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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10/242)

“뺘뺫.”

아직 제대로 날지 못하는 하얀 병아리는 이내, 엎어져 늘어진 이무기의 머리 위에 조그마한 흰 솜 덩어리처럼 앉았다.

머리에 새끼 새를 얹게 된 꼴이었다.

‘뭐야. 이 새 새끼는 왜 이렇게 균형을 잘 잡고 앉아있어?’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속으로 삼킨 그가 입가에 붙은 풀을 퉤퉤 뱉어냈다.

툭툭 먼지를 털어내며 몸을 일으킨 그가 눈앞의 하얀 구체를 바라보았다.

‘이 반딧불이 같은 녀석도 일단 데려오기는 했는데.’

[ㅇㅁㅇ;;;;;!!]

라이에게 이 상황은 상상도 못 한 것이었다.

해츨링이 고위 마법 중 하나인 텔레포테이션을 정확하게 사용했을 뿐 아니라, 레어 밖으로 완전히 나와 버린 것이다.

“뀨우뀩.”

‘야. 진정해.’

[ㅇㅁㅇ!!;;]

라이는 당황한 기색으로 주변을 마구 날아다녔다.

안타깝게도 이무기는 누군가를 달래는 것에 능숙하지 않았던지라, 한쪽 볼을 긁으며 잠시 지켜보았다.

‘크리스티나는 쉽게 사용하던데, 이게 그렇게 놀라울 일인가?’

아직 어린 해츨링인 그가 가르쳐주지도 않은 이동 마법을 쓴 것은 생각보다 더 놀랄 일이었다.

생각해보니, 평범한 해츨링이 이동마법을 쓰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라면 이런 반딧불이 하나만 붙였을 것 같지 않았다.

‘쳇. 이미 사용한 걸 어떻게 할 수도 없고.’

이미 끝난 일에 미련을 두는 것보다는,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는 것이 더 좋은 법이라 여긴 그가 상황 파악을 위해 주변을 돌아보았다.

“뀨우…….”

‘여긴 어디지?’

크리스티나의 레어가 있는 방향은 확실히 보였다.

나무에 다 가려지지 앉는 지붕 부분만 보였지만, 금빛의 반투명한 돔의 형태로 이루어져 있었다.

레어와 그리 멀지 않음을 느낀 이무기는, 주변을 둘러보기 위해 걷기로 했다.

라이는 어쩔 줄 몰라 하며 따라오고, 어린 새는 이무기의 머리 위에 장식처럼 딱 붙어 주위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자박자박.

싱그러운 꽃과 울창한 나무가 제멋대로 자랐지만, 서로 침범하지 않으며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그가 있던 세계와 닮은 듯, 다른 것들이 가득했다.

울창한 밀림처럼 생겼으나 정원 같은 질서감이 있었다.

본래 풀 한포기 제대로 자라지 않은 곳에 살던 이무기에겐 생소한 풍경이었다.

‘레어 밖은 이런 곳이었나.’

어디를 가든 살아 숨 쉬는 것들이 존재했다. 풀, 나무, 작은 짐승, 새와 나비.

이무기는 천천히 숨을 들이켰다 느리게 내쉬었다.

‘이 대지와 레어가 하나의 자연처럼 이어져 있었군.’

레어는 거대한 마나의 중심부.

즉, 심장 같은 곳이었고, 주변의 대지는 레어에서 마나를 받아 생명을 키워내고 있었다.

‘대충은 알겠다.’

파악이 된 이무기가 뻐근한 몸을 펴기 위해 기지개를 켜자, 라이는 어쩔 줄 몰라 하며 그를 바라보았다.

“뺘아-!”

이무기 머리 위에 있던 아기새가 날개를 펼치고 기운차게 포효했다.

바깥 공기의 상쾌함을 만끽하며 라이를 돌아보고 기분 좋은 듯 지저귀었다.

“뺘앗. 뺫.”

[ㅇㅅㅇ!]

그 순수한 울음소리를 듣고 라이는 정신을 차렸다.

이들은 모처럼 크리스티나가 호의를 가진 존재들.

또, 크리스티나가 직접 라이에게 안전을 부탁한 존재들 이었다.

라이는 그들을 잘 보호하고 지켜주고 싶었다.

비록 이무기에게 느껴지는 근원은 빛의 정령인 라이가 거부감을 갖는 종류의 것이었지만, 크리스티나가 소중히 여기는 자들이었다.

마음을 다 잡은 라이는 포근한 빛을 흘리며 아기새 주변을 부드럽게 돌았다.

그리곤 이무기와 아기새 앞으로 날아와 앞에서 은은하게 빛을 뿌렸다.

[ㅇㅅㅇ~]

라이는 레어가 있는 방향으로 길 안내를 하기 위해 앞으로 나섰다.

‘도깨비불 같은 녀석, 이 방향으로 가자고 하는 것 같은데.’

