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스파링 투어 (2)
준비가 끝났다.
먼저 옥타곤에 올라온 사람은 안동엽이었다.
짧게 깎은 머리에 험악한 인상, 체중 70kg에 잘 만들어진 몸은 한눈에 봐도 격투기 선수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체중은 크게 엇나가지 않도록 맞춘 상태였다. 프로 선수들로서는 일반인을 상대로 1~20kg 차이가 나더라도 상관이 없겠지만, 일반인이 높은 체중의 프로를 상대하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그런 이유로.
안동엽과 황대명이 선택받았다.
승리도 승리지만, 이두학으로서는 일반인을 짓밟아 버리는 일에 괜한 뒷말이 나오지 않기를 바랐다.
안동엽은 천천히 뛰었다.
옥타곤을 산책하듯 도는 그 모습은, 이 공간이 얼마나 익숙한지를 보여 주었다.
이윽고.
상대 선수가 올라왔다.
기생오라비 같은 얼굴에, 안동엽이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좀 띠껍게 생겼네.’
사실 정두철이 두 고등학생을 대동할 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김현성과 김시우.
격투기 선수라기에는 둘 다 외모가 훤칠했다.
김현성은 벌크업을 하면서 남자답고 진하게 훈훈한 모습을 보였다면, 김시우는 전형적인 기생오라비 같은 외모였다. 당장 아이돌 멤버에 섞여도 어색하지 않을 모습. 이런 애들이 격투기까지 잘해 보겠다고 설쳐 대는 모습에, 안동엽의 열등감(?)이 꿈틀거렸다.
개인적인 감정을 떠나서.
어차피 이두학이 신신당부하지 않았던가.
괜히 방심하다가 험한 꼴 당하지 말고, 상대를 완벽하게 짓밟아서 체육관의 명성을 드높이라고.
‘게다가…….’
힐끗, 주변을 살폈다.
생각보다 유명한 사람들이 많았다.
정두철과 선후배 할 정도의 사람들이라면 이미 격투계의 고인물이었고, 격투기 관계자들은 입김이 상당한 인물들이었다. 만약 그들이 보는 앞에서 패배해 버린다면. 그보다 우스운 일은 없었다.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모르되, 상대하겠다고 말한 순간부터 어중간한 승부는 허락되지 않았다.
‘미안하다. 그런데 애초에 이딴 승부를 제안한 네 스승이 문제인 거야.’
툭툭.
몸을 풀었다.
제자리에서 가볍게 뛰고 있자, 안으로 심판이 들어왔다.
“선수, 위치로.”
“예, 예.”
걸음을 옮겼다.
김시우와 마주 보았다.
잘생긴 얼굴을 가까이에서 보자 짜증이 확 치밀었다.
‘이거 좀 X 같네.’
그 순간.
안전 수칙을 설명한 심판이, 한발 물러나며 소리쳤다.
“시작-!”
* * *
터치 글러브는 생략했다.
정두철의 제자라면 그리 좋은 관계는 아니었기에, 안동엽은 시작과 동시에 곧바로 거리를 좁혔다.
팟.
타탁.
안동엽의 스타일.
이두학처럼 화끈한 인파이트였다.
중고등학교 시절 아마추어 복싱 선수를 했을 만큼, 기본적으로 복싱 스탠스를 구사하는 그로서는 거리를 좁히는 편이 유리했다. 상대는 겨우 아마추어. 상대의 스타일이 뭐든 간에, 근거리에서 패배할 자신은 없었다.
그런데.
아직 펀치 사거리에 들어가지도 못했는데, 위협적인 로우킥이 작렬했다.
빠악-!
“?!”
대미지가 상당했다.
킥이 파고드는 속도와 대미지는 일반인의 것이 아니었다. 겨우 단 한 번의 일격에 김시우를 우습게 보았던 생각이 머릿속에서 단번에 사라졌다. 지금 보니 일반적인 스타일이 아니었다. 언제든 발차기를 날릴 수 있도록 가볍게 가져가는 스탠스에, 상대가 킥 스페셜리스트임을 알 수 있었다.
‘그냥 일반인은 아니라는 건가.’
그렇다 한들.
결과가 달라지는 건 아니다.
킥을 좀 구사한다고 승리할 수 있다면, 종합 격투기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팟-
공간을 파고들었다.
거리를 좁히자, 여지없이 발차기가 작렬했다.
안동엽은 예민하게 반응했다.
