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惡의 등교-126화 (126/130)

25. 서울에 떨어진 핵폭탄 (1)

강남의 한 건물.

호화스럽게 꾸며 놓은 사무실 안에서, 정장을 빼입은 여성이 사모님들을 모셔 놓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1년, 딱 1년만 더 고생하시면 됩니다. 그동안 힘들게 지금의 성적을 만들어 놓았는데, 겨우 1년을 버티지 못하고 망쳐 버리면 투자한 돈과 시간이 너무 아깝잖아요.”

그녀는 강남 전문.

입시 코디네이터였다.

연봉이 십수 억에 달하는 그녀는, 강남 부유층 자식들의 ‘입시’를 전문적으로 도맡아 원하는 대학에 입학시켜 주는 일을 했다. 그녀가 입학시킨 한국대생만 수십 명. 명성에 이끌린 강남 사모님들은 기꺼이 돈다발을 내밀며 의뢰했고, 지금은 2년간 공들인 농사의 마지막 과정을 남겨 두었다.

또각또각, 걸음을 옮겼다.

반듯한 걸음걸이부터 빳빳한 고개와 흔들림 없는 눈빛이, 지켜보는 사모님들에게 신뢰를 부여했다.

“이 자리에 계신 대성 미래 고등학교의 어머님들께 앞으로의 플랜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마지막 과정을 위한 특별반을 개설할 예정입니다. 강남의 유명 강사님을 전문 강사로 초빙한 상태고, 봉사 활동과 교내 활동에서의 가산점, 그리고 각자 외부에서 반드시 수상해야 하는 대회들에 대한 일정도 알려 드리겠습니다. 마지막 남은 1년 일정이니만큼 확실하게 수행해 주셔야 합니다. 제가 아무리 좋은 플랜을 제시해도, 잘 따라주지 않으면 무용지물에 불과하니까요.”

대답은 없었다.

다들 도도하게.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녀들은 입시 코디네이터의 설명대로 ‘강남에 있는 대성 미래 고등학교’의 학부모들이었고, 이미 2년간의 성과로 상당한 신뢰가 쌓인 상태였다. 우수한 성적과 내신. 입시 코디네이터는 수능과 수시라는 두 갈래의 길을 모두 파 놓은 상태에서, 가장 이상적인 결과를 만들어 낼 로드맵을 그렸다.

사실 수능 대박을 터트린다면.

이런 번거로운 과정 없이 한국대에 입학할 수 있겠지만, 입시 코디네이터의 원칙은 가능하다면 가장 안전한 방법으로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동안 켜켜이 쌓아 두었던 스펙으로 ‘수시’라는 문턱을 넘을 수 있다면, 이 학부모들의 자식은 수능 날 편안한 마음으로 하루를 보낼 것이다.

확실한 건.

명문대 입학.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바라는 공통된 목표였다.

“명심하세요. 앞으로의 1년이, 자식들의 인생을 결정짓는다는 사실을요. 그럼 이만 마무리를…….”

똑똑.

“……잠깐 들어가겠습니다.”

사무직 여성이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순간적으로 입시 코디네이터가 짜증 섞인 눈빛을 보였다.

절대 설명 중에는 들어오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는데, 대체 무슨 용건이냐는 듯한 눈빛이었다.

그러자.

사무직 여성이 다가오더니 귓속말로 무언가를 말했다.

처음에는 별일 아니면 한 소리를 하려던 입시 코디네이터의 표정이, 귓속말을 들으며 점점 굳어 갔다.

귓속말이 끝나고 사무직 여성은 곧바로 나갔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대체 무슨 일이냐는 듯한.

얼른 들은 바를 말하라는 사모님들의 눈빛에, 입시 코디네이터가 상당히 곤혹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이거 좀 많이 곤란한 상황이 벌어졌는데요?”

* * *

대성 미래 고등학교.

아직 방학이라 한가한 그곳에, 시끄러운 구두 소리가 복도 전체로 퍼져 나갔다.

또각또각.

또각또각.

일단의 무리였다.

온갖 명품으로 휘감은, 누가 봐도 강남 사모님들이라는 느낌을 뿜뿜 뿜어내는 여성들이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상당히 신경질이 난 걸음걸이였다. 조금 전 입시 코디네이터에게 들은 한 가지 정보로 인해, 그녀들은 곧바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더니 기사를 불러 학교로 향했다.

드르륵.

쾅!

교장실 문을 거칠게 열었다.

익숙한 얼굴이 보이자, 대표로 보이는 여성이 소리를 빽 질렀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에요!”

“어머님. 일단 진정하시고…….”

