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惡의 등교-117화 (117/130)

23. 스파링 투어 (1)

며칠 전.

정두철이 서울의 한 체육관을 찾아갔다.

정두철의 허름한 체육관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규모가 있는 곳이었고, 언뜻 훑어보아도 십수 명은 되는 관원들이 동시에 훈련을 받고 있었다. 그들은 정두철을 발견하자마자 수군거리는 반응을 보였다. 아무리 세월의 흔적이 역력하다고 한들, 종합 격투기를 수련하는 사람들이 정두철을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었다.

그리고 지금은 저녁 시간대.

선수부 훈련이 진행되는 시간대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상담실 안.

한 사내가 탁자 위에 커피를 올려놓으며 말했다.

툭.

“형님,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그럭저럭. 너는?”

“저야 보다시피 바빠서 죽겠습니다. 최근에 제 애제자가 UFC 진출을 확정 짓지 않았습니까? 그것 때문에 소문이 난 모양인지, 매일 입관 문의가 끊이질 않아서 사람을 가려 받고 있습니다.”

“좋은 소식이네.”

정두철이 형식적인 웃음을 보였다.

눈앞의 사내.

이두학은 같은 체육관에서 훈련한 5년 후배였다.

약물 사태가 발발하기 전만 하더라도 정두철을 하늘처럼 모시던 후배였지만, 정두철이 완전히 몰락하고서는 상황이 조금 바뀌었다. 이두학은 정두철을 따라 UFC에 진출했다. 그곳에서 나름대로 쏠쏠한 활약을 펼치면서 명성을 쌓았고, 자연스럽게 정두철의 인기를 물려받을 수 있었다.

물론.

정두철만큼은 아니었다.

챔피언의 위상을 거머쥘 정도로 높이 올라가지는 못했지만, UFC 선수라는 사실 자체가 중요했다.

‘진실은 나나 이 녀석이나 다르지 않지만.’

사람들이 모르는 진실이 있었다.

이두학도 약물 사용자였다.

정확히 어떤 약물을 사용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브로커들의 세계를 통해 어렵지 않게 진실을 들을 수 있었다. 정두철과 이두학이 활동하던 시대. 최근 격투기 팬들은 그때를 대약물시대라고 부를 만큼 약물이 만연했고, 동양인의 신체적인 한계를 이겨 내기 위해서 남들과 똑같은 선택을 할 수밖에 없던 시대였다. 이두학과 본인이 옳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이 ‘피해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정도로 모두가 약물을 사용하는 시대임은 분명했다.

다만, 자신은 진실이 발각되었다.

챔피언에 오른 만큼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기 때문이고, 정두철은 후배의 발목을 붙잡진 않았다.

후배를 살려 주려는 마음은 아니었다.

그저 스스로가 부끄러울 뿐이었다.

‘만약 나도 진실을 들키지 않았다면, 두학이가 누리는 모든 것이 내 것이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지.’

문득.

정두철은 본인이 참 쓰레기 같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자신의 미래일지도 모르는 이두학을 마주하니, 벌써부터 괜히 후회 같은 것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부끄러운 감정은 진실이 발각되었기 때문이다. 본인의 안위를 최우선으로 하는 선택지가 눈앞에 있다면, 정두철은 고민 끝에 언제나 본인을 택할 정도로 썩은 인물임을 스스로도 알았다.

역겨움을 삼켜 냈다.

지금은 과거를 되새길 때가 아니다.

정두철이 말했다.

“오랜만에 찾아오자마자 이런 부탁을 해서 미안한데, 혹시 내가 가르치는 애들과 네 선수들 스파링을 붙여 볼 수 있을까? 되도록 대산에서 진행하고 싶은데 너도 잘 알잖아. 서울과 지방의 수준 차이가 심하다는 거.”

그 말에.

이두학은 크게 고민하지 않고, 곧바로 인상을 찌푸렸다.

“쓰읍, 그건 좀 곤란한데요?”

* * *

끼익.

소파에 몸을 기댔다.

팔짱을 끼며 퉁명스럽게 반응하는 태도는, 후배였던 시절에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형님. 한때 후배이자 친한 동생이었으니까 편하게 말씀드리는 건데, 격투기판에서 형님의 이미지는 회복 불능입니다. 요즘 애들은 ‘스테로이드’ 같은 약물이 얼마나 나쁜지, 그리고 격투기판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모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제 제자들에게 형님의 제자들과 스파링을 하라고 말하면 어떻게 반응할 것 같습니까? 싫어할 겁니다. 그냥 형님의 제자라는 이유만으로, 우리 애들이 좋아할 리가 없습니다.”

요즘 세대는 인터넷이 발달했다.

