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惡의 등교-127화 (127/130)

25. 서울에 떨어진 핵폭탄 (2)

지난 1년.

이미소는 어떻게 지냈을까?

“사모님, 도착했습니다.”

“고생했어요.”

기사가 거대한 대저택 앞에 차를 세웠다.

이곳은 강남에서도 알아주는 부촌이니만큼, 주변에는 상업 시설 하나 없이 영화에서나 볼 법한 으리으리한 집들이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높디높은 담벼락과 외부인의 침입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이 반짝이는 CCTV들. 이미소의 집안도 못사는 편은 아니지만, 항상 이곳에 찾아올 때면 심장이 쿵쾅거리는 걸 느꼈다.

걸음을 옮겼다.

평소와는 다른, 안정된 얼굴로 벨을 눌렀다.

띵동.

“어머니, 저예요.”

[우리 이쁜 며느리 왔구나!]

탈칵.

곧바로 문이 열렸다.

주름이 자글자글한, 하지만 누가 봐도 곱게 늙었다고 생각되는 할머니가 밝은 얼굴로 반겨 주었다.

이미소의 시어머니였다.

불과 1년 전만 하더라도, 시어머니는 이미소를 볼 때마다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민우는 요새 잘 지내고?”

“동철이가 말이야. 민우 나이 때, 주변에서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대단한 천재였단다. 민우가 그 정도 수준은 아니더라도, 동철이 이름에 먹칠하지는 않아야 하지 않겠니?”

“이러다 민우, 명문대는 들어갈 수 있고?”

그놈의 성적.

그게 문제였다.

이미소의 남편이자 이 집안의 자랑인 강동철은, 어릴 때부터 엘리트 코스를 밟은 대단한 천재였다. 천재들 사이에서도 천재라고 불렸던 인물. 그런 사람과 결혼하다 보니, 시어머니는 항상 높은 잣대를 들이밀었다.

그로 인해 시댁을 찾을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았다.

강민우는 기대치를 전혀 충족하지 못했고, 이미소는 늘 시어머니의 따가운 눈총을 받아야 했다.

지금은 달랐다.

시어머니의 반색하는 얼굴이, 최근 강민우의 성적을 증명했다.

“요새 몸은? 얼굴이 왜 이렇게 반쪽이야?”

“어머니, 말도 마세요. 최근에 민우 뒷바라지한다고 정신이 없다니까요. 고등학생 엄마들은 웬만한 수험생보다 바쁘다더니, 그게 다 맞는 말이었어요. 어머니는 몸 불편한 곳 없으세요?”

“나야 팔팔하지. 그나저나 전화 한 통 해야겠다. 내가 자주 찾는 한의원이 있는데, 우리 며느리 보약이라도 한 재 지어야지.”

시어머니가 총총 전화기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뭐랄까.

감정이 벅차오르는 기분이었다.

시어머니는 눈치를 주는 정도였지만, 강남 바닥에서는 강동철의 자식이 이렇게까지 공부를 못하는 것은 이미소의 피가 문제라는 말도 있었다. 떠들어 대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말도 안 되는 헛소리였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이미소는 주변의 소문에서 신경을 뗄 수가 없었다.

‘정말 신기하다니까. 어떻게 과외 선생님을 바꾼 것만으로, 성적이 이렇게 급격하게 향상될 수 있지?’

유명한 강사도 아니다.

똑같은 고등학생.

김현성으로 인해, 강민우의 성적은 그야말로 가파르게 상승했다.

덕분에 강남 학원가에서의 평판도, 시댁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도 단번에 바뀌었다.

이미소는 전화를 거는 시어머니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김현성은.

단언컨대, 하늘이 내려 준 선물이었다.

* * *

급격한 변화는 소문을 낳았다.

처음에는 이미소를 깎아내리던 사람들이, 강민우의 급격한 성장에는 ‘이유’가 있다고 떠들었다.

“확실히 뭔가 있다니까. 강민우, 걔가 원래 그렇게 공부를 잘하는 애가 아니야. 이미소가 이 선생, 저 선생 다 붙여 가면서 노력했는데도 성적이 오르지 않던 애가, 갑작스럽게 성적이 이렇게 올라가는 게 말이 돼? 분명히 뭔가 있어. 스카이 맘카페를 운영하면서 뭔가 알아낸 게 분명해.”

“맞아요. 그 이미소랑 같이 다니는 회원들 있잖아요. 그 회원들 자식들도 하나같이 성적이 올랐다니까요?”

단순 근거 없는 소문이 아니었다.

강남 어머니들은 주변 성적에 매우 예민했고, 이미소 무리가 갑작스럽게 반등하는 모습은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단순히 실력 향상의 영역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이유 없는 결과는 존재하지 않기에, 이미소 무리의 성적을 끌어올린 ‘무언가’가 있다는 소문이 빠르게 퍼졌다.

