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惡의 등교-115화 (115/130)

22. 역지사지(易地思之) (5)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어젯밤.

정민호가 본인이 거주하는 4층 건물에서 투신했다.

불행 중 다행히도 엄청난 고층이 아닌 데다, 도로변에 불법 주차한 자동차 위에 떨어지면서 목숨은 부지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무사하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머리에 큰 충격을 받았는지 정민호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고, 인근 경찰들이 몰려들어 사건의 진위를 파악하기 위해 정민호의 방을 확인했다.

그 결과.

유서 한 장을 발견했다.

정민호의 필체로 꾹꾹 눌러쓴 그 글은, 정민호가 투신할 수밖에 없었던 한 명의 가해자를 지목했다.

슥.

경찰관이 유서를 내밀었다.

툭툭, 건드리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걸 봐. 이래도 아니야? 정민호의 유서에는 정확하게 ‘박민구’ 네 괴롭힘으로 인해 더는 살고 싶지 않다고 나와 있어. 사실 유서만으로는 너를 처벌할 수 없겠지. 문제는 학교에서 네가 정민호를 시도 때도 없이 괴롭혔다는 수많은 증인이 있는 데다, 정민호가 투신하기 전에 네가 정민호의 집을 찾아간 CCTV 자료가 존재해. 그뿐만인 줄 알아? 부모님이 말하길 정민호가 누군가에게 맞아서 엉망이 되었는데, 하필이면 그게 네가 정민호의 집을 찾아간 날이네? 너 말고는 아무도 그곳에 찾아간 적이 없는데, 그렇다면 네가 명백하게 가해자라는 의미잖아.”

“그, 그게…….”

“그래, 해 봐. 그럴듯한 변명을 해 보라고, 이 새끼야!”

콰앙!

경찰관이 살벌하게 책상을 내리쳤다.

그 사나운 기세에, 박민구는 말문이 막혔다.

‘씨발, X 됐네.’

일련의 상황.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죄책감을 느낀다는 의미가 아니라, 자신이 빠져나갈 구석이 없었다.

정민호를 괴롭힌 건 전교생이 증인이었고, 실제로 정민호를 찾아가서 때리기도 했었다. CCTV로 그때의 행보가 명백하게 담겨 있다면, 사실상 자신의 혐의를 벗겨 내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머리가 복잡했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지?

도저히 해답이 떠오르질 않았다.

“……혹시 제가 어떤 처벌을 받나요?”

“하, 이 새끼 봐라?”

경찰관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어떤 처벌을 받긴. 정민호를 자살까지 몰아간 죄를 물어, 곧바로 소년원에 들어가게 되겠지. 그렇게만 끝나면 그나마 다행이야. 소년원에서 나오면 정민호 부모님이 네게 소송을 걸 거야. 지금 네가 살아남을 방법은, 죄를 순순히 받아들여 어떻게든 용서를 구하고 감형을 받는 것밖에 없어.”

박민구가 눈을 질끈 감았다.

막막했다.

눈앞의 미래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경찰관의 조언은 그나마 합리적이었다.

반성하는 태도로 감형을 받아 내고, 어떻게든 정민호의 부모님이 소송하지 않도록 용서를 구해야만 자신의 미래에 한 줄기 빛이 허락될 것이다. 그런데 문득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자신은 괴롭히고 싶어서 괴롭힌 게 아니라, 누군가의 의뢰로 인해 이렇게 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책임도 같이 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마음을 먹었는지, 박민구가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사실 이번 일은 누가 부탁해서 한 일이에요. 경찰관님, 혹시 골든 서클이라고 아세요?”

결국.

내질러 버렸다.

골든 서클을 입에 담자, 갑작스럽게 경찰관의 눈빛이 싹 바뀌었다.

“야. 너 그 말, 다시 넣어 둬.”

* * *

경찰관이 주변을 살폈다.

누가 이곳을 지켜볼까 봐, 블라인드를 내렸다.

드륵.

드르륵.

그 모습에.

박민구는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골든 서클에 몸을 담고 있지만, 사실 박민구와 같은 소속원들은 골든 서클의 실체를 정확히는 알지 못했다. 소문으로는 그 규모가 대단하다. 곳곳에 골든 서클이 녹아들어 대한민국을 장악하고 있다. 브로커들이 그렇게 떠들어 댔지만, 박민구로서는 그게 잘 믿기지 않았다.

겨우 의뢰를 수행하고 대가를 받는 집단이.

대한민국을 장악한다니.

그게 말이 되는 소리란 말인가.

