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惡의 등교-99화 (99/130)

19. 대산 정벌 (11)

양 100마리.

그 사이에 늑대 한 마리를 풀어놓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양들이 수적 우위를 내세워 늑대를 들이받을 수도 있겠지만, 늑대가 양의 목덜미를 물어뜯어 피가 분수처럼 뿜어지는 순간부터 상황이 뒤바뀔 것이다. 비릿한 피 냄새와 고통에 울부짖는 양의 비명. 양들은 유리한 상황임을 인지하면서도, 선뜻 동족을 구하겠다고 달려들지는 못할 것이다.

본능적으로 알았다.

늑대를 쓰러트리기 위해서는.

비명을 지르는 양처럼 앞에서 물어뜯겨 주고 체력을 소진시키는, 희생양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아무도 희생양이 되고 싶지 않았다.

서로 돈독한 연결 고리가 존재한다면 모르겠지만, 적어도 양 100마리를 모아 놓은 통신고와 농고 등 고등학교 연합 사이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벌써 20명 이상이 김현성에게 당해 버린 상황에, 어느 순간부터 공포가 번져 나가기 시작했다.

“……괴, 괴물 같은 새끼.”

“어떻게 좀 해 봐!”

“정해민도 도망친 마당에 계속해야 하는 거야?!”

혼란스러웠다.

김현성을 상대하는 희생양이 되고 싶지도 않았고, 정해민이 도망치면서 구심점마저 사라져 버렸다.

싸울 용기도, 이유도 없었다.

그나마 계속 버틸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유정현의 존재 때문이었다.

그는 길을 가로막는 친구들을 옆으로 뿌리치더니, 성난 얼굴로 김현성을 향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개새끼가, 적당히 해야지.”

지금의 상황.

화가 치밀었다.

김현성이 혼자서 전부를 상대하려 하는 이 상황이, 대산농고의 왕으로 군림하던 자신을 무시하는 것만 같았다. 거대한 체격으로 황소처럼 밀고 나갔다. 김현성으로서는 유정현의 갑작스러운 개입을 빠르게 포착할 수 없었고, 속도를 살린 강력한 태클이 그대로 작렬했다.

파악-!

백이면 백.

유정현의 태클을 버틴 사람은 없었다.

유정현은 스스로를 믿고 그대로 밀어붙였건만, 살짝 밀리는가 싶더니 단단한 반발력이 느껴졌다.

‘……?!’

80kg.

늘어난 몸무게는 그만한 파괴력을 의미했다.

김현성은 하체를 바로 빼면서 태클을 저지하더니, 유정현이 반응하기도 전에 그의 얼굴에 니킥을 작렬시켰다.

콰직!

피가 튀었다.

강력한 무릎 공격에 얼굴이 바로 함몰되었고, 김현성은 추가로 주먹을 퍼부었다.

빠악!

빡, 빡!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미 수많은 공방을 벌이느라 체력이 많이 소진되었을 텐데도, 김현성은 유정현에게 적합한 공략 방법으로 상대를 무너트렸다. 정두철과 진행했던 지옥과도 같은 훈련. 그 훈련에서 수십 명을 직접 상대하지는 않았지만, 정두철은 항상 김현성의 한계를 끝까지 밀어붙였다. 팔다리가 움직이지 않고 숨이 넘어갈 것 같이 헐떡이는 상황에도, 정두철의 주먹은 김현성의 급소를 노렸다.

익숙했다.

이런 상황이.

유정현을 쓰러트리자마자, 김현성은 치고 들어오는 공격을 피하며 상대의 얼굴을 날려 버렸다.

빠악-!

스무 명, 그 이상.

널브러진 학생들이 점차 늘어갔다.

정해민이 도망치고 유정현마저 쓰러진 상황에, 더는 연합 학생들은 억지로 밀려나지도 않았다.

공포가 전염되었다.

목을 물어뜯긴 양처럼.

본인들도 그렇게 되고 싶지는 않았다.

나름대로 발언권이 있는 학 학교의 머리가, 공포에 질린 얼굴로 소리쳤다.

“그, 그만! 그만해! 우리가 졌어!”

“모두 물러나!”

그것으로 끝이었다.

누군가가 총대를 메자, 연합 학생들이 우르르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현실을 받아들였다.

천일고.

아니, 김현성과의 싸움.

무조건 승리를 확신하던 적들은, 일말의 여지도 존재하지 않을 만큼 참담한 패배를 맞이했다.

* * *

머리가 핑 돌았다.

어디를 맞았는지 특정할 수 없을 정도로, 전신에서 통증이 밀려들었다.

끝났다.

입이 바짝바짝 마르고 당장에 휴식을 취하고 싶었지만, 김현성은 힘든 티를 조금도 내지 않았다.