킥을 캐치하며 상대를 무너트리려던 그는, 순간적인 고통에 숨을 들이켰다.
빠악!
“흡!”
로우킥이 아니었다.
허벅지가 아닌 조금 더 아래를 공격하는 방식.
카프킥이었다.
카프킥은 종합 격투기가 발전하면서 나온 공격 방식으로, 짧고 빠른 데다 킥 캐치를 하기에도 매우 까다로운 스타일이었다. 일종의 빌드업이었다. 로우킥으로 킥을 대비하게 만든 다음, 카프킥으로 대응을 무너트리는 공격을 시도. 안동엽은 자신도 모르게 조급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이 정도의 카프킥으로 대미지가 누적되면 나로서도 힘들어.’
복싱 스탠스를 상대로.
카프킥을 구사하는 선수는 천적이나 다름없었다.
앞발을 내놓은 채로 앞다리에 체중을 싣는 안동엽의 스타일은, 근거리에서 주먹을 주고받을 때는 복싱 특유의 폭발력을 발휘하나 거리를 조금 떨어트리는 순간 카프킥의 제물이 될 수밖에 없다. 대미지가 누적될수록 불리해지는 상황. 안동엽은 경기 초반부터 빠르게 판단을 내렸다.
‘거리를 주지 말자.’
타격을 허용했다.
가드를 단단히 한 뒤에 상대를 몰아붙이고는, 김시우에게 곧바로 주먹을 퍼부었다.
훅.
퍽, 빠악-!
펀치력이 폭발했다.
4승 1패라는 전적이 괜히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듯이, 거리를 확보하자마자 상단과 하단을 번갈아 타격하는 펀치는 그야말로 폭발적이었다. 상대가 한발 물러나면 똑같이 한발. 킥의 거리를 주지 않으려고 무조건적으로 들이받으며, 안동엽의 펀치가 정신없이 사방을 때렸다. 웬만한 선수들은 이 공격에 허점을 드러내기 마련인데, 김시우의 가드는 생각보다 단단했다.
빠악-!
빡, 빡, 빡!
유의미한 타격은 없었다.
계속해서 가드를 때리는 정도였고, 김시우는 스텝을 살리면서 옥타곤을 돌았다.
다가오는 만큼 떨어트리려는 의도였고, 펀치를 내뻗느라 안동엽의 발이 조금이라도 느리면 발차기가 작렬했다.
빠악-!
휘청거렸다.
살짝, 소름이 돋았다.
‘이거 위험하다.’
탄탄한 방어와 위협적인 발차기.
예사 고등학생이 아니었다.
이 정도로 훈련되었다면 사실 당장 프로로 데뷔해도 이상하지 않고, 무엇보다도 자신과 근거리에서 부닥치는 상황에도 상대는 매우 침착한 반응을 보였다. 정두철의 명성은 헛되지 않았다. 최고의 자리에 오른 사람이니만큼, 그가 가르친 제자는 고등학생이어도 특별함이 있었다.
빠득.
이를 악물었다.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나약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다.
가뜩이나 신인들만 잡았다는 평을 듣는데, 아마추어를 상대로 고전하면 어떤 말을 들을지 뻔했다.
‘발차기 위주의 선수들을 공략하는 법은 뻔하지.’
현실을 택했다.
훙, 파악-!
콤비네이션이었다.
잽을 뻗고 훅.
상대가 피하면.
파팟.
고개를 박고 파고들었다.
그라운드였다.
아무리 킥을 잘 사용한다고 한들, 바닥으로 끌려가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법.
이건 종합 격투기다.
복싱 스타일로 한동안 고생했던 안동엽은, 아마추어 타격가를 쓰러트릴 충분한 레슬링을 갖추었다.
그런데 그때.
“……?!”
안동엽은 눈을 부릅떴다.
고개를 분명히 처박았는데.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을 마중 나온 주먹이 보였다.
빠악-!
* * *
찰나의 순간.
안동엽의 판단은 위협적이었다.
펀치 콤비네이션으로 빌드업을 깔고, 곧바로 파고들어 상대를 무너트릴 완벽한 계략을 실행에 옮겼다.
확신이 들었다.
분명히 먹힐 공격이었다.
아마추어로서는 절대 대응하기 힘든 공격이건만, 상대인 김시우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발차기가 위협적이라고 판단되는 순간 상대는 무조건 그라운드를 시도할 거야.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된 지금, 괜히 아마추어를 상대로 타격만 고수하는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는 않겠지.’