그런데 지금, 갑작스럽게 돌변한 경찰관의 태도에 박민구는 브로커가 했던 모든 말이 진실임을 알았다.

경찰관이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야. 넌 네가 왜 그만한 돈을 받는다고 생각하냐?”

“…….”

“대답.”

“의, 의뢰를 수행하기 때문이에요.”

박민구가 벌벌 떨었다.

경찰관의 눈을 차마 마주칠 수 없었다.

“아니, 사실 너 같은 새끼들은 널리고 널려서 굳이 그만한 돈을 줄 필요는 없어. 그런데도 번거롭게 충분한 보상을 해 주는 이유는,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책임을 홀로 떠안아야 하기 때문이야. 민구야, 골든 서클이 이번 일에 개입했다는 걸 어떻게 증명할 건데? 경찰서에 내가 존재하듯, 검찰에도 법원에도. 골든 서클의 소속원들이 존재해. 네가 어떤 증거를 들이밀든 그것은 절대 받아들여지지 않을 거고, 네 감형의 여지는 완전히 꺾여 더한 처벌을 받게 되겠지.”

죄를 받아들이라고.

그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경찰관의 유인책은 박민구를 위한 해결 방안이 아니었다.

괜한 헛소리로 골든 서클에 문제를 일으킬까 봐, 경찰관은 의도적으로 박민구의 선택을 유도하는 발언을 내뱉었다.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경찰관이 스스로의 신분을 밝혔기에, 노골적으로 자신의 본심을 말했다.

“그러니까, 알아서 감당하라고. 이 이상 X 되기 싫으면.”

* * *

경기도의 한 병원.

대기실에 설치되어 있는 거대한 TV 화면에서, 최근 벌어진 극악무도한 사건이 언급되었다.

[세상이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을까요? 경기도의 한 학교에서, 학교 폭력에 시달리던 학생이 자퇴서를 내고 투신자살하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불행 중 다행히도 피해 학생은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지만…… 해당 사건의 가해자인 박 모 군은 가해 사실을 인정했고, 절차에 따라 재판이 진행될 예정입니다. 한편, 시민 단체들은 미성년자의 가해가 낮은 형량으로 끝나는 현 상황에 대한 비난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참담한 사건이었다.

뉴스를 전해 듣는 사람들은, 인상을 찌푸리며 열변을 토해 냈다.

“세상이 말세야, 말세.”

“그러게 말이에요.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녀석들이 친구를 괴롭히기나 하고. 저딴 새끼들은 싹 다 쓸어서, 평생 바깥 공기를 쐬지 못하도록 감옥에 처넣어야 해요.”

“아이고. 부모님 억장 무너지시겠네.”

같은 공간.

모두가 학교 폭력을 비난했다.

가해자를 비난하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대기실에 앉아 있던 한 소년이 자리에서 일어나 걸음을 옮겼다.

저벅저벅.

‘결국, 이렇게 끝날 수밖에 없는 거겠지.’

이번 사건.

가해자인 박민구가 모든 것을 떠안았다.

박민구와 같이 정민호를 괴롭힌 부잣집 아들은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고, 박민구를 처벌하기는커녕 정민호를 벼랑 끝으로 밀어 넣었던 선생들은 ‘박민구’가 얼마나 잘못되었는지를 언론에 떠들었다. 그리고 당연히 골든 서클의 존재는 표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다. 박민구 하나를 신랄하게 비난하고 추락시키는 대가로, 다른 모두가 본인의 안위를 지켜 냈다.

역겨운 현실이었다.

가해는 한 사람의 몫이 아니다.

그와 관련한 모두가 처벌받아 마땅하지만, 현실이라는 파도에 모든 문제가 한 번에 쓸려 나갔다.

이래서였다.

이래서 섣불리 움직이지 않았다.

김현성이 골든 서클의 정체를 폭로하고 아무리 떠들어 댄다고 한들, 골든 서클에 대항할 힘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박민구의 신세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박민구가 안타깝다는 의미는 아니다. 하지만 박민구 하나를 묻어 버리는 이 상황에, 김현성은 더 철저하게 계획을 완성시킬 필요성을 느꼈다.

단 한 번의 기회.

골든 서클을 완벽하게 무너트릴 계획.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박민구의 몰락은, 김현성에게 소소한 즐거움을 부여했다.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10층이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김현성은, 데스크에 앉아 있는 간호사에게 물었다.

“혹시 정민호의 병실이 어딘가요?”

“정민호 환자요? 관계가 어떻게 되시죠?”

김현성이 웃었다.

“고등학교 친구예요.”

