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귀여움 덩어리를 어쩌면 좋아!”
꽉 안긴 채 코로 밭게 숨을 내쉬며 속으로 안도했다.
숨은 막혔지만 예상대로 호감을 주는 데에는 성공했기 때문이었다.
‘비늘 다 벗겨질 것 같다 살살 좀 해라.’
굳이 따지면, 효과가 너무 좋았다.
‘자랑도 함부로 하면 안 되겠군.’
크리스티나는 연신 기특해를 반복하다가 요람에 내려주었다.
그는 뀨우. 하고 또 다시 두 팔을 벌렸다.
‘우유.’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우유를 꺼내주지 않았다.
“어쩌지? 오늘은 우유가 없는데.”
“……!”
이무기는 두 팔을 내민 채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우유가…… 없어?’
성장한 모습을 보였는데 이득 보기는커녕 굶게 생겼다는 생각에 다리에 힘이 풀리며 털썩, 주저앉았다.
표정만 보면 나라 하나 잃은 듯 했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생물을 굶기다니. 역시 함부로 믿는 게 아니었어.’
배고픔에 서러움까지 추가되니 탈력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가 불신을 가득 채운 눈빛으로 크리스티나를 바라보았다.
“푸훗.”
‘웃어?’
입가를 실룩이며 불만스러움을 감추지 않자 크리스티나가 살짝 미소 지었다.
“오늘은 그보다 더 좋은 걸 가져왔어.”
크리스티나의 몸 뒤에 가려져 있던 라이가 함께 동동 떠오르자, 라이의 빛에 가려져 있던 바구니가 모습을 드러냈다.
상황을 파악한 이무기가 눈을 가늘게 뜨고 크리스티나를 바라보았다.
‘놀리고 싶었냐.’
그래도 크리스티나에게 답례처럼 선물을 받는 모양새였기에 그는 빈정 상할 만한 부분을 상쇄했다.
“자. 아직 이가 다 나지 앉아도 먹을 수 있는 거야.”
‘계란?’
바구니 속 알은 일반적인 알 보다 훨씬 컸다.
거의 사람 얼굴만 해서, 크리스티나가 이무기에게 건네자 그의 두 손 가득 담긴 보름달 같았다.
“불사조, 피닉스의 알이란다. 죽게 되어도 자신이 죽은 재 속에서 다시 태어난다는 새지.”
‘비슷한 걸 들은 것도 같은데.’
신기한 녀석이었던 지라 이무기역시 기억에 남아있었다.
주작.
어떻게 죽어도 바로 다시 살아난다는 신령한 동물이었다.
‘기시감은 들지만, 주작의 알 일리는 없고.’
이무기가 알고 있는 주작은 알에서 태어나지 않았다.
그나마 찜찜함을 덜어낸 그가 알을 어떻게 먹어야 할지 고민했다.
‘부활 능력이 있는 새의 알이라.’
확실히 강한 에너지가 느껴지는 알이었다.
껍데기가 아주 딱딱해 보였으나 그가 발톱을 세워 꾹꾹 누르자 조금씩 박살이 났다.
그는 검지를 세워 알 위에 구멍을 뚫었다.
단단한 만큼 뚫는 데 힘은 들었지만, 대신 껍데기가 쉽게 부서지지 않아 금이 가 박살이 나지 않고 모양이 잘 유지됐다.
‘됐다!’
파삭.
이무기가 껍데기를 벗기자 구워진 뽀얀 속살이 드러났다.
기다릴 것 없이 그는 입을 크게 벌려 한 입에 냠. 하고 베어 물었다.
‘……! 맛있잖아?’
미식가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로 부드럽고 감칠맛 나는 군계란 맛이었다.
이무기는 알 하나를 게 눈 감추듯 순식간에 먹어치웠다.
그 모습을 보고 크리스티나가 휴, 하고 안도의 한숨을 흘렸다.
“입맛에 맞아서 다행이야. 레드 드래곤의 화염으로 구워진 것이라 특히 별미라고 들었지만, 혹시나 하고 걱정했거든.”
‘맛있어. 엄청 맛있어. 어떻게 이런 알이 있을 수가.’
이무기는 캽캽 소리를 내며 입 주변의 계란 부스러기까지 혀로 핥아 먹었다.
탱탱한 흰자 부분은 막상 입 안에 넣으면 푸딩처럼 부서져 녹았고, 노른자는 진한 고소함 속에 활력마저 느껴졌다.
게다가 드래곤의 화염으로 구워서인지 마력을 흡수할 수 있었고, 소금이 따로 필요 없을 정도로 적당히 간이 되어있었다.
“뀨우. 우웅!”
‘이거 진짜 맛있다!’
한번 먹기 시작하니 손을 멈출 수 없었다.
7화 해치웠나!
정신없이 먹다보니 벌써 세 번째 구운 계란을 집고 있었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보던 크리스티나가 상냥하게 말했다.
“후훗. 충분히 있으니 급히 먹지 말렴. 여기 우유도 마시면서 먹어야지? 아무리 해츨링의 위장이라 해도 조심하는 게 좋으니까.”
그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다지 속도가 줄어들지는 않았다.
워낙 부드럽게 잘 넘어가는 식감이기도 했고, 껍데기 까는 시간도 아까울 만큼 맛있었기 때문이었다.
‘응? 이건 왜 이리 딱딱해?’
그는 유난히 단단한 껍질을 가진 그 알을 뒤로 냉큼 넘기고, 껍질이 잘 까지는 다른 구운 계란을 탐했다.
입 안 가득 오물거리다가 우유를 마시니, 절로 꼴깍이면서 한 병을 비워버렸다.
