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서울에 떨어진 핵폭탄 (3)
교장실에서의 사건 이후.
조혜주는 밤잠을 설쳤다.
억지로 눈을 감으면, 자신을 깔보는 듯한 이미소의 눈빛이 떠올랐다.
벌떡.
“아오!”
“여보, 무슨 일이야?”
남편이 화들짝 놀랐다.
방금까지 자고 있었던 그는, 부스스한 얼굴로 조혜주를 올려다보았다.
“……아니야. 그냥 계속 자.”
조혜주는 그대로 침실을 빠져나왔다.
베란다로 나가, 담배를 물었다.
“후-.”
결혼 이후.
본인의 이미지를 생각해 담배를 끊었다.
예전에는 하루에 두 갑도 피우던 골초였기에 쉽지 않은 일이었/고,(다. 그러나)/ 오늘처럼 답답할 때는 조금이라도 담배 연기를 빨아들여야 했다. 폐부 깊숙이 파고드는 연기에 그제야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조금 전만 하더라도, 이미소로 가득 차오르는 머릿속에 정말 폭발할 것만 같았다.
“썅년들. 난 이제 필요 없다 이거지?”
더욱 열 받는 건.
자신을 따르던 무리의 태도였다.
그 사건 이후로, 그녀들은 이미소에게 콩고물이라도 얻어 보려고 이미소를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자주 가던 카페에서 그녀들을 만날 때면.
당황한 얼굴로 눈인사를 하고는 쪼르르 이미소의 뒤꽁무니를 따라가는 모습에, 조혜주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한 1년 전만 하더라도 이미소 무리는 자신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조혜주는 나름대로 강력한 권력을 행사했는데, 스카이 맘카페의 위상이 상승하면서 완전히 바뀌었다.
모두가.
이미소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했다.
분명히 이미소보다 잘나가는 집안들이 있는데도, 자식 문제에서만큼은 을일 수밖에 없었다.
“너, 사람 잘못 건드렸어.”
찌직.
담배를 꺼트렸다.
새로운 담배를 물었다.
이미소는 툭툭 먹이를 던지듯 자신에게도 혜택을 부여했지만, 겨우 그것만으로는 부글거리는 속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 이건 자존심의 문제였다. 김현성이 전학을 와서 학교의 판도를 바꾸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지만, 앞으로의 1년을 잘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끌려다닐 수만은 없었다.
그렇다고 대놓고 적대한다?
그것도 멍청한 짓이다.
앞에서는 웃는 얼굴을 보여야, 불똥이 튀지 않을 터.
핸드폰을 열었다.
그러고는 연락처를 쭉 내려보았다.
[박형준]
수년 전.
아주 은밀한 거래를 맺었던 관계.
시간은 새벽대였으나, 상대가 잠들어 있든 말든.
조혜주가 문자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 * *
강남 대도로변.
한눈에 다 들어오지도 않을 정도로 수많은 사람이 오가는 그 길거리에는, 고개를 뒤로 꺾어도 끝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건물이 하나 있었다. 사람들은 그 건물의 이름을 모르지 않았다. 대한민국 재계 서열 3위에, 명실상부 모두가 인정하는 대기업인 ‘태양 그룹’의 본사였다.
태양전자.
태양자동차.
태양생명 등.
그들의 이름을 내세운 여러 기업이 존재했다.
대한민국 취준생들에게 설문 조사한 결과, 재계 서열처럼 취업하고 싶은 기업 세 손가락 안에는 반드시 들어가는 기업이었다. 대기업에 걸맞은 복지와 급여. 그렇게 바늘구멍을 뚫고 태양 그룹에 들어간 사람들은, 오늘도 어김없이 정신없는 나날을 보냈다.
적막한 사무실 안.
그곳에는 키보드 소리만이 시끄럽게 울려 퍼졌다.
타닥.
타다닥.
사람들은 말한다.
대기업은 모두의 꿈이라고.
하지만 막상 들어간 그곳은 똑같은 회사에 불과했고, 높은 급여만큼이나 강도 높은 업무량도 감당해야만 했다.
그때였다.
밖에서 분주한 소리가 들렸다.
“이사님, 들어오신다!”
나이를 지긋이 먹은 부장이 달려와 소리치자, 직원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윽고.
일단의 무리가 나타났다.
다들 고개를 숙이자, 선두에서 걸음을 옮기는 사내가 손을 들어 올렸다.
“업무 계속 보세요.”
사내가 싱긋, 웃었다.
나이는 30대 중반 정도 됐을까.
멋들어지게 넘긴 올백의 머리에 깔끔한 인상, 웃을 때는 곡선을 그리며 사라지는 눈은 한눈에 보아도 호감이 가는 외모였다. 복장도 매우 깔끔했다. 매일 아침 다림질을 하는지 칼이 잡힌 정장과 순백의 셔츠는, 먼발치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이 그 존재를 우러러볼 수밖에 없게 했다.
사내가 지나가자.
하나둘 자리에 앉았다.
