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惡의 등교-113화 (113/130)

22. 역지사지(易地思之) (3)

허공에 붕 떠올랐을 때.

정민호는 생각했다.

내가 대체 뭘 기대한 걸까.

부잣집 아들에게 설설 기는 교장이 운영하는 학교라면, 어차피 천일 고등학교와 크게 다르지 않을 텐데. 아무리 피해를 호소해도 선생님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게 분명할 텐데. 벼랑 끝에 몰리고 나니, 자신의 선택이 어떤 대가로 돌아올지 알면서도 지푸라기를 움켜쥘 수밖에 없었다.

콰당!

바닥에 널브러졌다.

그 위로 박민구의 발길질이 이어졌다.

“개새끼가 선생님에게 일러?”

퍽!

퍽, 퍽!

“끄윽.”

몸을 웅크렸다.

머리 몸통 가릴 것 없이 내리찍는 발길질에, 정민호는 신음을 삼킬 뿐 어떠한 반항도 하지 못했다. 가해자여서 잘 알았다. 선생님의 개입이 무산으로 돌아간 지금, 가해자들의 분노를 진정시킬 방법은 그 분노를 온전히 감당하는 것밖에 없음을. 정민호를 한참이나 짓밟은 박민구가, 거칠게 올라온 숨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후우. 내가 말했잖아. 선생들에게 말해도 바뀌는 건 없다고.”

쓰윽.

쪼그려 앉았다.

고개를 차마 들지 못하는 정민호에게 속삭였다.

“선생들이 무슨 생각으로 이 일을 하는 줄 알아? 애들을 잘 가르치겠다느니, 대한민국의 미래를 가꾸는 중요한 일이라느니. 이딴 생각을 하는 선생들은 아주 극소수야. 대부분은 선생이 괜찮은 직업이니까, 어떤 책임이나 의무를 짊어진 생각은 조금도 없는데 공무원의 마인드로 선생질을 하는 거지. 그러니까 답이 없는 거야. 괜히 정년을 망치는 일에 누가 개입하고 싶겠어? 네 인생을 도와준다고 한들, 선생들에게 돌아가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씰룩, 웃었다.

그러다 갑자기.

짜악-!

박민구가 본인의 뺨을 날렸다.

시뻘겋게 달아오를 정도로, 진심이 담긴 손길이었다.

“만약 어떻게든 징계위원회가 소집되잖아? 지금부터 우리는 쌍방이야. 그리고.”

위를 가리켰다.

건물 창문에서 이곳을 힐끗거리는 몇몇 학생들이 있었다.

“쟤들이, 네가 가해자라고 증언할 거야. 그러니, 부디 이 현실을 받아들여 우리 오래가자 친구야.”

* * *

다음 날.

정민호는 멍한 얼굴로 걸음을 옮겼다.

학교로 향하는 길.

불과 1년 전만 하더라도 학교는 정말 재밌는 놀이터였고, 친구들과 무리를 지으며 즐거운 마음으로 걸음을 옮겼었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걸음이 너무나도 무거웠다. 학교에 도착하면 해결할 수 없는 폭력에 시달려야 한다고 생각하니, 당장에라도 걸음을 돌려 도망치고 싶었다.

‘……자퇴할까.’

해결책은 있었다.

학교를 떠나는 것.

그 선택이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로 인해 초라한 학력이 남겠지만, 아등바등 발악하며 졸업장을 딴다고 한들 특별한 학력을 얻는 것도 아니었다. 남들이 다 졸업하는 고등학교를 끝마칠 뿐이다. 그냥 평범하게 살고 싶을 뿐인데, 그것조차 허락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땅바닥에 주저앉아 눈물을 펑펑 터트리고 싶었다.

그동안 자신에게 괴롭힘을 당했던 피해자들도 이랬을까.

아득했다.

과거를 되새기며 반성하기에는, 당장에 현실이 너무나 힘들었다.

결국.

학교에 도착했다.

아직은 학교를 포기하지 못했다.

지푸라기를 움켜쥔 손에 점점 힘이 풀려 갔지만, 천일에 이어 이곳에서도 도망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데 뭔가 분위기가 이상했다.

정민호가 나타나자마자, 반 친구들이 수군거리며 묘한 눈빛을 보였다.

웅성웅성.

‘이젠 대놓고 따돌리는구나.’

어제 일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고자질의 대가로 왕따를 당하는 것이라고.

시선을 내리깔며 담담하게 수업을 준비하려는데, 갑작스럽게 누군가 다가왔다.

“야, 정민호.”

“어?”

학기 초기에 어울렸던 친구였다.

정민호를 천사라고 부르던 그 친구가, 정민호를 혐오스럽다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 소문 사실이야?”

