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惡의 등교-123화 (123/130)

24. 의도가 무엇이었든 (1)

1년 전.

이정민은 그때의 기억이 선명했다.

징계위원회가 마무리되고 김현성에게 감사하다고 말한 그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반응을 마주했다.

“징계위원회가 끝날 때까지 모른 척하던 새끼가, 지금 와서 뭐가 고마운 거냐고. 어디 설명해 봐.”

싸늘했다.

차갑게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에, 이정민은 말문이 막혀 버렸다.

김현성의 반응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자신을 도와주다가 징계위원회까지 끌려갔는데, 사건의 시발점이자 피해자는 증언을 거부하고 한발 물러나 버렸다. 모든 책임을 김현성이 떠안았다. 이정민은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자리로 돌아갔지만, 수군거리는 주변의 시선에 좀처럼 감정이 진정되질 않았다.

‘그래서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건데. 나도 결국에는 피해자일 뿐이었다고.’

눈물이 차올랐다.

자신도 김현성처럼 정의롭고 싶었다.

불의를 보면 참지 않고,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 목소리를 높이는 그런 사람이기를 스스로도 바랐다.

그런데.

현실은 현실이지 않은가.

징계위원회가 처음 소집될 때만 하더라도, 천일에서 그 누구도 김현성이 징계를 피하리라고 예상하는 사람은 없었다. 정민호의 부모님은 대산에서 알아주는 부자였고, 오대환 교장은 노골적으로 정민호 편을 들었다. 만약 김현성이 가해자로 낙인찍혀 학교에서 쫓겨났다면, 이정민으로서는 천일에 홀로 남아 다시 박민철 패거리의 악의를 감당해야 했을 것이다.

덜컥, 겁이 났다.

자신이 없었다.

머릿속으로는 김현성을 위해 못 할 것이 없었지만, 입술은 진실을 말하기 위해 달싹거리기조차 하지 못했다. 입을 꾹 다물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만이 살아남을 방법처럼 느껴졌다.

‘다른 애들도 똑같잖아. 내가 괴롭힘을 당할 때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고, 사건이 어떤 이유로 벌어졌는지를 알면서도 증언하려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어. 똑같은 거겠지. 그들은 당사자가 아니니까, 김현성 너처럼 정의롭게 진실을 말한다는 생각 따위는 고려조차 하지 않는 거겠지.’

김현성이 대단한 거다.

다른 사람들이 방관했듯, 당사자인 본인이 한발 물러난 게 비상식적인 대응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그렇다 한들.

김현성의 발언이 잘못된 걸까?

그건 아니다.

절대 아니다.

눈물이 차오를 뿐, 이정민은 진실을 알았다.

‘네가 대단한 거라고.’

자신을 위해 나서 준 순간부터.

타인을 위해 용기를 낸 순간부터.

김현성은 자신에게 욕을 할 수 있는, 이 교실 안에서 유일하게 그만한 자격을 지닌 사람이었다.

* * *

징계위원회 사건.

학교의 판도가 변했다.

김현성이 자연스럽게 1학년을 휘어잡으면서, 이정민은 어느 순간부터 따돌림을 당했다.

친구들이 삼삼오오 모일 때면.

이정민을 힐끗거리며 수군거렸다.

“진짜 이기적이지 않냐?”

“그러니까. 김현성이 남을 도와주겠다고 피 터지도록 싸우고 징계위원회까지 나갔는데, 어떻게 본인 안위만 챙기겠다고 발을 빼 버리냐. 이래서 검은 머리 짐승은 거두지 말라는 말이 있다니까. 사람이면, 양심이 존재한다면. 적어도 ‘이정민’처럼 살면 안 되지.”

“현성이만 불쌍하다. 저런 새끼를 위해서 그 난리를 친 거잖아.”

그들의 비난.

그들의 시선.

날카로운 화살이 되어 가슴에 푹푹 박혔다.

스스로도 본인의 행동이 부끄럽다는 사실을 알기에, 누군가의 시선이 자신을 향할 때마다 쥐구멍이라도 찾아 숨고 싶었다. 괴롭힘을 당할 때와는 또 다른 고통이었다. 적어도 그때는 친구들이 자신을 동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았다면, 지금은 완전히 무리에서 벗어난 기분이었다.

‘지금의 내게 남은 건 공부밖에 없어. 그래, 공부에만 전념하자.’

이를 악물었다.

언젠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남들은 들어가지도 못할 좋은 대학교에 입학한다면.

새로운 미래가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친구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교실 한편에서, 이정민은 코피를 흘려 가며 공부에 전념했다.

예전에는 그래도 친구들과 어울리며 게임도 즐겼지만, 지금은 성적이라는 단 하나의 목적에 완전히 매몰되었다. 그것마저도 이루지 못한다면 인생이 무너질 것만 같았다. 그렇게 아득바득 공부에 매달렸고, 마침내 2학기 중간고사가 끝났을 때 이정민은 원하는 성적을 얻었다.

