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惡의 등교-121화 (121/130)

23. 스파링 투어 (5)

순식간에 이루어진 공격이었다.

상대를 유도한 뒤에 작렬한 어퍼컷, 신창훈이 휘청거리며 어떻게든 버텨 보려고 하자 곧바로 따라붙으며 깔끔하게 원투. 입을 떡 벌리고 지켜볼 수밖에 없는 광경이었다. 상대를 끌어들이는 기술이나, 공격 범위에 들어온 상대를 단번에 무너트리는 기술 모두 감탄을 일으켰다.

쿠웅.

신창훈이 쓰러졌다.

바닥에서 미동도 하지 않는 그의 모습에,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환호성을 내질렀다.

“와.”

“신창훈을 KO로 보내다니!”

“휘익- 미쳤다, 미쳤어!”

이두학의 시선?

지금은 그딴 걸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이두학이 자랑하는 비장의 무기가 쓰러지는 순간, 상대가 그것도 정두철의 제자이며 겨우 고등학생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국내 격투기 판에 엄청난 격변을 의미했다. 김현성이라는 저 고등학생으로 인해, 앞으로 격투기 판도가 어떻게 변할지 기대감이 차오를 정도였다.

이두학조차 지금은 할 말을 잃었다.

김시우에게 패배했을 때는 부들부들 떨었지만, 지금은 그로서도 김현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가르치는 재능조차 정두철이 위라는 겁니까.’

하늘을 원망했다.

세상이 와르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이두학이 어떻게 반응하든 말든.

김현성은 담담한 얼굴로 마우스피스를 빼더니, 옥타곤에서 내려와 곧바로 정두철에게 다가갔다.

이번 경기.

김시우만큼이나, 김현성에게도 특별한 의미였다.

두 사내의 시선이 허공에서 뒤얽혔다.

“그동안 제가 얼마나 무리한 부탁을 했는지 알고 있습니다. 격투기를 전혀 알지 못하는, 싸움이라는 것조차 익숙하지 않은 저를 가르치는 일은 쉽지 않았겠죠. 그리고 겨우 1년 만에. 관장님 덕분에 저는 원하는 수준에 도달했습니다.”

평소와는 달랐다.

예의를 표했다.

진지한 얼굴로 모두가 보는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관장님은 저와의 약속을 지키셨습니다.”

진실을 모르는 사람들로서는.

스승에게 감사함을 표하는 행동처럼 보였다.

진실은 달랐다.

정두철은 김현성의 의도를 알았다.

애초에 계약으로 이루어진 관계다.

언젠가 끝이 존재하는 일시적인 관계라면, 그것은 강해지고자 하는 목적을 이룬 지금일 것이다.

“너에게는 해 줄 말이 이것밖에 없다.”

담담하게.

정두철은 작별 인사를 받아들였다.

“부디, 무사해라. 현성아.”

* * *

그날.

국내 격투기판에 소문이 돌았다.

“이번에 얘기 들었어? 이두학이랑 정두철이 서로의 제자를 내세워서 한판 붙었는데, 이두학이 박살이 났대.”

“천하의 이두학이? 현역 선수로서의 성적은 몰라도 지도자로서는 이두학이 한참 앞서지 않나. 선수가 누구였는데? 이상한 어중이떠중이들끼리 붙어서 정두철이 이겼다고 자위하는 거 아냐?”

“무슨 소리야. 정두철이 고삐리 두 명을 내세웠는데 한 명은 안동엽과 황대명을 연달아 쓰러트렸고, 나머지 한 명은 이두학이 애지중지 키운 신창훈을 박살을 냈대. 사실상 이두학의 전력이잖아.”

“헐. 신창훈을 박살을 냈다고?”

난리가 났다.

겨우 아마추어에게 안동엽과 황대명이 연달아 쓰러진 것도 경악스러운 일인데, 신창훈의 패배는 더욱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다. 신창훈은 데뷔만 하지 않았을 뿐이지, 국내 격투기판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스파링에서도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 주었고, 최정상급 지도자인 이두학이 애지중지 키우는 모습에 신창훈의 데뷔를 기대하는 격투기 관계자들이 많았다.

그런 신창훈을.

그냥도 아니고 압도적으로 발라 버렸다는 소문이었다.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나눈 의미심장한 대화에, 사람들끼리 소문을 부풀렸다.

