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惡의 등교-101화 (101/130)

20. 후폭풍 (1)

전화기 너머.

남연석 교장이 소리치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니까, 그 잘난 천일의 학생은 절대 학교 폭력 따위는 저지르지 않는다는 말입니까? 오대환 교장 선생님! 피해자가 있고 목격자가 있는 명백한 사건입니다! 평소에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 그럴 만한 학생인지 아닌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이미 벌어진 사건’이라는 말입니다.]

남연석의 말.

타당한 주장이었다.

올바른 교육자라면 무조건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을 확인하고 정말 잘못했다면 확실하게 처벌해야 한다. 오대환으로서도 남연석의 분노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에 김현성이 아니라 다른 학생이었다면, 오대환은 분명히 공감하는 자세를 보였을 것이다.

‘대체 김현성은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 거야?’

3시간 전.

김현성이 찾아왔었다.

조퇴를 허락받고서는, 학교 폭력을 주도하는 ‘정해민의 학교’에 직접 찾아가서 응징하겠다고 대놓고 말했다. 정말 당혹스러운 상황이었다. 아무리 쓰레기 같은 선생일지라도 김현성의 행보를 선뜻 지지할 수는 없었지만, 이어서 덧붙인 말에 생각이 바뀌었다.

“교장 선생님께 이번 사건을 무마해 달라고 부탁드리는 게 아니에요. 통신고 교장이 이번 일을 공론화하지 못하도록, 처벌의 영역으로 확산하지 않게만 막아 주세요. 나머지는 제가 알아서 처리할게요. 절대 천일 고등학교에 아무런 문제가 없을 거라고 분명하게 약속드릴 수 있어요.”

허무맹랑한 말이었다.

생각해 보라.

다른 학교에 찾아가서 응징하는 일이다.

아무리 공론화되지 않게 막는다고 하더라도, 목격자가 있고 피해자가 있을 텐데 어떻게 천일 고등학교까지 불길이 번지지 않는단 말인가. 오대환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상대가 김현성이기 때문에, 오대환은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

‘그동안 지켜본 김현성이라면 어떻게든 해결하겠지. 만약 결과가 좋지 않아도, 고창범이 보상할 테고.’

믿음이 쌓였다.

김현성은 철저하고.

고창범은 보상이 확실하다.

켜켜이 쌓여 온 믿음은 굳이 되묻지 않았다.

김현성을 보냈고, 예상대로 발발해 버린 상황에 오대환 교장이 말했다.

“말을 참 재밌게 하십니다. 그럴 만한 학생인지 아닌지는 매우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통신고. 거기 솔직히 질 안 좋은 학생들이 많지 않습니까? 우리 현성이는 전국 1등에 모두가 인정하는 모범생인데, 설마 아무런 이유 없이 그 학교를 찾아갔겠습니까? 폭력을 해도 그쪽이 먼저 했을 거고, 절대 우리 현성이의 책임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 사람이! 그걸 말이라고 합…….]

“아아, 됐고. 천일에서의 처벌이 필요한 거라면 증거를 가져오십시오, 증거를! 증거 없이는 우리 학생을 모함하는 그 어떠한 말도 듣지 않겠습니다!”

툭.

전화를 끊어 버렸다.

이 정도면 충분했다.

천일의 문제는, 이제 통신고의 문제로 끝날 것이다.

* * *

“이 새끼 미친 거 아냐?!”

콱!

전화기를 신경질적으로 내려놓았다.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오대환.

평소에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차피 다 똑같은 지방 학교인데, 혼자만 고고한 척 차원이 다른 명문으로 만들겠다고 떠들어 대던 녀석이다. 그래서일까. 남연석은 잘 알지도 모르는 오대환에게 묘한 열등감을 느꼈다. 인맥을 건너서 오대환의 소식이 들려올 때면, 참 허황된 꿈을 꾼다면서 혀를 쯧쯧 찼었다.

그런 그가.

이렇게 양아치처럼 나올 줄은 몰랐다.

이번 사건은 천일의 발목을 붙잡을 만한 문제인데, 대체 무슨 생각으로 배짱을 부린단 말인가.

‘그래,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상식적으로만 대응했어도 지역 사람끼리 좋게 좋게 풀어 주려고 했는데, 나도 이러면 그냥 넘어갈 수가 없지. 오대환이. 넌 오늘 천일의 큰 오점을 남기게 될 거야.’

교장실을 박차고 나왔다.

걸음을 서둘렀다.

이번 사건을 확실하게 키우기 위해서는, 김현성의 폭력을 증명할 증인이 필요했다.

걱정할 필요가 없는 부분이었다.