여사원들은 얼굴을 붉히며 떠들었다.
“……진짜 개존잘.”
“매일 볼 때마다 놀란다니까. 어떻게 재벌 후계자란 사람 외모가 저럴 수가 있지? 성격은 또 어떻고. 나 진짜 이사님한테 시집갈 수 있다면, 시집살이가 아무리 지옥 같아도 견딜 수 있을 것 같아.”
“나도나도.”
“미친년들. 너희가 되겠냐? 이사님 꼬시려는 재벌집 여식들만 한 트럭일 텐데.”
사내의 정체.
태양 그룹의 후계자인 윤현민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전국 1등을 밥 먹듯이 했고, 수능 만점으로 한국대에 입학. 그야말로 태양 그룹의 자랑으로 성장한 그는 당연하다는 듯이 후계자 자리를 물려받았다. 애초에 태양 그룹 회장인 윤진모 회장에게 다른 자식이 없는 것도 있지만, 사람들이 하나뿐인 자식이 열 자식 부럽지 않다고 말할 정도로 윤현민이 번듯하게 큰 덕이었다.
대학교 졸업 후 곧바로 태양 그룹에 입사.
처음에는 신분을 밝히지 않았건만, 윤현민은 엄청난 성과로 승승장구하면서 본인의 실력을 증명했다.
그 결과.
30대 중반이라는 이른 나이에 사내이사로 진급했다.
단순 후계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이루어 낸 성과에 모두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오죽했으면.
후계자 타이틀을 떼고도 최연소 임원으로 올라갈 실력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윤현민은 곧바로 사무실로 걸음을 옮겼다.
비서만을 대동했고, 문이 닫히자 직원들은 그제야 시선을 거두고는 자신들이 할 업무에 집중했다.
그렇게 둘만 남은 공간.
윤현민의 표정이 싹 바뀌었다.
웃을 때는 참 좋았던 인상이, 정색하는 순간 차갑게 변했다.
“다시 말해 봐. 그래서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이라고?”
* * *
탁.
의자에 앉았다.
의자를 돌리더니, 윤현민이 책상 위에 다리를 올려놓고는 차가운 눈빛으로 올려다보았다.
비서가 마른침을 삼켰다.
윤현민의 이 반응.
위험했다.
폭풍전야와도 같은 상황이지만, 머뭇거리는 건 오히려 분노를 자극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비서가 말했다.
“……아무래도 문제가 생긴 것 같습니다. 며칠 전. 한 의뢰인으로부터 곧 대성 미래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김현성’이라는 학생을 처리해 달라는 의뢰를 받았습니다. 거기까지는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만, 알고 보니 그 김현성은 예전에 골든 서클의 목표물로 지정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당시 담당 브로커는 강태구였고, 그가 의뢰에 실패하자 현재 VIP 전담인 정찬수가 담당하면서 분명히 완벽하게 해결했다고 보고했습니다. 그런데 확인 결과, 그건 진실과 달랐습니다.”
“계속해.”
“의뢰는 완벽하게 실패했습니다. 의뢰인의 정체가 발각되어 역으로 보복을 당했고, 관련자들은 단 한 명도 빠짐없이 김현성의 복수에 당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이유는 브로커 정찬수, 김현성을 해결하기 위해 용병으로 선택되었던 최태준 모두 회유된 것으로 파악됩니다. 정찬수는 거짓으로 의뢰를 완수했다고 윗선에 보고했고, 사실을 확인하자마자 그를 찾았으나 이미 모든 것을 정리하고 사라져 버렸습니다. 이 상황을 사전에 예상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할 정도로 신속하고 빠른 판단으로 보아, 어쩌면 그가 지금까지 골든 서클에 남은 것에도 ‘의도’가 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의도.
조심스럽게 언급한 단어이나, 비서나 윤현민이나 진실을 모르지 않았다.
의도는 명백하게 존재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거짓으로 보고할 이유도 없고, 천상의 담당까지 맡은 그가 갑작스럽게 사라진 이유도 더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특히 그는 임철형 대표의 라인을 타고 천상에 진입했다. 일개 브로커로서는 매우 뜬금없는 인맥인데, 지금부터는 그 라인도 조사해야 할 상황이었다.
“그래서 결론은?”
“죄송합니다!”
비서가 고개를 숙였다.
죄송하다는 말밖에는.
할 말이 없었다.
윤현민이 몸을 틀었다.
창밖을 내려다보자, 개미 떼처럼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러니까, 이미 손을 쓸 수 없을 만큼 문제가 확산되었다는 의미군.”
웃었다.
이것 참, 곤란한 상황이었다.
아주 X 같을 정도로.
* * *
골든 서클의 주인.
사람들은 그 존재를 몰랐다.
항상 정체를 추측하는 예상은 무성했지만, 단 한 번도 본인의 존재를 직접적으로 드러낸 적은 없었다.
VVIP 중에서도 정말 소수만.
윤현민의 정체를 알았다.
수년 전.
