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惡의 등교-102화 (102/130)

20. 후폭풍 (2)

남연석.

그에 대해서는 사전에 충분히 조사했다.

통신고의 교장으로서 오대환처럼 대놓고 비리를 저지르지는 않지만, 구시대적인 사고를 지녔으며 꼴통들은 매로 다스려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 예전에 한 학생이 눈을 부릅뜨고 남연석에게 대들었다가, 한때 복싱을 배웠다는 남연석의 주먹질에 이빨이 날아간 건 유명한 사건이었다.

그때.

남연석은 말했다.

감히, 어디서, 건방지게.

자존심을 나타내는 그의 단어들이, 남연석이 어떤 사람인지를 증명하기에는 충분했다.

김현성이 말했다.

“교장 선생님은 이번 사건으로 통신고의 명예가 실추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겠죠. 학교에 선생들이 버젓이 존재하는데, 다른 학교의 학생이 폭력을 행사했으니까요. 저를 확실하게 처벌하지 않는다면 대산의 모두가 통신고의 안일한 대처를 비난할 거고, 그 책임은 온전히 교장 선생님에게로 돌아가겠죠. 그런데 만약 ‘정해민의 사건’이 알려지면 어떻게 될 것 같으세요?”

“…….”

말문이 막혔다.

김현성과 정해민.

둘을 저울에 올렸다.

끊임없이 저울질하며,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그때는 단순히 폭력 사건으로 끝나지 않아요. 통신고의 학생이 무려 대가를 받고, 다른 학교의 학생을 자살 시도까지 몰아넣은 사건이에요. 통신고가 신랄하게 비난을 받을 것은 물론이고 교육자로서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책임을 그대로 떠안게 되겠죠. 그렇지 않아도 대산에서 통신고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은데, 이번 사건마저 발발하면 이 학교의 교장인 남연석 선생님을 사람들이 어떻게 바라볼까요? 아, 그리고 제 말이 진실인지는 의심하지 마세요. 이미 정해민 사건의 피해자를 포섭해서, 증언과 증거를 모두 확보한 상태거든요.”

“그래서, 뭐 어쩌자는 거야? 정해민 같은 쓰레기가 사고를 치고 다니는 것을 나보고 어쩌라고!”

바락, 소리를 질렀다.

외통수였다.

살길은 열어 주지 않고 몰아붙이는 상황에, 남연석은 곤란함과 분노가 뒤섞인 표정을 보였다.

예상했던 반응이었다.

김현성이 대놓고 통신고를 찾아간 이유는, 이 남연석이라는 사람이 충분히 썩었음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제가 제안 하나 할게요.”

“제안?”

“예. 제가 일으킨 폭력은 아무런 문제도 없었던 것처럼 그냥 넘어가세요. 학생들이 더는 학교 폭력을 행하지 못하도록, 저라는 존재를 신경 쓸 수밖에 없도록. 한 번의 선례를 남겨 달라는 의미예요. 그렇게만 해 주신다면 ‘정해민의 사건’은 퇴학 후에 터트려 드릴게요.”

“그 말은…… 그 전에 정해민을 퇴학시켜, 통신고가 떠안을 책임을 최대한 덜어 주겠다는 뜻인가.”

“맞아요.”

김현성의 태도.

김현성의 행보.

김현성의 제안.

전부 다 비상식적이었다.

남연석은 신음을 삼키며 미간을 찌푸렸다.

섣불리 판단이 내려지지 않았다.

통신고에서 벌어진 사건은 일벌백계해야 마땅한데, 김현성을 처벌했다간 이후의 후폭풍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애초에 명진건설이라는 불편한 배경도 존재하지 않는가. 그런데 정해민을 버린다면, 미래의 시한폭탄을 제거함과 동시에 최대한 이상적으로 상황을 해결할 수 있었다.

김현성이 물을 마셨다.

아직 시간이 조금 필요해 보이는 모습에, 시계를 힐끗 확인하더니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고민할 시간, 딱 10분 드릴게요.”

* * *

통신고의 보건실.

잠깐 기절해 있었던 정해민이, 신음을 삼키며 힘겹게 눈을 떴다.

“……끄으.”

“괜찮아?”

상태를 묻는 물음과는 다르게.

