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惡의 등교-103화 (103/130)

20. 후폭풍 (3)

작년 겨울.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었을 때, 김현성은 동생을 불러서 물었다.

“넌 어느 고등학교로 가고 싶어?”

“당연히 천일 고등학교지. 형이랑 같은 고등학교에 진학해서, 대학도 형이 가는 곳으로 따라갈 거야.”

예상했던 대답이었다.

전생의 김현성은 이맘때 동생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고, 뒤늦게 확인했을 때는 천일 고등학교로의 진학을 확정 지은 상황이었다.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 들었다. 김현진이 자신의 동생이라는 사실을 박민철 패거리가 아는 순간, 그들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황급히 다른 방법을 알아보았다.

하지만 이미 확정된 사실은 바꿀 수 없었고, 김현진은 예정대로 김현성의 후배로 입학하게 되었다.

그로부터 2년.

철저하게 김현진을 남으로 대했다.

학교에서 시선을 마주치면 피했고, 동생이 있냐는 물음에 외동아들이라고 대답했으며, 집에서 대체 왜 자신을 모른 척하냐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동생에게 울면서 제발 자신을 믿어 달라고 호소했다.

‘내가 죽고 난 이후에야 현진이가 내 동생이라는 사실이 공개적으로 밝혀졌지. 몇몇이 알던 사실이 천일 전체로 번지고서, 현진이는 박민철 패거리의 후배라는 녀석들에게 괴롭힘을 당했어.’

물론.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

지금의 김현성은 하나뿐인 동생을 보호해 줄 힘이 있지만, 동생에게는 다른 방향성을 제시했다.

“현진아. 나랑 했던 약속 기억하지?”

“당연하지. 공부 열심히 하겠다고 약속했잖아.”

“그래. 그래서 하는 말인데, 천일 고등학교보다는 대산 과학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건 어때? 천일이 대산에서 빠지는 학교는 아니지만, 충분한 지원만 받쳐 준다면 대산과고만큼 좋은 선택지는 없어. 그곳의 교육 시스템은 분명히 네가 원하는 수준까지 끌어올려 줄 수 있을 거야.”

대산과고.

학교 자체가 나라의 지원을 받는다지만, 학원을 병행하지 않는다면 학교의 ‘평균’을 절대 따라잡을 수 없는 학교다. 김현성은 그래서 천일 고등학교로 진학했다. 평균이 상당히 높은 대산과고보다는, 그래도 내신에서 우위를 선점할 수 있는 천일이 좋은 선택지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김현진을 대산과고로 보내는 이유.

단순히 좋은 학교이기 때문은 아니다.

그 사실은 굳이 밝히지 않았다.

김현성은 동생을 진지한 눈빛으로 바라보았고, 한참을 고민하던 김현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대산과고로 진학할게.”

* * *

가벼운 부딪힘.

단순한 말싸움.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이지만, 17살의 세계에서는 불이 붙기에 충분한 명분이었다.

“개새끼가 뒈질라고.”

퍽!

한병수가 선빵을 날렸다.

가볍게 설전을 주고받다가, 말에서 밀린다고 판단한 모양인지 가슴팍을 밀치더니 얼굴을 날려 버렸다.

“예전부터 네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았어. 뭐라도 되는 것처럼 애들을 꼬라보는데, 너 뭐 믿는 구석이라도 있냐?”

학기 초기.

사소한 사건이 있었다.

한병수는 장난이랍시고 김현진을 툭툭 건드렸는데, 김현진은 곧바로 정색하면서 한병수를 몰아붙였다. 당혹스러운 기억이었다. 얌전하게 생긴 김현진이 반항할 줄 몰랐던 한병수로서는, 그때의 기억을 마음에 품었다. 언제고 때가 된다면 김현진을 짓밟아서 자신의 자존심을 되찾겠다고 생각했다.

지금이 그때였다.

엉덩방아를 찍은 김현진을 향해 의기양양하게 걸어가자, 김현진도 벌떡 일어나며 이를 악물었다.

“씨발.”

확.

파악-

김현진도 참지 않았다.

일어나는 속도를 살려 그대로 들이받았고, 바닥에 넘어지는 한병수의 얼굴에 주먹을 날려 댔다. 한병수도 발악하며 몸을 들썩였다. 몇 대 얻어맞아 얼굴이 금방 피로 물들었지만, 빠르게 몸을 뒤집더니 김현진을 올라타는 자세를 만들었다.

빠악!

얼굴에 주먹이 작렬했다.

상황이 반전되었다.

