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惡의 등교-130화 (130/130)

25. 서울에 떨어진 핵폭탄 (5)

고등학교 3학년.

그것도 교육의 최전선이라고 할 수 있는 이곳 강남에서, 개학 첫날이라고 수업을 어설프게 넘어가는 일은 없었다. 학생 본인이나 학부모 전부 바라지 않는 일이었다. 어차피 전학생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아는 얼굴이었고, 특별히 적응하는 과정 없이 곧바로 수업이 진행되었다.

“앞으로 고등학교 3학년 과정은…….”

익숙한 풍경이었다.

학생들은 금방 수업에 적응했는데, 수업에 들어오는 선생님들은 하나같이 똑같은 반응을 보였다.

수학 선생이었다.

그는 교실을 훑더니, 누군가를 발견하고는 말을 걸었다.

“네가 김현성이야?”

“예.”

“이야- 전국 모의고사 1등이라 그런지 얼굴도 훤칠하니 잘생겼네. 지난 1년 동안 네 얼굴이 정말 궁금했거든. 대체 어떤 애길래 서울의 명문 학교들을 전부 다 제치고, 지방 학교 출신이 이런 말도 안 되는 성적을 보이는지. 어디, 전국 1등의 실력 좀 볼까? 나와서 이 문제 풀어 봐.”

당연한 관심이었다.

전국 1등이다.

지금의 기세대로라면 수능에서 만점을 받을지도 모르는 학생이니만큼, 김현성은 선생님들의 관심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며 나가서 문제를 풀었다. 풀이에는 막힘이 없었다. 사실 선행 학습 없이는 불가능한 문제인데도, 슥슥 풀고서는 자리로 돌아가는 모습에 선생님이 박수를 보낼 정도였다.

문제는.

1교시부터 점심시간까지.

모든 선생님이 김현성을 거론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같이 말했다.

“역시.”

“대단하네.”

“전국 1등은 확실히 다르네.”

칭찬의 연속.

선생님이 보내는 박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머리를 긁적이며 충분히 좋아해도 될 상황이었다. 그런데 김현성은 오히려 피가 차갑게 식는 기분이 들었다. 전국 1등은 관심을 받아야 마땅하나, 자신을 안내해 준 선생님부터 시작해서 모든 선생님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묘한 경계심.

절대 제자를 바라보는 눈빛이 아니었다.

그들 중 대다수가 골든 서클에게 확정적으로 회유당했다고 생각한다면, 그들의 칭찬에는 노골적인 의도가 있을 것이다.

생각해 보라.

전학 첫날에.

교육에 목숨을 거는 이 강남에서, 새로운 전학생이 나타나 선생님들의 일방적인 관심을 받는다면. 그 한 명으로 인해 그동안 열심히 공부했던 학생들의 순위가 한 단계씩 밀린다고 생각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는가.

아니나 다를까.

김현성은 입학한 지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아, 불편한 현실을 마주했다.

* * *

점심시간이었다.

김현성은 혼자 간단하게 배를 채우고 자리로 돌아왔는데, 무리를 형성한 친구들이 김현성을 힐끗거렸다.

“진짜 X 같네.”

“그니까. 아니, 이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 일인가? 고등학교 3학년 때 전학 오는 것도 존나게 거슬리는데, 전국 1등은 대체 뭐 어떻게 하라는 거야? 지난 2년 동안 경쟁한 애가 우리보다 위로 치고 올라가는 건 인정하겠지만, 그냥 이건 우리 전부 엿 먹으라는 의미잖아.”

“어디 항의할 데 없나?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불합리한데.”

노골적인 대화였다.

김현성에게 들리지 않도록 목소리를 낮추는 조금의 노력도 없이, 그들은 대놓고 흉을 보았다.

교실 안.

그들 말고는 다른 학생들은 없었다.

다들 점심을 먹거나 밖에 놀러 나간 상태였는데, 한산한 교실 안에서 뒷담화 무리는 점점 목소리를 높였다.

“생각해 보면 전학이 가능하다고 해서 전학을 온 쟤도 문제야. 뻔히 이 학교가 성적에 예민하다는 사실을 알면서, 본인 혼자만 살아남겠다고 그런 이해관계들은 전부 무시한 거잖아. 혹시 소시오패스 뭐 그런 거 아닌가.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까지 이기적일 수가 없는데.”

“소시오패스든 뭐든. 지만 생각하는 새끼인 건 맞지. 아까 수업 시간 때 봤냐? 선생들이 문제를 풀어 보라고 하니까, 존나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슥슥 풀어내는 거. 아마 스스로 대단하다고 생각했겠지. 전교도 아니고 무려 전국 1등인데, 눈에 뵈는 게 있겠어?”

더는 힐끗거리지도 않았다.

대놓고 바라보며 험담을 퍼부었다.

그들은 마치.

김현성이 대응하기를 바라는 것처럼 보였다.

귓속으로 들려오는 험담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이 자리에서 주먹이라도 날리길 바라는 것 같았다.