사람들의 반응.

이미소는 입을 다물 생각이었다.

이렇게 좋은 과외를, 남들과 나눌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런데 그 무렵.

김현성과 이런 통화를 나누었다.

[부탁드릴 게 있어요. 제가 가르친 내용의 ‘일부’를 공유해서 카페의 규모를 키워 주세요. 사람들이 저의 존재를 특정하지는 못할 만큼, 그렇지만 수험생을 둔 어머니들이라면 스카이 맘카페를 찾을 수밖에 없도록. 그렇게 카페가 성장하면 나중에 따로 저를 위해 해 주실 일이 있어요. 혹시라도 민우와 관련해서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민우와 애들 말고는 절대 따로 과외를 맡을 생각이 없고, 과외 내용을 공유한다고 한들 겨우 일부만으로는 민우와 같은 효과를 누리지 못할 거예요.]

이미소에게 있어.

김현성은 신이었다.

자신의 삶을 바꿔 준 신인데, 그 부탁을 어떻게 거절하겠는가.

냉큼 받아들였다.

그때부터였다.

이미소는 강남 어머니들 사이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면서, 사실 민우의 성적이 올라간 데는 특별한 비결이 존재한다고 떠들었다. 그 비결은 스카이 맘카페. 그것도 VVIP들에게만 일부 공유할 수 있는 사실이라고 퍼트렸다.

그날.

카페는 역대 최고 접속 인원을 찍었다.

스카이 맘카페는 애초부터 강남에서 매우 유명했는데, 접속자가 상상 이상으로 몰려들면서 엄청난 관심을 받았다. 강남뿐만 아니라 머나먼 지방의 학부모들도. 스카이 맘카페에 성적 향상의 비결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서는, 거금을 들여서라도 어떻게든 VVIP 권한을 확보하려 했다.

만약 결과 없는 소문이었다면.

단순 해프닝으로 마무리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일부 바늘구멍을 뚫은 사람들이, 이미소가 공유한 정보로 성적이 향상되면서 얘기가 달라졌다. 소문이 진짜였다. 천 명의 사람 중 단 한 명이 그 효과를 보더라도, 한 명의 결과에 이끌린 사람들이 바글바글하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이미소와 친해지기 위해 아첨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그건 카페를 넘어서 현실에도 영향을 미쳤다.

어느 날.

강동철이 물었다.

“여보, 뭐 하고 다녀?”

“왜?”

“아니, 요새 들어서 내 건강을 챙기겠다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강남 최대 규모.

스카이 맘카페의 운영자.

그건 이제, 강남 학원가에서는 절대적인 권력을 휘두르는 엄청난 명함이 되었다.

* * *

그리고 현재.

시선이 집중되었다.

이미소!

그녀가 왜 이곳에 나타난단 말인가.

그녀가 끌고 다니는 무리 중에는 대성 미래 고등학교의 학생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강민우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 다들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눈만 깜빡이며 이곳에 왜 나타났냐는 눈빛을 보내자, 이미소가 여유로운 얼굴로 말했다.

“다들 너무하신 거 아니에요? 단순히 전학생의 성적이 뛰어나단 이유만으로, 이렇게 들개처럼 몰려들어서 교장 선생님을 협박하다니요. 같은 학부모로서 이 상황이 조금 불편하네요.”

싱긋, 웃었다.

웬만해서는 물러나겠으나.

이번만큼은 대성 미래의 어머니들로서도 허용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조혜주가 나섰다.

“……저희 학교 일이에요. 민우 어머니께서는 한발 물러나 주시죠.”

“어머나? 그 말은 앞으로 모든 일에서 한발 물러 달라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될까요? 예를 들자면, 그동안 공유해 드렸던 ‘정보’를 더는 제공하지 않는다든지요.”

“아니, 그건 좀!”

“그건 좀 뭐요. 곧 전학 오는 현성이라는 학생 말이에요. 걔가 공부를 워낙 잘해서 무슨 문제가 발생하는지는 잘 알지만, 민우가 평소에 알고 지내는 친구라서요. 어미 된 입장에서 아들의 친구가 잘못되는 걸 어떻게 방관하겠어요. 그러니까, 여기 계신 어머니들은 태도를 똑바로 결정하시면 돼요. 계속해서 목소리를 높이는 건 상관없겠지만, 그 태도는 저와 척을 진다는 의미로 받아들일게요.”

“…….”

그 말에.

다들 말을 잃었다.

조혜주도 입만 달싹거릴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녀들이 난리를 피우는 이유.

모두 자식 때문이다.

