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惡의 등교-125화 (125/130)

24. 의도가 무엇이었든 (3)

자리를 옮겼다.

룸으로 된 한정식집이었다.

최선아의 아버지, 최승필은 반가운 기색으로 김현성을 바라보았다.

“선아가 말한 대로 참 훤칠하구나. 어서 앉아. 밥은 먹었고?”

“아직요.”

“미리 주문했으니까, 음식 나오면 먹으면서 얘기하지. 여기 정식 코스가 호불호도 없고 아주 좋거든.”

“……감사합니다.”

담담한 얼굴로 자리에 앉았다.

최승필.

정보가 그리 많지 않은 인물이었다.

애초에 최선아의 존재도 현생에서 인연을 맺었기에, 최승필이 자신을 찾아온 이유를 정확하게 특정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도 만남을 받아들인 이유는 하나였다. 최선아 또한 쓰레기들을 향한 악의를 지닌 인물이었기에, 그녀가 추진한 이 자리가 손해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금방 음식이 나왔다.

친구 아버지로서 물어볼 수 있는 가벼운 대화를 주고받다가, 음식이 바닥을 드러내고 차를 홀짝일 때부터 본격적인 이야기를 꺼냈다.

“내가 이렇게 만나자고 한 이유는 선아가 했던 이야기들이 너무 인상 깊었기 때문이야. 알다시피 내 아들은 학교 폭력에 희생되었고, 나는 나름대로 학교 폭력을 없애 보겠다고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어. 그런데 쉽지 않은 일이야. 학교에서의 이해관계, 미성년자라는 신분, 가해자가 혹시 권력자일 경우에 생기는 문제점 등등. 밑바닥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막막한 이 학교 폭력이라는 굴레를, 겨우 18살에 불과한 네가 뿌리를 뽑았다고 하니 흥미가 동할 수밖에 없었지.”

말없이 들었다.

최승필이 먼저 의도를 드러내도록, 충분한 시간을 두었다.

“정말 기쁘더라고. 내가 아닌 누군가가 이 일을 해낸다는 사실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지. 동시에 나는 참담한 기분을 감출 수가 없었어. 만약에 내 아들이 학교에 다니던 시절에, 너와 같은 친구가 존재했다면. 누군가가 학교 폭력이 잘못되었다고 목소리를 높여 주었다면. 내 아들은 안 죽지 않았을까.”

꽉.

찻잔을 쥔 손을 움켜쥐었다.

술이 필요했다.

아들이 죽고 일 년간은 폐인으로 살았지만, 복수를 마음먹으면서부터 금주를 하겠다고 다짐했다. 속에서 부글부글 끓는 감정을 삼켜 냈다. 그건 아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가해자들에 대한 분노이자, 그것을 막아 내지 못한 스스로에 대한 자기혐오였다.

씁쓸하게 웃었다.

“다 무의미한 말이지. 애초에 아버지로서 자식을 잘 챙겼다면, 내 아들은 그렇게 죽지 않았을 테니까.”

수년 전.

최승필은 과거의 기억을 떠올렸다.

* * *

최승필은 외교부 소속 고위 공무원이었다.

사람들은 고위 공무원이 상당한 부와 명예를 누린다고 생각하지만, 나랏밥을 먹고 사는 직업이 다 그렇듯 막중한 업무에 시달리는 직장인에 불과했다. 외교부 특성상 해외를 오갈 일도 많았고, 진급에 대한 열망이 강하다 보니 주 7일을 전부 업무에 쏟아부을 만큼 바쁜 나날을 보냈다.

와이프도 마찬가지였다.

사회적으로 능력을 인정받는 그녀도 일이 바빴고, 자연스럽게 두 자식의 일상을 세심하게 들여다보지 못했다.

그래서였다.

그래서, 아들이 보내는 시그널을 알아채지 못했다.

“너 성적이 이게 뭐야?”

그날의 분위기는 매우 험악했다.

최승필이 시험지를 들고 아들을 바라보았다.

부모의 똑똑한 머리를 물려받았는지 아들과 딸 모두 공부를 잘했는데, 항상 평균 90점을 웃돌던 아들의 시험 성적이 무려 10점이나 떨어졌다.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결과였다. 아들의 성적을 위해서 과외고 학원이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건만, 초라한 성적은 시험지를 붙잡고 있는 손이 부들부들 떨릴 만큼의 배신감을 부여했다.

“……죄송해요.”

“죄송하다면 다야? 대체 뭐가 부족해서 그래? 남들이 좋다는 과외고 학원이고 전부 보내 주는데, 시험 성적이 오르지는 못할망정 왜 떨어지냐고. 아들. 설마 아빠한테 반항하는 거야?”

“아니에요.”

아들이 고개를 푹 숙였다.

참 소심한 아이였다.

아빠고 엄마고 사회에서 목소리를 높이며 사는 사람들인데, 왜 이렇게 소심한지 이해할 수 없었다.

몽둥이는 들지 않았다.

