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惡의 등교-105화 (105/130)

20. 후폭풍 (5)

정말이지, 비현실적인 상황이었다.

앞서 걸어가는 김현성의 뒤를 따라가는 이 상황.

하늘 같았던 아빠도, 엄청 강해 보였던 형도, 김현성의 말도 안 되는 요구에 전혀 반박하지 않았다.

상식이 무너졌다.

창백하게 질려 가는 표정은, 애써 부정하던 진실을 맞닥트렸다.

‘……정말 그 김현성이라고? 김현진의 형이?’

어른이고 아이고.

대산 바닥에서 요새 김현성에 관한 소문이 파다했다.

고창범 상무가 명진건설의 후계자로 급부상하면서, 그와 관련되어 있는 주요 인물들도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다. 그중 김현성은 당연히 예의주시해야 할 인물이었다. 고창범이 왜 김현성을 후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천일고’에서의 행보가 김현성을 진심으로 생각한다는 것을 증명했다.

김현성의 이름은.

어른들의 세계에서도 유명했다.

차라리 평범한 일반인이라면 모르겠지만, 한철호처럼 나름대로 이룬 것이 있는 사람들은 알았다.

아이들의 세계는 말할 것도 없었다.

천일고를 장악하고 정해민 패거리를 쓸어버리면서, 김현성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존재로 거론되었다. 무려 대산 정벌을 이루어 낸 사람이다. 어디 어디 짱이다 하는 수준이 아니라, 대산 바닥에서 ‘천일의 교복’을 입은 학생들과는 시선도 마주치지 말라는 소문을 만들어 낸 장본인이라는 의미다.

소름이 돋았다.

김현진에게 부모가 없는 것은 알았지만.

김현성과 같은 형이 있는 줄은 몰랐다.

이제는 이해가 되었다.

아버지가 왜 순순하게 잘못을 인정했는지, 형이 왜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들지 못했는지.

‘상대가 김현성이면 모두 이해가 돼.’

결국.

약육강식(弱肉強食)이다.

평범한 일반인을 상대로는 아버지의 중소기업이 엄청난 권력을 자랑하지만, 그 상대가 명진건설이라면 감히 명함도 내밀 수 없다. 형도 다를 바가 없다. 형이 나름대로 노는 학생이고 본인 학교에서 잘나간다지만, 지역 전체를 먹어 버린 김현성을 상대로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상대적인 약자.

공포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김현성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상황에, 너무 무서워 몸이 덜덜 떨렸다.

진실을 알았더라면.

절대 건드리지 않았을 것이다.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김현진에게 시비를 걸기는커녕 어떻게든 그와 친해지려 할 것이다.

우뚝.

외진 곳에 도달했다.

김현성이 뒤를 돌자.

“정말 죄송해요. 다시는 현진이를 건드리지 않을게요.”

한병수는 곧바로 무릎을 꿇었다.

* * *

무릎을 꿇은 한병수.

헛기침하며 고개를 돌리는 한철호와 자신과 시선이라도 마주칠까 봐 고개를 들지 못하는 한병민.

처음부터 알았다.

상담실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자신의 얼굴을 확인하자마자 균열이 일어나는 두 사내의 표정. 한철호와 한병민은 자신을 알고 있었다. 한병민은 ‘같은 나이’이기 때문에 그렇다 치더라도, 한철호와 같은 어른이 어떻게 자신을 알아보는지는 모르겠지만 덕분에 일이 편하게 됐다.

만약 알아보지 못했다면.

한철호는 고창범을 만나게 되었을 것이다.

김현진에게 상황을 전해 들은 직후, 김현성은 이미 한철호를 어떻게 무너트릴지 계산을 끝낸 상태였다.

한철호와 한병민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들을 잘못 키운 내 잘못이야.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조심하겠네.”

“형으로서 대신 사과할게. 이번 일은 병수가 무조건 잘못했어. 친구를 괴롭히고 먼저 시비를 걸고 그러면 안 되는 건데, 형으로서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따끔하게 혼을 낼게. 한 번만 믿어 줘.”

둘 다.

김현성보다 나이가 많았다.

한철호는 말할 것도 없고, 한병민은 한 살 위였다.

그런데도 굽신거리는 것에 망설임이 없었다.

김현성의 심기를 건드렸다간, 대산에 무성한 소문처럼 본인들에게 좋지 않은 일이 들이닥치리라는 사실을 알았다.

