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건 리즈에의……?’
차분히 주변을 살핀 크리스티나는 잔향처럼 남은 리즈에의 바람을 느꼈다.
‘아직 어리지만 그린 드래곤 중, 회복 관련된 영역에서 가장 뛰어난 아이였지.’
크리스티나는 한숨을 쉬었다. 안도와 동시에 난감함을 느낀 탓이었다.
‘그래…… 리즈에가 다녀갔구나. 블랙 드래곤 해츨링의 탄생을 로드 이샤가 알아챘어.’
최대한 오래 감추어두려 했으나, 이샤의 편인 리즈에가 알았다면 드래곤 로드 역시 알아챘다고 봐야했다.
‘덕분에 블랙 드래곤의 해츨링이 생명을 구한 셈이라니…… 이걸 다행이라 해야 할까.’
당장은 다행한 일이었으나, 크리스티나는 스스로를 탓했다.
‘내 실수야. 레어에서 벗어나지 못할 테니 라이만으로도 괜찮을 거라 여겼어.’
이동 마법은 본래 시공간 영역에 걸쳐있는 마법.
실패 시 공간과 공간 사이에 끼여 돌아올 수 없거나, 몸의 일부만 이동이 되는 등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는 마법이기도 했다.
혼자 처음 시도해 볼 만한 마법이 아니었다.
‘설마, 이동 마법을 시도 해 성공하고 레어 밖으로 나올 줄이야.’
아직 완벽한 성체는 아니지만 텔레포테이션을 구사할 담력과 실력을 가졌다는 점은 기특했다.
그 결과가 어처구니없기는 했지만.
‘그렇게 나와서 한 일이 만드라고라를 생으로 씹어 먹는 거라니.’
다른 과실이나 약재도 아니고 하필이면 아직 어린 해츨링에게는 독일 수 있는 약초를 골라내다니.
축 늘어져 켁켁 거리는 아이는 어른스럽고 얌전해 보였지만, 분명 굉장한 사고뭉치가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때였다.
“……꾸,윽. 켁.”
겨우 정신을 차린 이무기가 눈을 끔뻑이며 잔기침을 해대었다.
“아가야, 정말……. 이게 무슨 일이니.”
정령과 크리스티나의 표정을 본 이무기가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다.
그녀는 말문이 막힌 한편, 이무기가 죽을 뻔한 짓을 했다는 것에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
‘무모한 일에 손대지 않도록 더 주의했어야 했어.’
스스로의 안이함이 아이를 죽일 뻔했다는 사실이 목 안을 껄끄럽게 메마르게 만들었다.
그러면서도 아이의 몸이 편하도록 신경 써 안아 주는 상냥함을 잃지 않았다.
몸이 만신창이였지만 이무기 역시 그녀의 창백하게 질린 낯빛을 보고 실수했음을 알았다.
‘아무래도 정말 미안한 짓을 해버린 거 같은데.’
그래서일까.
이무기는 신경 써 주는 그녀에게 겸연쩍어 차마 시선을 맞추지 못했다.
“뀨우……뀨.”
‘멋대로 행동해서 미안하다.’
본래는 고개를 숙여 사과할 생각이었다.
한데 크리스티나와의 위치가 가까워 툭. 머리를 크리스티나의 품에 기댄 상태가 되었다.
‘……?’
그는 민망함에 손을 꼬물거렸다.
영락없이, 제가 잘못한 것을 직감한 아이의 모습이었다.
슬그머니 머리를 들려는 순간, 크리스티나가 이무기를 품에 안아들었다.
“일단 돌아가자. 몸이 많이 상했어.”
품에 귀를 가까이 하게 된 이무기에게 크리스티나의 심장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크리스티나도 상당히 놀랐군.’
꾹. 크리스티나가 그를 놓칠 세라 더 꼬옥 안았다.