교실에서 대놓고 행해진 폭력이기에, 조사를 지시했던 선생들이 이미 증인을 확보했으리라고 생각했다.

탁.

교무실에 들어섰다.

삼삼오오 모여 있는 선생들에게 다가가 다급히 물었다.

“뭐랍니까? 김현성이 어떤 이유로 우리 학생을 때렸답니까?”

“아, 교장 선생님…….”

분위기가 이상했다.

남연석의 물음에, 한 선생이 주변의 눈치를 살폈다.

“말을 하세요, 말을!”

바락 소리를 지르자.

그제야 선생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죄송하지만, 아무래도 직접 확인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 * *

남학생이었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남학생에게 상황을 묻자, 그는 한참을 뜸을 들이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게, 그 김현성이라는 애가 먼저 시비를 걸지는 않았어요. 정해민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그거에 대해 따져 물었는데, 갑작스럽게 정해민이 먼저 주먹을 날리면서 싸움이 크게 번졌어요.”

“확실해?”

“예, 확실해요.”

선생님이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원하지 않는 대답이었다.

남연석은 김현성의 잘못을 찾아오라는 것 같았는데, 남학생은 정해민이 시발점이라고 증언했다.

다른 학생을 불렀다.

이번에는 여학생이었다.

“정해민, 걔 진짜 미친놈이라니까요? 뜬금없이 김현성 얼굴에 주먹을 날리더니, 김현성이 학교에서 이러지 말자고 아무리 소리쳐도 계속해서 주먹을 휘둘렀어요. 진짜 김현성으로서는 마지못해 대항할 수밖에 없었어요. 물론 남의 학교에 찾아와서 뭘 따져 묻는 것도 충분히 잘못한 일이지만, 폭력에 잘못을 묻는다면 이건 엄연히 정당방위 아니에요?”

“김현성이 싸우지 말자고 했다고?”

“예. 똑똑히 들었어요.”

증언을 들을수록.

상황이 심각해졌다.

여학생의 말처럼 김현성에게도 분명히 책임이 있지만,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정해민이 일방적으로 주먹을 휘두른 것 같았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이번 문제는 통신고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천일과도 연관이 있다. 책임 소재를 확실하게 하지 않는다면, 역으로 불길이 번질 수도 있었다.

또다시 목격자를 바꾸었다.

다소 편향적일지라도, 의도적으로 정해민의 친구를 불렀다.

“네가 보고 들은 것을 말해 봐. 김현성이 갑자기 찾아와서 정해민을 때린 게 맞지?”

대답을 끌어냈다.

정해민의 친구라면.

설령 앞선 증언들이 사실일지라도 정해민을 위한 답을 말할 것이다.

일단 상황을 어느 정도는 만들어 놓고, 남연석 교장에게 보고해서 어떻게 할지 결정할 의도였다.

그런데.

친구의 대답은 예상과 달랐다.

“……아니요. 정해민이 먼저 때린 게 맞아요. 선생님. 선생님도 잘 아시잖아요. 정해민, 걔가 얼마나 쓰레기 같은 새끼인지. 사실 그동안 친구랍시고 입을 꾹 다물고 있었는데, 김현성이 찾아온 이유도 정해민이 잘못했기 때문이에요. 통신고에서 정해민에게 한 번도 맞아 보지 않은 남자애가 없을 정도고, 저도 무늬만 친구지 정해민의 심기를 잘못 건드려서 여러 번 맞았어요.”

“하-.”

한숨을 내쉬었다.

선생님이 머리를 감싸 쥐더니, 이윽고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잘 생각해. 네 증언에 해민이의 미래가 걸려 있어. 내가 교실을 찾아갔을 때 본 광경은 김현성이 정해민을 일방적으로 때려눕히는 모습이었어. 상황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피로 물든 해민이의 얼굴과는 다르게 깨끗한 김현성의 얼굴은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어. 그러니까, 확실해? 정해민이 먼저 주먹을 휘두르고 김현성은 스스로의 몸을 지킨 것이 맞냐고.”

마지막 물음이었다.

더는 돌이킬 수 없었다.

이미 무언의 결단을 내린 친구는, 자신을 바라보는 선생님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그게 사실이에요. 제가 아닌 그 누구에게 물어봐도, 전부 그렇게 말할 거예요.”

* * *

일련의 상황.

남연석 교장은 속이 타들어 가는 기분이 들었다.

목격자 전부.

가해자로 정해민을 지목했다.

피가 터지고 바닥에 쓰러진 건 정해민인데, 그 누구도 김현성의 잘못이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마치 금단의 영역이라도 되는 것처럼.

책임을 떠넘기면 안 되는 것처럼.

아무도 정해민의 편을 들지 않았다.