육체적인 체벌로 아들을 벌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데.

“……아빠. 앞으로 공부 잘할 테니까 그냥 전학 가면 안 돼요?”

“전학은 왜?”

“…….”

대답이 없었다.

답답했다.

아들을 바라보며 최승필이 심각한 표정을 보였다.

“네 나이. 공부가 힘들다는 거 다 알아. 그런데 시험을 좀 못 봤다고, 학교생활이 어렵다고 무책임하게 전학을 가 버리면 앞으로 사회생활을 어떻게 하겠어? 그것도 다 필요한 시간이야. 어려움을 견뎌 내고 이겨 내야, 네가 성인이 되었을 때 진정으로 중요한 일을 할 수 있겠지. 나 때도 다 그랬어. 네가 최승필의 아들이라면, 이 아버지에게 부끄럽지 않은 모습을 보여 주란 말이야.”

그때는 몰랐다.

맞벌이의 자식들은 소심하게 자라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소심함은, 스스로의 목숨을 끊는 한계에 도달할 때까지도 쉽게 문제를 말하지 못한다는 것을.

너무 뒤늦게 알아 버렸다.

아들의 시그널을 알아채지 못했다.

그로부터 1년 뒤.

아들은 유서 한 장을 남기고 세상을 떠나 버렸다.

* * *

최승필이 말했다.

“난 아직도 그날을 잊을 수가 없어. 부모 속을 썩일까 봐 사고 한번 치지 않던 아들이, 갑작스럽게 전학을 말했다면 분명히 이유가 있었을 텐데 내가 왜 아들의 상황을 들여다보지 않았을까. 결국에는 가족과 잘 먹고 잘살려고 일을 하는 건데, 그때의 난 무엇을 위해 살았던 걸까.”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과거를 떠올릴 때면 몸에 마비가 오는 기분이었다.

“내가 일을 그만두고 대산으로 내려온 이유는 우리 선아만큼은 제대로 키우고, 학교 폭력으로 썩어 문드러진 학교를 바로잡기 위함이었어. 학교 폭력 방지위원회의 회장으로 활동하며 목소리를 높이면, 학교 폭력과 관련한 정책을 만들어 낸다면. 난 내 아들과 같은 피해자가 더는 생기지 않으리라고 생각했지. 그런데 아니었어. 선아가 해 준 이야기는 내 세상을 완전히 무너트렸어.”

시선이 마주쳤다.

익숙했다.

최선아의 눈빛에서 보이던 악의가, 더 강렬한 열망으로 최승필의 눈동자 속에서도 불타오르고 있었다.

“악의 뿌리를 뽑는 방법은 매우 간단했던 거야. 입으로 정책을 운운하는 것은 결국에 권력자들을 통제하지 못하지만, 감히 대항하지 못할 강력한 폭력은 그 무엇보다도 확실한 억제력을 발휘하지. 현성아. 네가 증명했듯 이 세상에는 ‘악’을 처벌할 몽둥이가 필요하단다. 잘못을 저질렀다면 권력자라고 한들 처벌받는다는 명확한 결과를 증명한다면, 대산에서 학교 폭력이 증발해 버린 것처럼 모든 가해자들이 감히 폭력을 사용하지 못하겠지. 사용한다고 한들 대가를 치르게 되겠지. 그러니까 너를 만나고 싶었단다. 네게, 앞으로 서울로 올라가서 너만의 무언가를 이루려는 네게 반드시 해 주고 싶은 말이 있었어.”

김현성의 전학.

일반적이지 않음을 알았다.

최선아도, 최승필도.

김현성이 서울로 향하는 이유가, 그동안의 행보를 보았을 때 ‘대산에서의 연장선’임을 알았다.

그래서 만나고자 했다.

그래서 김현성을 불렀다.

“앞으로 네가 서울에서 무슨 일을 하든, 그게 쓰레기 새끼들을 치워 버리는 일이라면. 권력자들이 너를 공격하는 상황에 너무 겁을 먹지 마라. 내가 네 편을 들어 주마. 권력자들이 경찰이든, 검찰이든, 학교 관계자들이든 끌고 와서 너를 끌어내리려 한다면. 나는 시민 단체들을 움직여서라도,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내 이름을 걸고서라도 네 정당함을 보증하마.”

악의로 번들거렸다.

선한 이미지의 아버지는, 곪을 대로 곪아 버린 아픔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김현성의 가족이 그랬듯.

남겨진 자들의 삶은 파탄이었다.

아들과 오빠가 죽음으로써, 최승필과 최선아는 나락으로 떨어져 잔인한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최승필이 재차 강조했다.

“그러니 부디 기억해 다오. 네 뒤에는 내가, 그리고 우리 같은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간절한 목소리였다.

김현성을 부추기는 것이기도 했다.

김현성은 기꺼이.

“오늘의 이 자리를 기억할게요.”

최승필의 예상이 맞다는 것을 증명하듯, 앞으로 벌어질 일을 부정하지 않았다.