“아니, 이게 진정할 일이에요? 여보세요, 교장 선생님. 우리 애들 나이가 19살이에요. 곧 대학 입시를 앞둔 고등학교 3학년!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해야 할 시기인데, 뭐? 전국 모의고사에서 1등 하던 애가 갑작스럽게 이 학교로 전학을 온다고요? 지금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전학이라는 게 그리 쉬운 일도 아니고, 등수 한 단계 한 단계가 예민한 이 명문 학교에서 그런 말도 안 되는 처사를 우리가 받아들이리라고 생각하시냐고요.”

“맞아요.”

“설명 좀 해 보세요, 교장 선생님!”

조금 전.

입시 코디네이터가 받은 정보는 충격적이었다.

최근 2년간 전국 모의고사를 진행했다 하면 무조건 1등을 차지하는 학생이 있는데, 그가 갑작스럽게 대성 미래 고등학교로 전학을 온다는 정보였다. 정말 이례적인 일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의 전학은 절차상으로도 절대 쉬운 문제가 아니기도 했지만, 강남에 있는 학교들은 더더욱 그런 문제를 허락할 리가 없었다. 밑에서 깔아 주는 성적이면 몰라도, 전국 1등의 전학은 그 학생 한 명으로 인해 모두의 등수가 한 단계씩 밀린다는 의미였다.

발칵 뒤집혔다.

사모님들이 다급하게 학교를 찾아올 수밖에 없었다.

대성 미래 고등학교의 교장.

안익수가 황급히 말했다.

“그, 그게 상황이 그렇게 됐습니다. 이미 결정된 사항이다 보니 저로서는 어쩔 수가 없는…….”

“설마 그냥 받아 주겠다는 말씀이세요?”

학부모 대표.

병원장 사모님인 조혜주의 인상이 확 일그러졌다.

“지금부터 생각 잘하고 말 내뱉으세요. 교장 선생님도 잘 아시잖아요. 저희 애들이 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저희가 ‘학부모 대표’로서 어떤 일을 해 왔는지를. 대성 미래 고등학교의 여러 문제를 해결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교장 선생님의 개인적인 문제도 처리해 준 것으로 분명히 기억하는데요. 그냥이라는 변명으로 넘어갈 생각이라면 저희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겠죠.”

“……그렇죠. 옳은 말씀이십니다.”

안익수가 곤란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학부모들의 반응?

충분히 이해했다.

그동안 이 학교에 투자한 게 얼마인데, 자식들의 걸림돌이 될지도 모르는 학생의 전학을 어떻게 받아들이겠는가. 그것도 정상적인 상황이 아닌데 말이다. 그동안 받은 것을 생각한다면 안익수는 당연히 합당한 태도를 보여야겠지만, 그로서는 그렇게 행동할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그 일은.

지금으로부터 한 달 전에 있었다.

* * *

슥.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십수 장의 자료.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기분이었다.

안익수가 파르르 떨리는 눈빛으로 상대를 바라보자, 가면을 쓴 듯한 차가운 인상의 사내가 말했다.

“보시다시피 교장 선생님이 그동안 대성 미래 고등학교를 운영하시면서 저지른 비리에 관련한 자료입니다. 발뺌할 생각은 하지 마십시오. 지금 보여 드린 것 말고도 비리를 증명할 충분한 자료를 갖춘 상태고, 이건 단순히 퇴직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라 형사 처벌도 받으셔야 할 겁니다.”

사내의 정체.

고창범의 심부름꾼이었다.

김현성의 부탁으로 인해, 그는 이 자리에 나타났다.

“그리고 이것도 확인하시죠.”

슥.

다른 자료를 꺼냈다.

이번에는 사진이었다.

“평소에 강남의 모 술집을 자주 이용하시더군요. 그 돈이 학부모들 주머니에서 나왔다는 걸 설명하는 건 입만 아픈 사실이고, 문제는 단순히 술만 먹고 끝나지 않았다는 겁니다. 교육자라는 사람이 이렇게 뻔질나게 2차를 나가도 되는 겁니까? 그것도 가정도 있으신 분이. 그리고 가장 재밌는 사실은 바로 이 사진입니다.”

툭툭.

한 사진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안익수는 본능적으로 그 의미를 알았다.

“얘. 미성년자입니다. 술집에서야 그 사실을 속이고 내보냈겠지만, 그리고 교장 선생님도 그 사실을 모르는 것 같지만. 그렇다고 얘가 미성년자라는 사실이 달라지는 건 아닙니다. 이 사실들을 전부 폭로하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교장 선생님이라는 사람이 비리를 저지르고 술집을 드나들며 미성년자와 2차까지 나갔다? 참 재밌는 일이 벌어질 것 같지 않나요.”

“대체, 대체 제게 원하는 게 뭡니까?!”

간절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이미 목줄이 붙잡혔다.

증거 자료를 제시한 순간부터, 안익수는 눈앞의 상대로부터 절대적인 을일 수밖에 없었다.

사내가 피식, 웃었다.