콧잔등을 정확하게 때리는 공격에 김현진이 비명을 질렀고, 그때부터는 일방적인 싸움이 되었다.

“씨발 새끼가 감히 덤벼? 야, 더 해 봐. 더 해 보라고, 이 개새끼야.”

빠악!

빠악, 빠악, 빠악!

친구들이 몰려들었다.

웅성거리는 그들의 시선을 의식한 모양인지, 한병수는 주먹질을 멈추지 않았다.

학교라는 공간.

이곳에서 자신의 업적이 필요했다.

김현진은 평소에 잘 굽히지 않는 성격이었고, 이런 녀석을 처참하게 짓밟아 버리면 자신의 업적을 전시할 수 있을 것이다. 한병수라는 사람이 만만치 않다는 업적. 피로 물든 김현진의 얼굴을 목격한 친구들은, 자신이 툭툭 건드려도 김현진처럼 정색하는 반응 따위는 보이지 못할 것이다.

빠악!

더는 반항하지 못했다.

김현진은 신음을 삼키며,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주먹을 버텨 낼 뿐이었다.

* * *

한병수와 김현진.

둘은 곧바로 교무실로 불려 갔다.

복도에서 벌어진 소란을 들키지는 않았지만, 엉망이 된 두 얼굴을 선생님들이 못 알아볼 리가 없었다.

3반의 담임.

이학범이 말했다.

“둘 다, 상황을 설명해 봐.”

시선이 김현진을 향했다.

먼저 말해 보라는 그 눈빛에, 김현진은 퉁퉁 부은 입으로 힘겹게 말했다.

“……복도를 지나가다가 병수랑 어깨가 부딪혔어요. 전 처음부터 병수를 발견하고 피하려고 했는데, 병수가 절 발견하지 못했는지 제 쪽으로 오면서 부딪힐 수밖에 없었어요. 그래도 사과는 해야 한다는 생각에 먼저 사과를 했는데, 병수가 저보고 똑바로 사과하라면서 시비를 걸더니 주먹을 날렸어요.”

“야, 개소리하지 마. 언제 내가 먼저…….”

“한병수!”

이학범이 눈을 치켜떴다.

이학범은 학교에서 매우 유명했다.

원칙주의자.

명백하게 잘잘못을 따져 절대 편향되지 않는 처벌을 내리기 때문에, 그에게 잘못 보였다간 어떤 처벌을 받을지 모른다. 적어도 과학고에 진학한 학생들은 ‘내신’이 매우 중요했다. 학교에서의 평가가 본인들의 미래를 결정하기에, 한병수는 목소리를 죽이며 조심스럽게 반박했다.

“선생님. 저 진짜 억울해요. 그냥 복도를 지나가고 있었는데, 김현진이 고의적으로 제 어깨를 치고 지나가더니 기다렸다는 듯이 시비를 걸었어요. 제가 얼굴을 먼저 때리지도 않았어요. 그 자리에서 지켜본 애들에게 물어봐도 좋아요. 제가 뭐라고 하니까 김현진이 제 얼굴을 때렸고, 저로서는 바닥에 깔리는 바람에 같이 싸울 수밖에 없었어요.”

“사실이야?”

“예, 확실해요.”

한병수는 흔들리지 않는 얼굴로 대답했다.

거짓말투성이 변명이었지만, 그는 스스로 믿는 바가 있었다.

김현진과의 충돌.

그 시작점을 제대로 지켜본 목격자는 없었다.

그렇다면 누가 시비를 먼저 걸었는지는 확실하게 밝힐 수 없는 부분이었고, 뒤늦게 애들이 몰려들었을 때는 김현진이 자신에게 달려들었다. 사실 목격자가 있든 말든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진실을 아는 사람이 있을지라도, 감히 자신을 고발하는 위험 부담을 감수하지는 않으리라고 확신했다.

학기 초기.

무분별했던 서열이 어느 정도 정리되고 있었다.

한병수는 1학년 최고의 포식자로서, 스스로에 대한 과도할 정도의 자신감을 드러냈다.

‘이 녀석들.’

이학범이 표정을 찌푸렸다.

일련의 상황.

대충 파악이 되었다.

김현진은 절대 먼저 시비를 걸 성격이 아니었고, 한병수는 학기 초기부터 말썽이 잦았다. 객관적인 사실만으로 상황을 판단해야겠지만, 이학범으로서는 김현진의 말이 더 신빙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얼굴만 봐도 그랬다.

김현진의 얼굴은 엉망이었다.

얼마나 맞았는지, 한쪽 눈이 제대로 떠지지 않을 정도였다.