평소라면 민망해서라도 적당히 밀어냈겠지만, 이번만큼은 그럴 수가 없어 원래 방으로 들어갈 때 까지 그는 조용히 안겨있었다.
‘내상에, 기운까지 엉망진창이군.’
요람에 누워 자신의 몸을 살핀 이무기는 속으로 혀를 찼다.
약재의 기운이 너무 강해 순간적으로 탈이 난 상황.
약이 과하면 독이 된다고 했던가.
강해지고자 했던 그의 욕구가 화를 부른 상황이었으므로 누구를 탓할 수도 없었다.
‘뭐…… 일단 살았으면 됐다.’
후에 이 상황을 잘 마무리할 방법을 생각해 보자고 생각한 그는 적당한 반성과 약간의 민망함을 남긴 채 만드라고라 사건의 결론을 내렸다.
‘앞으로는 좀 신중해야겠어.’
겨우 새 삶을 받았는데 풀뿌리 뜯어 먹다 죽는다면 얼마나 허무했을지 생각하니 어이가 없어 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그나마 그간 수련을 해 와서 다행이다.’
가만히 누워있으니, 크리스티나는 약이 될 만한 것을 찾아오겠다며 라이를 남기고 방을 나섰다.
이무기는 시무룩하게 구석에서 빛을 내는 라이 몰래 운기조식을 하며 내상을 치유했다.
녹빛 머리를 가진 소년이 준 약 덕분인지, 몸 안에 들어온 만드라고라의 기운을 충분히 제어할 수 있었다.
‘죽을 뻔한 건 죽을 뻔한 거고, 기왕 들어온 약재의 기운은 다 흡수해야지.’
그는 곧바로 운기조식을 통해 만드라고라의 기운을 제 것으로 삼키기 시작했다.
어느 새 눈물 자국이 난 하얀 새끼 새가 삐이 삐 울음소리를 내며, 이무기의 머리 근처에 자리를 잡곤 볼을 부벼왔다.
그는 매끈한 비늘 위로 눈물방울이 구르는 것을 느끼며, 묘한 감각에 젖어들었다.
‘기분이 이상하군.’
제가 다친 것도 아니고, 생판 남인 그의 몸이 상하는 걸 보고 세상 잃은 듯 펑펑 우는 것을 보니 뭉클했다.
이무기는 제 손을 뻗어 하얀 병아리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울지 마라. 기껏해야 배탈인데.’
“삐약. 삐이. 삐야아악!”
조그마한 하얀 날개가 이무기의 뺨을 어루만지며 더 서럽게 울음을 터트렸다.
그때였다.
퐁.
아기 새의 눈가에 고이는 눈물이 맑은 빛을 띠었다.
‘뭐야, 이거.’
불순물 하나 없는 물방울이 맨들맨들한 이무기의 볼을 타고 보석처럼 반짝이며 흘렀다.
토로록.
해로운 것들을 태우는 정화의 기운이 뺨을 통해 스며들었다.
마력에 민감한 이무기는 직감적으로 무언가를 깨닫고 속으로 탄성을 터트렸다.
‘이거 설마?’
그는 즉시 검지로 아기 새의 눈물을 닦아냈다.
12화 전승
보석처럼 투명한 눈물방울을 핥자 은은한 짠맛이 입안에 들어왔다.
‘맑다.’
꿀꺽, 삼킨 소량의 눈물이 그의 내상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역시! 독에 효력이 있는 물이었어.’
불사조의 눈물.
비록 성체는 아니었으나, 불순한 것을 태우는 신의 새의 눈물은 상처를 완벽하게 치료하고 내상이 심한 자를 회복시켰다.
‘게다가 단전에 뜨거운 기운까지 스몄어.’
그는 생각지 못한 행운에 히죽 이를 드러내 웃었다.
‘이 병아리. 생각보다 유용하잖아?’
“뀨. 뀨꾸꾹.”
“뺙?”