“……무슨 소문?”

“너 대산에서 애들 괴롭히다가 학교 잘렸다며. 솔직히 처음에는 그 소문 믿지 않았거든? 내가 기억하는 너는 천사 같은 애였는데 설마 그랬겠냐고. 그런데 네 예전 SNS를 확인하니까 헛소문은 아닌 것 같더라. 표정을 보니 사실인가 보네. 역겨운 새끼. 그래 놓고 착한 척이나 하다니.”

친구 뒤로.

학교 천장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현실의 세계가 와르르 붕괴되었다.

“박민구에게 찍혀서 불쌍하다고 생각했는데 잘됐네. 이게 인과응보라는 거야, 이 쓰레기 같은 새끼야.”

친구가 홱 걸음을 돌렸다.

다른 친구들도 다르지 않았다.

그들도 다가와 말을 거들었다.

“진짜 역겹네.”

“그럼 그동안 착한 척 코스프레한 거잖아. 진짜 너무 뻔뻔하지 않냐.”

“앞으로 저 새끼랑 어울리지 마. 잘해 줘도 언제든 뒤통수칠지 모르는 새끼라고.”

끝났다.

학교생활에 더는 희망이 없었다.

박민구의 괴롭힘은 아등바등 참을 수 있었지만, 학교 전체가 자신을 혐오스럽게 바라보는 시선은 견딜 수가 없었다. 누군가에 의해 천일에서의 행보가 퍼져 버렸다. 그건 분명히 김현성의 소행일 테고, 벼랑 끝에 몰렸던 정민호를 툭- 밀어 버리는 너무나도 잔인한 계획이었다.

밀려났다.

벼랑 밑으로.

정민호는 그대로 추락했다.

그리고 다음 날.

정민호는 자퇴서를 제출했다.

* * *

대산을 떠날 때.

정민호는 절망스러우면서도 새로운 희망을 품었다.

명진건설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만 한다면, 지난 과거는 묻고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다고 믿었다.

결과는 절망적이었다.

과거의 꼬리표는 자신을 따라붙었고, 박민구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피해자인데도 그 누구도 자신을 안쓰러운 눈길로 바라보지 않았다. 설마 살면서 인과응보라는 말을. TV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대사의 적절한 예시를, 자신이 경험하게 될 줄은 몰랐다.

부모님이 말했다.

학교가 전부는 아니라고.

지금부터라도 검정고시를 착실하게 준비해서, 남들이 대학에 들어갈 때 같이 들어가자고 했다.

나쁘지 않은 계획이었다.

다만.

정민호는 삶의 의욕을 잃어버렸다.

“……먹을 게 없네.”

냉장고를 열었다.

부모님은 경제적으로 바빠지면서 집에 없고, 더는 학교에 나가지 않는 정민호만이 집에 혼자 남는 경우가 많았다. 텅텅 비어 버린 냉장고에 힘없이 걸음을 돌렸다. 밖으로 나가 편의점에라도 들르면 되지만, 정민호는 굳이 그렇게까지 노력을 들이고 싶지 않았다.

털썩.

침대에 누웠다.

아직 밖은 해가 중천에 걸려 있었지만, 암막 커튼으로 빛을 차단한 방은 깊은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학교를 자퇴하고.

밖으로 단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았다.

혹시라도 박민구를 마주칠까 겁이 나는 것도 있지만, 친구들의 시선이 아직도 잊히지 않았다.

박민구는 한 명이다.

그를 마주칠 확률은 매우 희박하나, 자신과 같은 학년에 있었던 친구들은 충분히 만날 수도 있었다. 그건 상상만으로도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박민구가 아직 자신을 괴롭히기 전에. 자신과 어울리던 몇몇 친구들은, 중학교 시절부터 이어지던 괴롭힘에 대해 고민 상담을 한 적이 있었다.

친구들은 겁에 질려 있었다.

중학교 시절부터 괴롭히던 가해자와 같은 고등학교에 올라왔는데, 너무 힘들다면서 울음을 보였다.

그들에게 정민호는 말했다.

“진짜 나쁜 새끼들이네. 어떻게 같은 친구를 괴롭힐 수 있어?”

참.

가식적이었다.

착한 가면을 써서인지, 아니면 이런 삶에 만족해서인지.

정민호는 자신의 과거를 완전히 잊어버린 위로를 해 주었고, 그 모습에 친구들은 정민호를 천사라고 불렀다. 정말 좋은 친구라며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보는데 마음 한쪽이 왠지 모르게 뭉클했다.

그리고 그 친구들이.

지금은 혐오스럽게 바라보았다.

괴롭힘의 주동자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더는 박민구로 인한 조금의 ‘안쓰러움’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그들을 만날까 봐.

