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惡의 등교-129화 (129/130)

25. 서울에 떨어진 핵폭탄 (4)

강남의 한 사무실.

주변에 법원이 있기에, 법조계 임차 수요가 많은 이곳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숫자는 약 열 명.

정장을 깔끔하게 빼입은 그들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차마 고개를 들지 못했다.

“너희. 이번 사건이 무슨 의미인지 알아?”

“……죄송합니다.”

“죄송? 내가 지금 사과받자고 물었어?”

짜악!

뺨을 날려 버렸다.

털이 수북한, 험악하게 생긴 사내의 손길에 뺨을 맞은 사내는 고개를 빠르게 제자리로 돌려놓으며 아무렇지도 않다는 얼굴을 보였다. 혹시라도 신음을 흘리거나 나약한 모습을 보인다면. 눈앞의 사내가 눈이 돌아 버린다는 것은 그간의 선례로 증명되었기에, 이를 악물고 고통을 참아 냈다.

털보 사내의 이름.

박형준이었다.

천상을 관리하는 인원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골든 서클에서 가장 강한 세력을 보유한 인물이었다.

그가 사나운 눈빛으로 부하들을 훑었다.

“골든 서클이 의뢰에 실패했다. 골든 서클 역사상 전무후무(前無後無)한 일이 벌어진 걸 떠나서, 이 자리에 있는 그 누구도 의뢰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어. 누군가는 의뢰를 확인했을 테고, 누군가는 결과를 보고받았을 테고, 누군가는 사후 관리를 했겠지. 그런데 왜 아무도 몰랐을까? 그건, 정찬수 그 개새끼의 말을 믿고 너희가 안일하게 관리했기 때문이겠지.”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골든 서클에는 보고 절차가 존재했다.

정찬수가 아무리 거짓으로 보고했다고 한들, 사후관리만 제대로 했어도 진실을 모를 리가 없었다.

그 말인즉.

“그렇지?”

확.

빠악!

한 사내의 머리채를 잡아끌었다.

무력하게 딸려 온 그의 얼굴을 날려 버리자, 단 일격에 이빨이 우수수 떨어져 내리는 모습이 보였다. 그것만으로는 분노를 가라앉힐 수 없었다. 사내가 팔을 들어서 막든 말든, 박형준의 무차별적인 구타가 작렬했다. 한참을 얻어맞던 사내는, 이대로면 정말 잘못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빌었다.

“자, 잘못했습니다. 저, 정찬수가 한 말을 믿은 제 잘못입니다. 지방의뢰라고 해서, 대충 처리했을 줄…… 아악!”

빠악!

빡, 빡! 빡!

변명은 듣지 않았다.

이윽고.

사내가 축 늘어졌다.

박형준은 손에 묻은 피를 털어 대더니, 위장한답시고 가져다 놓은 의자에 앉았다.

털썩.

“이번 일엔 우리 전부의 목숨이 걸려 있어. 만약 골든 라인 멤버들이 이 사실을 안다면 골든 서클이 실패했다는 결과뿐만 아니라, 내부에 배신자가 발생해서 정보가 유출되었다는 불편한 진실도 알게 되겠지. 그럼 어떻게 되겠어? 골든 서클은 내리막을 걷게 될 거야. 완벽했던 역사는 더는 존재하지 않을 거고, 우리는 모두 책임을 물어 골든 서클과 같이 몰락해 버리고 말겠지. 그러니까, 이번 일은 반드시 수습해야만 해. 김현성이라는 오점을 지워버리지 않는다면, 도망간 최태준과 정찬수를 찾아내지 못한다면. 우리 모두 죽는다는 의미야.”

다들 마른침을 삼켰다.

그들을 향해, 박형준이 바락 소리를 질렀다.

“씨발, 그럼 지금 당장 서울에 있는 브로커들 전부 모이라고 해. 어서!”

“아, 알겠습니다!”

* * *

넓은 회의실.

서울에서 활동하는 브로커 중에서도 영향력이 있는 브로커만 선별했는데도, 거의 서른 명에 달하는 브로커가 회의에 참석했다.

골든 서클의 규모를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서울, 그리고 지방까지 전부 포함한다면.

대체 얼마나 많은 브로커가 존재하는지, 감히 그 규모를 예상하기 힘들 정도였다.

박형준의 오른팔.

최송철이 말했다.

“지금부터 ‘목표물’ 김현성에 대해 브리핑하겠습니다.”

팟.

스크린을 켰다.

그곳에 김현성의 최근 모습이 있었다.