* * *

밖으로 나왔다.

밖에는 최선아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조금은 홀가분해 보이는 얼굴로 김현성을 바라보았다.

“난 있잖아. 너와 대화를 나누고 내 현실을 알아 버렸어. 매일 잠자리에 들 때마다 오빠를 죽인 쓰레기들을 죽여 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반복하면서도, 걔들이 누구인지 분명히 알고 있는데도. 난 아무것도 하지 못했어. 네 말처럼 악의를 되돌려받는 상황을 감당할 자신이 없는 거겠지.”

“그건 잘못된 게 아니야.”

“그래, 잘못된 건 오빠를 괴롭힌 쓰레기 새끼들이지 복수할 용기가 없는 내가 아니야. 그런데 널 보면서 새로운 꿈이 생겼어. 가해자들이 그랬듯, 네 손에 권력이 있으니까 네가 뭔 짓을 하고 다니든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어. 진짜 보면서도 믿기지 않더라. 전교생이 보는 앞에서 신영민의 팔을 부러트려도, 애들이 카메라로 그 상황을 분명히 찍었는데도. 그걸 폭로한다고 해도 처벌받지 않을 거고 오히려 역풍이 분다는 사실을 알아서, 친구들이며 선생들까지 아무도 그 일을 문제 삼지 않았어. 그게 권력이라는 거겠지. 권력의 추악함이자 반드시 권력을 손에 쥐어야만 하는 이유겠지.”

하늘을 보았다.

옥상에서 뛰어내렸을 때.

오빠도 이와 같은 하늘을 바라보았을까.

“난 반드시 검사가 될 거야. 네가 힘을 쥐고 쓰레기들을 쓸어버린 것처럼, 나도 강력한 힘을 쥐고 내가 원하는 대로 살 수 있는 위치에 오를 거야. 이번에 시험을 정말 잘 보기도 했고.”

고개를 돌렸다.

싱긋, 웃었다.

“그러니까 절대 패배하지 마. 네가 내 희망이 되어 줘. 너를 생각하면서, 절대 포기하지 않고 나아갈 테니까.”

최선아의 선택.

김현성과는 달랐다.

김현성은 똑같은 폭력으로 복수한다면, 최선아는 다른 길을 택했다.

김현성이 마주 웃었다.

“그래, 좋은 방법이네.”

세상에는 여러 갈래의 길이 있다.

최선아와 자신은 방법이 다를 뿐.

지금, 이 순간.

김현성은 최선아가 나아가려는 길을 진심으로 응원했다.

* * *

새해가 밝았다.

밖에서는 눈이 펑펑 내렸다.

지하라서 눈이 소복이 쌓이는 광경을 직접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따뜻한 장판에서 올라오는 온기에 김현성은 조심스럽게 귀이개를 움직였다.

“아프진 않아?”

“우리 손주. 손길이 왜 이렇게 부드럽대. 예쁜 처자만 데려오면 곧바로 식을 올려도 되겠어.”

“결혼은 무슨 결혼이야. 나 이제 겨우 19살인데.”

할머니가 무릎에 누워, 노곤한 표정으로 눈을 감았다.

겨울 방학을 맞이하고.

김현성은 가족에게 집중했다.

할머니, 현진이와 맛있는 것도 먹고, 좋은 풍경도 구경하러 가고, 얼마 전에는 현진이와 양쪽에서 할머니 손을 꼭 붙잡고 살면서 처음으로 놀이공원에도 갔다. 할머니가 워낙 나이가 있다 보니 스릴 있는 놀이기구는 탈 수 없었지만, 회전목마 위에서 까르르 웃는 할머니의 소녀 같은 모습을 잊을 수가 없었다.

슥슥.

귀를 파냈다.

흰머리가 가득한 할머니의 머리를 내려다보자, 괜히 짠한 마음이 들었다.

“할머니도 다 늙었네. 오늘 염색이나 할래? 내가 제대로 해 줄게.”

“그 돈이면 손주들 치킨이나 하나 더 사 주고 말지. 자연스럽게 늙는 것도 복인 게야. 그걸 굳이 숨겨서 뭐 해.”

“왜. 요새 할머니들은 선글라스도 끼고 간지 나게 살던데.”

“예끼! 못 하는 말이 없어.”

소중한 시간이었다.

이 순간이.

너무나 행복했다.

과거로 돌아와서 가장 좋은 일이 뭐냐고 묻는다면, 쓰레기 같은 새끼들에게 복수를 할 수 있어서가 아니다.

가족들의 고통을 되돌려 놓아서.

그게 너무나도 기뻤다.

그때였다.

우웅.

핸드폰이 울렸다.

힐끗 확인하자, 화면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일주일 뒤에 보자. 이사 준비도 전부 끝마쳤으니, 내가 집까지 데려다줄게.]

고창범의 메시지였다.

이제는 정말.

대산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골든 서클의 본거지로 떠날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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