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어느 날 해츨링이 되었다.
콰득!
심장에 박힌 창이 영혼을 부쉈다.
동시에 머리가 깨질 듯 지독한 두통이 몰려왔다.
몸 안에서부터 찢겨드는 아픔에 절로 그의 미간이 구겨졌다.
- 크릉……!
번뜩이는 붉은 동공이 세로로 날카롭게 좁혀졌다. 맹수의 그것처럼 잔뜩 구겨져 일그러진 콧등과, 뾰족한 이빨이 드러나며 검은 이무기가 흉폭하게 그릉 거렸다.
[이, 새끼…가……!]
시큰거리는 숨에서 혈향이 진하게 번졌다.
왈칵!
울혈을 토해낸 이무기는 고통스럽게 몸부림쳤다.
딱히 이로운 일을 하고 산 것도 아니지만, 인간에게 원한을 살 짓도 하지 않았던 이무기.
그게 그였다.
한데 이토록 강렬한 살심을 드러내는 자가 찾아올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네…놈…… 대체.]
뭐 하는 놈인지 묻고자 입을 벌리자 찐득한 검붉은 피가 울럭거리며 흘러나왔다.
그 피를 보고 남자가 웃는다.
“해냈다.”
‘미친 새끼.’
이무기는 탄식했다.
남자의 얼굴은 이무기가 건 저주로 꺼멓게 타 살이 짓물렀고 무사한 한쪽 눈엔 핏발이 서선 히죽였다.
사람이 아니라 살인귀 같았다.
‘저 상황에 웃을 수 있는 게, 진정 인간인가?’
소름이 끼쳐 비늘이 차르륵 돋았다.
놈이 제 몸을 돌보지 않고 미친개처럼 덤벼 죽이려 든 탓에 이무기의 육신도 만신창이였고, 남자 역시 오른팔이 찢긴데다 왼쪽 허리는 갈비뼈가 희게 드러나 있었다.
서로 대등하게 치고받고 싸운 터라 누가 더하고 덜하다 할 수도 없는 개싸움이었다.
시커멓게 타들어간 발과 허벅지 역시 거무죽죽하게 썩어서는.
저 잔혹한 꼴로 죽지도 않고 덤벼드는 놈의 움직임이 질려버릴 지경이었다.
‘아무리 봐도 곧 뒈질 상이지만, 먼저 죽는 것은 나겠지.’
이무기는 속으로 이를 갈았다. 그리고 포효하듯 소리쳤다.
[대체 왜! 무엇이 그리 원한이었던 거냐……!]
“……죽어라.”
피에 절어버린 창대를 쥔 그를 보며 죽음을 예감한 순간.
이무기의 가슴에 울화가 치솟았다.
고작 1년!
1년이면 용이 될 수 있었다.
용으로 승천하기 전이라 하나 여태까지 영물로 살아온 세월이 999년 이었다.
그런 이무기가 일개 인간에게 죽을 것 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해봤겠는가.
만물을 조율하며 인과의 흐름에 큰 해를 끼치지 않고 조용히 지낸 편이었는데.
지도에도 없어 일부러 찾아오기도 힘든 외진 섬에 미친놈이 들어와선, 이무기를 죽일 수 있는 창을 심장에 박아 넣었다.
그렇게 승천을 1년 앞둔 이무기를 끝끝내 죽이고야 만 것이다.
[쿨럭……! 크흑. 망할…….]
상한 피가 이무기의 입가로 주르륵 흘러내렸다. 핏물이 울컥 뱉어지며 찢긴 살 거죽으로 핏물이 흘렀다.
‘이리도 허망하게.’
생명이 빠져나가는 느낌과 함께 오한이 느껴진다.
[지독한 새끼.]
진득하게 뿜는 이무기의 살기에도 놈의 기세는 흉흉했다.
죽어가는 생명을 전부 태워서라도 이무기를 끝장내고 싶어 하는 열망이 느껴졌다.
‘젠장! 진짜 끝이야? 이대로 죽는 거냐고.’
억울함과 분노가 가슴을 치고 올라왔다.
안 그래도 불길하다 여겨지는 검은 이무기였다.
누군가의 환영을 받을 일 없던 삶.
그것이 아쉬운 건 아니었다.
이무기 역시 그들과 굳이 어울리지 않고 눈에 띄지 않게 살아왔으니.
자신에 대한 인간들의 시선이 어떤지 잘 알고 있었지만 개선할 필요성을 느낀 적도 없었다.
어차피 서로 이웃한 것도 아니고 딱히 건드리지만 않으면 상관없었으니까.
추앙 받는 영물.
인간을 해치는 삿된 무언가.
천년의 수련을 하여 승천하는 존재.
세간에서 떠드는 그 무엇이든, 그를 제대로 본 적도 없는 자들이 멋대로 상상한 모습일 뿐이었다.
그에 저항하거나 휘둘릴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했으니 당연히 관심조차 두지 않았더랬다.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어차피 이무기란 존재를 제대로 볼 수 있는 놈들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대가가 이 꼴인가…….’
그들의 선입견 속에서 이따위로 죽어나가고 있다니.