“누가 잘못했는지는 애들을 불러서 확실하게 확인할 거야. 만약 거짓으로 증언한 사람이 있다면, 내가 반드시 처벌할 테니 기대하는 게 좋을 거야. 그리고 누구의 잘못인지를 떠나서 애초에 학교라는 이 신성한 공간에서 서로 치고받고 싸운 너희 둘 다 잘못을 저질렀으니, 내일 보호자 모시고 학교로 와. 알겠어?”

“선생님. 그건…….”

“모시고 오라면, 모시고 와.”

“……알겠습니다.”

고개를 숙이는 김현진과는 달리.

한병수는 피식 웃어 보이더니, 당당한 얼굴로 말했다.

“예, 모시고 오겠습니다.”

* * *

교무실을 나왔다.

방금까지 예의 바른 모습을 보이던 한병수가, 표정을 싹 바꾸며 신경질적인 눈빛으로 교실을 돌아보았다.

“누가 원칙주의자 아니랄까 봐. 꼰대 새끼가 존나 지랄이네.”

문득.

김현진이 눈에 밟혔다.

웃음이 나왔다.

보호자를 모셔 오라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김현진은 급격하게 어두워지는 표정을 보였다.

그게 자신과 그의 차이였다.

한병수가 비아냥거리며 말했다.

“야. 할머니가 학교까지 나오려면 많이 힘드실 텐데, 그냥 대충 네가 잘못했다고 말하지 그랬냐.”

“말 함부로 하지 마.”

“햼부로 햬지 마, 예배배배. 크크크큭, 병신 새끼.”

김현진의 집 사정.

얼마 전에 친구에게 들었다.

김현진과 중학교 동창인 친구였는데, 김현진은 중학교 행사 때마다 부모님이 아닌 할머니를 대동했다. 어린 나이에 관심을 보일 수밖에 없는 문제였다. 친구들은 김현진에 대해 떠들어 댔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김현진이 부모님 없이 할머니 밑에서 자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더더욱.

한병수는 김현진이 못마땅했다.

부모도 없는 새끼가 왜 나댄단 말인가.

‘꼴에 존심은.’

진심으로 웃겼다.

초등학교 4학년 때였나.

학교에서 한 친구와 대판 싸웠던 한병수는, 당연히 처벌받을 것이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의외의 광경을 목격했다.

“아버님,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잘 지내다마다요. 그나저나 죄송합니다. 제 아들이 이런 사고를 쳐서. 다음부터는 이런 일이 없도록 따끔히 혼내겠습니다.”

“에이, 저희 사이에 무슨 그런 말씀을요. 애들끼리 치고받고 싸울 수도 있죠. 사내새끼들이 원래 다 그렇게 크는 거 아닙니까?”

“그렇죠? 하하하하.”

분명히 한병수가 잘못한 일이었다.

먼저 때리고, 상대가 더 다쳤다.

그런데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알고 보니 한병수의 아버지는 선생님에게 ‘충분한 대가’를 지불하고 있었고, 피해자 학생의 부모는 가난하기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때부터였다. 한병수는 세상의 진리를 깨달았다. 다른 것은 몰라도 아무것도 없는 새끼가, 감히 자신에게 눈을 부릅뜨며 대드는 것은 용납되지 않았다.

김현진이 싫은 이유였다.

한병수가 비릿하게 웃으며 말했다.

“겨우 이런 사건으로 꼰대가 왜 부모님을 모셔 오라는 줄 알아? 그건 다 충분한 보상을 받기 위해서야. 원칙주의자니, 꼰대니 그런 별명으로 불려도 결국은 다 똑같은 속물이라는 의미지. 꼰대도 우리 아빠가 ‘건설사 사장’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겠지. 예전에도 그랬어. 초등학교든 중학교든, 꼭 되지도 않는 이유로 우리 아빠를 불러들이더니 그날부터 세상이라도 다 가져다줄 것처럼 내게 잘해 주더라.”

그의 말처럼.

한병수의 아버지는 중소기업이기는 하나, 제법 건실한 건설사의 사장이었다.

자신감의 원천은 그것만이 아니다.

“그리고 우리 형은 대산미래고 3학년에, 그 학교 짱이야. 이게 다 무슨 의미겠어?”

김현진은 애초에 상대가 되지 않았다.

힘에서도.

배경에서도.

핏줄에서도.

흔들리는 김현진의 눈빛을 내려다보며, 한병수가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얼굴 가득 웃음을 보였다.

“지금부터 네 학교생활이 X 됐다는 의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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