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화 (17/242)

문득 이무기를 본 아기 새가, 작은 날개를 최대한 펴고 의욕에 차 외쳤다.

“삐야아악!”

뭔가 보여주겠다는 듯 포부 넘치는 외침이었다.

그 모습을 본 크리스티나가 웃으며 손을 뻗었다.

“그래. 너도 잘 도와주렴.”

크리스티나의 손이 아기새의 머리를 쓰다듬는 동안, 이무기는 눈을 반짝이며 새를 바라보았다.

‘적당한 자극을 줄 만한 요소도 마침 있군.’

그는 가슴털을 부풀리며 의욕에 차 있는 하얀 새를 바라보았다.

씨익.

이무기의 입꼬리가 슬그머니 올라갔다.

“삐이……?”

왠지 모를 수상한 기색을 느낀 새가 쭈뼛하게 한 올 있는 검은 깃을 세웠다.

‘페르디키온이 마음대로 할 수 없고, 왠지 모르게 티격 거리는 녀석이니 다양한 상황을 끌어낼 좋은 촉매가 되겠어.’

오늘만 해도 마음에 안 들어 하는 티를 내면서도, 마지막 비스킷을 내어주는 호의를 베풀며 민망함을 드러냈다.

어딘지 모르게 서툰 그 반응이야말로 장로가 아닌 페르디키온으로서 행동해 보는 경험일 터였다.

불의 일족 수장이 되어야 한다는 기대치를 충족시키기 위해 살았으니, 그에 맞지 않는 감정과 욕구는 억눌리며 살았을 터.

성장에 거름이 될 경험이 부족할 터였다.

‘수업은 내가 해주게 생겼군. 하다보면 진짜 네 모습을 보게 될 날이 올 테니 그 놈에게도 좋은 일이겠지.’

페르디키온은 같은 장로 후계인 이무기를 가르치러 온다고 여기겠지만, 실상 진짜로 용생 수업을 받는 건 미숙한 화룡족 꼬마였다.

***

다음 날 아침.

페르디키온은 해가 뜨자마자 머리카락 한 올 흐트러짐 없는 차림으로 방문했다.

다행히 깨어있기는 했으나, 이른 아침부터 그를 맞이하게 될 줄은 몰랐던 이무기는 정신만 겨우 챙겨서 페르디키온과 단 둘이 레어의 빈 방에서 만났다.

그는 이무기를 보자마자 자신의 품을 뒤적여 무언가를 꺼냈다.

“이거, 가져라.”

“꾸?”

이무기의 눈앞에 있는 건 붉은 마력석이 박힌 황금색 팔찌였다.

“변신 아티팩트다. 크리스티나 님에게 듣기로, 네 지적 능력이 꽤 높다고 들었다. 인간의 모습으로 변하는 능력이 담겨있으니 사용하면 편할 거 같아 챙겨왔지.”

‘괜찮네.’

센스만큼은 꽤 좋았다.

이무기가 팔찌를 받아 만지작거렸다.

“넌 아직 폴리모프 마법은 무리일 테니 유용하게 쓰일 거야.”

‘폴리모프라……. 변신술과 비슷한데, 좀 더 확실하게 원하는 모습으로 바뀌는 능력이로군.’

크리스티나의 전승을 통해 습득된 지식이 떠올랐다.

“내가 아직 어렸던 시절에 쓰던 거다. 네 모습을 상상하고 마력을 넣으면 돼.”

‘확실히 쓸모 있겠군. 흔한 아티팩트도 아닌데. 교육을 해야 하니 말은 통해야 한다고 느낀 모양이지.’

친절이라기 보단 보다 제대로 된 교육을 위한 도구였을 터였다.

이무기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팔찌를 착용했다.

쑤욱. 팔찌가 그의 체형에 맞춰 딱 맞게 붙더니, 인간의 손으로 바뀌었다.

“오…….”

“이상한 느낌은 없나?”

“응. 전혀.”

