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티나는 이동마법으로 페르디키온과 이무기, 그리고 어린 새를 요람이 있는 방에 데려다 준 후 밖으로 나갔다.
둘이 남자 페르디키온이 큼, 하고 헛기침을 했다.
“야.”
“꾸으우?”
‘다짜고짜 야라고?’
페르디키온이 갑자기 이무기의 볼을 잡고 만지작거렸다.
“삐이야악!”
갑자기 바뀐 태도와 분위기에 이무기가 어이없어하는 사이, 하얀 병아리가 놀란 듯 페르디키온의 머리 위로 올라가 쪼아댔다.
“비켜. 건방지게.”
페르디키온은 아랑곳하지 않고 한 손으로 새를 대충 치워내곤 이무기의 찐빵 같은 볼을 양 손으로 꾹꾹 눌러 쥐었다.
“꾸우. 뀨욱.”
‘놔라. 이 자식아.’
이무기가 바동거리자 페르디키온이 낮게 중얼거렸다.
“이 녀석이, 앞으로 내가 이끌어줘야 할 동생이란 말이지?”
‘동생 같은 소리 하네. 게다가 이끌어 준다고?’
어린 생명체를 이렇게 다루다니. 이제 보니, 크리스티나 앞에서 했던 행동은 내숭이었다는 생각에 이무기의 눈초리가 뾰족하게 변했다.
심지어 크리스티나의 전승으로 그녀의 지식을 전수 받은 이무기에게, 페르디키온이 무언가를 가르쳐줄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이를 모르는 페르디키온은 뺨을 틱, 놓고는 고압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너는 나만 믿고 따라와라. 어리다고 봐 줄 생각 없으니, 요령 피울 생각은 하지도 말고.”
“뀨우우.”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은 이무기의 비늘이 어이없음으로 차르르 돋아났다.
그의 기분을 감지한 흰 새끼 새는 정수리의 검은 깃을 빳빳하게 세우고 엉덩이를 쭉 뺐다.
“삐야악!”
하얀 병아리는 당장이라도 돌진해 부리로 쪼아버릴 기세로 노려보았다.
페르디키온도 새의 눈을 노려보며 낮게 으르렁거렸다.
“불의 주인이 될 자에게, 건방지게 굴지 마.”
새를 보는 페르디키온의 눈에 적의와 함께 홍염이 피어올랐다.
15화 좀 과했나?
피부를 핥는 불길이 아기새에게 달려드는 모습이 위협적이었다.
그 순간 이무기가 제 앞발을 아기 새의 앞으로 뻗어 방패처럼 가렸다.
“째애액!?”
이무기의 까만 앞발이 다치는 줄 알고 놀란 아기 새가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내질렀다.
“뭐 하는 짓이냐!”
페르디키온의 외침과 함께 단숨에 사라진 불꽃을 보며, 이무기가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위험할 리 없지. 네 놈에게 머리가 있다면, 크리스티나의 레어에서 나에게 해를 입힐 수는 없을 테니까.’
페르디키온은 물론이고, 더 대단한 작자가 와도 골드 드래곤의 레어에서 크리스티나의 보호 아래에 있는 그에게 해를 끼쳤다간 수습 불가능한 상황에 놓인다.
배려 깊고 상냥하게만 보이는 크리스티나였지만 빛의 군주이자 골드 드래곤의 장로인 그녀는, 이 지역의 여제였다.
그런데, 그녀가 보호하는 해츨링과 신수에게 공격을 하려 든다?
축객령은 물론, 그녀의 진노를 피할 수 없을 터였다.
‘크리스티나가 호의를 베풀고 있기는 하다만…… 어린 녀석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함부로 굴다 큰 코 다치려고.’
그는 아기 새를 품에 안고, 경고하듯 차갑게 페르디키온을 응시했다.
페르디키온은 눈 하나 꿈쩍하지 않고 이무기에게 말했다.
“하, 꼴에 수하라고 챙기는 거냐?”
“…….”
쯧, 이무기가 속으로 혀를 찼다.
‘이놈 정신 못 차렸네. 저걸 어디부터 뜯어 고쳐줘야 하는 거지.’