혐오스러운 시선을 다시 마주할까 봐.

방에 꼭꼭 숨었다.

시간이 흘렀다.

점차 폐인처럼 살아가는 삶에 적응했고, 매일 온라인 게임에 접속하는 것만이 하루 일과의 전부였다. 부모님이 검정고시를 준비하라며 소리를 지르는 것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미래를 준비하는,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 가는 그 어떠한 노력도 하고 싶지 않았다.

낮에 자고.

밤새 게임하고.

배고프면 배달을 시켜 먹고.

쳇바퀴 굴러가는 삶을 살았다.

그렇게 며칠이 흘렀고, 정민호는 부모님이 텅텅 빈 집에서 배달을 시켰다.

띵동-

부스스한 머리로 걸음을 옮겼다.

배달을 받으려고 문을 열었는데, 순간 악마라도 만난 것처럼 정민호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오랜만이네, 민호야?”

문 너머.

박민구가 환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 * *

본능적인 반응이었다.

정민호는 곧바로 뒤돌아 뛰었다.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그려고 했지만, 의도를 채 이루기도 전에 뒷덜미가 붙잡혀 내동댕이쳐졌다.

콰앙!

“끄으.”

“새끼, 오랜만인데 좀 너무하네.”

박민구가 주변을 살폈다.

4층 상가 건물에 주인 세대.

잘 갖춘 집 안 풍경에 감탄사를 터트렸다.

“이야, 민호. 돈 많긴 한가 보네.”

“……날 왜 찾아온 거야? 이젠 끝났잖아. 의뢰에 성공했으면 더는 내게 볼일 없는 거 아냐?”

“그렇긴 하지.”

박민구가 머리를 긁적였다.

제집인 것처럼, 소파에 털썩 앉더니 정민호를 바라보았다.

“너도 골든 서클에 대해서 잘 아나 본데, 학교에서의 의뢰를 완수하면 사실 더는 너를 찾아올 이유가 없는 것은 맞아. 나도 그럴 생각이었고. 보통은 다 그렇게 끝나는데, 아주 가끔은 그 이상의 요구를 하는 의뢰인들이 있거든. 그런 악의를 지닌 사람들은 목표물이 학교 밖에서도 지옥을 경험하길 바라지.”

씨익, 웃었다.

정민호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숨이 막혔다.

박민구가 말하는 말은, 상상하기도 싫은 불행한 미래를 의미했다.

“내 의뢰인이 말하더라. 한 달에 한 번, 얻어맞은 부위의 멍이 가라앉을 때면 다시 찾아가서 멍을 새겨 달라고. 학교에서도, 학교 밖에서도. 지옥은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뼈에 새겨 달라고.”

스윽.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 번 할 때마다 천, 나쁘지 않은 거래잖아? 그러니까.”

걸음을 옮겼다.

주저앉은 채로 뒤로 물러나는 정민호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

“좀 맞자, 친구야.”

* * *

정민호의 일.

숨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일을 끝내고 퇴근한 정민호의 부모님은, 엉망이 된 집 안과 아들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난리가 났다.

“어, 얼굴이 이게 뭐야?”

“당장 경찰에 신고해요, 여보!”

정민호가 경험하는 악몽 같은 일들.

부모님 속도 말이 아니었다.

그들은 대산에서 권력자의 삶을 누렸지만, 재산을 급매로 처분하고 경기도로 이사 온 뒤에는 아쉬운 말을 하며 살아야 했다. 그런데도 참는 이유는 딱 하나였다. 하나뿐인 아들의 행복을 위해서. 아득바득 현실의 역겨움을 견뎌 내는데, 집까지 찾아온 이번 일은 참을 수 없었다.

경찰에 전화를 걸었다.

그렇게 신고하려는데.

팍!

정민호가 핸드폰을 쳤다.

신경질적으로 엄마를 바라보며 소리쳤다.

“하지 마.”

“민호야!”

“하지 말라면 하지 말라고! 내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까!”

“너 이 새끼가 진짜!”

콰앙!

방으로 돌아가 문을 잠갔다.

밖에서 아버지의 고성이 들렸지만, 정민호는 귀를 막고 침대에 앉았다.

경찰에 신고?

그딴 걸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임을 알았다.

김현성이 나섰다면, 골든 서클이 개입한 문제라면.

부모님의 힘으로는 역부족이었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밖에 없었다.

김현성.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는 받지 않았다.

계속해서 음성사서함으로 넘어갔지만, 정민호는 퀭하게 내려앉은 눈빛으로 반복해서 전화를 걸었다.

“제발…… 제발, 받아 줘.”

지금은.

김현성만이 자신을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꺼내 줄 유일한 희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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