‘기왕이면 좀 더 큰 녀석으로 변할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검은 머리에 붉은 눈동자를 한 7살 남짓한 작은 소년이 된 이무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페르디키온이 10대 중반 정도 되어서인지 여전히 키 차이가 느껴졌지만, 구강구조가 바뀌어 말이 통하고 양 손을 편하게 쓸 수 있다는 점은 확실히 편리하게 느껴졌다.

‘말을 할 수 있는 게 이렇게 좋은 거였다니. 속이 시원할 지경이군.’

전음 마법을 쓰면 혹시라도 같은 해츨링인 페르디키온이 감지할까 싶어 자제했었기에, 언어 소통의 편리함이 더욱 크게 느껴졌다.

“편리하네. 고마워.”

페르디키온의 차가워 보이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뭔가 참는 기색인 그를 바라보자 시선을 돌렸지만, 이무기는 그 속내가 짐작이 갔다.

‘고맙다는 말을 듣는 게 어색했겠지.’

속으로 피식 웃은 이무기가 팔찌를 재차 만지작거렸다.

“삐이!”

노란 눈을 반짝이며 이무기 곁에 날아온 작은 새에게 시선을 던진 페르디키온이 묘하게 미간을 찌푸렸다.

“저 새는 치우지 그래. 수업에 방해야.”

“그거 말인데, 이 녀석도 같이 수업을 듣고 싶어.”

“뭐?”

페르디키온의 눈썹이 사납게 일그러졌다. 입속말로 작게 욕지기를 하더니 이무기를 향해 불편한 심기를 여과 없이 드러냈다.

“그러니까, 이 새와 같이 가르침을 받겠다고?”

“응. 크리스티나도 형만 괜찮다면 마음대로 하래.”

크리스티나를 언급할 때는 볼가가 움찔 거리더니, 페르디키온의 허가가 필요하다는 말을 듣자 그는 딱딱한 얼굴로 단칼에 거절했다.

“내가 왜 그런 걸 허락해줘야 하지? 크리스티나 님께서 네 어리광에 자비를 베푸신 모양이다만, 장로로서의 배움에 이 새 새끼는 방해만 될 뿐이야.”

“삐-이약!”

불만스러운 지저귐을 들은 페르디키온이 주먹을 꽉 쥐고 거슬리게 튀어나온 못을 보는 양 병아리를 노려보았다.

“열 받게 하지 말고 눈치껏 꺼지시지. 하찮은 병아리 주제에.”

당장에라도 쫒아내 버리고 싶어 하는 눈빛에 굴하지 않고, 하얀 새는 콧김을 뿜더니 동그란 몸을 부풀려 맞섰다.

파팍!

부딪히는 시선에서 스파크 튀는 소리가 들릴 지경이었다.

‘참 화가 많은 놈이야.’

화를 내는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지만, 저런 어린 새에게까지 화를 내는 건 문제가 있었다.

정말로 화내야할 때와, 아닐 때를 분별하는 법을 모르는 권력자는 그저 흉악무도한 지배자일 뿐이다.

“……형.”

싸늘하게 변한 이무기의 눈이 페르디키온을 향했다.

그러자 페르디키온이 미간을 꿈틀, 움직이며 당장 기함을 터트릴 듯 입가를 떨었다.

“뭐야, 그 불손한 눈은. 그게 배우겠다고 온 놈이 할 눈이냐.”

‘저런 걸 불의 일족의 장로라고.’

속으로는 영 못마땅했지만 제지는 필요했다.

폭.

“…….”

“삐이?”

이무기는 어깨를 늘어뜨리고, 하얗고 동그란 어린 새의 몸체를 끌어와 안으며 페르디키온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야, 좀 심하잖아. 아직 어린 새일 뿐인데.”

“위아래도 모르고 내게 덤벼들면서 열 받게 구는 건 그 미물이지. 적의를 가진 녀석은 철저하게 굴종시켜야하는 법이다.”

“형, 봐.”