이무기는 라이를 슥 보곤 정령의 인도대로 걷기 시작했다.

걱정하는 눈치면서도, 라이는 그들이 최대한 안전한 길로 다닐 수 있도록 안내했다.

그를 가만 보던 하얀 아기새가 한 가닥 튀어나온 검은 색 깃을 흔들며, 이무기에게 의문스러운 울음소리를 냈다.

“뺘뱟. 뺘?”

이무기는 감으로 ‘따라가도 괜찮아?’라고 묻는 새의 의중을 읽고 고개를 끄덕였다.

“뀨우. 뀨.”

“뺙.”

새는 간결하게 대답하고는 얌전해 졌다.

그는 순순히 라이의 길 안내를 따라주며 생각했다.

‘애초에 작정하고 두고 올 생각이었으면 이동 마법을 쓸 때 라이를 빼고 왔지.’

이 외출에 문제가 생기면 앞으로 그의 행동거지 하나하나에 제약이 걸릴 게 뻔했다.

그러니 밖에 나간다 해도 라이의 안내를 따라 제대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었다.

이동 마법을 쓸 정도의 능력이 있지만, 함부로 혼자 멀리 나가지도 않고 자기통제도 잘 되는 똑똑한 해츨링 정도의 모습을 보인다면 딱 좋았다.

‘크리스티나는 능력이 있는 자다. 거둔 아이가 기준 이상의 재능을 가졌다고 판단하면, 오히려 그 방향으로 능력을 키우게 만들 터.’

다행히도, 크리스티나는 진심으로 이무기가 잘 되기를 바라주는 듯하니 그 점을 노리면 충분히 가능해보였다.

겸사겸사 답답함 해소와 레어 주변에 대한 상황 파악까지 할 수 있으니, 이대로 잘 귀가만 하면 완벽했다.

‘너무 똑똑하게 대처해서 의심을 살까 봐 걱정이군.’

순조로웠다.

하지만 모든 일이 생각대로 흘러가지는 않았다.

예를 들면, 귀가하려다 갑자기 죽음의 위기를 맞이할 수도 있는 법이다.

“뀨?”

‘잠깐만. 이게 뭐야.’

숲을 걷던 이무기의 눈에 띈 풀은, 유난히 쌉싸름하면서도 독특한 향.

산삼, 혹은 고려인삼으로 불리는 그것이었다.

그것도 하늘이 내린 씨라 불리는 천종(天種)이었다!

눈을 크게 뜬 이무기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산삼을 살펴보았다.

‘……굉장하군. 영산에서 자라난 녀석답게 무척 영험해. 기운이 달라.’

거듭 감탄사만 나왔다.

‘이걸 먹으면 기력을 찾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번뜩이는 생각에 그의 눈이 깜빡였다.

침을 삼킨 그가 약초에 손을 뻗은 순간.

[ (゚Д゚;≡;゚д゚) ]

라이가 기겁이라도 한 듯이 그의 손앞을 가로막곤 빛으로 표정을 띄웠다.

‘이 반딧불 녀석이?’

이무기의 표정이 와락 구겨졌다.

심기가 불편한 것을 눈치챈 아기새가 파드득 날아올랐다.

[ (゚Д゚;≡;゚д゚)! ]

라이가 그의 손을 제지하려는 듯이 어지럽게 맴돌았다.

빛을 번쩍 거리기도 하고, 눈앞에서 X 자로 빠르게 움직이기도 했다.

이무기가 양 손으로 잡아내려고 휘적거렸지만, 도저히 잡을 수가 없었다.

‘이 도깨비 불 같은 놈이, 왜 이렇게 빨라?’

무시하고 약초로 손을 뻗자, 그의 얼굴 앞에서 마구 왔다 갔다 하며 빛으로 표정을 띄웠다.

‘아오. 귀찮아.’

툭, 이무기가 손으로 라이를 쳐내자 빛의 구가 ( ˃̣̣̥᷄⌓˂̣̣̥᷅ ) 하는 얼굴로 재차 날아들었다.

동시에 아기새가 기회를 노린 듯, 이무기의 머리를 딛고 뛰어내려 라이에게 몸통 째로 부딪혔다.

“뺘야!”

‘좋아. 잘했어!’

이무기는 라이가 더 방해할 세라 단숨에 약초를 뽑았다.

그러곤 누가 제지할 새도 없이 한차례 흙을 훅 털어선 입안에 욱여넣었다.

와작!

흙 맛이 느껴졌지만 일단 먹어버리면 귀찮은 도깨비불 녀석도 포기하겠지, 싶어 연속으로 우적우적 씹어 댔다.

꿀꺽.

‘으. 맛없군.’

하지만 라이가 방해할 수 없으리라 확신한 그가, 의기양양하게 돌아보려던 순간.

-끄으, 끄애애애!

“……꾸으?”