김현성이 말했다.

“앞으로 ‘내 전화 한 통’으로 벌어질 일을 말해 줄게. 명진건설의 고창범 상무는 자식 관리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쓰레기 같은 건설사를 배제하라는 명령을 내릴 거야. 명진건설의 유력한 후계자가 내리는 명령에, 대산에서 나름대로 건실한 건설 회사가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겠지. 대산 미래 고등학교 3학년의 한 학생도 다르지 않아. 나는 분명히 학교 폭력을 통제할 것을 명령했는데, 동생을 관리하지 못한 책임을 물어 그 학교 실세들에게 끌려가 끔찍한 폭력을 당하겠지. 그들은 내 눈에 찍혀 X 되는 것보다, 미꾸라지 한 명을 처리하는 게 확실히 편할 테니까.”

“죄, 죄송합니다.”

“정말 잘못했어요. 한 번만 봐주세요.”

표정이 변했다.

창백하게 질린 표정으로 둘 다 황급히 무릎을 꿇었다.

나이가 어린 건 중요하지 않았다.

김현성이 쥐고 있는 권력이, 그동안의 예시가 말뿐인 경고가 아님을 증명하지 않던가.

세 부자가 무릎을 꿇었다.

김현성은 그들을 차갑게 내려다보았다.

“사실 일을 잔인하게 처리할 생각이었다면 애초에 이렇게 마주하는 일도 없었을 거야. 그런데 내가 왜, 굳이 번거롭게 이런 대화를 나누는 줄 알아? 이 학교 선생님이, 현진이의 담임이 상식적인 인물이기 때문이야. 동생이 ‘학교’라는 테두리 안에서 보호받기 위해서는 나 또한 상식적으로 행동해야 하니까. 내가 선을 넘으면, 현진이도 좋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볼 테니까.”

콱.

“컥.”

한병수의 얼굴을 틀어쥐었다.

아빠와 형이 당황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면서도, 차마 김현성을 말리지는 못했다.

“야, 이 씨발 새끼야. 내가 지금 널 죽이지 않기 위해서 얼마나 참는 줄 알아?”

전생.

과거의 트라우마가 살아났다.

자신이 식물인간이 된 이후, 병실로 찾아온 동생이 흐느끼는 울음을 들었다.

동생을 건드린 그 쓰레기 같은 새끼들의 이야기에, 김현성은 정신이 완전히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빨갛게 물든 눈빛은, 가까스로 참아 내는 살의를 드러냈다.

“난 말이야. 내 동생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내 영혼을 팔아서라도 그 상대를 파멸시켜 버릴 거야. 그러니까 내가 분노를 가라앉히도록. 내가 아무 일도 저지르지 않도록. 돌아가는 대로, 내 동생에게 최선을 다해 사과해. 모두가 보는 앞에서 네가 얼마나 잘못했는지 용서를 구하라고.”

시선이 마주쳤다.

한병수는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다.

살의로 들끓는 눈빛은, 17살의 소년이 감당할 수 있는 감정이 아니었다.

“할 수 있겠어?”

고개를 끄덕였다.

몇 번이고 계속.

한병수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이 순간이 지나가길 기도하는 것밖에 없었다.

* * *

김현진이 교실로 돌아갔을 때.

친구들이 수군거렸다.

“어?”

“벌써 끝났나?”

“병수 부모님이 한바탕 난리를 치는 것 같던데, 생각보다 잘 마무리되었나 보네.”

의외였다.

한철호가 고래고래 소리 지를 때만 하더라도, 친구들은 교무실의 분위기를 슬쩍 살피고는 김현진에게 큰일이 났다면서 교실에 퍼트리고 다녔다. 그런데 생각보다 멀쩡한 모습으로, 그것도 금방 돌아온 상황에 의문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때였다.

한병수가 넋이 나간 얼굴로 교실에 들어오더니, 김현진에게 달려가 곧바로 무릎을 꿇었다.

쿵.

“현진아. 진짜 미안해. 내가 고의적으로 어깨를 부딪쳤는데도 넌 먼저 사과를 건네면서 넘어가려고 했는데, 내가 나쁜 마음을 먹고 일부러 시비를 걸었어. 전부 다 내 잘못이야. 친구를 건드리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남들 앞에서 강해 보이고 싶은 마음에 실수를 저질렀어. 다시는 그러지 않을게. 생각 없이 내뱉은 내 말실수도 전부 잘못했어. 앞으로 너뿐만 아니라 이 학교에 다니는 동안, 그 누구에게도 오늘과 같은 실수는 하지 않을게.”

