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惡의 등교-104화 (104/130)

20. 후폭풍 (4)

다음 날.

한병수의 아버지가 학교에 들이닥쳤다.

한철호는 잔뜩 화난 얼굴로 고래고래 소리쳤다.

“김현진이 누구야? 어떤 개새끼가, 우리 귀한 아들 얼굴을 이렇게 만들었어?”

“병수 아버지십니까?”

“예, 제가 한병수 아버지입니다. 그러는 당신은 누굽니까?”

“병수 담임인 이학범입니다.”

눈빛이 바뀌었다.

굳이 3반이 아니라 교무실을 찾아온 이유는, 선생들에게 자신의 분노를 보여 주기 위함이었다.

“아, 그쪽이 우리 병수 담임입니까? 잘됐네. 어디 설명 좀 해 보십시오. 병수가 말하길 김현진이라는 애가 평소에 자기를 무시하고, 이번 사건이 일어났을 때도 먼저 어깨를 부딪치고 주먹도 먼저 날렸다는데. 상대가 그렇게 안하무인으로 나오는데 우리 애가 그냥 당하고만 있으라는 겁니까? 예, 폭력은 잘못되었습니다. 잘못된 게 맞는데, 정당방위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슥.

시선을 훑었다.

몇몇 아는 얼굴들이 있었다.

대산에서 태어나 이곳에서 평생을 보내다 보니, 학교에도 그의 인맥이 녹아들어 있었다.

신호를 받았기 때문일까.

선생들이 나서서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학범 선생님. 병수 아버님의 말씀이 무조건 틀린 것도 아닙니다.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하시지요. 애들 둘이 치고받고 싸운 일인데, 일을 심각하게 만들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맞아요. 그리고 슥 보니까, 현진이가 먼저 시비를 건 것 같은데. 대충 현진이 징계 주고 끝내시죠.”

판이 깔렸다.

한철호가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번 일을 문제없이 마무리하려면 상대편 보호자에게 사과를 받아야겠습니다. 그러지 않는다면…….”

“거기까지 하시죠.”

이학범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

예상과 달랐다.

분위기에 휩쓸릴 법도 한데, 그는 차분하게 본인의 생각을 말했다.

“제가 아버님을 부른 이유는 이번 사건을 편향되게 처리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그러니 상황이 확실하게 정리되지 않은 지금, 섣불리 누군가를 처벌하고 말고를 운운할 생각은 없습니다. 저는 이 학교의 선생님이고 그것이 학생들을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하는 원칙입니다.”

원칙주의자.

꼰대.

괜히 붙은 별명이 아니었다.

상대가 누구인지, 어떤 배경인지를 전부 알면서도 이학범은 조금의 호의도 내비치지 않았다.

“곧 현진이 보호자님도 오실 겁니다. 그때 마저 얘기하시죠.”

* * *

상담실로 자리를 옮겼다.

한철호는 혼자 오지 않았다.

한병수의 형이자 장남인 한병민도 대동했다.

물론 해당 학교에 조퇴서를 내야 했지만, 막내를 위해서 장남도 대동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병수야. 사내자식이 이런 일로 쫄 필요 없어. 네가 뭘 잘못했어? 만약 선생님들이 뭐라고 하면 이 아빠한테 말하고, 괴롭히는 자식들이 있으면 형에게 말해. 내 아들이면 어깨 펴고 당당하게 살아야지.”

“그래. 처음부터 형한테 말했으면 이런 일도 없잖아.”

두 남자.

아버지와 형의 지원에 한병수는 웃음이 나왔다.

그야말로 천군만마(千軍萬馬)였다.

사실 한병수는 싸움을 그렇게 잘하는 편은 아니었는데, 초등학교 시절부터 단 한 번도 아쉬운 소리를 한 적이 없었다. 어른들은 아빠에게 굽신거렸고, 친구들은 형에게 쩔쩔맸다. 매번 대우받는 삶을 살다 보니, 김현진처럼 자신의 말에 대드는 녀석들이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다.

‘김현진, 병신 새끼. 그러니까 진즉에 잘 보이지 그랬어.’

이번 사건.

오히려 재밌는 이벤트가 되었다.

김현진이 처벌받고 나면, 대산과고에서 ‘자신의 존재’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영역이 될 것이다.

그때였다.

문이 열리며 이학범과 처음 보는 얼굴이 보였다.

김현진과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한 학생.

보호자라기에는 너무 어렸다.

한병수가 의문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그때, 한철호와 한병민의 시선이 ‘그 학생’에게로 향했다.

순간.

둘의 표정이 움찔거렸다.

원래 아는 듯한, 뭔가 있는 표정이었다.

이학범이 자리에 앉았다.

맞은편에 김현진과 의문의 학생이 같이 착석하자, 이학범이 입을 열었다.

