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억!’
털썩.
모든 진기를 소진한 그가 바닥에 꿇어앉았다.
‘해치웠나……?’
숨을 헐떡이며 정신을 차린 그가 앞발에 닿아있는 알을 바라보았다.
투둑. 쩍.
성공이었다.
그가 힘을 보내는 방아쇠가 된 손바닥을 중심으로, 알 표면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해냈다! 역시 이 몸의 힘은 최강이지!’
균열이 점점 늘어났다.
이무기는 씨익 웃으며 주저앉은 채, 아빠다리를 하고 알을 다리 사이의 공간에 끼웠다.
‘이것을 견디다니. 고작 알이지만 대단하군.’
이무기가 고개를 흔들며, 써버린 기력을 보충하기 위해 계란껍데기를 벗기려 발 하나를 얹은 순간.
짜작!
“삐야악-!”
“뀨?”
‘응?’
알껍데기가 튀어 오르며, 하얀 새의 머리가 톡 튀어나와 이무기의 손가락에 부딪혔다.
“삐약. 삐약! 뺘뺘뺘뺘.”
“뀨……우?”
‘이게 뭐……?’
이무기는 반쯤 넋이 나가 있었다.
제 앞발에 부드러운 새하얀 솜털의 감촉이 부비작 거리며 비벼왔다.
“삐이! 뺘아!”
새는 하얀 얼굴을 들어 올리며 눈을 떴다.
흰 털에 박힌 노란 눈동자가 이무기의 붉은 눈과 마주쳤다.
‘새?’
껍데기가 좀 더 부서지며 조그마한 하얀 날개가 파닥거렸다.
“삐잇! 뺘악!”
‘이게 뭐야. 새가 왜 여기에 있어-!’
멍하니 새를 보던 그가 겨우 정신을 차렸다.
‘잠깐만…… 이게 왜 살아있는 건데? 구운 알이었잖아? 게다가 이 녀석한테 느껴지는 이 기운은 또 뭐고?’
새를 살펴본 이무기가 더욱 황당해서 입을 벌렸다.
‘불의 기운에, 내 힘까지 섞여 있잖아!’
어쩐지 계속 알을 부수기 위해 힘을 가할 때마다 무효화 시킨다고 느꼈는데, 그게 아니라 그의 힘을 죄다 흡수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분명 레드 드래곤의 불에 구워지지 않은 것도, 그 기운을 전부 흡수한 탓일게 분명했다.
‘그, 그럼 이제까지 쌓은 내 힘이 다 이놈한테……?’
털썩.
사실을 깨닫고 나니 허무함에 기운이 죄다 빠졌다.
앞발 하나를 옆으로 집고 늘어진 몸을 지탱하는 게 고작이었다.
‘아까워…… 진짜, 미친 듯이 아깝다.’
작은 몸이 분노로 부들부들 떨렸다.
그 동안 아기새는 알껍데기를 완전히 벗어나 반쯤 쓰러진 그에게 다가왔다.
“뺘. 뺘뺫.”
‘뭐라는 거야.’
퀭한 눈을 들어 새를 보니 하얀 병아리 같은 녀석이 눈이 마주치자 좋다고 이무기의 앞발 윗면에 부리를 부비작 거렸다.
“뺘아. 뺘아.”
이상하리만치 살갑게 다가와 몸을 기대는 병아리를 보니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설마 각인인가?’
어떤 생물은 태어나자마자 본 첫 번째 대상을 맹목적으로 어미라 여겨 따른다.
심지어 이무기의 힘을 흡수했으니, 동족이라 느껴도 이상하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신수로 태어나는 자들 중에서도 비슷한 특성을 지닌 자가 있었지.’
그는 병아리를 두고 자리에서 일어나 걸어보았다.
병아리가 당연한 듯 그를 쫑쫑 거리며 따라왔다.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원 모양을 그리든 간에 병아리는 가느다란 다리를 열심히 놀려 그를 쫒았다.
‘어이가 없군.’
공중에 한숨을 쉰 그가 고개를 흔들었다.
“뺘앗! 삐잇!”
하얗고 조그마한 날개를 파닥거리며 초롱초롱 빛나는 눈이 칭찬해 달라는 듯 파닥거렸다.
‘으으. 귀찮아.’
생각지도 못한 녀석 때문에 힘과 정신력을 전부 써버린 그로서는 휴식이 절실했다.
이무기는 작은 날개를 펴고 파닥이며 요람으로 날아갔다.
“뺘아아아! 뺙뺙! 뺘아앗!”
‘뭐야. 아직 날지는 못하나.’
애타게 뺙뺙 거리는 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잘됐군. 안 그래도 피곤해졌는데 무시하면 제가 알아서 하겠지.’
그는 무심히 베개 위에 얼굴을 대고 누웠다.
“뺘! 뺘아앗! 뺘…….”
‘그렇지.’
점차 기운 없는 울음소리로 변하는 것을 들으니 양심을 찔렸으나, 그는 베개에 귀를 눌러 소리를 최대한 막았다.
그러나.
“뺘……. 뺘앗. 뺘……우. 삐루루루.”
소리가 점점 구슬퍼지더니 종국에는 훌쩍이는 흐느낌으로 변했다.
설마 하며 슬쩍 돌아보니 흰 병아리가 어미 잃은 아이처럼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고 있었다.
‘우냐! 우냐고!’
병아리는 요람 밖으로 이무기의 얼굴이 보이자 조그마한 날개를 파닥 거리며 제자리에서 폴짝거렸다.