자식을 좋은 대학에 보내겠다고 이 난리를 피우는 건데, 가장 중요한 인물인 이미소와 척을 지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는가. 한 단계 순위를 확보하겠다고. 미래의 상승 요소를 제거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어머니들은 눈치가 없지 않았다.

서로 슬그머니 눈빛을 주고받더니, 조혜주가 나서기도 전에 뒤에 있던 한 어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쯤에서 그만하시죠. 저도 좀 불편하기는 했어요.”

“예, 저도요.”

조혜주가 고개를 홱 돌렸다.

‘이년들이?!’

선수를 빼앗겼다.

항의할 여지도.

이미소에게 잘 보일 기회도.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대세는 넘어간 것을.

조혜주는 눈가를 파르르 떨며, 애써 웃음을 보였다.

“……그래요. 민우 어머니께서 이렇게까지 말씀하시는데, 민우 어머니 얼굴을 봐서라도 더는 문제 삼지 않을게요.”

* * *

한창 난리가 난 그 시각.

김현성은 강남의 한 오피스텔에 있었다.

대성 미래 고등학교가 도보 5분 거리에 있는, 지하철 입구는 그보다도 가까운 고급 오피스텔이었다. 월세만 수백만 원에 달하는 곳을 고창범이 구해 주었고, 김현성은 입을 옷과 학업에 필요한 것들만 간단하게 챙겨서 이사를 왔다. 이 오피스텔의 경우 풀옵션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고창범은 김현성에게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가전이나 가구 같은 것들을 이미 모두 갖춰 두었다.

거대한 TV.

최근 유행하는 냉장고와 최신식 컴퓨터 등.

그리 필요하지 않은 것들이었지만, 김현성은 굳이 호의를 거절하지 않았다.

숨을 돌렸다.

창문 밖으로 강남대로를 내려다보며 생각에 잠겨 있는 그때, 이미소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이렇게 처리했어요. 적어도 학부모들이 현성 씨 전학 문제로 난리 피울 일은 없을 거예요.]

“감사해요. 이 은혜 잊지 않을게요.”

[에이, 뭘요. 서로 상부상조하는 관계인데 이 정도로 은혜를 운운하면 제가 낯부끄럽잖아요. 그동안 받은 게 얼만데. 저는 우리 과외 선생님이 민우를 앞으로 계속 봐주시는 것만으로도, 이 이상 어떤 일이든 기꺼이 해 드릴 수 있어요. 그러니 너무 부담 갖지 마세요. 저로서는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니까요.]

말만이라도 고마운 이야기였다.

이미소와 시시콜콜한 안부를 주고받고는, 전화를 끊고 다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이제 시작인 건가.’

자신의 전학.

겨우 이미소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강남의 수많은 학교 중에 굳이 대성 미래 고등학교를 고른 이유는, 이곳이 골든 서클이 활발하게 활동하는 문제가 많은 학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국 1등이 갑작스럽게 전학을 온다면? 과연 기존에 골든 서클과 관계를 맺어 왔던 학생들이, 김현성의 존재를 가만히 두려고 할까?

절대 그렇지 않다.

이미소를 신경 쓸 필요도 없는 문제다.

의뢰인의 정체는 철저하게 비밀이기에, 의뢰 한 번에 대인관계를 고려하지 않고 자신을 처리할 수 있다.

누구의 의뢰인지 알아낼 방법은 없었다.

참 간편한 방식이었다.

권력자들은.

힘이 있는 사람들은.

자식들을 위해, 책임 없는 이 시스템을 충분히 누릴 수 있었다.

‘정찬수로부터 확인한 정보에 의하면 대성 미래 고등학교에서는 지금도 의뢰가 이루어지고 있어. 그것도 동시다발적으로. 그런 상황에 나 하나를 추가하는 건 아무것도 아닌 일이겠지. 그리고 대산에서는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했던 내 배경도, 이곳에서는 큰 의미를 발휘하지 못할 테고.’

생각을 거듭할수록.

심연(深淵)에 빠져드는 기분이었다.

겁이 나지는 않았다.

오히려 흥분되었다.

이 순간을 얼마나 많이 되새겼던가.

겨우 상상에 불과하다고는 하나, 이미 수도 없이 강남대로를 내려다보는 이 순간에 존재해 왔다.

눈을 지그시 감았다.

상상에.

현실에 빠져들었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김현성은 오피스텔에서 지내는 동안, 괜한 외출은 삼가며 거대한 보드판에 그동안의 계획을 되새겼다. 혹시 실수는 없는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꼼꼼하게 기록하며 조금의 허점도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정찬수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예상대로야. 골든 서클에 ‘널’ 처리해 달라는 의뢰가 들어왔어.]

꽉.

주먹을 움켜쥐었다.

역시나였다.

세상은 여전히 썩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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