‘나는 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돼.’

이 싸움.

단순히 정해민 패거리를 굴복시키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천일고야 이미 완전히 손아귀에 들어왔지만, 안홍렬과 같은 패거리들은 언제 마음이 바뀔지 모른다. 그들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하게 보여 주었다. 너희가 만약 대항하려고 마음먹었다면, 바닥에 널브러져 신음하는 사람들처럼 참담한 결말을 맞이했으리라는 것을 직접 증명했다.

순간.

희열이 차올랐다.

‘내가 이겼어.’

백여 명이다.

진짜로 백여 명을 전부 쓰러트린 것은 아니나, 자신의 존재감이 그들 전부를 압도해 버렸다.

만약 끝까지 갔다면 자신은 분명히 한계에 봉착했겠지만, 그건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이겼다는 사실.

강해졌다는 사실.

그것이면 충분했다.

김현성은 땀과 피로 늘어진 머리를 넘기며, 자신을 두려운 눈빛으로 쳐다보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지금부터 대산의 모든 고등학교는 천일의 통제를 따른다. 내가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고. 만약 누구라도 내 명령을 어긴다면 그 사람은, 그 학교는 그만한 대가를 치르게 될 거야. 그렇다고 사사로운 일에 너희를 불러들이지는 않을 거야. 학교마다 학교 폭력을 철저하게 배제하고, 내 명령에만 복종한다면 너희에게 오늘과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고 약속하지.”

시선이 집중되었다.

모두가 말없이 지켜보았다.

한 사람의 목소리를 수많은 사람이 집중하는 상황은, 묘한 쾌감을 일으켰다.

“내가 이 자리에서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사실은 정해민처럼 도망간다고 해서 문제가 끝나지 않는다는 거야. 다들 신영민 사건에 대해서 들었겠지. 그건 모두 사실이야. 정해민이 대산을 떠나지 않는 한. 아니, 떠난다고 하더라도. 신영민과 박민철 패거리가 경험한 것처럼, 정해민은 반드시 나를 다시 만나게 될 거야. 내가 그렇게 만들 거거든.”

집념이었다.

악의였다.

김현성은 무수한 쓰레기 중, 정해민을 본보기로 내세웠다.

다들 말을 삼켰다.

신영민 사건과 관련한 소문을 알기에, 김현성의 경고를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렇기에.

“이의 있는 사람.”

아무도.

그 누구도.

김현성의 말에 반박하지 않았다.

* * *

그날의 일.

대산 전역에 빠르게 퍼져 나갔다.

김현성의 압도적인 승리는, 대산의 고등학생들을 충격에 빠트렸다.

“그게 말이 돼? 아니, 무슨 슈퍼히어로도 아니고 혼자서 어떻게 백 명을 상대해.”

“진짜라니까. 현장에 있었던 내 친구가 말해 줬는데, 김현성이 혼자서 정해민 패거리를 그대로 들이받았다니까. 그 자리에 천일고에서 온 김현성네 애들도 왔는데 미리 약속이라도 했는지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대. 정말 거짓 하나도 없이, 김현성이 혼자서 백 명 전부를 상대했다고.”

“에이.”

“엄마 걸고 진짜야.”

“이딴 일에 엄마 걸지 마, 이 병신아.”

소문이 돌았다.

처음에는 다들 부정적이었다.

상식적으로 한 명이 백 명을 압도했다는 말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증인들이 너무 많기도 했고, 당시 김현성을 상대했던 학생들이 엉망이 된 얼굴로 학교에 나오자 믿을 수밖에 없었다. 이건 정말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대산에 신영민과 같이 이름을 날리던 싸움꾼들은 항상 존재했지만, 그렇다고 이만한 업적을 이룬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러자.

학생들이 말했다.

“그럼 김현성이 대산을 먹은 건가?”

“무조건 먹은 거지. 그때 김현성이 쓰러트린 애들은 단순히 머릿수만 많은 게 아니라, 대산농고의 유정현 같은 애들도 있었잖아. 걔들도 포함해서 전부 쓰러트렸는데 무조건 김현성이 짱이지.”

“진짜 미친 새끼기는 하네. SNS 페이지로 학교 폭력 제보를 받더니, 그걸 빌미로 전부 박살 내고 대산을 먹어 버린 거 아냐. 그나저나 정해민은 어떻게 나오려나. 들리는 말로는 그때 김현성에게 쫄아 가지고 도망쳤다는데. 그래도 확실한 짱을 가리려면 정해민이랑도 결판을 내야 하는 거 아냐?”

“결판을 낼 필요가 있나. 병신처럼 도망쳤는데.”

대산의 모든 학교.

그들은 패배를 인정했다.