보아하니 가르쳐줘야 하는 건 이무기가 될 판이었다.
상상만 해도 귀찮음이 느껴졌다.
‘그냥 무시하고 적당히 맞춰줘?’
그래도 되긴 했다. 일단은 불의 일족 장로 후계이니 적당한 관계로 친분을 쌓아두면 후에 괜찮은 인맥이 될 수도 있으니.
‘아니. 역시 안 되겠어.’
후에 몇 천 년을 알고 지내할 놈이라 생각하니 적당히 봐주려던 마음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방만한 놈을 어쩌다 한번 보고 말 것도 아닌데 그대로 둔다니.
차라리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바로 잡아두는 게 훨씬 나았다.
‘우선, 위아래부터 바로 잡아야겠군.’
이무기는 은근한 살기를 담아 페르디키온을 바라보았다.
천 년에 가까운 그의 존재감이 그대로 구현된 듯한 묵직함과 살기가 점차 짙어져 방 안의 주변 온도가 순간적으로 서늘하게 느껴졌다.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한 페르디키온이 몸을 긴장시켰다.
그러나 이내, 그런 자신에게 화가 난 듯 표정을 구겼다.
‘내가…… 고작 1살도 안 된 해츨링에게 압박을 느낀다고?’
분노의 감정과 달리, 몸이 내리눌리는 감각에 숨이 버거워질 지경이었다.
그러나 직후, 순식간에 살기가 사라졌다.
“헉!”
페르디키온이 호흡을 터트렸다. 그는 숨을 가다듬으며 이무기를 바라보았다.
고작 1살도 안 된 해츨링이 자신을 ‘봐준다.’고 느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이 정도면 적당하겠지.’
혼란스러워 하는 페르디키온의 앞에서, 이무기는 태연히 아기새를 제 어깨 위에 올렸다.
페르디키온은 두려워했다는 사실에 분노를 느꼈지만, 그 대상이 고작 한 달밖에 안된 해츨링이라는 것에 당혹감을 드러냈다.
“너…… 대체 뭐야. 어떻게 그런 기운을?”
“……꾸.”
이무기에겐 두려움을 느낀 짐승이 더 짖으며 함부로 해치지 못하게 위협하는 모습으로 보였다.
명백한 경계의 눈빛을 드러내며 긴장한 그에게 이무기는 어깨를 으쓱이곤, 아기 새의 머리를 앞발로 쓰다듬었다.
‘……좀 과했나?’
행동거지가 오만한 것치곤 정신력이 약했다.
강도 조절을 좀 더 신경 써야 했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본래의 나보다 어리다지만, 이 정도로 그렇게 위축되면 어쩌냐.’
당연한 결과였다.
이무기는 누구라도 기피하는 험한 기운이 넘실거리는 장소에 몇 백 년이나 혼자 틀어박혀 수련에 매진해 왔던 자였다.
승천에 대한 진심 어린 각오를 지니고 매진해 온 나날들은, 하루도 호락호락한 날이 없었다.
다른 말로 하면, 페르디키온이 살아온 세월의 밀도가 이무기보다 옅다는 말이었다.
‘그런데 불을 다루는 걸 보면 제법 감각이 좋아보였단 말이지.’
협박용으로 써서 그렇지 마력의 흐름만 보면 거친 성정과 달리 상당히 부드럽고 세심했다.
‘겁 많은 사자긴 하지만, 확실히 힘을 다루는 재주는 뛰어나.’
아직 부족하지만 생각할수록 자질이 꽤 괜찮았다.
심사가 영 곱지 못한 것만 고치면, 쓸 만한 놈이 될 터였다.
‘그러고 보니 제 어미가 돌아가고 나서, 아비에게 오직 장로가 되기 위한 교육만 받았다고 했던가? 파시야스라는 자는 그리 좋은 아비는 아닌 듯 했고, 그렇다고 정서적으로 제대로 된 친우도 없었을 텐데…….’
문득, 이무기는 직감적으로 본질을 떠올렸음을 알아챘다.
‘아. 설마 그게 크리스티나의 목적인가.’
친분을 나눌 자를 만드는 것.