“모두 알다시피 김현성은 의뢰를 격파, 역으로 브로커인 정찬수와 용병 최태준을 회유해서 마치 성공한 것처럼 위장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는 골든 서클의 시스템을 어느 정도 파악한 것으로 추정되며, 강남으로 전학을 오면서 ‘명백한 목적’이 존재함을 증명했습니다. 그렇다면 중요한 포인트는 앞으로 처리해야 할 김현성이라는 존재가 갖춘 힘입니다. 일단 김현성 개인의 무력만 따지자면, 대산의 학교들을 전부 통합시킬 만큼의 무력을 보인 전적이 있습니다. 대산이 이곳만큼 치열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할지라도 최소 A+에서 S등급의 무력인 것으로 예상됩니다.”

설명에 따라.

스크린 화면이 바뀌었다.

대산의 지도가 떠오르며, 김현성이 점령한 학교들에 엑스 표시가 되었다.

열 곳이 넘는 학교.

브로커들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의뢰를 격파한 것으로도 모자라, 이런 식의 과감한 행보는 난생처음 보았다.

“사실 김현성이 이렇게까지 날뛸 수 있었던 이유는 본인만의 힘이 아닙니다. 천일 고등학교의 교장 오대환, 담임 김영철이 적극적으로 뒤를 봐주었고, 그들이 그렇게 김현성에게 호의적으로 행동한 이유는 명진건설의 차기 회장으로 유력한 고창범 상무가 김현성을 후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대성 미래 고등학교로 전학을 추진하는 당시, 학부모 위원회에서 적극적으로 막으려고 했으나 ‘강동철 차장검사’의 아내인 이미소의 방해로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이미소는 스카이 맘카페를 운영하고 있으며, 김현성과 모종의 관계가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여기까지입니다. 혹시 질문 있으십니까?”

“강동철 차장검사와는 깊은 관계입니까?”

“그것까지는 파악되지 않습니다만, 김현성을 위해 나설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정치권은 개입되어 있습니까?”

“현재까지는 따로 파악한 바 없습니다.”

질문을 주고받았다.

오랜만이었다.

골든 서클이 회의를 열어, 이렇게까지 한 목표물에 열을 올리는 게.

초창기에는 이런 일이 잦았다고 들었지만, 박형준 자신이 브로커로서 활동하는 동안엔 겨우 두 번밖에 없었던 일이었다.

대단한 녀석이었다.

S등급.

배경을 이용하는 머리.

대체 어디에서 이런 녀석이 나타났단 말인가.

하지만 정보를 모두 들은 지금.

박형준은 확신할 수 있는 사실이 있었다.

“우물 안 개구리가 주제도 모르고 날뛰는구나.”

그건 정말.

김현성에게 딱 어울리는 단어였다.

* * *

객관적인 사실을 따졌을 때.

현재 김현성의 힘은 세 가지다.

개인의 무력.

명진건설.

차장검사 아내 이미소.

우스웠다.

일단 개인의 무력은 아무리 강하다고 한들, 골든 서클이 보유한 수많은 강자를 전부 상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한 명의 S등급으로 부족하다면. 두 명을 보내면 그만이다. 개인의 무력은 사실 아무것도 아닌, 정말 무의미한 강점이었다.

그리고 명진건설.

대산에서는 대산 카르텔을 주도하는 거대 기업일지 모르나, 이곳 서울에서는 얘기가 달랐다.

골든 서클의 의뢰인 중에는 명진건설보다도 큰 기업을 운영하는 회장님들이 적지 않았다.

그뿐만이랴.

재벌.

정치인.

법조계.

언론사 등등.

손가락으로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많은 권력자가, 골든 서클에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데 겨우 명진건설로.

차장검사 따위로.

골든 서클에 비빌 수 있을까?

그들이 김현성에게 얼마나 진심일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스스로를 불사를 각오로 달려든다고 할지라도 아무런 타격을 입히지 못할 것이다. 사실상 너무나 같잖은 상대였다. 이보다도 더한 목표물을 처리한 경험도 있지만, 골든 서클이 이토록 예민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한 가지 사실 때문이었다.

김현성이.

실패의 역사가 되었기 때문이다.

노골적으로 골든 서클을 무너트리려는 의도를 보였기에, 골든 서클로서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박형준이 물었다.

“현재 대성 미래 고등학교에는 쓸 만한 애들이 몇이나 있지?”

“해당 학교는 현재 특별 관리를 받고 있기에, S등급만 2명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중 한 명은 S+등급의 최명훈입니다.”

“그 정도면 내부에서는 문제가 없을 거고. 선생들은?”