앞으로 김현성의 말을 따를 것이고, 학교 폭력을 배제하라는 통제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딱 한 학교.

통신고는 달랐다.

그들은 패배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정해민이 도망치는 바람에 확실한 결과를 맺지 못했다.

그래서일까.

대산 고등학생들의 시선이 통신고에.

아니, 정확히는 정해민의 행보에 집중되었다.

* * *

그로부터 며칠.

정해민은 한동안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치욕스러웠기 때문이었다.

차라리 유정현처럼 달려들었다가 패배하면 괜찮았을 텐데, 도망쳤다는 사실에 뒤늦게 후회가 밀려들었다.

‘씨발, 진짜 내가 왜 도망쳤을까.’

며칠 내내.

그 순간을 되새겼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치고받고 싸우는 김현성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미친 새끼였다.

김현성에 관한 무수한 소문을 들었지만, 그가 이 정도로 뒤가 없을 줄은 몰랐다.

‘내가 이길 수 없는 상대야. 설령 이긴다고 하더라도 그딴 새끼를 건드렸다가는 어떤 보복을 당할지 몰라. 그냥 조용히 넘어가자. 날 조롱하든 말든, 김현성을 다시 건드려서는 절대 안 돼.’

며칠 뒤.

정해민은 학교에 나갔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정해민을 믿고 따랐다가 배신당했던 친구들은, 정해민을 보자마자 표정을 일그러트리며 수군거렸다.

“이제야 학교에 나오네.”

“배신자 새끼. 믿고 따랐더니만 혼자서 도망이나 치다니.”

“정해민도 이제 끝이야. 저 새끼를 이제 누가 믿겠어? 씨발, 마음 같아서는 날 잡고 존나 패고 싶은데, 그건 자신이 없으니까 참는다. 아오!”

시선이 곱지 않았다.

당연한 결과였다.

애초에 정해민과의 관계는 압도적인 무력에 복종한 것이었는데, 그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나는 순간부터 불합리함을 참을 이유가 없었다. 정해민은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리는데도 굳이 반응하지 않았다. 쪽팔리기도 했고, 아직 이 상황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며칠.

정해민은 학교와 집을 오갔다.

절대 딴 길로 새지 않았다.

학교를 나갈 때도 혹시 밖에서 김현성이 기다리고 있나 확인했고, 괜히 김현성을 맞닥트릴 상황을 허락하지 않았다. 다행히도 김현성을 만나는 일은 없었다. 보복이라도 당할까 봐 상당히 긴장했었는데, 평화로운 나날이 흘러가자 정해민은 확신이 생겼다.

‘그래, 김현성이 아무리 미친 새끼여도 학교 밖으로는 돌아다니지 않는 날 건드릴 방법은 없겠지.’

학교 안.

안전한 공간이었다.

그러자 태도가 바뀌었다.

수업을 준비하는 도중에 친구들이 자신을 힐끗거리자, 거칠게 책상을 걷어차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콰당!

“야, 이 씨발 새끼들아. 말할 거 있으면 내 앞에서 말해.”

“…….”

다들 입을 다물었다.

아무리 패배했다고 한들.

정해민이 무섭기는 했다.

정해민은 단순히 말로 그 자리에 오른 사람이 아니라, 실제로 본인의 무력을 증명하면서 통신고의 머리가 되었다. 반에 있는 친구들은 그 사실을 똑똑히 아는 사람들이었다. 친구들이 시선이라도 마주칠까 봐 눈을 내리까는 모습에, 정해민은 완전히 상실해 버린 자존감이 차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이거였다.

어차피 1년밖에 남지 않은 학교생활이다.

더는 학교 밖에서 나대지는 못할지라도, 통신고가 자신의 세상이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적어도 이 안에서만큼은.

자신의 권력을 충분히 누리고자 했다.

정해민이 사납게 소리쳤다.

“너희 전부 다 명심해. 앞으로 내 앞에서 수군거리거나 X 같은 표정 짓는 새끼들이 있으면, 진짜 내 손에 다 뒈질 줄 알아. 나 말로만 끝나지 않는 거 잘 알지? 여기는 통신고니까, 생각들 잘…….”

그때였다.

드르륵.

탁.

교실 문이 열렸다.

정해민은 자신도 모르게 교실 문을 확인했다.

그리고.

“……어?”

그 자리에서 얼어붙고 말았다.

이건 말이 되지 않았다.

상식적이지 않았다.

어떻게 통신고에.

정보통신 고등학교의 학생만 출입할 수 있는 이 공간에, 다른 학교의 학생이 나타난단 말인가.

눈을 깜빡였다.

아무리 깜빡여도, 눈앞의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상대가 정해민을 발견하고는 웃었다.

“오랜만이네.”

김현성.

그가 통신고에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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