그녀 역시 이무기와 비슷한 생각을 했었을 테니 틀림없었다.
생각해보면 페르디키온이 동등하게 친분을 나눌 수 있는 존재란, 무척 조건이 까다로웠다.
‘크리스티나가 친구가 되어줄 수는 없었겠지. 파시야스에게 다녀온 후에 페르디키온이 온 걸 보면, 파시야스의 허락은 이미 받은 게 틀림없어.’
괜찮은 방법이었다. 크리스티나에게 쓰다듬 받을 때 보인 모습을 보아하니, 한 번 마음을 사두면 제 마음에서 잘 내보내지 못할 부류였다.
‘잘 되면 불의 일족 후계자와 척을 질 일은 없을 터. 내게도 좋은 일이야.’
크리스티나는 이무기에게 은인이기도 했으니, 그는 그 의도에 순순히 동참하기로 했다.
‘갑자기 편하게 있으라고 하기도 뭐하고. 우선은, 경계를 느슨하게 만들어야겠군.’
이무기는 순한 얼굴을 하고, 아기 새를 제 앞발로 소중하게 감싸 쥐며 페르디키온을 바라보았다.
좀 전에 살기를 뿜은 것은 그의 친구인 아기 새를 위협했기 때문에 반사적으로 나온 행동이며, 본래는 어린 해츨링일 뿐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고개를 살살 저어 보이기까지 했다.
마치, 자신의 친구를 건드리지 말라는 부탁 같았다.
해츨링이 새하얗고 조그마한 아기 새를 소중히 여기는 모습은, 좀 전의 살기를 보였던 모습을 조금이나마 희석시켜 주었다.
페르디키온도 그 모습을 보고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하며 경계를 조금 풀었다.
‘이제 어떻게 친분을 만들어야 할지가 문제이군.’
제일 먼저 생각 난 건, 힘을 보여서 서열 관계 확실하게 만든 후 제 말을 듣게 하는 방법이었다.
‘이 방법은 안 돼.’
이무기는 떠올리자마자 마음속에서 부정했다.
전생에 대해 말해 줄 수는 없으니, 가진 힘을 설명하려면 크리스티나에게 받은 전승된 능력과 지식에 대해 말해주어야 했다.
크리스티나의 부탁이기도 했지만, 그건 이무기가 가진 비장의 패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페르디키온의 몸에 밴 약자를 함부로 대하는 행동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은 되지 못할 터였다.
‘그저 자신보다 더 강한 자의 말을 듣도록, 고삐를 죄는 행위가 될 뿐이야.’
더 강한 자에게 굴복하는 비겁한 녀석으로 만들 수는 없었다.
그는 고새 아기 새와 진지하게 눈싸움을 시작한 페르디키온을 보며 하나씩 생각을 정리했다.
‘저런 성격으로 자란 이유는 가까운 연장자의 영향이 크겠지. 약자에게 함부로 굴도록 키워졌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생각하니, 본래의 성정은 생각보다 괜찮은 녀석일 수 있겠다 싶었다.
‘마음 같아서는 양육자 자격도 없다고 한소리 하면서 시원하게 쥐어박아주고 싶군.’
이무기는 속으로 한숨을 푹 쉬었다.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 마침 자리를 비웠던 크리스티나가 이동마법으로 방에 들어왔다.
“얘들아, 잘 놀고 있었니?”
“꾸우.”
이무기는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을 하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건 뭡니까?”
페르디키온의 물음에 크리스티나가 대답했다.
“이 아이가 특히 맛있게 먹는 음식이란다. 너도 같이 먹어보렴.”
“……감사합니다.”
예의 있게 인사한 페르디키온이 바구니 안에 든 것을 보니, 바삭하게 만들어진 비스킷에, 병에 든 우유. 꿀과 치즈가 있는 간단한 주전부리였다.
그는 이 간식들이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눈치챘다.
“음식에서 마력이…….”
“알아보는구나. 저 아이가 이런 음식을 무척 좋아해서 말이야.”
“마력이 담긴 음식을요?”
“후후, 신기하지? 늘 그것만 먹는단다.”
의아함을 느낀 페르디키온이 이무기를 바라보았다.