이무기는 새를 두 손으로 들어보였다.

“이 녀석 어딜 봐서 형한테 위협이 돼? 오히려, 뭐…… 좀 귀여운 편 아닌가.”

훗날 강해질 지도 모르는 불사조의 새끼.

그야말로 몇 백 년, 몇 천 년은 지나야 강해질 녀석이었다.

지금은 갓 태어난 어린 새일 뿐이고, 시간이 지나 강해지는 건 페르디키온도 마찬가지일 터였다.

“불의 힘을 쓸 뿐, 이 녀석은 그냥 새일 뿐이야. 그리고 이 녀석이 경계하는 이유는 형이 더 강하기 때문이고.”

“뭐?”

이무기의 말을 듣고 페르디키온의 분노로 물든 얼굴에 당혹감이 스쳤다.

늘 아버지인 파시야스에게 약하고 모자란 놈이란 소리를 들으며 가혹한 체벌을 받아왔다.

그랬던 페르디키온에게, ‘강하기 때문에’라는 말은 처음 듣는 소리였다.

“나한테나, 이 녀석한테나 위협이 느껴질 만큼 형이 강하기 때문에 이 쪼그만 놈이 그렇게 경계하는 거라고. 그런데 형이 더 무섭게 굴면, 더 큰 위협이라 느끼고 덤벼드는 거지.”

“그……런 거라고?”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은 페르디키온을 두고 이무기는 새를 품에 안았다.

마치, 어린 해츨링이 아기 새를 보호해주고 싶어 하는 모습이었다.

18화 백야

‘생각보다 단순한 녀석인데?’

크리스티나의 말대로 약자를 건드리지 않는 녀석이라는 점에 초점을 맞췄는데, 예상보다 더 잘 통했다.

여기서 페르디키온이 새에게 분노를 계속 터트리면, 그를 두려워하는 짐승에게 진심으로 화를 내는 놈이 될 터였다.

“나도 이 녀석이 영험한 새라고 들었어. 형이 먼저 이 녀석을 미워하지 않으면, 이 새도 형을 미워하지 않게 될 거야.”

이무기는 품 안 새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었다.

적의는 적을 만드는 법.

적이 아닌 자에게도 적개심부터 드러내면 시끄러워지는 게 당연했다.

아기새는 이무기의 손 안에서 노란 눈만 깜빡이고 있었다.

“어때. 얌전하지?”

페르디키온은 못마땅한 눈을 했지만, 실제로 아기새는 작게 피요, 소리를 내며 손길을 받기위해 고개를 기울일 뿐이었다.

분노가 사라질 정도로 무해하고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이 녀석은 날 지키려고 최선을 다했을 뿐이야. 만약 형이 이 새를 건드리면, 나도 가만히 있지만은 않아.”

“……큼. 알겠다.”

상대방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해츨링의 순수한 눈과, 선을 넘지 말라는 경고가 담긴 침착한 시선. 단단하게 다물린 입술.

함부로 굴어선 안 될 분위기를 풍겼지만, 까맣고 어린 해츨링이 단호한 얼굴을 해봐야 젖 살 통통한 꼬마의 당돌함으로 비추어졌다.

짧은 대답 후로 말이 없어진 그를 본 이무기는 내심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통하는군. 나름대로 도덕관은 있는 놈이라 다행이네.’

“삐잇!”

이무기가 털을 잔뜩 부풀리고 씩씩대는 아기 새의 머리에 손을 턱 올리고, 힘을 꾹 주며 털을 부스스하게 흐트러뜨렸다.

“삐이잇!?”

‘너도 적당히 나대라. 일단 저놈이 너보다 훨씬 오래 살았잖냐.’

“삐이! 삐이약!”

어린 새는 무어라 항의하더니, 이무기의 손을 두 날개로 꼭 맞잡고 미워하지 말라는 듯이 지저귀었다.

‘애가 둘이네.’

같은 속성, 이능을 지닌 존재.

