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惡의 등교-124화 (124/130)

24. 의도가 무엇이었든 (2)

얼굴도 모르는 친구.

김현성은 정말 그가 누구인지 몰랐다.

같은 지역 출신의 고등학생이라는 공통점만 존재할 뿐, 둘은 단 한 번도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었다.

아니, 스쳐 지나간 적조차 없었다.

그건 상대도 마찬가지였다.

대산 한빛 고등학교 2학년.

아직 대산 정벌이 이루어지기 전에, 성현빈은 ‘김현성’이라는 애가 명성을 떨친다는 소문을 들을 인맥도 여유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에게 현실은 지옥과 다를 바가 없었다. 학교에 나갈 때면 한상진이라는 이름의 일진이 그를 괴롭혔고, 고등학교 1년 내내 지속된 괴롭힘에 한상진 전용 셔틀이라는 별명도 붙었다.

덕분에 늘 바빴다.

아침에 학교에 나가서 한상진의 자리를 정리하고, 교과서를 준비하고, 체육복도 미리 세팅하고.

한상진은 꼭 점심시간에 탄산을 먹었는데, 한상진이 급식실로 가서 자리에 앉을 때까지 탄산을 대령하지 못하면 점심이 끝날 때까지 맞았다. 팔뚝에는 늘 멍이 시퍼렇게 물들었다. 멍이 빠질 때면 새로운 멍이 덧칠되다 보니, 한상진은 그 멍을 바라보며 물감이 번진 것 같다며 낄낄거리기도 했다.

참담했다.

더는 버틸 수가 없었다.

집으로 돌아가 부모님에게 하소연했지만, 부모님은 정말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현빈아. 우리 형편 잘 알잖니. 전학 가려면 이사도 가야 할 텐데, 그곳에서 머물 집은 무슨 돈으로 구하겠어? 그냥 좀 참을 수는 없겠니? 차라리 내가 선생님을 찾아뵐게. 찾아뵙고, 우리 현빈이 괴롭히지 말라고 단단히 말할게.”

“무슨 선생님이야-!”

빽- 소리를 지르고는.

방으로 돌아가 문을 쾅 닫아 버렸다.

선생님에게 고자질했다가 보복당한 친구를 봤기에, 부모님의 해결책이 적절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다. 세상이 빙글빙글 돌았다. 친구들은 새로운 학년이 시작되었다고 잔뜩 들떠 있었지만, 앞으로 이와 같은 생활을 2년이나 더 해야 한다는 사실에 성현빈은 눈앞이 막막했다.

확실한 사실은.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이라는 것이다.

자신이 가난하기에, 대항할 용기도 힘도 존재하지 않기에.

남들이 다 다니는 학업을 무사히 끝마치기 위해서는, 이 지옥 같은 현실을 꾸역꾸역 버텨 내야만 했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아침이 되자마자 성현빈은 화장실로 뛰어갔다.

“우웩, 우웩!”

학교에 가야 한다는 사실에.

성현빈은 한동안 화장실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그날부터.

그건 매일 반복되는, 성현빈의 일상으로 자리 잡았다.

* * *

멍한 얼굴로 학교에 나갔다.

희망이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일까.

매일 지옥이었다.

공부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셔틀로 자리 잡은 후부터 친구들은 애초에 잘 다가오지도 않았다.

생각해 보면 자신의 전성기는 유치원생이었던 것 같다.

그때는 동급생들의 폭력이 잔인하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기도 했고, 기생오라비처럼 잘생긴 외모에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호감을 샀다. 그리고 외모적인 이점은 고등학생이 되면서부터 치명적인 단점이 되었다. 잘생기지 않았다면, 외모에 열등감을 느끼는 한상진이 괴롭히지 않았을 테니까.

그때였다.

드르륵.

쾅!

거칠게 열리는 문소리.

성현빈의 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성현빈이 소속되어 있는 반에서, 본인의 존재감을 드러내며 들어올 사람은 단 한 명밖에 없었다.

한상진.

그가 나타났다.

아마도 의자에 대충 가방을 던지고는 자신에게 다가올 것이다.

일상적인 일인 것처럼 귀를 잡아당기고, 자신을 괴롭히는 재미로 하루를 시작할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문을 거칠게 열었을 뿐, 한상진은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뭐지?’

의아했다.

뒤를 돌아보진 못했다.

혹시라도 시선을 마주치면, 그 대가를 치러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불안에 떨며 수업을 준비하는데, 뒤에서 한상진이 친구와 떠드는 목소리가 들렸다.

“너 괜찮아?”

“……괜찮긴. 김현성, 그 새끼 개또라이라니까? 앞으로 학교에서 애들 괴롭히면 날 죽여 버리겠대.”