“정두철과 나눈 대화를 보면 곧 데뷔할 것 같던데. 와, 진짜 어떻게 되려나. 그 어린 나이에 신창훈을 발라 버릴 레벨이면 국내 격투기판은 물론이고, 1~2년 안에 UFC에 진출하는 걸 보려나.”

작별 인사를.

데뷔를 암시한다고 받아들였다.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퍼져 나갔고, 덕분에 정두철의 전화기는 터질 듯이 울려 댔다.

우웅-

[두철아. 오랜만이지?]

[네가 키우는 그 선수. 내게 맡기는 건 어때. 아무래도 넌 이미지가 좋지 않아서 좀 그렇잖아. 내가 책임지고 밀어줄게. 나중에 충분한 성적을 거두면, 그때 네 제자라는 사실을 밝히면 그림도 좋잖아.]

[어디에서 데뷔시킬 생각이야? 우리 단체에서 데뷔시키는 건 어때. 시작부터 시선을 확 사로잡는 매치를 잡아 주고, 조금만 성적을 보이면 곧바로 타이틀 매치까지 연결시켜 줄게. 어차피 네가 이 정도로 각 잡고 가르친 거면 UFC가 목적일 거 아냐. 그 전에 징검다리로 우리 단체를 이용해.]

[대체 어떻게 그런 선수를…….]

사방에서 연락이 빗발쳤다.

정두철이 약물 파동으로 바닥을 찍었을 때는 아는 척도 하지 않던 사람들이, 김현성이라는 스타 탄생에 옛 인맥을 끌고 왔다. 그들의 반응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김현성은 그야말로 상품성이 있는 선수였고, 사람들로서는 그 상품성을 최대한 이용하고 싶을 수밖에 없었다.

정두철은 김현성의 스승이다.

김현성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반드시 통과해야만 하는 사람이었고, 옛날에 지저분한 전적이 있다는 사실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본인이 아니지 않은가. 결국에 ‘성적’이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사실을, 사람들의 이중적인 태도가 증명했다.

우웅.

우웅, 우웅-

전화기가 끊임없이 울려 댔다.

하지만 정두철은 그 어떤 연락에도 반응하지 않았다.

[진짜 이렇게 쌩까기야? 좀 너무 하지 않냐.]

사람들이 뭐라 말하든.

정두철로서는 그들이 원하는 것을 내줄 수 없었다.

텅 빈 체육관.

김현성은 더는 체육관을 찾아오지 않았다.

* * *

작별을 예상한 시기는 겨울 방학이 지나고서였다.

눈이 내리고 눈이 녹을 즈음, 김현성이 대산을 떠나면 그때 진정한 작별이 맞이하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일찍 작별이 찾아왔다.

김시우는 안동엽과 황대명을.

김현성은 신창훈을.

더할 나위 없는 성과였다.

스파링을 끝내고 김현성이 했던 말은, 밝은 미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닌 진심 어린 작별 인사였다.

텅 빈 체육관 안.

정두철은 소주를 한잔 기울였다.

처음에는 대가를 받고 김현성을 가르친다는 사실에 죄책감이 밀려들었는데, 막상 떠나 버리자 묘한 상실감에 빠졌다. 앓던 이가 빠진 느낌이 아니었다. 영혼을 충만하게 채워 주던 무언가가 육체를 빠져나가 버린, 삶의 의욕이 사라진 기분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넌 진심이었구나. 정말 네 그 복수를 위해 강해지려는 것이었어.”

문득.

옛 생각이 떠올랐다.

프로로 데뷔하자는 말에, 김현성은 이렇게 말했었다.

자신은 싸움이 조금도 즐겁지 않다고.

아프고 고통스럽지만, 복수를 이루겠다는 단 하나의 일념에 고통스러운 시간을 감내할 뿐이라고.

씁쓸하게 웃었다.

술을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 않았다.

‘난 대체 김현성을 통해 뭘 이루려고 했던 걸까.’

단순히 돈 때문만은 아니다.

처음에는 1억이라는 거금이 결정적인 명분을 부여한 것은 맞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김현성의 발전에 푹 빠졌다. 그가 이대로 성장해서 목적을 이루어 내기를 바랐다. 그제야 알았다. 단순히 생계를 위해서 남을 가르치던 자신이, 사실은 이 지도자라는 길에 엄청난 매력을 느낀다는 사실을.

그리고 며칠 전부터.

사방에서 연락이 빗발쳤다.

김시우와 김현성을 만들어 낸 지도 능력을 인정받아, 자신을 가르쳐 달라는 연락들이 밀려들었다.

그동안 바랐던 미래였다.