* * *

정민호의 병실은 1012호.

아직 재력이 건재한 모양인지, 무려 1인실에 입원해 있다.

김현성은 병실로 향했다.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

1012호로 향하는 이 순간이, 이리도 즐거울 수가 없었다.

똑똑.

문을 두드렸다.

“들어오세요.”

익숙한 목소리.

김현성이 문을 열고 들어서자, 안에서 정민호를 간호하던 김순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너, 너……!”

말문이 막혔다.

발작을 일으키듯, 김순자는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김현성.

정민호의 집안을 무너트린 악마다.

김순자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렸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황급히 전화기를 붙잡았다.

간호사를 호출할 생각이었다.

김현성을 이 공간에 둘 수는 없었다.

“아주머니. 지금 그 전화를 거시면 저는 민호와의 약속을 지킬 수 없어요. 더는 민호를, 민호의 집안을 괴롭히지 않겠다고 약속했었는데. 괜찮으시겠어요? 여기서 저를 쫓아 보내면 그 이상을 할 텐데.”

“……대체 무슨 개수작이야!”

“그냥 잠깐. 민호랑 둘이서 대화할 시간이 필요할 뿐이에요. 알다시피 이곳은 병실이고, 제가 뭘 할 수 없는 환경이라는 사실을 잘 아시잖아요.”

김순자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김현성의 말.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김현성은 한다면 하는 사람이다.

괜히 내보냈다가 예전처럼 괴롭힘이 이어진다면,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에 다시 재기할 자신이 없다.

김순자가 이를 악물었다.

망설이다가 걸음을 옮겼다.

“경고하는데 우리 민호 털끝 하나라도 건드리면 너 죽고 나 죽는 거야.”

“예, 예.”

건성건성 경고를 흘려들었다.

김순자가 밖으로 나갔다.

걸음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으로 보아 문밖에서 대기하는 것 같았지만, 그건 그리 신경 쓰지 않았다.

저벅저벅.

걸음을 옮겼다.

의자에 앉아, 정민호를 내려다보았다.

익숙하면서도 이질적인 광경이었다.

정민호는 죽은 듯이 눈을 감은 상태로, 미약하게 숨을 쉬고 있었다.

김현성이 말했다.

“사실 굳이 너일 필요는 없었어.”

전생.

김현성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가해자들.

오혜지, 신영민, 박민철, 강창석, 조용택, 정민호 등등.

사실 죄의 무게만 따지자면 의뢰의 장본인인 오혜지가 가장 무거운 처벌을 받아야 하겠지만, 그런 구분은 크게 의미가 없었다. 김현성은 관련자 모두를 처벌하고자 했다. 단 한 명도 빠짐없이 파멸하길 바랐다. 그중 정민호가 이런 결말을 맞이한 이유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단 하나의 차이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굳이 너를 이렇게 만든 이유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야. 다른 애들은 금방 현실을 포기하고 받아들였는데, 너는 바퀴벌레처럼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아등바등 발악했잖아? 그 모습을. 그 발악을. 내가 어떻게 그냥 둘 수 있겠어. 이렇게 소름이 돋을 정도로 재밌는데.”

입술이 씰룩거렸다.

행복했다.

자신이 겪었던 상황을.

자신이 겪었던 고통을.

이렇게 똑같이 돌려줄 수 있음에.

사실 정민호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상황은 예상하지 못했다.

일부러 적당한 층수에서 투신한 다음, 박민구를 고발하라는 것이 정민호에게 요구한 계획이었다. 정민호가 죽는다면 그것으로도 좋고. 정민호가 무사히 살아남는다면, 또 다른 방법으로 그를 괴롭힐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되어 버렸다.

악마는 존재했다.

자신의 악의를 이렇게 받아들이는 미지의 무언가는, 악마가 아니라면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김현성이 손을 꼭 잡았다.

따뜻한 온기가 전해져 너무나 기뻤다.

“내가 여길 찾아오면서 간절하게 기도한 게 있어. 제발, 제발. 네 정신이 지금 온전히 살아 있기를. 내가 널 만지는 감각, 내가 네게 말하는 모든 대화. 육체를 움직일 수 없는 어둡고 끔찍한 감옥 안에서 모든 걸 듣고 느끼기를. 이 순간을 제발 기억해 줘. 그리고 있잖아.”

슥.

얼굴을 가까이 갖다 댔다.

정민호의 귀에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약속은 애초에 지킬 생각이 없었어. 네가 일어나면, 넌 현실이라는 지옥에서 다시 나를 만나게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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