절절한 음성이었다.

머리를 땅바닥에 박고, 한병수는 정말 호소하듯 잘못을 읊었다.

친구들의 수군거림이 커졌다.

그들로서는 이와 같은 상황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김현진은 잠깐 당황하는 듯한 반응을 보이더니, 이내 누그러진 표정으로 말했다.

“일어나.”

“…….”

“괜찮으니까, 일어나.”

한병수가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울음으로 얼룩진 그의 표정에서, 그가 얼마나 겁을 먹었는지 알 수 있었다.

김현진은 그가 싫었다.

하지만.

“네가 왜 이렇게까지 사과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모두가 보는 앞에서 사과하는 일이 쉬운 결심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그러니까 네 사과를 받아 줄게. 다시는, 다시는 절대 그러지 마.”

“알겠어. 정말 고마워!”

한병수가 방긋 웃었다.

김현진은 김현성과 달랐다.

때 묻지 않은 순수함.

밑바닥을 경험해 보지 않았기에, 그는 악의에 물들지 않았다.

김현성은 그 모습을.

김현진의 순수함을 지켜 주고 싶었다.

이학범과 같은 참된 선생님뿐만 아니라, 그것이 김현진을 대산과고에 보낸 진정한 이유였다.

* * *

그다음 날부터.

김현진은 곤란스러운 상황에 놓였다.

친구들이 찾아와 물었다.

“현진아, 네 형이 진짜 김현성이야?”

“대산을 쓸어버린 그 김현성이 맞아?”

“와, 이거 리얼 김현진이 힘을 숨김 아니냐. 형이 대산 제일의 김현성이었는데, 그동안 아무도 모르고 있었잖아. 이제야 한병수가 왜 무릎을 꿇고 사죄했는지 알겠네. 형 믿고 깝죽거리고 다니다가, 김현성 동생을 건드렸으니 X 됐다 싶었겠지.”

소문이 퍼졌다.

대산을 정벌한.

모두가 아는 그 김현성이 김현진의 형이라는 소문이.

김현진으로서는 갑작스러운 관심에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평소에는 조용히 학교를 다녔는데, 지금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친구들이 과도한 관심을 보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쉬는 시간마다 선배들이 내려와 김현진을 찾았다.

“네가 현진이야?”

“앞으로 학교 다니면서 힘든 일 있으면 내게 말해. 언제든 도와줄게.”

“언제 한번 형 소개해 주라. 같이 놀자.”

선배들.

그들도 김현진에게 잘 보이고자 했다.

김현성과 친해지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1학년과는 다르게 선배들은 김현성에 대해서 더 잘 알았다. 신영민을 쓰러트리는 과정에서 팔을 부러트렸던 일. 정해민의 학교에 직접 찾아가서 상대를 기절시키고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고 돌아온 일. 김현성의 악명(惡名)은 대단했다. 괜히 밉보였다가 문제가 생길 바에, 미리 김현진에게 눈도장을 찍고 나쁜 일을 사전에 방지하고자 했다.

신세계였다.

김현진으로서는 하루아침에 세상이 달라졌다.

형이 대단하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는 줄은 몰랐다.

그리고 이번 사건은.

대산의 학생들에게 명확한 예시를 남겼다.

인문계 또한.

자유롭지 못하다는 예시.

김현성이 직접적으로 경고했든 경고하지 않았든, 대산의 모든 학교는 천일의 통제를 받아들였다.

마침내.

대산이 진정으로 김현성의 손아귀에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 * *

김현진 사건.

소문은 빠르게 퍼졌다.

혹시라도 김현성의 동생을 건드릴 수도 있으니, 대산과고는 절대 건드리지 말라는 불문율이 생겼다.

그와 동시에.

학생들은 ‘김현성’에 대해 떠들었다.

김현성이 대산을 정벌했으니, 이제 그것을 기반으로 뭐라도 하지 않겠냐고 추측성 말들이 많았다.

수금을 한다든지.

권력을 누린다든지.

정벌의 이유가 반드시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예상과는 다르게, 대산 정벌을 이루고도 김현성은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조용히.

아무런 문제 없이.

김현성은 그렇게 시간을 흘려보냈다.

어느덧 6월.

날은 빠르게 따뜻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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