당장 너튜브 같은 플랫폼에만 들어가더라도, 굳이 찾아보지 않아도 정두철에 관해 줄줄이 설명되었다.

알고리즘이 그랬다.

평소에 격투기를 검색하는 팬들로서는, 알아서 격투기의 역사를 알 수밖에 없도록 정보를 욱여넣었다.

“그리고 형님도 좀 너무합니다. 그냥 먹고살려고 작은 체육관을 운영하는 것 아니었습니까? 그냥 아줌마들 다이어트 운동 정도로 만족하시지, 형님 밑에서 데뷔하는 애들은 뭔 잘못입니까? 형님 제자라는 타이틀을 걸고 세상 밖으로 나오면 걔네가 괜찮긴 하답니까? 언론이 무지하게 때릴 텐데.”

신랄했다.

명백한 비난이었다.

정두철의 현실을 노골적으로 거론하며, 조롱하는 듯한 모습이기도 했다.

‘예전에도 그랬었지.’

이두학은 단순히 말 잘 듣는 후배가 아니었다.

정두철이 잘나가기 때문에 고분고분했지만, 그는 늘 정두철이 이룬 모든 것을 시기 질투했다.

그래서 정두철과 마찬가지로 약물에 손을 댔고, 정두철이 약물로 몰락하는 모습에 자신은 아무런 연관이 없는 것처럼 흔적을 지워 버렸다. 그리고 정두철이 진실을 안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는데도. 면전에서 ‘약물’을 비난할 정도로 그는 두꺼운 낯짝을 보유했다.

그래서였다.

그래서 이두학을 찾아왔다.

정석으로 운동을 잘하고 있는 후배들이 아니라, 자신과 마찬가지로 더러운 밑바닥을 드러내는 인물.

이두학이 적절한 상대라고 판단되었다.

정두철이 멋쩍게 웃었다.

이두학의 비난 따위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웃음이었다.

“걱정하지 마. 애초에 프로 데뷔가 목적인 아이들이 아니니까. 그냥 훈련의 성과를 확인하고 싶을 뿐이야.”

“그래요?”

이두학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선수부가 아니라니.

대체 무슨 생각이란 말인가.

머리를 굴리며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그가, 흥미가 돈다는 눈빛으로 말을 내뱉었다.

“그럼 뭐, 언제로 날을 잡을까요?”

* * *

그날.

이두학이 제자 두 명을 불러들였다.

둘에게 물었다.

“어때. 들어 보니까 상대는 고딩이라던데, 가볍게 스파링 뛸 수 있겠어?”

“그건 좀 그런데…….”

“저희 체면이 있지, 어떻게 고딩이랑 붙어요. 그냥 스파링이면 상관없겠지만, 분위기가 그게 아니잖아요.”

두 제자.

둘 다 프로 선수였다.

안동엽은 25살에 국내 격투기 단체에서 4승 1패를 한 실력자고, 황대명은 6승 3패로 패가 조금 있으나 최근엔 타이틀전이 거론될 정도로 상승세를 타고 있었다. 어찌 되었든 겨우 고등학생을 상대할 정도의 수준은 아니었다. 더구나 정두철의 제자를 상대하는 상황에, 둘 다 곤란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두학이 말했다.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 없어. 정두철이 가르쳤다고는 하나, 걔들이 프로를 지망하는 것도 아니고 단순한 훈련을 위해서잖아. 설마 너희 둘이 고삐리에게 지겠어? 그냥 내 체면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해. 정두철에게, 내 제자들이 얼마나 잘 치는지 보여 주고 싶거든.”

“그런 이유라면…….”

“에씨.”

황대명이 머리를 긁적였다.

이런 이유라면 거절할 수가 없다.

스승이 제자를 자랑하고 싶다는데, 제자 된 도리로 어떻게 거절하겠는가.

사실 주변의 시선이 문제일 뿐이지, 정두철의 제자라는 사실 자체는 흥미가 도는 일임에는 분명했다.

“알겠어요, 할게요.”

“그냥 개털어 버리면 되는 거죠?”

“역시 내 제자들이라니까, 크하하하.”

이두학이 호쾌하게 웃었다.

제자들의 등을 두드리며 돌려보내고는, 문득 체육관 정문에 걸려 있는 거대한 사진을 바라보았다.

UFC 무대.

찬란한 조명 아래서 포효하는 자신의 모습.

사람들은 이두학을 자랑스러운 UFC 선수로 기억하지만, 이두학에게 그 시절은 좋은 기억만은 아니었다.

그가 약물에 손을 댄 이유.