‘이러면 우리가 곤란해지는데.’

정해민의 잘못.

그 전제는 빌미를 내어 주는 것이다.

오대환 교장에게 따져 물은 만큼, 오히려 천일에서 이번 문제를 붙잡고 통신고의 책임으로 전가해 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그건 안 될 일이다. 김현성을 일방적인 가해자로 몰아넣을 수는 없을지라도, 최소한 정해민의 죄는 덜어야 했다.

김현성을 찾아갔다.

현장에서 적발한 이후 계속 상담실에 혼자 있었는데, 남연석이 직접 상담실로 가서 그를 만났다.

“또라이 새끼. 대체 무슨 생각으로 남의 학교에 찾아온 거야?”

“말이 좀 심하시네요.”

“어쭈, 말대답 봐라?”

오대환처럼.

참 건방진 녀석이었다.

남연석이 노골적인 적의를 드러내며 말했다.

“우리 학교 학생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건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수준의 문제가 아니야. 통신고의 학생도 아니고 천일고의 학생이. 남의 학교에 찾아와서 학생 한 명을 피떡으로 만들어 버렸어. 목격자들 말로는 정해민이 먼저 시비를 걸었다지만, 아무리 정당방위라 할지라도 똑같이 주먹을 휘두르는 순간 ‘쌍방’으로 묶여 버리는 게 이 나라의 법이야. 무슨 의미인지 알겠어? 그러니까, 당장 오대환 교장에게 전화해서 네 잘못이라고 말해.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고 뉘우치는 모습을 보인다면, 가벼운 징계에서 끝내 줄 테니까.”

상대는 겨우 학생이다.

통신고와는 다르게 명문 대학에 뜻이 있는 학생이라면, 어떤 협박이 잘 먹힐지 너무나도 잘 알았다.

“혹시라도 ‘명진건설’을 믿는 거라면 기대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네가 어떤 배경을 지녔는지는 충분히 알고 있지만, 통신고의 교장으로서 내게도 절대 물러날 수 없는 자존심이라는 게 있거든. 앞으로 좋은 대학에 들어가야 할 거 아니야. 괜히 문제를 일으키면, 네 생기부에 흠집이 생길지도 몰라.”

순간.

김현성이 피식, 웃었다.

“웃어?”

“아, 좀 웃겨서요.”

재밌었다.

교사로서의 공정함이 아닌 자존심 때문이라니.

천일이나, 통신이나.

쓰레기 같은 교육자들이었다.

대체 세상이 왜 이렇게 변해 버렸을까.

올바른 교육자들이 모두 증발해 버린 이 시대적인 흐름에, 김현성은 표정을 굳히며 담담하게 말했다.

“물 한 잔 주시죠.”

“물? 지금 물을 달라고?”

“예. 목이 말라서요.”

“하, 참.”

남연석이 황당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래도 협박이 먹혔다고 생각했는지, 무거운 엉덩이를 일으키고는 종이컵에 담긴 물을 가져왔다.

탁.

“마셔.”

“감사합니다.”

김현성이 가볍게 목을 축였다.

그러고는 이어서 말했다.

“교장 선생님. 혹시 골든 서클이라고 아세요?”

“……골든 서클?”

모르는 눈치였다.

상관없었다.

알든, 말든.

그게 실제로 존재한다는 게 중요한 문제니까.

“간략하게 설명해 드리자면 ‘학교’라는 공간에서 대가를 지불하고 의뢰를 수행해 주는 집단이에요. 예를 들면 전교 1등을 처리해 달라, 누구를 괴롭혀 달라 등등. 강남 일대에서는 매우 활발하게 활동하는 집단인데, 이 대산에서는 흔한 일이 아니다 보니 대부분은 잘 모르죠.”

“그걸 지금 왜 말하는 거지?”

“정해민이, 골든 서클의 의뢰를 받아들인 용병이기 때문이에요. 그것도 매우 성공적으로 의뢰를 성공시킨 용병. 교장 선생님 말씀대로라면 다른 학교를 찾아온 제 행동은 정말 잘못된 것이겠죠. 그런데 정해민은 다른 학교 애를 괴롭힌 전적이 있어요. 그냥 괴롭힌 게 아니라 의뢰의 내용대로 확실하게 무너트렸고, 그 학생은 자신의 손목을 스스로 긋고 자퇴라는 결정을 내렸죠.”

그 말에.

남연석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본능적으로 알았다.

일이 잘못 돌아가고 있음을.

김현성은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남연석과 시선을 마주치더니, 폐부를 깊숙이 파고드는 차가운 음성을 내뱉었다.

“단 한 번만 물을게요. 제가 정말, 처벌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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