기분이 좋아 보이는데도 묘하게 음흉함이 느껴지는 해츨링의 웃음이었다.
인기척이 느껴진 건 그때였다.
“깼구나. 푹 쉬었니?”
크리스티나가 간단한 먹을거리와 함께 방에 들어오고 있었다.
‘왔냐.’
“꾸.”
이무기가 간단하게 대답하곤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보다 훨씬 건강해 보이는 모습에 내심 안도하며, 크리스티나가 말을 이었다.
“놀랐겠구나. 이제 괜찮아. 너무 어린 해츨링이라 탈이 난 것이지만, 조금만 크면 만드라고라 정도는 별것 아닐 거란다.”
부드러운 손길이 이무기의 맨들맨들한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이무기는 충분히 괜찮아졌다는 뜻으로 상체를 일으켜 그녀를 바라보았다.
“뀨우. 뀨!”
‘이 정도쯤, 금방 괜찮아져.’
크리스티나는 또한번 놀라움을 느꼈다.
데려올 때만 해도 골골거리고 있었는데, 조금 피곤해 보이는 점 외에는 전혀 다친 기색이 없기 때문이었다.
‘라이에게 정황을 들었을 때도 믿기 어려웠는데. 이동마법을 쓰지를 않나, 속이 크게 다쳤는데도 금세 회복해 버리기 까지 하다니.’
그린 드래곤인 리즈에의 도움이 있었다지만 이 정도의 회복은 놀라운 일이었다.
‘평범한 해츨링으로 자라기엔, 가진 재능이 너무 많은 아이야. 어쩌면 이 아이야말로 누구보다 크게 될 해츨링이 아닐까.’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이무기가 크리스티나를 보았다.
‘혹시 수상한 꼬맹이라고 의심을 산 건 아니겠지? 여차하면 이놈을 힌트로 주면 되겠지만.’
아기 새를 염두에 두고 가만히 있자, 살며시, 그녀의 손이 짐승의 조그마한 앞발을 쥐었다.
“아가야.”
“뀨?”
“나는 네게 ‘전승마법’을 걸 생각이야.”
“……꾸?”
‘그게 뭔데.’
이무기의 생각에 답하듯 크리스티나가 말을 이었다.
“전승마법을 통해 너는 우리의 문화와 마법, 고대 언어 등의 지식과 능력을 얻거나 개화시킬 수 있단다. 이번처럼 모르고 위험한 약초를 먹는 일도 없을 테고 말이야.”
‘그 말은, 이 세계의 지식을 전해 받을 수 있다는 소리인가?’
이무기의 눈이 반짝 빛냈다.
전승마법이라는 것을 받게 되면 아기라는 틀에서 한 발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에 기대감이 솟았다.
“본래는 신체가 어느 정도 여문 후 이야기할 일이지만, 나는 네가 의식을 치르기에 충분한 잠재력을 지녔다고 생각한단다.”
‘충분하지. 무조건 하겠어.’
이무기가 고개를 열심히 끄덕였으나 크리스티나는 걱정이 남은 얼굴로 고개를 흔들며 웃었다.
“다시 생각해봐도 참…… 말이 안 되지만 말이야.”
어떤 드래곤도 태어난 지 한 달 만에 전승을 받지 않는다.
신체가 여무는 것도 그렇지만, 이 전승마법은 드래곤이 가진 지식의 근원을 심어주는 일이었다.
무의식에 주입되는 정보와 능력은 정신체가 성숙할수록 그에 맞게 흡수되고, 개화했다.
다만 마법 특성상 갓 태어난 해츨링이 받아들이기에 부담이 컸다.
‘거대한 개념 마법이라, 자칫 잘못하면 오히려 문제가 생길 수도 있어. 하지만.’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하는 마법이지만 이번 만드라고라 사건으로, 아이가 스스로 힘을 다룰 수 있는 지식과 개념을 주는 편이 도리어 안전하리라 판단했다.