반쯤 남은 약초에서 쨍한 비명 소리가 귀 고막을 터트릴 것처럼 터져 나왔다.

동시에 속이 울렁거리며 머리가 핑 돌았다.

그는 지독한 어지럼증이 올라오는 것을 느끼며 쥐었던 약초를 떨어뜨렸다.

“끄엑. 켁. 케헥!”

“삐삐삐삐! 뺘악! 뺘아악?”

화들짝 놀란 아기새가 당황하여 달려왔고, 라이는 우왕좌왕 하며 어찌할 줄 몰라 했다.

-끼에에에! 꺄아아아아아아!

땅에 떨어진 약초 뿌리는 점점 더 미친 듯이 울부짖었고, 그는 몸을 가누지 못하고 비틀거렸다.

‘젠장. 내가 아는 천종이 아니었나?’

세상이 어지러이 돌기 시작했다.

10화 뽑긴 뽑았는데

제 손으로 귀를 막아도 음파가 몸을 헤집어 댔다.

기혈이 뒤틀리는 기분이었다.

“……카학!”

뭔가 잘못되었다.

그는 먹은 것을 토해내려 했지만 나오지 않았다.

그가 뽑은 것은 산삼이 아니라, 뽑으면 비명을 지르며 그 괴성을 들은 자를 죽게 만드는 <만드라고라>였다.

영약이기는 하나, 얻기 위해선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약초인 것이다.

이를 알고 있던 빛의 정령 라이는 어찌 할 바를 모르고 맴을 돌았다.

[ ( ˃̣̣̥᷄⌓˂̣̣̥᷅ )!!! ]

라이는 온 몸으로 ‘도와줘’를 외쳤다.

정령의 안타까운 호소에 주변의 풀들과 멀리 있는 동물들이 잠시 돌아보았으나, 만드라고라의 비명을 덮을 수 있는 존재는 없었다.

“……으윽.”

이무기가 이대로 끝인가, 싶은 기분으로 밭은 숨을 토하며 쓰러진 순간.

휘오오오오

쏴아아아

바람이 불었다.

-끼에에에에…에에에…….

바람은 괴성을 지르는 만드라고라 주변을 공기의 벽으로 차단했다.

동시에 쓰러진 이무기를 바람의 결계로 감싸 보호했다.

조여드는 공기압 속에서 만드라고라는 진공 상태에 놓였다.

비명 소리가 약해지기 시작했다.

완전한 침묵 후 남은 것은 조용한 바람 소리뿐이었다.

갑자기 주변의 공기가 일시에 고요해졌다.

사브작, 하고 가볍게 풀 밟히는 소리가 나고.

[ㅇㅁㅇ!]

“뺘……악!”

놀란 라이와 눈물이 젖어 눈동자가 반들거리는 아기새가, 녹빛 머리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앞머리에 그늘 진 녹음의 눈은 텅 빈 것처럼 고요했다.

모자에 달린 작은 털방울과 장식처럼 달린 새의 깃털이 함께 흔들린다.

어두운 검은 숲처럼 선 그는 크리스티나의 레어에서 유난히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

이무기를 바라본 그는 말없이 발로 뒹굴렸다.

“켁. 케헥.”

그런 다음 하늘을 보고 눕혀진 이무기에게, 품에서 동그란 환을 꺼내 입 안에 쏙 밀어 넣었다.

씹어 삼키지도 않았는데 젤 같은 것이 이무기의 입 안에서 물처럼 녹더니, 목 안으로 주르륵 넘어갔다.

고통이 덜어지고, 정신이 든 이무기가 그를 올려다보았다.

“뀨……우.”

‘누구……?’

“…….”

이무기를 위기에서 구한 그는 말없이 몸을 돌렸다.

어느 새 존재감이 사라진 것을 느낀 이무기가 기운 없이 늘어졌다.

식은땀이 흘렀지만, 몸은 서서히 회복해 가고 있었다.

***

한편, 크리스티나는 거대한 레드 드래곤인 파시야스와 마주하고 있었다.

“오랜만이에요. 파시야스.”

금빛 눈을 가진 붉은 몸체가 거대한 종유석 동굴을 꽉 메웠다.

[크리스티나인가.]

직접 만나고 이야기해야 할 사안이라 하여 자리를 마련했지만, 용건을 모르는 상태였다.

레드 드래곤의 장로인 그가 어떤 사안인지조차 알려주지 않는 이에게 알현을 허락해 준 것은, 크리스티나가 골드 드래곤의 장로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못내 탐탁지 않은 부분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덕분의 레드 드래곤의 장로, 파시야스의 태도는 다소 방만한 면이 있었다.

“들어보지.”

쿵.

종류석들이 솟아있는 동굴은 크고 아름다웠지만, 드래곤의 본체를 둘이나 품기에는 좁은 곳이었다.

그를 알고 있던 크리스티나는 본체화 하지 않고 파시야스의 앞에 솟은 바위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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