정두철을 뛰어넘기 위해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강해지기 위해 발악했지만, 그는 은퇴하는 그날까지 정두철의 발끝에도 도달하지 못했다. UFC 전적 2승 5패. 나름대로 전투적이고 화끈한 스타일로 인기를 끌었을 뿐, 전적 자체는 겨우 2승밖에 하지 못한 초라한 파이터였다. 정두철의 인기를 물려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한국 격투판에 자신만 한 선수가 없기도 했고, 늘 졌잘싸로 사람들의 인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격투판에서 유의미한 족적을 남겼기에 얻은 명성은 아니었다.

그래서일까.

오랜만에 만난 정두철의 모습에, 그 초라한 몰골에.

묘한 쾌감이 일었다.

프로를 지망하지 않는다면서도 기대감이 보이는 정두철의 눈빛은, 이두학의 심기를 건드렸다.

“그냥 뒷방 늙은이로 지내시지.”

선수 시절이면 몰라도.

지도자로서는 자신이 압도적이었다.

그걸, 사람들에게 보여 주고 싶었다.

“생각보다 재밌겠어.”

아무래도.

관객이 조금 필요할 것 같았다.

* * *

스파링 당일.

정두철 일행은 정오쯤에 서울에 도착했다.

그리고 체육관에 들어갔을 때, 기억과는 다른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웅성웅성.

넓은 체육관 안.

옥타곤을 제외하고는 사람이 바글거릴 정도로,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있었다.

익숙한 얼굴도 보였다.

현역 선수로 활동하던 시절에 인연을 맺었던 선후배들, 격투기 관련 관계자들 등등.

의도가 노골적이었다.

정두철은 이두학이 바라는 바를 알았지만, 사실 그건 그를 찾아갔을 때부터 예상했던 일이었다.

‘두학이의 성격이라면 절대 질 싸움을 받아들이지 않았겠지. 오히려 좋아. 나로서는 어쭙잖은 선배 대우를 해 줄 사람보다 날 확실하게 무너트리고 싶어 하는, 두학이 같은 애들이 더 적격일 테니까.’

“이리 와.”

정두철이 담담하게 걸음을 옮겼다.

시선이 집중되든 말든, 체육관 한편으로 이동하더니 김현성과 김시우를 준비시켰다.

‘얘들은 긴장도 안 하네.’

순간.

피식, 웃음이 나왔다.

김현성과 김시우는 수많은 관객에도, 프로를 상대한다는 사실에도.

매우 덤덤해 보였다.

이미 실전을 수도 없이 경험한 그들에게, 이와 같은 상황은 조금의 긴장감도 부여하지 않았다.

결국 스파링에 불과하지 않은가.

패배해도 안전이 보장되는 훈련.

핸드랩을 감아 주며 정두철이 설명했다.

“상대는 안동엽과 황대명. 국내 격투기판에서는 이미 실력을 인정받은 프로들이야. 안동엽은 비교적 신인들을 상대했지만 4승 1패라는 매우 좋은 전적을 기록하고 있고, 황대명은 최근에 3연승을 달리면서 타이틀 매치가 거론되고 있어. 뭐, 만만한 상대는 아니라는 의미지. 그리고 상대 관장이 사람들을 왜 이렇게 불러 모았을 거라고 생각해? 압도적으로 쓰러트릴 자신이 있기 때문이야. 단순히 고등학생을 상대하는 게 아니라, 반드시 쓰러트리라고 말을 해 두었겠지.”

가혹한 처사였다.

단순한 스파링이다.

프로를 지망하는 사람들도 아닌, 겨우 고등학생에 불과한 일반인.

그런데도 안동엽과 황대명을 끌고 온 이유는, 어떻게든 승리하겠다는 이두학의 의지가 엿보였다.

미스매치라고 한들.

그리 비난받지는 않을 것이다.

정두철의 이미지가 워낙 좋지 않기도 했지만, 안동엽과 황대명이 이두학의 최선은 아니었다. 정말로 승리를 갈구했다면 다른 선수들을 내보낼 수도 있으나, 그나마 사람들의 시선을 생각해서 적당히 타협했다.

지도자로서의 이두학은.

확실히 대단했다.

그의 밑으로는 명성 있는 제자들이 많았다.

정두철이 힐끗, 웃고 떠들며 준비하는 두 상대를 확인했다.

“너희를 쓰러트리기 위해 프로 선수들을 불러들였어. 이게 무슨 의미라고 생각해?”

“어려운 싸움이라는 의미겠죠.”

“아니.”

지금, 이 순간.

정두철은 피가 끓었다.

본인이 아니라 할지라도, 제자를 통해 피가 끓을 수 있음을 처음 알았다.

지도자로서 사는 것.

어쩌면 나쁘지 않을지도 몰랐다.

정두철이 현역 시절의 사나운 눈빛을 보였다.

“김현성, 김시우. 너희 둘이 쟤들을 쓰러트리는 순간, 적어도 고등학생 중에는 너희 상대가 없다는 의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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