‘지금은 아니야.’

이곳은.

천일이, 그리고 대산이 아니다.

전학 첫날부터 무턱대고 사고를 친다면, 오대환과 김영철 같은 이 학교의 쓰레기들이 문제를 수습해 주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약간의 사고로도 문제가 심각해질 것이다. 김현성이 먼저 때렸는데도 신영민이 징계를 당할 뻔했던 것처럼, 이 학교는 천일과는 반대로 돌아갈 테니 말이다.

담담하게 다음 수업을 진행했다.

앞으로의 계획이 명확하기에, 의도가 노골적인 도발로는 감정의 동요가 조금도 없었다.

그런데 그때.

탁.

누군가가 책상을 두 손으로 내리쳤다.

김현성이 고개를 들자, 상대가 시선을 마주치며 씰룩 웃었다.

“야. 너 내 목소리 안 들리냐?”

* * *

상대.

뒷담화 무리 중 한 명이었다.

같은 3학년 3반으로, 고동수라는 이름의 동급생이 싸늘한 눈빛으로 말했다.

“있잖아. 내가 정말 궁금해서 묻는 말인데, 너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전학 올 생각을 한 거야?”

“내가 설명해야 할 이유가 있나?”

“하-.”

퉁명스럽게 반응하자.

고동수가 허리를 펴며 친구들과 시선을 마주쳤다.

김현성의 귀로 낄낄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진짜 재수 없는 새끼가 맞네. 야, 솔직히 좀 그렇잖아. 너 하나 때문에 지금 피해를 보는 학생이 몇 명인데. 그럼 최소한 수업 시간 때 얌전하게 있든가, 아니면 지금처럼 X같이 나오면 안 되는 거 아냐? 그러니까.”

웃었다.

김현성은 그 웃음에서, 고동수가 단순한 시기심으로 자신을 찾아온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지금부터 벌어지는 일은 네가 자초한 일이야.”

짜악!

갑작스럽게 본인의 뺨을 날렸다.

김현성을 때리는 것이 아닌, 스스로의 뺨을 수차례 날렸다.

짜악!

짜악, 짜악, 짜악!

얼굴이 부어올랐다.

진심으로 때리는 손길에, 입술이 터져서 붉게 물들 정도였다.

그 모습을.

김현성은 제지하지 않았다.

차가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퉁명스럽게 물었다.

“뭐 해?”

“뭐 하긴. 너 X 되게 하려는 거지.”

고동수가 실실 웃었다.

그러고는 바닥에 주저앉더니,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악! 아아아아악! 전학생이 날 때린다!”

비명이 울려 퍼졌다.

정적을 뚫고, 복도까지 번져 나갔다.

이윽고.

“뭐야?”

“무슨 일이야?”

웅성거리며 동급생들이 몰려들었다.

그들의 눈에 비치는.

바닥을 나뒹구는 고동수와 그를 바라보는 김현성의 모습은, 피해자와 가해자를 단번에 특정할 수 있었다.

* * *

김현성과 고동수는 곧바로 선생님에게 불려 갔다.

3학년 3반의 담임.

김현성을 반으로 안내해 주었던 장원기라는 이름의 선생님이, 차가운 눈빛으로 물었다.

“고동수, 설명해 봐. 대체 무슨 일이야.”

“그게…….”

고동수가 고개를 푹 숙였다.

김현성이 보았던 광기 어린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창백하게 질린 얼굴과 수시로 떨리는 몸은, 영락없이 학교 폭력의 피해자처럼 보였다.

“점심을 먹고서 친구들이랑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갑자기 김현성이 조용히 해 달라고 소리를 질렀어요. 저로서는 아직 점심시간이니까. 웃고 떠들어도 되는 그런 시간이니까 내가 알아서 하겠다고 퉁명스럽게 대답했는데, 그 말에 화가 났는지 저보고 오라고 말했어요. 그때부터 겁이 났는데 지고 싶지 않은 마음에 다가갔다가…… 흐윽. 선생님. 전 진짜 제가 왜 이렇게까지 맞아야 했는지 모르겠어요. 점심시간에 떠든 게, 퉁명스럽게 대답한 게. 이렇게 맞을 정도로 잘못한 일인가요?”

고개를 들었다.

폭력의 흔적이 역력했다.

장원기가 시선을 홱 돌리더니, 사나운 눈빛으로 김현성을 바라보았다.

“너 이 새끼. 친구를 때려?”

“그런 적 없는데요.”

“그럼 이 얼굴은? 이 얼굴을 대체 어떻게 설명할 건데?”

“선생님. 분명하게 말씀드리는데 저는 하지 않았어요.”

“하-”

장원기가 피식, 웃었다.

그가 한 학생을 불렀다.

“너. 상황 목격한 애들 불러와.”

“예.”

학생이 쪼르르 달려 나갔다.

이윽고.

고동수와 같이 뒷담화를 나누던 친구들이 나타났다.

“너희가 설명해 봐. 김현성이 때렸어, 안 때렸어?”