정해민을 바라보는 선생님의 시선은 차가웠다.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정해민에게, 퉁명스러운 어투로 상황을 설명했다.

“너, 잠깐 기절해 있었어. 심하게 얻어터져서 얼굴이 말이 아니었는데, 불행 중 다행히도 심각한 상처는 없어서 간단하게 치료했어. 그러니까, 대체 무슨 생각으로 학교에서 싸움박질을 해? 만약 조금이라도 잘못 맞았으면, 병실에서 눈을 뜨든 눈을 뜨지 못하든 했을 거야.”

“……김현성은요?”

“걔? 지금 선생님들에게 끌려갔어.”

기억이 돌아왔다.

갑자기 들이닥친 김현성.

그리고 벌어진 싸움.

이후의 기억은 존재하지 않았지만, 선생님들에게 끌려갔다면 앞으로의 상황은 예상할 수 있었다.

‘김현성에게 털리긴 했어도 그렇게 나쁜 상황은 아니야. 남의 학교에 찾아와서 대놓고 날 폭행하는 모습을 선생님이 확인했으니, 절대 처벌에서 자유로울 수 없겠지. 차라리 잘됐어. 이걸 어떻게든 물고 늘어져서 김현성을 처벌받게 하자. 적어도 통신고라는 이 공간에서는 나를 건드릴 수 없도록. 다시 내 앞에 나타나는 순간, 재범(再犯)은 소년원으로 보낼 명분이 되겠지.’

자리에서 일어났다.

곧바로 교무실로 향했다.

김현성의 처벌을 위해서는 강력한 증인이자 피해자.

바로 자신이 필요할 것이다.

그렇게 머릿속으로 나름대로 그럴듯한 계획을 구축했는데, 막상 마주한 상황은 예상과 달랐다.

남연석이 말했다.

“네가 피해자라고? 하- 참. 세상 참 좋아졌다. 먼저 때리고 좀 얻어맞았다고, 본인이 피해자라고 운운하는 세상이라니. 그러니까 요새 자해 공갈이 유행하는 거야. 정해민. 이미 애들이 전부 다 증언했어. 김현성은 너와 대화를 하려고 찾아왔는데, 네가 먼저 주먹을 휘두르며 김현성을 공격했다고. 세상에는 말이야, 그런 상황을 ‘정당방위’라고 부른단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제가 먼저 공격했다뇨. 절대 아니에요. 김현성이 갑자기 찾아와서는 저를…….”

“그래서. 그걸 증언할 증인은?”

“애들이 봤어요. 애들이 전부 봤다고요!”

정해민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억울했다.

이딴 상황은 예상하지 못했다.

답답하다는 듯이 소리치는 정해민의 모습에, 남연석이 비릿한 웃음을 보였다.

“내가 방금 분명히 말하지 않았나. 애들이 전부 다 증언했다고. 네 말처럼 애들의 말을 종합해 보니, 단 한 명도 빠짐없이 정해민 너를 가해자로 지목했어. 정해민. 상처가 많다고 해서 피해자라는 법은 없어. 넌 먼저 주먹을 휘둘렀고, 난 이 학교의 교장으로서 폭력에 대항한 김현성이 아니라 폭력을 먼저 무기처럼 사용한 ‘너’에게 그에 합당한 처벌을 해야겠지.”

“씨발, 그게 무슨 개소리야!”

콰앙-!

정해민이 책상을 걷어찼다.

말이 통하지 않았다.

처벌?

그딴 걸 받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분명히 김현성이 자신을 먼저 건드렸고, 얼굴에 상처도 있으니 법으로 간다면 자신에게 유리할 것이다. 증언과 증거는 필요하지 않았다. 정당방위든 뭐든 엉망인 얼굴이 모두 증명할 것이다.

남연석이 주변을 슥 살폈다.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 한산한 공간에, 고개를 들이밀며 조용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야, 너 문병선이라고 알지?”

“……!”

“그 학생이 너에 대해서 증언하기로 얘기가 끝났어. 이건 단순하게 폭력 사건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라, 무고한 학생을 ‘자살 시도’까지 몰아넣은 너에 대한 심판으로 번질 문제라고. 무슨 의미인지 알겠어? 네가 계속해서 네 무고함을 주장한다면 우리로서도 네 처벌을 지금보다 강하게 주장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야. 그러니까.”