처음부터 묘하게 티격태격 하기는 했지만, 서로가 대등하게 대하기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양한 상황과 감정을 소통해 가리라 여겼는데, 지금으로선 갈 길이 멀어보였다.

‘그래도 할 만하군. 시작이 좋아.’

어느 정도 불협화음이 생기는 건 상정된 일이었다.

거의 800년 가까운 시간동안 만들어진 성정이 단번에 바뀔 순 없는 법이니.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페르디키온이 칫. 하고 짧게 혀 차는 소리를 냈다.

“……어쩔 수 없지. 그 새는 여전히 마음에는 안 들지만. 너그럽게 넘어가주마.”

‘오.’

“고마워, 형.”

그는 즉각적으로 칭찬하며 순하게 웃어 보였다.

그때, 페르디키온의 입가가 비틀리며 작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실은 나도, 왜 이렇게까지 거슬리는지 모르겠다. 저 새 새끼.”

“형, 설마…….”

슬그머니 눈초리가 다시 날카로워지는 기색을 느낀 이무기가 페르디키온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묘한 의심을 읽은 페르디키온이 미간을 구겼지만, 좀 전처럼 화를 내지는 않았다.

“됐다. 거슬리긴 해도, 네 수하와 억지로 떨어지라고 지시하는 것도 웃긴 일이야. 번복하지는 않아.”

‘목소리는 냉기가 뚝뚝 묻어나는데, 눈에는 불길이 가득하면서 말은 잘하네.’

속으로 피식 웃긴 했지만, 마음 같아선 속 시원하게 한번 싸우는 게 속 편한 놈치곤 유한 대응이었다.

‘보아하니 제 편이라 느끼면 품에 들이는 편인 모양이지. 군주의 자질로 나쁘지 않지.’

말도 많아지고, 이러니저러니 해도 꽤 관대해져가는 모습이었다.

언제 돌변할지야 모르지만, 이 정도면 첫날치곤 유의미한 변화였다.

‘원래 성격이 대충 짐작 가는군.’

크리스티나에게 전승받은 지식에서, 불의 일족인 레드 드래곤들은 시원시원하고 불같이 뜨거운 성정을 지녔다더니, 그 말이 딱 맞았다.

‘녀석도 운이 좋았어. 내가 아니었다면 아비가 알려준 생각에서 꽤 오래 벗어나지 못했겠지.’

원하지도 않는 삶만 살기엔 너무 긴 생이었다.

어떤 걸 좋아하는지조차 모르는 삶이라면 드래곤이라 해도 속 빈 강정 같은 생을 살 게 뻔했다.

‘짧은 생을 사는 치들과 달리, 장생하는 우리는 의무감만으로 살려들긴 힘들지.’

몽실몽실한 하얀 털을 부풀리며 페르디키온을 보는 어린 새는, 다시 페르디키온과 살벌한 눈싸움 중이었다.

‘이렇게까지 서로 마음에 안 들어 할 줄은 몰랐지만, 나중에는 이 녀석들도 사이가 좋아……지겠지?’

같은 불 속성을 타고난 녀석들이니 오히려 금방 친해질지도 모른다 생각했지만, 그건 오산이었다.

‘잘 되면 나중에는, 둘이 놀고 있을 때 나 혼자 쉴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말이야.’

원래 애들끼리 놀게 두어야 보호자가 편한 법.

다만, 그 날이 언제 올지 요원한 상태였다.

새와의 눈싸움 결과는 이무기가 새의 눈을 가려주어 페르디키온의 판정승이었다.

어린 새가 억울한 듯 보송보송한 날개를 파닥였지만, 한쪽 입꼬리를 삐죽 올린 페르디키온은 고개를 돌려 이무기에게 물었다.

“그런데, 네 수하의 이름은 뭐냐?”

“이름?”

이무기의 눈에 당혹감이 어렸다.

대답이 없자 페르키디온이 황당하다는 눈빛으로 그와 새를 번갈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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