워낙 거대한 알이었는데도 그는 대여섯 개를 비운 뒤에서야 뒤로 벌렁 드러누웠다.
‘끄윽. 배불러.’
안 그래도 통통한 배였지만, 지금은 빵빵하게 부풀어올라 있었다.
배가 너무 불러 숨 쉴 때마다 삐익 거리는 콧소리가 날 지경이었다.
크리스티나가 껍데기를 전부 치워주고 나서 계란 바구니를 요람 근처로 옮겨주었다.
“이렇게 잘 먹을 줄은 몰랐어. 아무래도 좀 더 얻어와야겠는걸.”
“뀨우! 뀨우!”
좋다며 발을 바동거리며 소리 내는 해츨링을 보며, 크리스티나가 기분 좋게 웃음을 흘렸다.
“그래. 말 나온 김에 다녀와야겠어. 쉬고 있으렴, 아가.”
“뀨우우.”
만족스럽게 자신의 배를 쓸며 이무기가 앞발을 흔들어 배웅했다.
‘답지 않게 과식이라니. 소화 시키려면 시간이 필요하겠어…….’
소화력이 좋은 편이라 탈이 날 일은 없었지만, 빵빵한 배 때문에 숨을 쉬기 힘드니 조금은 쉬어줘야 했다.
그는 요람에 누워 멍하니 숨을 고르다 눈을 감았다.
***
‘깜빡 졸았나.’
눈을 끔뻑이며 일어난 이무기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가 잠이 든 걸 확인하고 라이는 자신의 빛이 수면에 방해 되지 않도록 자리를 피한 모양이었다.
크리스티나도 라이도 없는 방은 무척 고요했다.
주위를 둘러보자 계란바구니가 눈에 들어왔다.
그는 입맛을 다시며 생각했다.
‘배가 많이 고프지는 않지만……하나만 더 먹을까?’
잘 구워진 때깔이 그를 유혹했다.
‘그래. 하나 더 먹는다고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니고.’
입맛을 다신 그가 등 근육에 힘을 주어 날개를 파닥거렸다.
몸집에 비해 작은 날개였지만 그의 몸을 띄우기에는 충분했다.
포르르 날아가 계란바구니 앞에 안착한 그가, 눈을 반짝이며 앞발로 계란 하나를 집어 들었다.
풍기는 훈제의 향기가 식욕을 자극했다.
지체할 이유가 없었다.
파삭. 껍데기를 깨고 입 안 가득 계란을 베어 물었다.
‘역시. 이 맛이지.’
계란 하나로 천국의 맛을 느끼게 하다니.
레드 드래곤이란 종족이 궁금해질 지경이었다.
‘이런 불 맛을 낼 수 있는 자들이라면, 최고의 요리 재능을 타고났을지도 모르겠군.’
하나만 더 먹자고 정한 게 무색하게도 자연스럽게 또 계란을 까먹다 보니 어느 새 마지막 하나만 남게 되었다.
‘흐음.’
유난히 크고 빛이 좋은 알이었다.
다른 알들과 달리 특이하게 연한 붉은빛을 띤 것이었는데, 가장 딱딱하여 이무기가 집어 던져도 깰 수 없던 알이었다.
‘결국 이것만 남게 되었군.’
“뀨.”
그 알을 노려보던 그가 알을 지지대 삼아 두 발로 일어났다.
‘어차피 한 번은 정면으로 마주해야 할 녀석이었어.’
이무기의 눈에서 은은한 마나의 기운이 느껴졌다.
‘이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이 껍질을 깨려면, 아무도 없는 지금이 기회야.’
수련을 통해 모은 심장의 마나와 단전의 기운이 작은 몸을 감싸며 고요히 힘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큐……후.”
심호흡을 하며 이무기가 양 발을 벌리고 차분히 정권지르기 자세를 잡았다.
두 발로 서는 것도 어려워했던 모습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안정된 폼이었다.
“퍄!”
‘핫!’
호흡과 기운이 완벽하게 일치된 순간, 그는 알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빡!
‘크흑!’
마력이 실린 지르기를 제대로 맞았는데도, 실금 하나 내지 못했다는 사실에 이무기가 분한 듯 눈을 찌푸렸다.
‘하긴, 이 정도로 깨질 거였으면 진작 깨졌어야지.’
그는 오른쪽 손을 펴 손날치기를 했다.
빠악!
‘이것도 안 된다고?’
어지간한 칼날보다 날카로웠을 그의 공격이 하나도 통하지 않았다.
오히려 날을 세워 알에 부딪힌 부분이 욱신거렸다.
심지어 자신의 마력을 무효화, 도리어 힘을 빼앗기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고작 구운 계란 주제에?’
이쯤 되니 오기가 생기고 있었다.
‘……내가 이렇게까지 하지는 않으려 했건만.’
오직 수련뿐이었던 그에게 전력을 다할 대상이 필요했던 것도 한 몫 했다.
‘단 한번. 내 모든 힘을 쏟아 부셔주마.’
조그마한 해츨링에게서 뿜어난다고는 믿을 수 없는 살기가 스멀스멀 피어났다.
마력이 충분한 음식들을 잔뜩 먹어 기운도 가득 차 있었다.
‘이번에야말로!’
그는 자신이 쌓아온 모든 것을 쏟아 부었다.
‘흐아아앗!’
“뀨아아아앗!”
이무기의 발바닥에 실린 무시무시한 기운이 알 표면에 쩍 붙었다.
‘파!(破)’
응축 된 기운을 보내 터트려 버리는 충격이 알 내부로 집중되었다.
알의 중심에서 터진 기운에 지진이라도 난 듯, 알이 드드득 소리를 내며 진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