“이번에 안익수 교장이 전학을 처리해 주는 문제를 일으키면서, 수사 기관에 의뢰해 교장을 그 위치에서 끌어내릴 예정입니다. 공석이 된 자리는 저희의 말을 들을 사람으로 대체될 것이며, 대성 미래 고등학교 선생들 대부분은 이미 포섭된 사람들입니다. 명진건설이 대산에서처럼 아무리 돈으로 발라도 단 한 명도 회유하지 못할 겁니다. 저희가 그들에게 제안하는 것은 단순히 돈뿐만이 아니라, 그들의 안전을 보장해 준다는 약속도 존재하니까요.”

“그렇겠지. 골든 서클의 존재를 아는 선생들은, 절대 우리를 배신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겠지.”

보고 내용으로 확인했다.

대산 카르텔.

골든 서클이 애를 먹은 이유라고.

지금부터는 그 반대였다.

이곳은 강남 카르텔이었다.

대산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대한민국 전체를 쥐락펴락할 정도로 뿌리까지 썩어 버린 극악무도한 세상.

씰룩, 웃었다.

마음이 놓였다.

자신의 목숨이 걸린 상대라기엔.

생각보다 일이 가볍게 처리될 것 같았다.

박형준이 소리쳤다.

“이번 일은 내가 직접 맡는다. 필요한 상황마다 지원을 요청할 테니, 하던 일은 모두 미뤄 두고 이번 일에 집중하도록. 윗선에서는 개학하고 한 달의 시간을 주었지만 우리는 딱 일주일. 일주일 안에 모든 문제를 끝낸다.”

“예!”

“알겠습니다!”

우렁찬 목소리.

박형준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 * *

시간은 참 빨랐다.

엊그제 서울에 올라온 것 같은데, 김현성은 어느새 개학 날이 되었다.

오피스텔 안.

찬 공기가 맴돌았다.

이번 서울행은 가족들을 제외하고 혼자만 올라왔고, 보일러를 틀지 않으면 한 사람만의 온기로는 고층 오피스텔이 따뜻해지지 않았다. 김현성은 찬 공기를 들이켜며 오피스텔을 나섰다. 깔끔하게 잘 닦인 바닥을 지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관리인의 인사를 받으며 걸음을 옮겼다.

주변으로 곳곳에 고층 빌딩들이 보였다.

아침부터 부산하게 움직이는 사람들과 도로를 빼곡하게 메운 차들은, 대산 같은 지방과는 달랐다.

게다가.

부와아앙-!

대산에서는 흔하지 않던 외제차가 심심치 않게 보였다.

다른 세상이었다.

새삼 다른 공간에 있음이 느껴졌다.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벌써 교문이 보였다.

역과 이리도 가까운, 그리고 깔끔하게 건축되어 있는 대성 미래 고등학교의 건물은 이 학교가 권력의 중심에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이 학교에서 공부한 학생들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 것이다. 이 학교를 나왔다는 의미는 강남에서 살 만큼 부자라는 뜻이고, 그들은 서로 격에 걸맞은 관계를 이어 나가며 끌어 주고 밀어줄 것이다. 골든 서클만큼은 아닐지라도 학연이란 관계는 그랬다.

학교에 도착했다.

이미 대성 미래 고등학교의 교복으로 갖춰 입은 상태였고, 교무실로 들어가자 한 선생이 나섰다.

“네가 김현성이야?”

딱 한 번.

한 번의 대화면 충분했다.

살짝 일그러진 미간과 전신을 훑는 눈빛.

적대적이었다.

대산과는 다르게, 이곳의 선생들은 김현성을 적대한다는 사실을 눈빛만으로 증명했다.

“……일단 필요한 절차는 나중에 대충 처리하고. 따라와. 네 반으로 안내해 줄 테니까.”

“예.”

걸음을 옮겼다.

1층을 지나, 2층을 지나, 3층을 지나.

4층에 도달했다.

1반을 지나, 2반을 지나.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3학년 3반]

드르륵.

선생님이 먼저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서 웅성거리던 소리가, 김현성이 뒤따라 들어가면서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갑작스럽게 조용해졌다.

“자자, 너희에게 소개해 줄 친구가 있다. 너희도 잘 알지? 전에 ‘전국 모의고사’에서 1등한 녀석이 있다고. 얘가 걔야. 현성아, 네가 직접 소개해.”

슥.

선생이 물러났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참 웃긴 건.

김현성은 처음 보는 관계인데도 호의적인 시선은 잘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누구는 호기심.

누구는 경계.

누구는 적의.

대부분은 경계 이상의 시선이었다.

그건 전국 모의고사 1등이라는 성적 때문일지도, 아니면 골든 서클의 의뢰 때문일지도 몰랐다.

김현성이 말했다.

“내 이름은 김현성이야.”

잘 부탁한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어차피.

이들과의 관계는 파탄이 날 수밖에 없다.

과거로 돌아온 시점부터 지금까지 준비해 왔던 계획.

‘드디어 시작이야.’

그 계획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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