그들은 윤현민에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대체 왜 이런 일을 하는 거지? 네 배경, 네 능력. 굳이 더러운 흙탕물에 발을 들일 이유가 없을 텐데.”
상식적인 반응이었다.
윤현민은 그룹의 기대에 부응하는 후계자고, 아버지에게는 다른 자식들도 없기에 후계자 경쟁에 예민하게 반응할 이유도 없었다. 굳이 발악하지 않아도. 무모하게 일을 벌이지 않아도. 당연하다는 듯이 회장 자리를 물려받을 윤현민이, 골든 서클과 같은 위험한 오점을 남길 이유가 없었다.
만약 발각된다면.
이건 보통 문제가 아니었다.
후계자 자리 박탈은 물론이고, 그 이상의 책임을 져야만 했다.
상식적인 물음에.
윤현민은 말했다.
“이 대한민국에는 말입니다. 학연, 지연, 혈연과 같은 세습(世襲)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제가 이 자리에서 회장님들을 마주할 수 있는 이유도 골든 서클의 주인이라서가 아니라, 태양 그룹의 후계자이기 때문이겠죠. 그런데 가진 사람들이 가장 취약할 때가 언제인지 아십니까? 바로 자식들이 학교에 다닐 때입니다. 자식 교육만큼은 본인의 뜻대로 할 수 없기에, 억만금을 들여서라도 충분한 성과를 보이려고 합니다. 그 말인즉. 권력자들의 학창 시절을 이용한다면, 저희는 충분한 인연을 맺을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제가 앞으로 후계자로서 해야 할 일과 노력에 비하면, 이건 정말 투자 대비 말도 안 될 정도로 좋은 성과이지 않습니까?”
골든 서클의 탄생.
결핍에서부터 비롯되지 않았다.
충분한 권력과 부, 싸움도 잘하고 교우 관계도 원만했으나 윤현민은 친구들을 보면서 새로운 미래를 그렸다.
가해자와 피해자.
갑과 을.
학교 안에서도 약육강식이 존재했다.
피해자를 위해 한번 나서 주었을 뿐인데, 그들이 자신에게 보내는 눈빛은 마치 구원자를 바라보는 것만 같았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상황이란 말인가.
골든 서클은.
그렇게 탄생되었다.
사람들은 골든 서클이 ‘밑바닥 인생’에서 시작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윤현민은 태어난 그 순간부터 정점에 있던 존재였다. 성공할 수밖에 없는 인생. 그가 골든 서클이라는 있는 사람들만의 울타리를 형성하자, 사람들은 조금의 의심도 없이 발을 들였다. 사실 모두의 약점일 수밖에 없는 골든 서클이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주인이 바로 윤현민이기 때문이었다.
의뢰 실패.
윤현민의 눈빛이 차갑게 변했다.
위험한 문제였다.
이 사실이 퍼져 나간다면?
골든 서클 회원들이 동요할 것이다.
자신들의 정체가 발각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그들은 통제할 수 없는 변수를 저지를지도 몰랐다.
‘그럴 수는 없지.’
앞으로 오래도록.
골든 서클은 유지되어야만 한다.
자신이 회장의 자리에 오르고, 모두가 넘볼 수 없는 완벽한 제국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적은 노력으로 카르텔을 형성할 수 있는 골든 서클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매력적인 존재였다.
‘……김현성이라.’
재밌는 존재였다.
보고에 따르면, 김현성은 목표물로 지정되었는데도 상대를 물리쳤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대산이라는 한 지역 전체를 먹어 버렸다. 그의 행보도 심상치 않았다. 정찬수를 회유하면서까지 진실을 숨겨 두었던 그가, 안전한 졸업이 아닌 서울로의 전학을 택한 이유가 무엇일까.
악의였다.
목적은 골든 서클에 있는 게 분명했다.
그리고 그러한 의도는, 너무나도 같잖았다.
그는 알까.
골든 서클이.
단순한 조직이 아님을.
자식들을 위한 사모임이라기에는, 자신을 비롯해 거대한 권력자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구조였다. 아무리 폭로하고 공격한다고 한들. 무너질 수 없는 철옹성이었다. 경찰서에 신고하면 경찰청장이, 검찰에 신고하면 검찰 총장이, 여론을 선동하려고 한다면 굵직한 여론 기관들이, 정치인들은 거물급 인사들이. 모두가 자신의 입김에 영향을 미치는 존재들이었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이 싸움이 성립되겠는가.
위험하다는 의미는.
골든 서클의 몰락이 아닌, 신뢰를 잃어 이 집단이 더는 성장하지 못하는 것을 우려할 뿐이었다.
딱.
그 정도였다.
겨우 고등학생의 발악은, 전혀 위협적일 수 없었다.
윤현민이 말했다.
“개학하고 딱 한 달을 주지.”
비서와 시선을 마주쳤다.
윤현민의 명령은 절대적이었다.
반드시 지켜야 하는.
지키지 못한다면.
“그 안에 김현성을 처리해. 반드시.”
“알겠습니다.”
비서와 관련자들은 잔인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