‘전교 3등이야.’

시험지를 잡은 손이 파르르 떨렸다.

기뻤다.

아니, 기뻐야만 했다.

여전히 참담한 기분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시험지를 통해 일말의 희망이라도 얻고자 했다.

숨을 쉬고 싶었다.

그로부터 며칠.

이정민은 곧바로 다음 시험을 준비했다.

이번에는 반드시 1등을 하겠다고 다짐하던 어느 날, 갑작스럽게 사건이 발발했다.

“리얼?”

“김현성이 선배들이랑 소각장으로 갔대.”

“진짜 X 됐네. 김현성 혼자서 전부 감당하지 못할 텐데.”

학교가 발칵 뒤집혔다.

김현성이 2학년 선배들을 포함해 신영민마저 쓰러트렸던 날, 사건이 발발한 시작점만 하더라도 친구들은 김현성을 걱정했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신영민 하나도 감당하지 못한다는 게 상식적인 판단인데, 천일 전체와 싸우려는 김현성의 행보는 무모하다고밖에 할 말이 없었다.

이정민도 뛰었다.

창문 아래로.

김현성의 모습이 보였다.

‘위험해!’

눈이 빨갛게 충혈되었다.

그날처럼.

징계위원회에 출석하지 않았던 그때처럼.

김현성의 어려움을 외면하고 싶지 않았다.

손이 덜덜 떨렸다.

자신의 이 행동으로 감당해야 할 미래에, 이정민은 상상만으로도 겁이 나 미칠 것만 같았다.

꾹꾹.

힘겹게 번호를 눌렀다.

112에 신고할 작정이었다.

번호만 눌러 놓고, 이정민은 창백한 얼굴로 김현성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용기가 필요했다.

번호를 누를 힘이 필요했다.

진짜 위험한 상황이 연출된다면, 그때는 정말 눈을 질끈 감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런데…….

예상과는 달랐다.

상식에서 벗어났다.

김현성은 2학년 선배들과 배성호를 쓰러트리고, 신영민마저 제압해 버렸다.

팔을 부러트리는 소리와 신영민의 찢어질 듯한 비명이, 학교 전체를 공포스럽게 울려 댔다.

그 광경에.

이정민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들었다.

* * *

다시 현재.

이정민이 말했다.

“……사실 지금보다 일찍 내 진심을 전하고 싶었는데, 네가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아서 도무지 용기가 나지 않았어. 그때의 나는 네게 잘못한 게 맞으니까. 그날 이후로 난 이 학교에서 유령처럼 지냈어. 내가 한 짓이 있어서 아무도 날 달갑게 여기지 않더라고.”

묘한 분위기였다.

쓸쓸하고 힘들었던 지난 1년을 말하면서도, 이정민은 그리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있지 않았다.

“그런데 정말 웃긴 사실이 뭔지 알아? 나 있잖아. 지난 1년간 너무 행복했어. 한동안 이 학교에 친구라고 할 만한 애들이 없고 매일 혼자서 칠판만 바라보는데도, 너무 행복해서 아무런 원망조차 들지 않았어. 생각해 보면 박민철 패거리에게 괴롭힘을 당했을 때. 그때는 친구만 없었던 게 아니야. 괜히 나랑 어울리다가 박민철 패거리에게 찍힐까 봐 아무도 다가오지 않았고, 나는 쉬는 시간마다 괴롭힘을 당할 생각에 숨이 막혔어. 학교가 끝나고는 박민철 패거리에게 끌려가 날이 저물도록 시달렸고, 집으로 돌아가면 걔들이 내준 숙제를 해야 했어.”

목소리가 떨렸다.

과거를 생각하면 감정이 불쑥불쑥 치밀었다.

“적어도 지금의 난. 그런 괴롭힘을 당하지는 않잖아. 모두에게 사랑받지 못할 수는 있어도 자살을 생각할 만큼 고통스럽지는 않잖아. 현성아. 정말,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 네가 이 학교에 학교 폭력을 없애 준 덕분에, 나는 적어도 숨을 쉬며 살 수 있었어.”

이정민을 따라나선 친구들.

시간이 흐르고.

감정이 퇴색되며.

이정민에게 손을 내민 친구들이었다.

이정민이 비겁하고 잘못했다는 걸 알았지만, 그래도 그걸 이해해 주는 새로운 친구들이 생겼다.

그들도 똑같이 비겁했기에.

이정민을 이해했다.

지난 1년은, 이정민에게 마냥 불행하기만 한 시간은 아니었다.

김현성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빤히, 이정민을 바라보았다.

감정을 토해 내는 이정민의 말을 들어 줄 뿐이었다.

이정민이 말했다.

“만약 그때로 돌아간다고 할지라도. 네가 징계위원회에서 박민철 패거리를 전부 쓸어버릴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어도, 난 그때와 다른 선택을 할 거라고 자신 있게 말하지는 못해. 난 비겁한 사람이니까. 너처럼 대단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알아줘. 우리 모두.”