“자기가 뭔데?”

“그래, 씨발. 지가 뭔데 그러냐고. 그런데 그 말을 지키지 않을 수가 없어. 정해민같이 대산에서 먹어 주는 애들도 다 쓸렸는데 내가 뭐라고 개길 수 있겠냐? 들리는 소문으로는 걔한테 제대로 찍히면 팔이 부러지고 난리도 아니라던데, 학교 졸업하려면 조용히 버티는 수밖에.”

“염병. X 같네.”

눈을 부릅떴다.

대체 이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용기를 내서 슬그머니 시선을 돌렸다.

그제야 한상진의 모습이 보였다.

부어터진 얼굴.

시퍼렇게 물든 멍.

정상이 아니었다.

대화의 내용대로라면, 김현성이라고 불린 그 애한테 이렇게 당한 것 같았다.

순간.

“이런 씹.”

한상진과 시선이 마주쳤다.

한상진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고, 성현빈은 벼락이라도 맞은 듯이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다.

이제 자신은 뒤통수를 맞을 것이다.

주먹을 꽉 움켜쥐었는데,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걱정했던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제야 알았다.

한상진의 말이 진실이었음을.

이 학교에서 학교 폭력이 완전히 사라졌음을.

선생님과 같은 어른들이 아닌, 겨우 동급생인 친구 단 한 명으로 인해서.

그날을.

성현빈은 절대 잊을 수가 없었다.

* * *

성현빈이 말했다.

“넌 내가 누군지 모를 거야. 도와준 적도 없는 애가 갑작스럽게 찾아와서 고맙다고 말하니까, 너로서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겠지. 그런데 있잖아. 대산에는 나 같은 애들이 정말 많아.”

김현성은 알까?

SNS 페이지 파동.

김현성은 대산을 정벌하고 더는 그곳을 확인하지 않았지만, 해당 SNS 페이지는 소통의 장이 되었다.

[우리 학교는 김현성이랑 아무런 연관이 없거든? 다들 고만고만한 쓰레기들이라서 SNS 페이지에 찍힐 일도 없는데, 그날 이후로 사소한 괴롭힘도 조심하더라. 김현성이 말한 ‘처벌의 기준’이라는 게 명확하지 않잖아. 괜히 친구들을 괴롭히다가 정해민 꼴 날까 봐, 다들 조심하는 분위기야.]

[진짜 나는 이 현실이 믿기지 않아. 학교 폭력이 이렇게 단번에 사라지는 거였어? 이건, 내가 알던 세상이 아니잖아.]

[혹시 나랑 같이 김현성 찾아갈 사람 있냐? 내가 부끄러움도 많고 낯도 가려서 솔직히 혼자서 찾아갈 자신은 없는데, 김현성에게 꼭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거든. 날 괴롭히던 그 쓰레기 새끼. 그 새끼가 다리가 부러져서 목발을 짚고 학교에 나오는데, 진짜 너무 짜릿하더라.]

그들은.

새로운 현실에 감사했다.

학교 폭력이란 절대 뿌리 뽑을 수 없는 악의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신기루처럼 단번에 사라져 버렸다.

성현빈도 마찬가지였다.

감사한 마음에, 그는 용기를 냈다.

“다 네 덕분이야. 네가 쓰레기들을 쓸어버리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학교에 나간다는 생각에 숨이 막혔는데, 지금은 숨을 쉴 수가 있어. 더는 속에 있는 걸 게워 내지 않아도 학교에 나갈 수가 있다고. 그런데 어떻게 감사하지 않을 수가 있겠어. 이 모든 게 다 너로부터 비롯된 일인데. 그러니까, 네가 무엇을 의도했든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돼. 그냥 너로 인해 변한 이 상황에, 네가 만들어 낸 학교의 분위기에 진심으로 감사할 뿐이거든.”

“…….”

말문이 막혔다.

이정민과는 다른 임팩트였다.

이정민은 아는 사이다.

충분히 교류했고, 눈앞에서 직접 박민철 패거리라는 원흉을 뿌리 뽑아 주었다.

그런데 성현빈은 다르다.

이름도 모르고.

누군지도 모르는 사이.

하지만 자신을 찾아와 진심을 말했다.

싱그럽게 곡선을 그리는 눈에, 김현성은 더는 신경질적으로 반응하지 못했다.

“정말 고마워, 현성아.”

* * *

학교 정문을 빠져나왔다.

터덜터덜 걸음을 옮기며, 김현성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묘한 감정에 휩싸였다.

성현빈뿐만이 아니다.

