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티나가 살며시 쥔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었다.
‘아이가 아이를 안고 있네. 귀여워라.’
이무기 역시 제 꼴이 어떨지 짐작했지만, 함부로 밀어냈다가 새가 또 펑펑 울기라도 할까봐 일단 두기로 했다.
문득 크리스티나를 바라본 이무기는 의문을 풀어보고자 새를 검지로 가리키며 물었다.
“뀨. 뀨뀨?”
‘이 새 뭐야? 왜 구운 계란에서 새가 튀어 나오냐고.’
비록 말이 통하는 건 아니었지만 그 제스처와 눈빛을 본 크리스티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게 물어보는 거니? 아무래도 이 아이가 이번 대의 새로운 불사조로 태어난 모양이구나.”
까만 해츨링이 고개를 갸우뚱 하고 꺾으며 의문을 표했다.
크리스티나가 말했다.
“불사조는 신의 새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귀한 새란다. 한 세대에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지. 살아있던 불사조가 죽으면, 최소 100년 안에 다른 불사조가 다시 나타난다고 해.”
새에 대한 추론을 이해한 이무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이상함을 느낀 크리스티나가 말을 멈추었다.
“……. 이상한 일이구나. 분명, 이번대의 불사조는 아직 살아있을 텐데.”
크리스티나의 중얼거림은 아주 작았지만, 이무기 역시 똑똑히 들었다.
그가 눈을 깜빡이며 크리스티나를 바라보고 있는 동안, 그녀도 생각에 잠겼다.
‘세계에 이변이 생긴 걸까. 아니면 세상이 바뀌려는 징조인 걸까.’
좋은 방향일지, 나쁜 징조일지 알 수 없었다.
불사조가 어둠을 가호한다.
처음으로 맞닥뜨린 이 사실이 예사롭지 않음을 짐작할 뿐이다.
‘아직은 어린 불사조와 해츨링일 뿐이라지만……역시, 그냥 넘어갈 일은 아니야.’
고민하던 그녀는 이 일에 대해 조력을 구할 수 있는 자를 떠올렸다.
“라이.”
크리스티나의 손짓에 하얀 빛의 정령인 라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ㅇㅅㅇ!]
라이는 자신을 불러주자 기쁜지, 자잘한 빛무리를 흩뿌리며 크리스티나의 주변을 맴돌았다. 그러고는 그녀가 내민 손 위에 살며시 안착했다.
크리스티나가 라이를 보고 부드럽게 웃으며 용건을 말했다.
“레드 드래곤의 장로인 파시야스를 만나고 와야겠구나.”
파시야스.
레드 드래곤 해츨링의 아비이자, 현 레드 드래곤의 장로였다.
이무기는 크리스티나가 외출한다는 말에 기대감이 올라왔고, 라이는 작게 몸을 흔들며 빛무리를 반짝였다.
“불의 권능을 가진 레드 드래곤의 장로이기도 하고, 마침 해츨링을 기르고 있으니 저 아이에 대해 의논해 보고 올게.”
크리스티나의 말을 들은 라이가 빛의 구 위에 표정을 띄웠다.
[( *`ω´)ゞ]
“고마워, 라이.”
크리스티나의 레어는 드래곤 로드조차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불가침 구역이었다.
즉, 외부의 습격으로 불상사가 생길 일이 생길 가능성은 전혀 없다는 뜻이었다.
“아가야, 잘 있을 수 있지?”
“뀨!”
힘차게 대답하는 아이를 보며 크리스티나가 피식 웃었다.
‘라이와 둘이 두는 것이 걱정되지만, 왜일까. 이 아이는 괜찮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해츨링임에도 그녀가 봐 온 아이는 어딘가 의젓한 구석이 있었다.
‘원래 블랙 드래곤의 해츨링이 그런 것일까?’
크리스티나 자신 역시 영특하다 듣는 수재였으며, 또래에 비해 빨리 철이 든 편이었다.
하지만 그건 크리스티나를 가르친 부모와 스승의 영향이 크게 작용했다.
타고난 자질과 마음가짐. 환경에서 겪은 경험들. 고민의 시간 속에서 맺은 결실이었다.
‘저 아이에게는 그런 경험이 아직 없을 텐데도, 자기만의 가치관이 있는 것처럼 보였어.’
아이는 알에서 깨어난 후 본능대로 울고 조르고 떼쓰는 법이 없었다.
제법 복잡한 소통이 가능했고, 해도 되는 행동과 안 되는 행동의 기준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원래라면 아이에게서 가질 수 없는 묘한 믿음을 심어주었다.
‘어린 불사조가 나를 향해 적개심을 드러냈을 때 바로 만류하기도 했지. 게다가. 마나를 다루는 것은 또 어떻고.’