한 명이 아닌.

교실에 존재하는 전부.

모두의 눈빛이, 이정민의 발언에 힘을 실었다.

“네게 진심으로 고마워하고 있다는 걸. 네 덕분에 난 죽지 않을 수 있었어.”

* * *

이정민의 행동.

그것이 기폭제였다.

김현성이 천일을 떠난다는 소문이 거의 확실시되자, 쉬는 시간이 멀다 하고 친구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현성아, 고마워.”

“그거 알아? 나 강창석 앞자리였거든. 내가 허리를 빳빳이 세우지 않으면 자기가 잘 수 없다면서 매일 뒤통수를 때리고, 걔가 뭘 사 오라고 하면 쏜살같이 달려가서 내 돈을 전부 뱉어 내야 했어. 그래서 진짜 학교가 싫었어. 강창석이 여전히 학교에 있었다면, 지금의 난 이렇게 행복하지는 않았을 거야.”

“네 덕분이야. 네가 신영민을 쓰러트린 덕분에, 난 이 학교를 무사히 졸업할 수 있게 됐어.”

김현성은.

천외의 존재였다.

신영민을 쓰러트리고 천일을 장악하면서부터, 선배고 친구들이고 할 것 없이 김현성에게 차마 다가갈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그에 대해 악감정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김현성이 만들어 준 새로운 세상에, 더는 괴롭힘이 허락되지 않는 세상에 모두가 김현성의 세상을 반겼다.

학교라는 공간이.

이리도 행복할 수가 있구나.

누군가가 사람을 함부로 때리지 못한다는 단 하나의 사실만으로도, 학교가 이리도 평화로울 수 있구나.

말만 하지 않았을 뿐.

모두가 감사한 마음이었다.

일련의 상황.

김현성으로서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난 친구들을 도우려는 의도가 아니었어. 학교 폭력의 뿌리를 뽑아 모두를 이롭게 하려는 생각이 아니라, 그냥 학교 폭력을 주도하는 쓰레기 새끼들이 싫었을 뿐이야. 그런데 내가 이렇게 감사하다는 말을 들을 자격이 있을까? 내 개인적인 복수를 위해서 모든 일을 벌였는데, 내가 마치 모두를 위해 어려움을 감당한 것만 같잖아.’

과거로 돌아온 시점부터.

김현성은 한결같았다.

자신의 악의가.

선의로 표현되길 바라지 않았다.

삶의 밑바닥으로 추락해 버린 그 처절한 감정이, 조금이라도 긍정적으로 표현되는 게 싫었다.

사람들과 웃고 떠들다 보면.

잘했다면서 칭찬을 듣다 보면.

감정이 퇴색될지도 모른다.

복수라는 단 하나의 목적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면, 스스로에 대한 확실한 통제가 필요했다.

칭찬을 흘려들었다.

학교가 끝났다.

이만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황당하게도 학교에서의 해프닝은 학교 안에서 끝나는 문제가 아니었다.

“……네가 김현성이야?”

얼굴도 모르는 친구였다.

게다가 생전 처음 보는 교복.

학교가 끝날 때까지 기다린 것으로 보이는 그 친구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얘기 들었어. 너 전학 간다면서. 그래서 꼭 이렇게 직접 찾아가서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 네 덕분에 난 죽지 않을 수 있었어. 네가 아니었다면, 지금의 나는 이 자리에 없었을 거야.”

“그게 왜 내 덕인데?”

짜증이 치밀었다.

고맙다고 말하는 이유.

안다.

이해한다.

하지만 더는 듣고 싶지 않았다.

고맙다는 말을, 자신의 악의를 선의로 뒤덮으려 하는 시선들을.

김현성은 마주하기 싫었다.

악의는 악의로 남아야 했다.

그러길 바랐다.

“난 너희를 도와줄 생각으로 나섰던 게 아니야. 그냥 그 새끼들이 꼴 보기 싫었을 뿐이고, 내가 강하다는 사실을 증명하다 보니 이렇게 된 거야. 그러니까, 이렇게 찾아와서 감사하다고 말할 필요 없어.”

스스로도 알았다.

참 초라하다고.

아득바득 발악하는 자신 또한, 결국 18살 고등학생에 불과했다.

남들이 알지 못하는 십수 년의 세월이 켜켜이 쌓였다고 한들, 김현성의 세상은 늘 그곳에 머물렀다.

걸음을 옮겼다.

이만 지나치려 했다.

그런데.

얼굴도 모르는 그 친구가 말했다.

“네 의도가 무엇이었든 그건 중요하지 않아.”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시선을 마주치자, 눈동자 안에 담긴 진심이 가슴에 파문을 일으켰다.

“우리가 너로 인해 평화를 되찾았잖아. 그거면 충분해. 우리는 그 사실 하나가 감사할 뿐이야.”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