길을 지나가다가 김현성을 알아보는 학생들은, 단 한 명도 예외 없이 따뜻한 눈길로 자신을 바라보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식물인간이 되기 전에 내게도 나와 같은 존재가 있었다면, 난 모르는 사이여도 찾아갔을까.’

아마도.

찾아갔을 것 같았다.

박민철 패거리를 해결해 주고 학교 폭력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에, 모르는 사이고 말고 찾아가서 고맙다고 백번이고 말할 자신이 있었다. 그때의 자신은 간절했다. 지옥 같은 시간을 끝맺을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던 자신에게, 감사하다는 말은 절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박민철.

정민호, 강창석, 조용택.

오혜지, 안홍진, 안홍렬, 정해민.

그들의 눈빛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자신을 바라보는 공포 섞인 눈빛은, 자신이 행하는 일이 분명한 악의임을 증명하는 결과물이었다.

악의는 악의를 낳기에.

스스로를 악이라 정립했다.

떳떳하지 못한 임을 알기에, 더러운 흙탕물에 주저 없이 발을 담갔다.

그런데 지금 보니 아니었다.

‘난 누군가는 해야만 하는 일을 할 뿐이야. 쓰레기들을 정리하는 청소부고, 내가 하는 일은 옳아.’

뒤틀린 정의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오늘로써 확신이 생겼다.

한 명의 쓰레기를 정리하면.

수많은 사람이 행복을 얻는다.

이름도 모를, 얼굴도 모를.

삶에 떳떳하지 못한 이들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행복한 일이었다.

이게 정녕 악일까?

아니다.

심판이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을 굳이 나서서 할 필요는 없지만, 김현성은 기꺼이 자신이 그 역할을 감당하기를 바랐다.

‘그게 내가 과거로 돌아온 존재 의미겠지.’

이젠 정말 끝이었다.

1년이 넘는 시간.

다사다난했던 수많은 사건.

드디어 대산에서의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 * *

마침내 겨울 방학이었다.

천일과는 완전히 끝이었다.

전학과 관련해서는 오대환 교장과 논의를 끝냈기에,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었을 때는 서울에 있을 것이다.

방학식을 마무리하고.

김영철이 따로 김현성을 불렀다.

“……현성아. 네가 천일을 떠난다는 말은 들었어. 넌 어딜 가서도 잘 해낼 놈이니까 걱정은 하지 않을게. 혹시라도 이 선생님의 도움이 필요하다면, 대산에 다시 돌아올 일이 있다면. 언제든 연락하렴. 우리가 비록 악연으로 시작되었지만 지금도 나쁜 관계는 아니잖아?”

걱정하는 듯 말하며.

은근히 김현성의 눈치를 살폈다.

그로서는 걱정스러운 것이다.

김현성은 김영철의 약점을 알고 있고, 한때는 파멸시키겠다고 경고까지 했었다.

혹시라도 천일을 떠나는 김에 문제를 일으킬까 봐, 현재 감정이 어떤지 확인하고자 툭툭 찔러 보았다.

김현성이 담담하게 반응했다.

“예, 선생님의 도움. 잊지 않을게요.”

“그래? 고맙다, 하하하핫.”

괜찮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김영철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는 알까?

김현성은 절대.

복수의 대상자로 지목한 사람들에게 안락한 삶을 허락할 생각이 없었다.

김영철과 같은 학교 관계자들은 고등학교 과정이 완전히 끝날 때까지 필요할 뿐, 언젠가는 이들에게도 박민철 패거리와 같은 미래가 들이닥칠 것이다. 그동안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이 행한 악의와 악행은, 언젠가는 자신이 아닌 쓰레기들을 비호할 게 분명할 테니까.

걸음을 돌렸다.

천일을 떠날 차례였다.

더는 미련을 두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최선아가 황급히 달려와 붙잡았다.

“잠깐. 시간 좀 내줄 수 있어?”

익숙한 광경이었다.

최선아는 이렇게 대화를 요청한 적이 있었다.

최선아 또한 악의에 물들었지만, 그때의 대화를 끝으로 따로 특별한 의도를 드러내지는 않았다.

“굳이 대화를 나눌 이유는 없을 것 같은데.”

“내가 시간을 내 달라는 게 아니야. 우리 아빠가 널 따로 보고 싶대.”

“네 아버지가?”

최선아의 아빠.

과거에는 고위 공무원이었으며, 지금은 학교 폭력 방지위원회의 회장으로 활동하는 인물.

최선아의 눈빛이 묘한 열망으로 일렁였다.

“앞으로 네가 하려는 일에 절대 손해가 되는 일은 아닐 거야. 그러니까, 날 믿고 시간을 내줘.”

왜일까.

최선아의 모습에서.

고창범을 만나러 찾아갔던, 자신의 옛 모습이 투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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