쓰레기들이 이래서 좋았다.

문제를 들쑤시면 그것에 대한 속죄와 사죄가 아닌, 곧바로 ‘거래’를 통해 진실을 묻으려고 했다.

그게 일상인 사람들이었다.

사내가 말했다.

“그냥 일 하나만 해 주시면 됩니다. 학생 하나가 그쪽 학교로 전학 갈 예정입니다. 기존 학교에서의 행정적인 문제는 저희 쪽에서 알아서 처리할 거고, 교장 선생님은 그냥 받아 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물론 그로 인한 문제들은 알고 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이, 그것도 성적이 뛰어난 학생이 갑작스럽게 전학을 온다면 학부모들이 한바탕 난리를 피우겠지만, 뭐 어쩌겠습니까. 그것보다 교장 선생님의 인생이 더 소중할 텐데.”

“……그, 그건 교장이라고 해도 함부로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강남 학교에서 학부모들의 압력은 생각하는 것 이상입니다.”

“예, 예, 그러시겠죠.”

심부름꾼을 하며 사내는 수많은 일을 했다.

그런데 단언컨대.

이건 그조차도 경험해 보지 못한, 돌아가는 판도가 신기할 정도로 재밌는 일이었다.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교장 선생님만 굳건하다면, 저희가 같이 도와드리겠습니다.”

* * *

안익수가 힐끗, 시계를 살폈다.

아직 5분도 지나지 않았다.

학부모들의 연락을 받자마자 ‘그’에게 연락했는데, 언제 도착할지 몰라 초조한 마음이 들었다.

일단은.

시간을 벌어야 했다.

안익수가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말했다.

“저야 당연히 이번 전학을 무마시키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행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는 일을 대체 어떻게 막을 수가 있겠습니까? 해당 학생이 전교 1등의 우등생이라는 사실을 떠나, 인근으로 주소지를 이전하고 적법한 절차를 거치면서 저희로서는 받아 주어야만 하는 상황입니다. 만약 전학을 받아 주지 않는다면, 오히려 저희가 문제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건 교장 선생님 사정이고요. 그로 인해 저희가 받을 피해는요? 그건 대체 어떻게 보상할 건데요?”

“어머님. 너무 감정적으로 나오지 마시고 이성적으로 생각하십시오. 우긴다고 될 문제가 아니지 않습니까?”

“뭐? 우겨요?”

“교장 선생님 참 웃긴 사람이었네!”

그야말로 개판이었다.

전학을 받아들여야 하는 입장.

전학을 막아야만 하는 입장.

대화가 통할 리가 없었다.

조혜주가 바락바락 소리를 질렀다.

“그동안 교장 선생님이 참 상식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제가 아주 큰 착각을 했나 보네요. 상식은 말이에요. 상식적으로 일을 처리하기 때문에 상식적인 게 아니에요. 돈을 받아 처먹었으면, 충분한 대가를 받았으면. 그에 합당한 일을 처리하는 사람이 바로 상식적인 사람이에요. 이번 일. 공론화할 겁니다. 사람들에게 알려서, 교장 선생님이 얼마나 큰 실수를 저질렀는지 똑똑히 보여 드릴게요.”

“어머님! 제발 진정을…….”

“야, 이 새끼야! 지금 내가 진정하게 생겼어? 너 하나 때문에 우리 애들 인생에 걸림돌이 생길지도 모르는데?”

팍!

가방을 바닥에 내던졌다.

수천만 원 하는 가방을 아무렇지도 않게 던지는 그 행동이, 안익수로서는 서늘한 경고로 다가왔다.

이래서였다.

이래서 심부름꾼의 제안이 곤혹스러웠다.

안익수의 목줄을 틀어쥔 사람은 그만이 아니었다.

눈앞의 사모님들.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어찌할 바를 몰라 안절부절못하는 그때, 갑작스럽게 교장실로 또 다른 무리가 들어왔다.

“아, 오셨군요!”

안익수의 표정이 밝아졌다.

불가능한 계획.

어려움이 많을 수밖에 없는 이 계획.

곤란하다는 반응을 보이던 안익수가 결국에 제안을 받아들인 이유는, 바로 심부름꾼이 말한 지원군의 정체 때문이었다.

또각또각.

안으로 들어오는 한 여성.

그리고 뒤를 따르는 여성들.

시끄러운 구두 소리에 조혜주와 사모님들이 고개를 돌리자, 선두로 들어온 여성이 자연스럽게 그녀들의 시선을 받아쳤다.

“다들 오랜만이네요?”

“……민우 어머니?”

모두가 그녀를 알아보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최근 강남 최대 맘카페로 급성장한 스카이맘 카페.

그곳의 운영자인 이미소.

그녀가, 자신의 회원들을 대동하고 이곳에 모습을 드러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