선수 시절에는 별 볼 일 없던 이두학이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정두철은 열등감처럼 속에서 썩어들어 가는 감정을 느꼈다. 사람들이 내미는 손길을 움켜쥐기만 한다면. 이 허름한 체육관에 수많은 관원이 들어차겠지만, 이상하게도 그 어떠한 연락에도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

그들이 과연.

자신을 만족시켜 줄 수 있을까?

김현성과 김시우라는 말도 안 되는 재능을 경험했는데, 재능에서도 마음가짐에서도 밀릴 게 분명한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을까.

술을 연거푸 들이켰다.

그때였다.

딸랑-

“……혹시 정두철 관장님이신가요?”

문을 열고.

누군가가 찾아왔다.

나이는 20대 초반?

아직은 앳돼 보이는 모습이었는데, 정두철이 인상을 찌푸리자 반색하며 소리쳤다.

“맞네요. 정두철 관장님! 진짜 팬입니다! 그동안 관장님의 경기를 정말 수도 없이 돌려 봤습니다. 사람들이 뭐라 말하든, 그때 관장님의 경기력은 진짜라고 생각하거든요. 단순히 육체적인 레벨을 말하는 게 아니라 상대를 무너트리는 기술적인 영역이요. 아차차, 제가 말실수를 했나요?”

아무 말도 없는 반응에.

상대가 멋쩍게 웃었다.

그러고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절 받아 주세요. 관장님처럼 강해지고 싶습니다.”

왜일까.

묘하게 김현성과 오버랩되었다.

김현성도 자신을 찾아왔을 때, 과거의 자신을 기억하고 가감 없이 목적을 말했었다.

피식, 웃었다.

정두철이 물었다.

“이름은?”

“아!”

긍정의 의미로 받아들였기 때문일까.

상대도 방긋 웃었다.

“김무열. 김무열입니다, 관장님!”

* * *

정두철이 새로운 시작점에 선 그때.

김현성은 김시우와 따로 만났다.

원정 스파링을 끝내고 며칠 만이었다.

얼굴의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은 그에게, 김현성이 덤덤한 얼굴로 말했다.

“네 의지는 알겠어. 하지만 널 서울로 데려갈 수는 없어.”

“야!”

“너도 알잖아. 내가 서울에서 하려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지. 대산을 떠나 서울로 향하는 건 일상생활이 모두 끝나 버리는 파멸을 의미해. 학교생활이 완전히 무너지고 오로지 목표만을 향해 달려 나갈 텐데, 네가 대체 왜 그런 위험을 감당해야 하는데? 난, 나 혼자만 희생하는 일이니까 할 수 있는 거야.”

“그러면 그동안 대체 왜! 나랑 같이 훈련을 했는데? 운동이 끝나고 네가 속에 있는 것을 모두 게워 낼 때, 나도 너를 따라 들어가서 똑같이 모조리 토해 냈어. 네가 얼마나 위험한 일을 하려는지를 알아서 끝까지 버틴 거라고. 그런데 이렇게 빠지라고 말하는 건 너무 이기적이잖아. 나도 노력했다는 걸 너도 알잖아.”

김시우가 악에 받쳐 소리쳤다.

김현성의 말은.

자신을 생각한다고 말할 뿐, 너무나 이기적이었다.

챙겨 달라 한 적 없었다.

같이하고 싶을 뿐이었다.

남들이 자신을 놀리고 무시하던 시절, 유일하게 손을 내밀어 준 친구의 어려움을 외면하고 싶지 않을 뿐이었다.

김현성이 말했다.

“알아. 네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그럼…….”

“그래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 하지만 그렇다고 네가 필요하지 않다는 의미는 아니야. 스파링이 끝나고 내게 했던 말처럼, 프로 선수를 연달아 쓰러트린 순간부터 너는 앞으로의 계획에 분명히 유용한 존재임을 증명했어. 그러니까 넌 대산에 남아 줘. 대산에 남아, 애들을 휘어잡고 내가 연락할 때까지 기다려 줘.”

김현성의 말.

이해하지 못했다.

기다려 달라니.

김현성은 김시우를 인정했다.

앞으로의 계획에 ‘세력’이 필요하다면, 김시우가 갖춘 힘은 분명히 도움이 될 것이다.

“내가 연락하면. 그때 서울로 올라와.”

받아들였다.

김시우의 진심을.

그는 떨쳐 낼 수 없는 존재였다.

“그때가 네가 필요한 타이밍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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