하루가 다르게 아이의 주변을 감싼 마나는 안정적으로 변했다.
능수능란하게 마나를 다루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기가 찰 지경이었다.
‘아무리 드래곤이 타고난 마법의 종족이라지만. 해츨링 수준이라기엔 너무 노련했어.’
마나와 드래곤의 관계는 마치 장난감이나, 찰흙이 주어진 아이와 같았다.
마음대로 다룰 것이 주어진 어린 해츨링은 제 마음대로 마나를 다룬다.
그러다 보니 마력을 제 마음대로 단순히 휘두르다보니 자질에 따라 폭탄을 터트리기도, 바람 칼날을 날리기도 하며 이런 저런 사고를 치게 마련이었다.
그런 해츨링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성체 드래곤인 보호룡이나 스승이 꼭 있어주는 것이 당연했다.
한데, 눈앞의 해츨링은 달랐다.
활용하고자 하는 대로 정갈하고, 복잡하게 빚어서 쓸 줄 알았다.
‘내가 데리고 있는 아이가, 평범한 천재는 아닐 거라 생각했지만.’
기특하고, 착하고 귀여운 아이.
그리고 평범한 해츨링이라기에는 너무나 뛰어난 아이였다.
그녀는 이젠 없는 먼 옛날의 스승을 떠올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저에게 맡겨지기 전에 이 아이에게 무언가 해 두신 건가요. 스승님.’
이제는 물어도 답을 들을 수 없는 이를 생각하며 그녀는 잠시 하늘을 바라보았다.
골드 드래곤의 장로가 된 지금도 생각나는 그녀의 스승.
하지만 지금은 그 스승 역할을 자신이 맡게 된 셈이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크리스티나는 피식 웃음을 그렸다.
‘그래. 지금은 내가 그 아이의 보호자이자, 스승이나 마찬가지야.’
그녀가 의아한 표정으로 자신을 보는 라이의 빛을 다른 손으로 쓰다듬었다.
“그러고 보니 파시야스의 아이가 굉장히 능력 있는 천재라 하니, 어쩌면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네.”
가볍게 손을 떼며 그녀는 라이에게 속삭였다.
“다녀올 때까지 아이들을 잘 부탁해. 그럴 일 없을 거라 생각하지만, 무슨 일 있다면 바로 알려주렴.”
[٩(•̀ᴗ•́ )و]
순수한 정령의 응원을 받은 크리스티나가 살며시 웃음을 띄웠다.
크리스티나는 이무기에게도 당부했다.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야. 라이와 꼭 같이 있으렴.”
“뀨.”
의아하게 눈을 끔뻑이던 이무기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녀는 반질거리는 해츨링의 이마에 가볍게 입 맞추어 축복을 기원했다.
“뀨욱!?”
파바바밧!
“뺘! 뺘앗!”
깜짝 놀라 냉큼 이마를 문지르는 해츨링의 귀여운 모습에 절로 마음이 녹는 기분이었다.
“최대한 빨리 다녀올게.”
요람에 다시 잘 눕혀준 뒤 아쉬운 시선으로 보던 크리스티나가 자리를 떴다.
‘갔지……?’
이무기는 벌떡 일어나 두 손을 꽉 쥐고는 한 손을 천장으로 치켜들었다.
‘드디어 자유다!’
부모의 감시를 벗어난 아이들 같은 반응이었다만, 천년 가까이 묵은 그로서는 온종일 요람 속에 있는 건 그만큼 고역이었다.
‘이런 시간을 얼마나 원했던지! 크리스티나가 없으면 이 방을 나가는 것도 어려웠다고. 갑갑해 죽는 줄 알았네.’
차라리 수련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자유로운 환경이었다면 그런대로 괜찮았을 것을.
그는 갑갑하게 지냈던 최근을 떠올렸다.
‘드러나지 않는 수련은 꾸준히 할 수 있었지만, 제약이 너무 많았다고.’
크리스티나로서는 보호자로 붙여준 정령이지만, 그에겐 귀찮은 감시자였다.
‘이제 요람 주변을 다니는 정도는 이상하지 않겠지.’
그는 날개를 펴고 조심스럽게 요람 아래로 내려와 네 발로 섰다.
슬쩍 눈치를 보니 라이는 별 말 없이 조용히 따라올 뿐이었다.
‘좋아. 운이 따라주는군.’
그는 마음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뺘?”
하얀 아기새가 침대보에 새 발자국을 찍으며, 그를 놓칠 세라 급히 달려왔다.
“삐약!”
폴짝!
“뀨욱.”
아기새는 나는 건지 굴러 떨어지는 건지 모르게 뛰어내려 냉큼 이무기의 머리 위에 착지했다.
