 달라. 체계적으로 집단을 형성했고, 최태준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강자들이 존재해. 그러니까, 나는 상식적이지 않은 상황을 이겨 내야만 해. 겨우 대산에서도 무릎을 꿇을 정도라면 내 복수는 절대 성공할 수 없어.’

빠득.

아를 악물었다.

아프지 않았다.

얼굴을 맞았는데도 한발 물러나는 것 없이, 방금 자신을 공격한 녀석의 얼굴을 날려 버렸다.

빠악!

그때부터였다.

난전이었다.

김현성이 서너 명을 쓰러트리면, 그 대가로 김현성도 주변에서 날아오는 공격을 피하지 못했다. 고통이 밀려들었다. 얼굴을 얻어맞고, 상대를 때리면 누군가가 뒤에서 공격하고, 뒤를 돌아서 그 상대를 쓰러트리면 다시 옆에서 주먹이 날아오고. 서로 뒤얽혀 복잡하게 난전을 벌였다.

입 안이 찢어졌다.

얼굴도 부어오른 상태였지만, 김현성은 피로 번들거리는 이빨을 드러내며 히죽 웃었다.

“그래, 끝까지 해 봐.”

빠악!

이 상황.

이 순간.

순수하게 즐겼다.

겨울 방학 동안 벌크업한 육체에서 폭발적으로 분출되는 파괴력에, 김현성은 엄청난 성취감이 전신을 관통했다. 확실했다.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졌다. 이제는 최태준을 압도적으로 쓰러트린다고 확신할 수 있을 정도로, 내뻗는 일격에 상대 학생들이 단번에 나가떨어졌다.

백여 명.

전부 감당하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제정신으로는 쓰러지지 않을 것이다.

기절하고 죽는 한이 있더라도, 혼자서 모두를 죽여 버리겠다는 독기(毒氣)를 드러냈다.

빡!

얼굴이 돌아갔다.

그 상태로 주먹을 휘둘렀다.

정두철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주먹이었고, 반격으로 휘두른 주먹에 상대의 이빨이 나갔다.

“아악!”

사방에서 울려 퍼지는 비명.

한 명, 한 명.

그렇게.

김현성은 정해민을 향해 길을 열어 나갔다.

* * *

일련의 상황.

정해민의 눈동자가 급격하게 흔들렸다.

이건.

도저히 상식적이지 않았다.

김현성은 함정인 걸 알았고, 함정에 대항하기 위해 안홍렬과 같은 세력들을 회유했다.

그렇다면 당연히 집단 패싸움으로 번져야 하건만, 김현성은 혼자서 백여 명 전부를 상대하고 있었다.

‘……이게 말이 돼?’

이래서였다.

일대일 제안.

왠지 모를 불안감에 승낙하지 않았다.

본인이 유리한 상황에, 굳이 상대의 계획에 넘어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김현성은 짐승이라도 되는 것처럼, 백여 명에 둘러싸인 상태로 치고받고 싸우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점점 늘어나는 상처와 피로 얼룩지는 얼굴. 언젠가는 김현성이 수적 우위에 무너지고 말 것이다.

그렇다고 자신이 승리하는 걸까?

아니다.

뒤에 김현성 일행이 남아 있었다.

겨우 김현성 한 명만 쓰러트릴 수 있을 뿐, 나머지를 감당하는 상황은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문득, 친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천일고 애들이 말하길, 김현성은 단순히 강하기만 한 게 아니래. 싸울 때 정말 인생이 끝날 것처럼. 그 자리에서 죽어도 되는 사람인 것처럼 적당히가 없어. 그러니까 아무도 그에게 대항하지 못하는 거야. 배성호나 그런 애들도 어떻게든 함정을 파서 김현성을 한 번은 쓰러트릴 수 있지만, 김현성을 죽이지 않는 이상은 감당할 수 없다는 생각에 현실을 받아들인 거야.”

경고였다.

정해민은 그 경고를 무시했다.

우습지 않은가.

겨우 고등학생이 목숨을 운운하다니.

하지만 지금의 광경을 확인하자, 그 말이 장난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마, 막아!”

“아악!”

눈이 팽팽 돌았다.

사방에서 주먹을 뻗고 김현성을 덮쳐 오는 데도, 김현성은 그들의 공격을 그대로 맞닥트리며 하나씩 무너트렸다. 김현성의 얼굴은 이미 엉망이었다. 아무리 벌크업을 하고 체계적인 훈련을 했다고 한들 백여 명을 전부 감당하는 것은 불가능했고, 땅바닥에 넘어지고 짓밟히는 데도 상대의 다리를 잡아 넘어트리면서 싸우는 걸 멈추지 않았다.

빠악.

빡, 빡!

끝까지 상대를 물고 늘어졌다.

바닥에 넘어진 상대의 얼굴에 주먹을 박아 넣는 그 모습에, 정해민은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이건 아니야.”

이길 수 없다.

확신이었다.

한때 아마추어 무대를 뛰었던 그이기에, 절대 감당할 수 없는 높은 벽의 존재를 알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대로 패배한다면.

신영민처럼, 안홍진처럼, 안홍렬처럼.

사지가 하나 부러지든, 이빨이 빠지든.

참담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걸음을 돌렸다.

다른 친구들이 싸우는 혼란한 상황에, 정해민은 빠르게 현장을 벗어나 버렸다.

“어?”

“야, 정해민!”

“씨발, 네가 도망치면 어떻게 해!”

몇몇이 그 모습을 발견했다.

당황스러운 순간이었다.

정해민은 그동안 단 한 번도 나약한 모습을 보여 주지 않았는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정해민이 지금과 같은 상황에 도망칠 줄은 몰랐다. 천일고와 안홍렬 패거리는 정해민을 따라가지 않았다. 그쪽과는 방향이 다른 것도 있지만, 굳이 그를 붙잡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혼란에 빠졌다.

당황한 통신고 학생이 머뭇거리는 반응을 보이자, 갑작스럽게 치고 들어온 손바닥이 머리를 움켜쥐더니 땅바닥에 처박아 버렸다.

콰직!

“크악!”

“어딜 봐.”

정해민이 도망치든 말든.

김현성은 개의치 않았다.

이미 싸움은 시작되었고, 상대를 전부 쓰러트릴 때까지 멈출 생각은 없었다.

김현성이 당황으로 얼룩진 상대의 얼굴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시작했으면 끝을 봐야지.”

빠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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