1년 조금 넘는 시간.
프로에게 비비기에는 충분하지 않았다.
하지만.
김현성과 김시우는 상식적이지 않은 발전을 이루었다.
전문적으로 훈련하는 선수들보다도 더 진한 노력을 쏟아부었고, 매일 상대를 죽일 듯이 김현성과 스파링을 진행했다. 그렇다 보니 김시우는 스스로의 강점과 약점을 알았다. 태권도 선수를 했기에 발차기에 상당한 강점이 있지만, 발차기를 써야 하는 만큼 그라운드에 약점도 있었다.
김현성은 매번 그 약점을 공략했다.
수도 없이 파고드는 김현성의 공격에, 김시우는 매번 무너지면서 경험을 쌓아 나갔다.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약점을 역으로 활용할 수는 없는지.
이두학의 패착이었다.
안동엽의 정보는 인터넷에 널렸지만, 그들은 지금 본인들이 상대하는 김시우가 어떤 스타일인지를 몰랐다.
발차기를 잘할 뿐만 아니라.
그걸 활용할 머리도.
재능도 갖추었다.
안동엽의 펀치가 빌드업이라고 판단하자마자, 태클을 들어올 것이라고 예상되는 위치에 어퍼컷을 뻗었다. 그건 보고 반응한 게 아니다. 상대의 시도를 예상해서 한발 먼저 반응하는 공격.
서로가 맞물렸다.
안동엽으로서는 절대 피할 수 없는 공격이었다.
빠악-!
비틀.
살벌한 소리가 들렸다.
얼굴에 제대로 얻어맞자, 안동엽은 휘청거리면서 어떻게든 버티려는 의지를 보였다.
대단했다.
괜히 프로 선수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
안동엽의 맷집은 상식을 벗어났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안동엽이 대미지를 수습하지 못하는 그때, 그의 머리 옆으로 하이킥이 작렬했다.
빠악-!
그것으로 끝이었다.
강력한 발차기 한 방에.
안동엽은 그대로 땅바닥에 처박혔다.
콰당!
* * *
넓은 체육관 안.
정적이 내려앉았다.
방금까지 떠들던 사람들이, 예상치 못한 결과에 숨을 죽였다.
안동엽의 패배.
충격적이었다.
아무리 신인을 상대로 전적을 쌓았다고 한들, 4승 1패의 프로가 일반인에게 패배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것도 겨우 고등학생을 상대로. 모두가 옥타곤과 이두학 관장을 번갈아 바라보며 눈치를 보는 그때, 김시우가 마우스피스를 뱉어 내며 케이지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관장님. 서울은 넓다면서요. 프로가 겨우 1라운드도 버티지 못하는데요?”
“이 새끼가.”
이두학이 발끈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김시우는 개의치 않았다.
의도적이었다.
그로서는 이렇게 행동하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 번째.
정두철을 대하는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정두철이 약물을 사용했으며 김현성에게 1억을 받는 등, 자세한 이야기를 모르는 김시우로서는 정두철은 강해질 방법을 말해 주는 스승이었다. 그런데 이두학 체육관의 분위기는 노골적으로 정두철을 깔보았다. 처음 체육관에 들어갔을 때도, 분명히 알아보는 눈치인데도 먼저 말을 거는 사람이 없었다.
그건 그렇다 치고.
진짜 이유는 두 번째였다.
‘현성이는 곧 대산을 떠날 계획이야. 그리고 아마도, 나를 데리고 가지는 않을 생각이겠지.’
처음에는 몰랐다.
학교를 정리하고.
대산을 정벌하고.
김현성과 이런저런 일을 할 때는 자신을 유용하게 사용한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김현성의 의도가 보였다. 금전적으로 지원해 주고 공부를 강요했다. 본인은 당장에 죽을 것처럼 몰아붙이는데도, 절대 자신에게는 그 정도로 악에 받쳐서 훈련하라는 어떠한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알게 되었다.
자신의 역할은 대산에서 끝난다는 것을.
그렇기에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안동엽 정도의 제물로는, 상대의 방심을 공략해 무너트리는 수준으로는.
김현성에게 할 말이 없었다.
김시우가 말했다.
“이 정도면 현성이까지 나설 필요가 없을 것 같은데. 그냥 다음 상대도 저랑 붙어 주시죠. 이대로 내려가기에는 체력이 너무 많이 남았거든요.”
그건 정말이지.
이두학의 심기를 제대로 자극하는 발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