시선을 마주쳤다.

고등학생들은 알지 못하는.

어른의 차갑고 냉정한 그 눈빛에, 정해민은 그만 말을 잃고 말았다.

“인생 나락으로 떨어지기 싫으면 그냥 입 다물고 학교에서 꺼져, 이 새끼야.”

* * *

그로부터 며칠.

정해민은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밀려드는 먹구름처럼, 그의 인생이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퇴학.

그리고 부모님의 실업.

갑작스럽게 방문을 열고 들이닥친 아버지는, 눈이 돌아간 얼굴로 정해민의 뺨을 수차례 날렸다.

“이 개새끼가. 대체 학교에서 뭔 짓을 하고 다닌 거야!”

짜악, 짜악, 짜악!

정해민의 아버지.

그는 건설 현장의 인부였다.

그것도 경력이 꽤 되는, 그동안의 경험만 살려도 노후 걱정이 없는 사람이었는데 하루아침에 그만두라는 통보를 받았다. 당연히 그 배경에는 명진건설이 있었다. 대산의 건설 업계를 휘어잡은 그들에게, 아무런 연줄도 없는 인부 한 명을 자르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명분도 충분했다.

아들이 심각한 학교 폭력을 저지른 것을 빌미로, 그딴 새끼의 아비는 받아 줄 수 없다고 말했다.

신랄하게 맞았다.

정해민에게 가정 폭력이란 일상적인 일이었지만, 그날만큼은 정말 죽일 기세로 맞았다.

집을 뛰쳐나왔다.

가출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그동안 정해민과 알고 지내던 친구들은 그의 연락을 받지 않았고, 한참을 떠돌아다니다 보니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저물었다. 맑았던 하늘이 먹구름으로 뒤덮이고, 이내 까맣게 물드는 광경. 왠지 그게 자신의 인생인 것만 같아 눈물이 핑 돌았다.

‘대체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거야?’

김현성을 건드린 거?

골든 서클의 의뢰를 받아들인 거?

애초에 애들을 괴롭힌 거?

무의미한 고민이었다.

인생이 꼬인 시작점을 찾아보자면, 그는 매일 재앙의 씨앗을 뿌리며 살았다.

그때였다.

우웅.

핸드폰이 울렸다.

낯선 번호였다.

혹시라도 자신을 버리지 않은 친구의 전화일까 봐, 정해민은 황급히 전화를 받았다.

탈칵.

[오랜만이네. 나야, 병선이.]

“……문병선?”

[그래, 문병선.]

눈동자가 격하게 흔들렸다.

문병선.

골든 서클의 의뢰로 자신이 벼랑 끝에 밀어 넣었던 피해자.

그가 먼저 연락할 줄은 몰랐다.

사실 김현성만 아니었다면, 정해민은 문병선을 자신에게 큰돈을 벌어다 준 좋은 예시로 기억했을 것이다.

[네 소식 들었어. 너는 퇴학당하고, 네 부모는 직장에서 잘렸다며. 내가 재밌는 얘기 더 해 줄까? 주동준. 걔네 집도 쫄딱 망했어. 학교에 사채업자들이 들이닥쳐서 뒤엎는데, 그걸 지켜보겠다고 자퇴한 나도 학교를 찾아갔었거든. 그 모습이 얼마나 짜릿한지 시선을 뗄 수 없더라. 아, 너는 주동준이 누군지 모르려나? 그 골든 서클이라는 X 같은 단체에 의뢰를 넣은, 네가 날 괴롭히게 만들었던 의뢰인이 바로 주동준이야.]

입을 달싹였다.

뭐라 말할 수 없었다.

반박하고 화를 내고 싶은데, 사고가 굳어 버린 것처럼 멍한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현성이가 그런 말을 하더라. 의뢰인은 물론이고 의뢰를 받은 너까지. 이 정도 시련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인생을 확실하게 짓밟아 버리겠다고. 예전에 네가 말했었지. 아무래도 운동 능력을 타고난 것 같아서, 나중에 헬스 트레이너나 해야겠다고. 그래서 매일같이 헬스장을 오가면서 근력을 키우고 그 근육을 자랑하겠다고 날 때렸던 기억이 나. 그 꿈. 절대 이루지 못할 거야.]