‘매번 마력이 담긴 식단을 즐긴다고?’
특정 성분이 들어간 음식을 고집해 먹는 해츨링의 이야기는 처음이었다.
인간으로 치면, 음식에 영양제나 포션 시럽을 뿌려 먹는 걸 즐긴다는 말과 같은 의미였다.
무슨 목적이라도 있는 게 아니라면, 태생적으로 풍부한 마력을 타고난 드래곤 일족의 아이가 뭣도 모르고 마력이 든 음식만 탐한다는 건 특이한 일이었다.
‘설마…… 좀 전에 느껴진 강한 기운은, 이런 음식을 먹으며 성장했기 때문인가?’
페르디키온은 머리에 떠오른 가정을 부정했다.
‘설마. 의도적으로 먹으려 들지 않는 한 그런 일이 있을 리 없지.’
그런 페르디키온의 생각을 모르는 이무기는 비스킷에 꿀을 듬뿍 묻혀 한입에 삼켰다.
“꾸우.”
‘역시 맛있군.’
바삭. 바사삭.
볼을 볼록하게 부풀리며 태연하게 비스킷을 씹는 소리를 낸 이무기가, 또 다른 비스킷을 꺼내어 먹으며 맛에 푹 빠진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태연한 얼굴로 비스킷에 손도 대지 않고 있는 페르디키온에게, 바구니에서 비스킷을 꺼내 꿀을 푹 묻혀 건넸다.
“꾸!”
‘쓸데없는 데 힘쓰지 말고, 먹어나 봐.’
페르디키온은 꿀 비스킷을 내미는 그를 바라보았다.
달콤한 향을 풍기는 과자를 내미는 모습은 무척 귀엽고 호의적이었으나, 좀 전엔 성체 드래곤이나 뿜을법한 살기를 흘리던 모습이 겹치자 혼란스러웠다.
그렇다고 크리스티나가 보는 앞에서 계속 받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
페르디키온이 미간을 살짝 좁히고는, 비스킷을 받아 입안에 밀어 넣었다.
바사삭.
혀에 닿는 순간 느껴진 맛에 페르디키온의 표정이 미묘하게 굳었다.
‘맛……있어?’
바삭…… 바삭바삭!
그는 비스킷을 빠르게 오물거렸다.
그 모습을 본 이무기가 비스킷 하나를 더 꺼내 꿀을 묻혀 건네주었다.
약간의 경계와 망설임도 잠시, 페르디키온은 비스킷을 받아 입 안에 넣었다.
잘도 받아먹는 페르디키온을 보자니 사나운 고양이를 길들이는 기분이었다.
‘호, 이건가?’
녀석의 성질을 다듬을 실마리를 얻은 기분이었다.
본래 맛있는 음식 주는 자는 싫어하기 어려운 법이다.
특히 단 것과 맛있는 간식의 조화는 입에 맞는 자라면 보통, 기분을 좋게 만들어 주는 효과가 있는 법.
그런 과자를 타인과 나누는 법을 익힌다면?
‘한솥밥이라는 말이 있지. 유대감이 생기기 아주 좋은 방법이야.’
페르디키온도 맛있는 과자를 먹으며 유대를 얻고, 거기에 약자에게 베푸는 법도 익힐 수 있는 괜찮은 방법이었다.
‘이 녀석은 불의 일족 차기 장로이자, 레어와 던전의 주인이다. 거느릴 자들에게 베푸는 법을 익힌 군주가 된다면 친해질수록 내게도 유익하겠지.’
자신에게 함부로 대하게 두지 않으면서, 적당히 호감 있는 관계만 만들어도 성공.
거기서 더 친해진다면 불의 일족을 그의 편으로 만드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16화 개과천선
꿀꺽.
페르디키온이 달콤한 꿀 한 모금까지 삼키는 모습을 본 이무기가, 우유병을 꺼내 페르디키온에게 내밀었다.
‘우유도 같이 먹으면 맛있지.’
그 모습을 쭉 지켜본 크리스티나가 작게 감탄을 터트리며 말했다.
“둘 다 벌써 친해졌나보구나.”
“친해졌다기 보단…… 그저 인사나 나눴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