“원래 현진이 할머니께서 보호자로 착석해야 하는데, 몸이 편찮으신 관계로 형이 대신 나왔습니다. 미리 양해를 구한 문제이니 이해 바랍니다. 그럼 지금부터 보호자분들에게 이번 사건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당시 현장을 목격한 학생들에 의하면, 병수가 먼저 시비를 걸었다고 합니다. 오히려 현진이는 사과로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했지만, 병수가 주먹을 날리는 바람에 싸움이 크게 번질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 아버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니, 그게 무슨!”

한병수가 눈을 부릅떴다.

목격자.

진실을 말한 누군가가 있었다.

정체 모를 목격자에 대한 분노가 치밀면서도, 아버지가 이번 문제를 잘 해결해 주리란 믿음이 있었다.

언제나 팔이 안으로 굽는 사람이다.

한병수는 애써 분노를 삼켰는데, 한철호의 발언은 예상과 달랐다.

“……죄송합니다. 아들을 잘못 키운 저의 불찰입니다. 아들을 단단히 혼내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조심하겠습니다.”

“아빠!”

고개가 홱 돌아갔다.

교무실을 찾아갔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태도였다.

한병수의 눈빛에, 한철호의 눈썹이 홱 올라갔다.

“한병수! 얼른 사과부터 해! 선생님이 말하잖아. 목격자들에 의하면 네가 먼저 시비를 걸고 주먹도 먼저 날렸다고. 그런데 내게는 거짓말을 해서 선생님들에게 큰소리하게 만들어? 빨리 사과 안 해?”

“내가 안 그랬다고! 왜 내 말을 믿지 않는 건데! 형, 형도 뭐라고 말 좀 해 봐.”

이상했다.

이번에는 형을 붙잡아 감정에 호소했는데, 한병민은 무슨 일인지 시선을 피하며 기어들어 가는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네가 잘못한 건 맞잖아. 그러니까, 사과해서 그냥 마무리해.”

“아, 진짜!”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분명히 어제만 하더라도, 학교로 향하는 차 안에서도.

그리고 조금 전까지도.

아버지와 형은 자신의 편이라며 걱정하지 말라고 했는데, 갑작스럽게 변한 태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더는.

어떠한 변명도 통하지 않았다.

목격자에다, 보호자마저 배신해 버린 상황.

이학범이 상황을 정리했다.

“이번 사건은 병수의 죄질이 매우 심각합니다. 친구를 일방적으로 폭행했을 뿐만 아니라, 거짓으로 상황을 무마하려고 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학교에서 ‘공식적인 처벌’이 있을 겁니다. 동의하십니까?”

“……동의합니다.”

“그럼 한병수의 징계로 이번 상황을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상황이 일단락되었다.

예상과는 다르게, 한병수의 일방적인 패배였다.

두 보호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이학범이 김현진의 보호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 현진이 보호자분께서는 잠시 남아 주시죠. 따로 할 말이 있습니다.”

* * *

모두가 떠난 상담실.

이학범이 김현진의 보호자, 김현성을 바라보며 말했다.

“소문으로 들었어. 명진건설, 천일 고등학교 교장. 대산에서 쟁쟁한 사람들이 널 대놓고 밀어준다면서. 사실 난 네가 그렇게 마음에 들지도, 이게 옳은 일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지만, 현진이처럼 착한 아이가 학교를 문제없이 다니게 하고 싶은 마음에 ‘널’ 보호자로서 이 학교에 불렀어.”

일련의 상황.

이학범의 계산이었다.

이학범은 김현성이 어떤 존재인지를 알았다.

그가 나타난다면, 한병수의 아버지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를 말이다.

“만약 이번 일을 대충 학생들의 가벼운 일탈로 마무리한다면, 병수에게 얻어맞은 현진이는 지옥 같은 학교생활을 보내게 되겠지. 다른 사람들은 날 원칙주의자라면서, 꼰대라고 부르기는 하지만 난 그렇게 꽉 막힌 사람이 아니야. 그냥 학생들이 학생에 어울리는 삶을,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아가길 바랄 뿐이지. 넌 왠지, 현진이를 보호해 줄 충분한 능력이 있어 보였고.”

“감사합니다.”

진심이었다.

이학범을 향해, 김현성은 고개를 숙였다.

그의 존재.

김현진을 과학고로 진학시킨 이유였다.

전생에 학교 폭력이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었을 때, 대산에 있는 ‘이학범 선생’의 일이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당시 과학고에도 골든 서클의 의뢰인이 존재했다. 김현성이 죽고 난 이후로 골든 서클의 세력은 지방에도 급격하게 확장되었는데, 이학범은 골든 서클의 목표물인 학생을 지키려다가 학교에서 잘려 버렸다. 그런데도 그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본인의 인생을 완전히 잃어버리는 일인데도, 피해 학생의 전학과 그의 과외를 진행하면서까지 챙겨 주었다.

훗날.

그는 진정한 교육자로서 다시 복직할 수 있었다.

골든 서클의 정체가 밝혀지면서 명예를 회복했기에, 김현성은 이학범의 이름을 정확하게 기억했다.