‘만드라고라뿐만이 아니야. 드래곤 로드가 이 아이의 존재를 알아버렸으니까. 스스로 살아갈 발판을 만들어 주는 편이 훨씬 도움이 되겠지.’
마음 같아서는 그녀가 늘 돕고 싶었지만, 곁에서 보호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었다.
‘애초에 스스로 이동마법을 터득해 버리는 아이를, 완벽하게 내 울타리 안에 둘 수도 없으니까.’
가혹할 수도 있겠지만, 아이의 성정에 맞는 방법이라 확신했다.
“이 마법은 네 능력을 개화시키겠지만, 고통스럽고 위험하기도 해. 또, 온전히 나를 믿고 모든 것을 맡겨야 하는 일이야.”
전승마법.
이는 신이 세상을 살아갈 지성체들에게 시전했다고 일컬어지는 고대 언령 마법이었다.
수여자가 알고 있는 문화, 지식, 개념 등을 상대에게 심어주는 마법으로, 종족을 불문하고 사용할 수 있는 존재가 대륙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는 마법이었다.
제대로 사용할 줄 아는 자는 극소수였고 조건도 까다로웠다.
이 마법의 무서운 점은, 자칫 수여자가 수혜자에게 잘못된 지식이나 사상을 전할 가능성도 있다는 것.
하여 드래곤들 사이에서도 너무 어린 해츨링에게 시전 하는 일은 없었다.
세상을 모르는 어린 해츨링의 가치관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위협적인 요소였으니까.
그 때문에, 전승 마법 전수자는 한 가지 제약이 걸려있었다.
전승마법은 생에 단 한 번 전승이 가능했다.
그렇기에 보통은 배후자이거나 부모가 되는 드래곤이 각별히 여기는 존재, 혹은 해츨링에게 성인식 하듯 치러 주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어린 해츨링에게 결정을 맡기기에는 무거운 이야기를 입에 올리며 그녀는 차분한 시선을 건넸다.
“아가야. 날 믿어줄 수 있겠니?”
이무기의 눈동자가 크리스티나를 비췄다.
라이는 크리스티나가 걱정스러운지 주변을 뱅그르르 돌았다.
그녀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 미소 지으며 정령의 빛을 검지로 톡 건드리며 웃어주었으나, 문득 얼굴이 조금 어두워졌다.
“……실은, 좀 더 평범하게 아이다운 시절을 보내게 해 주고 싶었어. 너무 빨리 큰 아이는 몰라야 할 것들도 일찍 알아버리니까.”
블랙 드래곤이 그 혼자라는 사실도.
종족을 전멸시킨 자들에 대해서도.
아직 순수하게 지낼 수 있을 시기에 알아버리는 것이, 과연 그에게 좋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이무기는 그런 크리스티나를 보며 생각했다.
‘쓸데없는 걱정이군. 이 몸은 이미 999년의 삶을 살아왔다고. 뭐…… 신경 써 주는 건 고마운 일이다만.’
언뜻 듣기에도 가볍게 쓸 능력이 아니었다. 이무기는 이 마법에 어떤 식으로든 제약이나 까다로운 조건이 존재하리라 예상했다.
‘어려운 결정을 했겠군. 은혜는 잊지 않고 갚아야겠지.’
아이이기 때문에 당연히 배려해야 할 것을 정말로 받는 경우는 생각보다 흔치 않았다.
따스함을 배우기보다 혼자 동냥하는 법을 가르치고, 타인을 배려하는 법을 알기 전에 타인을 밟고 정상에 서는 법을 먼저 배우는 경우도 심심찮게 있으니까.
동료를 만들기보다 수준에 맞는 무리를 만들라고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던 세상을 보았다.
그런 그에게, 크리스티나가 알려주는 것들은 흔치도 않았고 값을 따질 수 없는 귀한 것들이었다.
‘고통이 있을 거랬나. 그 정도는 감내해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