“삐이! 뺘뺘뺫!”
그로서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짜증과 양심의 가책을 동시에 느끼며 그가 결국 벌떡 일어났다.
‘이 새 새끼를 진짜!’
그가 요람 난간에 발을 대고 험악한 표정으로 병아리를 노려보았다.
한편, 이 상황을 모르는 크리스티나는 조바심을 내며 자신의 레어로 돌아왔다.
‘생각보다 귀가가 늦어졌네.’
그녀의 왼쪽 팔목에 걸쳐진 바구니에는 갓 구워진 따끈따끈한 불사조의 알들이 가득했다.
‘최대한 빨리 가져온다고 했는데…… 혹시 배고파하고 있으면 어쩌지?’
우유가 없다는 말에 드러난 표정을 다시 떠올리며 크리스티나는 쿡, 하고 웃었다.
충격을 받은 얼굴이 생각보다 귀여웠고, 부루퉁해졌던 얼굴도 웃겼기 때문이다.
‘귀여웠지.’
그러나 이내 혼자 있을 아이에 대한 걱정에 잡생각을 지워버렸다.
“아가.”
이무기의 방에 들어온 그녀는 고로롱거리는 소리를 듣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주변을 보니 깨진 알껍데기들이 널려져있었다.
‘이런. 기다리다 남은 알들을 다 먹고 잠든 모양이네.’
크리스티나는 이무기에게 다가가다가, 그의 머리 위에 하얀 털 뭉치가 동그랗게 웅크리고 있는 것을 보고 고개를 기울였다.
“저건?”
나갈 때는 없던 흰털뭉치였다.
미간을 살짝 좁힌 채 잠들어 있는 해츨링과, 머리 위에 한 가닥 검은 깃털이 튀어나와있는 하얀 병아리가 번갈아가며 코골이를 했다.
“삐로로로로로.”
“쿠……우.”
이들은 배를 오르락내리락 하며 세상모르고 몸을 옹송그리고 자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마음이 녹을 듯한 모습이었다.
8화 구운 계란과 불사조
크리스티나는 깨진 알 껍질과 병아리를 번갈아 보고는 묘한 탄성을 터트렸다.
‘설마 불사조의 알이……?’
크리스티나가 잠든 새의 근처에 조심스럽게 손을 가져가보았다.
은은하게 느껴지는 순수한 불의 마력. 거기에 어둠의 힘이 감돌고 있었다.
그 순간, 깨어난 병아리가 눈을 번쩍 떴다.
화르륵.
가느다란 까만 다리로 베개 위에 선 하얀 새는, 몸에 불을 두르고 노란 눈에 선명한 적의를 담았다.
이무기에게 보였던 천진한 아기새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새는 침입자를 본 듯 솜털을 세우고, 날 선 경계의 눈초리로 크리스티나를 노려보았다.
“삐이이……!”
하얀 몸에서 뜨거운 열과 빛이 나기 시작했다.
‘제법이구나.’
크리스티나가 더 이상 손을 뻗지 않고 살짝 물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드래곤의 기운을 모를 리가 없건만, 갓 태어난 불사조의 새끼가 내게 이만큼 맞설 수 있다니.’
신의 심판.
신벌의 불꽃.
신의 정원을 오가는 새라 불리는 신성한 불의 새.
드래곤보다 희귀한, 한 세대에 하나만 존재한다는 불사조였다.
‘한데, 이번 대의 불사조는 순수한 불의 힘이 아닌 어둠을 두른 아이로구나.’
그녀는 세상 모르고 잠들어 있는 까만 해츨링을 바라보았다.
‘분명 이 아이의 영향이 틀림없어.’
이 세계에서 한번 사라졌던 블랙드래곤의 아이가 태어나고, 신의 새라 불리 우는 불사조의 새끼가 그를 수호하는 모습.
운명의 한 부분을 엿보는 기분이었다.
‘이상한 기분이야. 마치, 예정된 흐름의 여울을 보는 것 같구나.’
그 묘한 신비로움에 잠겨들어 있을 때, 해츨링이 끄응, 하고 졸음에 겨운 눈을 떴다.
그는 크리스티나와 대치해 빛을 태우는 하얀 새를 번갈아 보더니 손으로 툭 건드렸다.
“뀨.”
‘시끄러워.’
“삐야! 삐루루루.”
힘없이 옆으로 데구르르 굴러 떨어지며 구슬프게 뺘뺘 거리는 불사조새끼는, 어느 새 빛이라고는 없는 하얀 털뭉치로 돌아와 있었다.
“뀨. 뀨우.”
‘크리스티나에게 함부로 굴지 마. 내 은인이니까.’
“삐뺘뺘……. 뺘아.”
콧김을 뿜으며 말하는 것을 알아들은 듯, 하얀 병아리가 머리 위에 안테나처럼 달린 검은 깃을 한번 바짝 세웠다가 이무기의 눈치를 보며 느슨하게 늘어뜨렸다.
얌전히 눈을 반짝이는 모습에 이무기가 고개를 한번 끄덕였다.
“뀨뀨.”
‘잘했다.’
상과 벌은 확실해야 하는 법.
이무기가 고개를 끄덕이며 하얀 병아리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뺘뺘! 뺘뺘아-!”
금세 기분이 좋아진 병아리가 머리를 부벼왔다.
그러더니 냉큼 해츨링의 무릎 위로 올라가 안착했다.
마치 더 칭찬해 달라는 듯이.
“푸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