‘이제 와서 이런 생각들이 다 무슨 소용이겠냐만.’
이무기는 실소를 흘렸다.
[이렇게 해서, 얻는 게 뭐냐?]
반쯤 비아냥이었다.
이무기의 시체라도 가져간다면야 영물의 신체이니 팔이든 비늘이든 대대손손 남길 수 있겠지만 이 미친놈도 여기서 죽을 것이었다.
결국 이무기와 함께 동귀어진이나 해버린 꼴이라는 거다.
눈이 멀어버린 남자가 초점 없는 시선을 먼 곳에 흘렸다.
“나는, 은인에게 은혜를 갚았을 뿐이다.”
새액- 하는 숨결에 섞인 말은 내장을 토하는 듯했다.
남자는 과도한 힘을 쓴 뒤 하얗게 새버린 머리카락을 하고 이무기를 똑바로 보고 섰다.
원한? 욕망?
무엇도 아니다.
그 눈에 어린 것은 그보다 더 순수하고 강한 신념이었다.
“이제, 된 겁니까? ■■■.”
누구? 라고 묻기도 전에 이무기는 의식을 잃어갔다.
쪼개진 심장과 혼이 주는 아픔은 극도로 고통스러웠다.
육체가 산산이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온 몸을 찢어발기는 감각이 이무기의 전신을 휘감았다.
쿠아아아아!
이윽고 이무기의 몸에서 터진 폭발은 섬 하나를 통째로 삼키고 그 존재마저 이 세상에서 지워버렸다.
***
시간이 얼마나 흐른 것인지 가늠할 수 없었다.
제 마음대로 몸을 움직일 수 없으나 의식은 존재한다는, 기이한 상황이 한동안 이어졌다.
‘답답해.’
이무기는 미간을 구겼다.
눈조차 뜰 수 없는 곳에서 느껴진 것은 꾸루룩 거리는 액체 소리.
콩……콩.
그리고 다시 부드럽게 울리기 시작하는 심박 소리였다.
이무기는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심장이 뛰고 있다.’
약동하는 생명의 소리.
그는 몸을 움직이려는 시도를 멈추고 두근거림을 느꼈다.
‘내가 살아있어…….’
삶이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조금 감격스러웠다.
그는 힘을 내어 손과 발을 조금씩 움직여 보았다.
아주, 미약한 움찔거림.
그를 느끼는 것만으로도 놀라울 뿐이었다.
안간힘을 쓰며 돌처럼 굳어진 제 몸을 점점 더 뒤틀고 휘적였다.
얼마나 몸을 움직였을까.
툭.
단단한 벽에 발끝이 닿았다.
손끝과 꼬리 끝에도 전부 벽이었다.
‘갇혀버렸나?’
부드럽게 약동하던 심장이, 분노로 점차 거칠게 뛰었다.
‘감히! 감히 어떤 녀석이 신수를 가둔단 말인가!’
치를 떤 이무기가 깊은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벽을 손으로 쳤다.
퉁!
‘벽이 멀쩡해?’
당연히 벽이 부서질 것이라 여겼다.
꼬리짓 한 번에 땅이 파이던 그가 고작 벽에 막혀 손이 아렸다.
‘삿된 것들이, 내 힘을 쇠하게 만들었군!’
그는 분통을 터트리며 발길질을 했다.
‘이까짓!’
통!
‘이까짓 벽!’
퉁! 투웅!
갇혀버린 벽 안에서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해 벽을 쳐댔다.
‘으아아!’
쩌적!
벽에 실금이 가며 희미한 빛이 새어들었다.
‘! 나갈 수 있다. 조금만 더!’
그는 실금이 간 곳에 팔을 뻗어 손바닥을 대고 집중했다.
‘기회는 단 한번.’
단전이 느껴지지 않는 제 몸.
몸에 있는 기력을 모아 운용하기에 이 한 번에 모든 것을 걸어야 했다.
그는 자신의 한계까지 최대한 기운을 끌어올렸다.
‘파(破)!’
퍽! 콰작!
촤르르르.
깨진 벽 조각과 액체가 바깥으로 터져나갔다.
‘됐어! 됐다고!’
스스로 바깥을 향하는 통로를
뚫었다는 사실에 뿌듯함이 차올랐다.
‘으, 으윽.’
내력을 끌어 쓴 탓에 비틀거린 그가 깨진 벽을 쥐고 헐떡였다.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지. 언제 나를 구속한 놈들이 올지 모른다.’
그가 손에 힘을 꽉 쥐고 심호흡을 하며 덜덜 떨리는 다리에 힘을 주었다.
달큰한 공기가 코와 입을 통해 폐부로 가득 차올랐다.
스읍, 하.
‘맑은 기운이 가득해.’
수액이 허리 밑으로 내려간 곳에서 그는 메마른 공기에 깃든 기운을 마음껏 들이켰다.
기운이 돌아온 그가 물을 찰박이며 벽 바깥으로 나왔다.
찰박 찰박.
'몸에 힘이 없어.'
알 밖을 나오자마자 힘이 쭉 빠져서 버틸 수가 없었다.
결국 그는 네 발로 타박타박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