그들이 김현성을 힐끗 확인했다.

적의로 번들거리는 그들의 눈빛은, 이미 무슨 말을 내뱉을지 뻔히 보였다.

“김현성이 일방적으로 때렸어요.”

“맞아요. 동수는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김현성이 시비를 걸더니 갑자기 뺨을 날렸어요.”

“……저희로서는 김현성을 말리고 싶었는데, 뺨을 때리는 모습이 너무 살벌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사실 소문으로 김현성에 대해 조금 들었거든요. 성적이 뛰어나다고 모범적으로 학교에 다닌 게 아니라, 정말 무서운 애라고. 그런데 저희가 어떻게 막을 수 있겠어요.”

입을 맞춘 듯.

똑같은 대답을 말했다.

김현성은 차분하게 그들의 면면을 살폈다.

이들 모두.

골든 서클의 의뢰를 받았을까?

고동수는 확정적일 것이다.

뒷담화를 주도하고 스스로의 뺨을 날릴 정도의 악의는 의뢰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지만, 김현성의 잘못으로 몰아가는 이들도 똑같다고는 확신할 수 없다. 선생들이 몰아간 불편한 상황, 고동수가 깎아내린 자신의 이미지. 선택의 갈림길에서 이들은 똑같은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아.

이건 기회다.

동수가 총대를 멨으니, 어차피 다른 목격자도 없으니.

본인들이 입을 맞춰 증언한다면 김현성을 골로 보낼 수 있겠구나.

전국 1등의 경쟁자를 날려 버릴 수도 있겠구나.

장원기의 부름에 교무실로 향하며, 그들은 이와 같은 대화를 나누었을지도 모른다.

이유가 무엇이든.

‘골든 서클의 본거지라는 건가.’

함정에 빠졌다.

전학 첫날.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골든 서클의 목표로 설정되었다는 정찬수의 전화처럼 곧바로 악의에 노출되었다. 이로써 알 수 있는 사실이 있었다. 분명히 조혜주와 같은 학부모가 의뢰를 넣음으로써 자신의 존재가 노출되었고, 골든 서클은 김현성이 숨겨 두었던 진실을 전부 알게 되었을 터. 단순 의뢰 실패가 아니라 서울로의 전학은 노골적인 의도가 있음을 알았을 것이다.

전면전이었다.

서로의 존재가 완전히 노출되었다.

정찬수가 골든 서클을 정리하고 곧바로 도주한 지금, 김현성은 골든 서클 내부의 움직임을 전혀 알아낼 방법이 없다. 전학 첫날부터 이런 더러운 술수를 쓰리라는 사실도,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도. 김현성이 바라는 복수를 이루기 위해서는 혼자만의 힘으로 감당해야 했다.

장원기가 말했다.

“이래도, 이래도 아니야? 버젓이 증인들이 존재하는데?”

“쟤들은 증인으로 적합하지 않아요. 친구니까 편을 들어 줄 수도 있으니, 복도를 지나가던 다른 증인을 찾아서 물어보시죠. 제가 정말 잘못했다면 어떠한 처벌이라도 달게 받을게요.”

“이 새끼가 뻔뻔하게 변명을 하네.”

팍.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변명을 들을 생각?

처음부터 없었다.

고동수나, 장원기나.

똑같은 인물이었다.

결백을 호소하는 목소리 따위는 대충 뭉개 버렸다.

“다른 증인은 무슨 다른 증인! 얘 얼굴이 증거야. 너 아니면 대체 누가 이런 짓을 하겠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새끼가 벌써부터 거짓말을 입에 달고 살고. 안 되겠어. 전국 1등이고 뭐고, 너 같은 새끼는…… 뭐 해, 지금?”

장원기가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말하는 도중.

갑자기 김현성이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고동수나 그 친구들도, 당황해서 눈이 휘둥그레지는 상황이었다.

“경찰서에 신고하려고요.”

“뭐?”

“선생님이 공정성을 잃은 것 같으니까, 경찰이라도 불러서 상황을 해결해야죠. 아, 거기 경찰서죠? 여기 대성 미래 고등학교인데 교내에서 폭력 사건이 벌어져서요. 네네, 상황이 조금 심각하니까 와 주실 수 있나요?”

번갯불에 콩을 볶아 먹듯.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이었다.

장원기로서는 차마 말릴 수가 없었다.

전화를 끊자.

장원기가 물었다.

“너, 대체 이게 무슨 짓이야?”

“제가 가해자라면서요. 그럼 사실을 확실히 하고, 제대로 된 처벌을 받아야 하지 않겠어요? 아, 그리고…….”

툭.

무언가를 꺼냈다.

볼펜 형태의 그것은 이 상황과 어울리지 않았다.

“여기에 조금 전 상황이 녹음되어 있어요.”

순간.

시선이 마주쳤다.

장원기의 흔들리는 눈동자에.

“제가 조심성이 많은 학생이라서요. 괜찮으시죠?”

김현성이 활짝 웃음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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