“그, 그게 무슨…….”

“야.”

순간.

소름이 돋았다.

바로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대로 얼어붙은 정해민이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오늘부터 넌 손을 제대로 사용할 수 없을 거거든.]

“오랜만이네?”

배성호와 그 일당.

그들이 싸늘한 얼굴로 정해민을 바라보고 있었다.

* * *

통신고 사건.

엄청난 임팩트였다.

김현성이 정말로 대산 정벌을 이루었으며, 그의 통제를 벗어나면 어떻게 되는지를 확실하게 보여 주었다.

소문이 빠르게 퍼졌다.

싸움에 관심이 많은 학교뿐만 아니라.

공부에 전념하는 인문계들도 그 소식을 접했다.

“내 친구한테 들은 얘기거든? 지금 김현성 걔 때문에, 학교 폭력이 잦았던 학교들 전부 싹 다 조용해졌대. 김현성이 이미 증명해 버렸잖아. 자신의 통제를 벗어나면 일행을 아무리 끌고 와도 전부 쓸어버리고, 도망치면 학교까지 찾아와서 짓밟아 버린다는 걸. 가장 소름이 돋는 부분은 통신고에서 대놓고 난리를 쳤는데도, 김현성은 징계는커녕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는 거야.”

“소름. 어떻게 그게 가능하대?”

“김현성, 빽 X 된다는 소문이 있어. 천일고 교장, 명진건설 등등. 전부 다 김현성의 편이래.”

대산 정벌.

핫할 수밖에 없는 주제였다.

수업이 끝날 때마다 모두가 그에 대해 떠들었는데, 문득 한 학생이 이런 의문을 나타냈다.

“그런데 우리도 상관이 있는 일인가? 김현성에게 대놓고 경고를 들은 게 아니라, 만약 우리 학교에서도 학교 폭력이 일어나면 어떻게 되는 거지? 김현성이 막 찾아와서 개지랄을 하려나.”

“설마. 쓰레기 같은 새끼들이 득실거리는 똥통 학교만 통제하지, 우리 같은 범생이들이 있는 학교까지 통제하겠어?”

이번 사건.

중심은 SNS 페이지였다.

보통 다 학교 폭력이 만연한 학교들 위주였고, 인문계는 대체로 사건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었다. 인문계에 가해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인문계에서도 김현성에게 찍혀 탈탈 털린 애들이 존재하지만, 세력을 형성해서 김현성을 정면으로 들이받은 학교는 전부 실업계였다.

잃은 게 많은 아이들.

그들은 한발 물러났다.

괜히 패싸움에 휘말려, 학교생활을 망치고 싶지는 않았다.

그때였다.

신나게 떠들며 복도를 지나가는데, 누군가와 어깨를 부딪쳤다.

팍!

“아!”

“미안.”

상대는 바로 사과를 건넸다.

사실 방금까지 신나게 떠들던, 한병수라는 이름의 학생이 잘못한 일이었다.

앞을 제대로 보지 않다가 어깨를 부딪친 건데도, 사과하고 지나가는 친구의 모습에 인상을 팍 찌푸렸다.

“야, 씨발 사과 제대로 안 하냐?”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친구가 돌아보며 말했다.

“……했잖아, 사과.”

“아, 미안. 그게 사과냐? 씨발 제대로 해. 너 때문에 어깨가 아프잖아.”

“내가 이 이상 사과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하는데. 네가 먼저 부딪혔지만, 그래도 내 잘못도 있다고 생각해서 사과했을 뿐이야. 네가 화를 낼 상황은 아니라고.”

“아, 그래?”

한병수가 피식, 웃었다.

공부에 목숨을 거는 이 학교에도.

당연히 서열이 존재했다.

범생이고 아니고를 떠나서, 피가 끓는 17살의 나이에 아무런 분쟁이 존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세상은 똑같았다.

인문계도, 실업계도.

어디에나 가해자는 존재했다.

한병수는 바로 코앞까지 다가가더니, 상대를 살벌하게 내려다보며 이죽거렸다.

“그래서, 현진아. 사과 제대로 못 하겠다고?”

친구의 이름.

그랬다.

상대는 바로 대산의 명문.

대산 과학 고등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인 김현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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