그래서.

김현진을 과학고에 보내고 싶었다.

천일 고등학교는 김현성의 세상이지만, 김영철과 오대환 등 좋지 못한 교육자들이 득실거리는 세계다. 그렇기에 이학범과 같은. 진정으로 학생을 생각해 주는 선생님이 있는 학교에서 미래를 만들어 가길 바랐다.

이학범이라면.

권력에 무릎 꿇지 않을 것이다.

최소한 학생을 위한 올바른 판단을 내릴 것이다.

물론 예상이 완전히 적중하지는 않았다.

고지식하게 일을 처리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이학범은 김현성의 존재를 이용할 줄 알았다.

김현성이 말했다.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조심하겠습니다. 만약 현진이가 가해자들과 똑같은 실수를 저지른다면, 오늘과 같이 엄격하게 처벌해 주세요. 마땅히 받아들이겠습니다.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고개를 숙였다.

올바른 교육자를 위해서.

김현성은 기꺼이 고개를 숙일 수 있었다.

* * *

한철호.

상담실을 나서고 그는 불안한 기색을 보였다.

‘분명해. 고창범 상무가 후원해 주는 그 학생이었어.’

고창범.

한때는 대산을 대표하는 망나니였지만, 최근에 좋은 모습을 보여 주면서 명진건설의 유력한 후계자로 급부상한 인물. 대산에서 건설사를 운영하는 한철호에게는 정말 간과 쓸개를 전부 내주어도 모자랄 상대였다.

그런데 최근.

소문이 돌았다.

고창범이 진심으로 후원하는 한 학생이 있는데, 그가 어쩌면 그의 숨겨 둔 자식일지도 모른다는 소문.

물론 허무맹랑했다.

일찍 사고를 친다면 불가능한 나이는 아니지만, 김현성과 고창범의 연결 고리를 형성하기에는 말이 되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중요한 사실은 고창범이 김현성을 진심으로 후원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단발성이 아니라, 명진건설에서 ‘천일 고등학교’에 체육관을 지어 줄 정도로 말이다.

그러한 이유로.

김현성의 몽타주가 뿌려졌다.

이런 학생을 만난다면, 적어도 실수를 범하지 말라고.

일종의 경고였다.

괜히 고창범이 후원하는 학생을 건드려서, 명진건설에 밉보이는 상황은 만들지 말라는 의미였다.

그건 형의 입장도 마찬가지였다.

한병민은 대산미래고 짱이 아니었다.

그냥 노는 학생 중 한 명이었는데, 최근에 김현성이 혼자서 정해민 패거리를 때려눕혔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동생의 편을 들 수 있겠는가. 처음에는 감히 동생을 건드린 김현진이라는 놈에게 경고해 줄 생각이었는데, 김현성을 발견하는 순간 생각이 싹 사라졌다.

건드릴 수 없었다.

이건 금단의 영역이었다.

대산미래고 짱이 처참하게 얻어터지고 학교를 등교했을 때, 한병민은 천일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겠다고 생각했었다.

둘의 생각은 까맣게 모른 채.

한병수가 상담실을 나서자마자 찡얼거렸다.

“아니, 진짜 이게 뭐야! 전부 해결해 주겠다면서. 내 편을 들어 주겠다면서. 그런데 그냥 그렇게 죄송하다고 말하면 어떻게 해. 이번에 징계받으면, 나 대학교 올라갈 때 분명히 문제가 생길지도…….”

“야, 한병수!”

한철호가 말하기 전에.

한병민이 소리를 질렀다.

말을 툭 끊긴 한병수가 놀란 눈빛으로 바라보자, 한병민이 살벌한 표정으로 말했다.

“너 쟤 누군지 몰라? 김현진 형이 누군지 모르고 건드렸냐고.”

“누군데? 누군데 그래?”

“김현성.”

“뭐?”

순간.

소름이 쫙 돋았다.

아주 잠깐 소문의 주인공인지 인지 부조화가 일어났고, 이내 현실을 깨달은 듯 한병수의 눈빛이 급격하게 흔들렸다.

“……그 김현성?”

“그래, 천일의 김현성. 아니, 아무리 그래도 사람은 가려 가면서 건드려야 할 거 아니야. 김현성이면 대산 전체를 먹은 놈인데, 그것도 명진건설의 후원을 받는 놈인데. 건설사 자식이라는 새끼가 아빠 상황도 모르고 김현성을 건드리면 어떻게 해.”

“어휴.”

한철호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돌렸다.

그제야 알았다.

무엇을 잘못했는지.

그때였다.

한병수가 뭐라 반응하기도 전에, 상담실 문이 열리며 김현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야.”

“……!”

한병수가 화들짝 놀랐다.

천일의 김현성이라고 생각하자, 사람이 다르게 보였다.

“따라와. 네 형도, 거기 아빠라는 새끼도.”

그 말에.

한병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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