그는 머리를 흔들어 떨어뜨릴까 하다가, 무게가 아주 가벼우니 적당히 무시하기로 마음먹었다.
새를 이고 걷자니 라이 역시 공중을 날며 그들을 따라갔다.
그리고 문 앞에 선 이무기가 제 머리 위에 있는 손잡이를 노려보았다.
‘뛰면 잡을 수 있을 듯한데. 열리는지 시도해 볼까?’
막대 손잡이를 노려보며 생각에 잠긴 그는 숨을 삼키고 앞 다리를 들어올렸다.
이어, 짧은 뒷다리에 힘을 주어 힘 있게 뛰어올랐다.
터덥
‘잡았다.’
잡힌 문손잡이에 체중이 실리자 문고리가 아래로 기울었다.
철컥
잠금이 해제되는 소리와 동시에 이무기가 손을 놨다.
9화 여긴 어디지?
방문은 거부감 없이 열렸다.
‘됐군.’
이무기는 방 밖을 나가 주변을 둘러보려 걷기 시작했다.
복도를 아장아장 걷는 해츨링 주변을 빛의 정령 라이가 한 바퀴 돌았다.
염려스러워 보였지만, 그렇다고 방 밖으로 돌아다니는 그를 제지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이동 마법 없이는 이 넓은 레어의 반의반도 다 둘러 볼 수 없기 때문이었다.
라이는 자신이 돌아가는 길 안내만 잘하면, 어느 곳보다 안전한 레어 안이기에 괜찮으리라 여겼다.
더군다나 라이가 봐 온 이무기는 배가 고프면 유난히 힘들어 하는 편이었고, 혼자 뭔가 하다가도 배고파지면 스스로 계란을 까먹을 정도로 똑똑했다.
간간히 빛을 깜빡이며 지금이라도 돌아가자고 신호했지만, 해츨링은 정령의 빛에 아랑곳하지 않고 쭉쭉 나아갔다.
그러나, 그 역시 아장 걸음으로는 레어의 반도 둘러볼 수 없다는 점을 인정했다.
‘이렇게 움직이다간 얼마 둘러보지도 못하겠어.’
그렇다고 또 언제 이런 기회가 올지 모르는데, 얌전히 방에 들어가 있는다?
그건 그의 성미에 맞지 않았다.
‘역시…… 이동 마법이 없으면 불편해.’
지금 그의 꼴은 크리스티나의 도움 없이는 이동조차 하지 못하는, 영락없이 ‘아가’의 모양새였다.
이무기는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대비해 두길 잘했군.’
웃으며 드러난 해츨링의 유치가 마치 악동처럼 보였다.
‘계속 봐뒀지. 크리스티나가 이동 마법을 쓸 때마다 느껴지는 힘의 흐름을.’
우뚝. 이무기가 제자리에 서서 숨을 골랐다.
‘<텔레포테이션>이라 했지.’
크리스티나의 마나 운영을 떠올린 그는 제 손을 들어 보았다.
직접 해 본 적 없는 마법이지만 몇 번이나 시전하는 것을 보았고, 이미 경험 해본 마법이었다.
‘이런 감각, 이었지.’
우웅
몸 안에서 움직이는 자신의 마나가 느껴졌다.
주변의 마나가 잘 훈련받은 병사들처럼 호응했다.
레어 전체의 마나를 전부 감각하는 느낌은, 초월적인 존재가 가진 권능을 부리는 것과 같았다.
‘가능해.’
그는 한쪽 입 꼬리를 올려 웃은 그대로 눈을 빛냈다.
“뀨후후.”
[ㅇㅁㅇ;]
라이는 그 얼굴을 마주하고 왠지 모를 불길함을 느껴 흠칫했다.
순수한 해츨링의 귀여움 속에서 은은하게 풍기는 사악함이 웬 말인가.
한편 이무기는, 자신이 고른 말을 어디에 둘지 고민하는 책사처럼 눈을 빛냈다.
어느 곳으로 움직일지 고를 수 있는, 마나로 구성된 주변 영역이 느껴졌다.
후우. 숨을 내쉰 이무기가 가만히 눈을 감았다.
“뀨뀨귝!”
‘텔레포테이션.’
슉!
그 순간, 그들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
쿠당탕!
‘아오, 씨…!’
공중에서 갑자기 나타난 이들은 각기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다.
이무기는 하필 등짝부터 떨어져 구른 덕에 낙법 자세를 갖추지 못해 데굴거렸고, 라이는 공중에 떠 있었지만 상황파악을 하지 못해 떠 있기만 했다.
아기새는 놀란 듯 자그마한 날개를 파닥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